■분황사(芬皇寺) 경북 경주시 구황동(九黃洞)에 있던 신라시대의 절.
634년(선덕여왕 3)에 창건(創建)되었다. 국보 제30호로 지정된 모전석탑(模磚石塔)을 비롯하여, 화쟁국사비 비석대(和諍國師碑 碑石臺)·석정(石井)·석조(石槽)·초석(礎石)·석등·대석(臺石)과 사경(寺境) 이외에 당간지주(幢竿支柱)가 남아 있어 보존되고 있다. 이 절에는 775년(경덕왕 14) 본피부(本彼部)의 강고내미(强古乃未)가 구리 30만 6700근을 들여 만들었다는 약사여래동상이 있었다는데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고 한다. 원효(元曉)가 이곳에서 《화엄경소(華嚴經疏)》를 썼고, 솔거가 그린 관음보살상은 신화(神畵)로 일컬어졌다. 또한 절의 좌전에 있었던 천수대비(千手大悲) 벽화는 매우 영험이 있어서 눈 먼 여자 아이가 노래를 지어 빌었더니 눈을 뜨게 되었다고 전한다.
■분황사 모전석탑(芬皇寺模塼石塔) 경주시 분황사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제27대 선덕여왕 당시 건립된 석조 불탑.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30호로 지정되었다. 돌을 벽돌 모양으로 다듬어 쌓아올린 모전석탑(模塼石塔)으로, 현존하는 신라 석탑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다. 분황사 모전석탑이라고도 부르며, 원래는 9층이었다고 하나 지금은 3층만 남아 있고 높이는 9.3m이다. 634년(선덕여왕 3) 분황사 창건과 함께 만들어진 것으로 추측된다. 임진왜란때 크게 훼손되었다고 하며, 지금의 모습은 1915년 일본인들에 의해서 수리 복원된 것이다. 수리 당시 탑 안에서 사리함과 구슬 등의 많은 유물들이 발견되었다.
1단의 석축기단을 만든 다음, 그 중앙에는 1단의 화강암 판석(板石)을 밑에 깔고 안산암(安山岩)을 벽돌 모양으로 잘라서 탑신을 쌓아올렸다. 1층 4면에는 감실(龕室)을 만들고 그 좌우에 인왕상(仁王像)을 각각 1구(軀)씩 새긴 화강암을 끼웠다. 이 인왕상 조각은 당시 7세기 신라 조각양식을 살피는 데 좋은 자료가 된다. 탑의 옥개(屋蓋)는 전탑(塼塔)을 닮아 상하에서 단층(段層)을 이룬다.
규모도 크지만 2층과 3층의 탑신이 1층에 비해 현저하게 줄어들고 있어 더욱 장중한 감이 느껴진다. 그 모양이 전탑을 따르고 있어, 백제 석탑이 목탑(木塔) 양식을 따르고 있는 것과 대조를 이루며, 신라 석탑의 발달사를 연구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문화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