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루텐 프리 제과 제빵 스타트업
달롤컴퍼니의 박기범 대표.
/더비비드
밀가루를 섭취하면 몸에 이상 반응이 생기는 ‘글루텐(곡류에 존재하는 불용성 단백질) 불내증’을 앓는 이들에게 빵은 ‘달콤한 독약’이다. 한 입 베어 물면 온갖 고뇌가 잊힐 정도로 맛있지만, 이내 소화불량에 시달리거나 피부 발진이 일어난다.
제빵 스타트업 달롤컴퍼니의 박기범(35) 대표는 글루텐 불내증 환자의 구원투수를 자처한다. 박 대표를 만나 쌀 베이커리 스타트업 창업기를 들었다.
◇호텔 셰프→SPC 베이커리 마케터
호텔 셰프 시절 박 대표의 모습.
박 대표는 집에 바비큐 기계를
둘 정도로 요리를 즐긴다.
/본인 제공
달롤컴퍼니는 국내산 쌀 베이커리 브랜드 ‘달롤’을 통해 40여종의 빵류 디저트를 판매하고 있다. 대표 상품인 쌀롤케이크는 출시 후 3년 동안 100만개 이상 팔았다. 현재 온라인몰에서 공동구매 행사를 하고 있다. (기사 맨 아래 연결 버튼 참고)
먹는 데 진심인 아이였다. 관심사를 키워 2005년 경희대 조리외식경영학과에 양식 전공으로 진학했다. 졸업 후 2010년 신세계조선호텔 메뉴개발팀의 셰프로 취업했다.
“셰프였지만 ‘기획자’에 가까웠어요. 요리 뿐 아니라 디자인이나 마케팅·경영에 관심이 많았거든요. 신상 레스토랑이라면 무조건 가서 메뉴 구성, 인테리어 등을 뜯어보고 장사가 잘 되는 비결을 연구했습니다. 호텔 레스토랑과 베이커리 개선 프로젝트, 해외 셰프 초청 행사 등에도 많이 참여했어요.”
6년차 셰프가 됐을 때 새로운 일에 갈증을 느꼈다. 고객 충성도와 재방문율이 높은 특급 호텔 대신 발로 뛰어서 소비자를 유인해야 하는 역동적인 외식 시장을 경험하고 싶었다. 2015년 SPC 마케팅팀으로 이직했다.
“자타공인 ‘빵돌이’라서 그런 걸까요. 일이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신상품과 프로모션 기획, 트렌드 분석이 주 업무라 삼시 세끼 빵만 먹고 살았어요. 편의점, 타사 프랜차이즈 업체 등 경쟁업체가 출시한 모든 종류의 빵을 쓸어와서 먹었으니까요. 덕분에 제가 기획한 빵 중 두 가지가 2016년 파리바게뜨 매출 톱 10안에 들었습니다.”
SPC 베이커리 마케터로 재직 시절
제품을 연구중인 모습.
/박기범 대표 제공
한 롤케이크 브랜드가 눈에 들어왔다. “백화점 입점 업체를 조사하다가 2014년 설립된 카페형 베이커리 ‘달롤’을 알게 됐어요. 크림이 듬뿍 들어간 롤케이크를 주력으로 내세운 브랜드였죠. 애매한 브랜드 정체성을 바로잡고 장점을 살리면 잘 될 것 같았어요. 생크림 케이크, 카스텔라, 롤케이크 같은 디저트는 매출이 꾸준히 잘 나오는 ‘스테디셀러’거든요. 경험을 더 쌓고 사업할 생각이었는데, 열정이 샘솟을 때 시작하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어요.”
31살이었던 2017년, 틈틈이 모은 자금을 털어서 달롤을 인수했다. 배달과 식료품 신선 배송 시장이 성장하는 흐름에 맞춰 온라인 시장에서 회사를 키울 구상이었다.
◇고난의 연속 ‘글루텐 프리’ 인증
사업 초기 박 대표의 모습(왼쪽)과
지난 5월 김포에 있는 농가와
쌀 재배 계약 당시 기념 촬영한 사진(오른쪽).
농가와 직접 계약을 맺어서
유통 마진을 줄이는 게 목표다.
/달롤컴퍼니
원료 차별화를 결정했다. “빵의 주요 재료인 밀가루를 쓰지 않기로 했어요. 글루텐 거부 반응 때문에 밀가루를 먹으면 속에 탈이 나거나 피부 트러블이 나는 사람이 주변에 많았거든요.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쌀가루로 빵을 만들기로 했어요.”
2024년 국내 글루텐 프리 베이커리 시장이 6400억원 규모로 성장할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잘한 선택이란 생각이 들었죠.”
국내산 쌀가루만 쓰기로 했다. “지난 30년간 국내 쌀 소비가 반토막 났어요. 식문화가 발달하면서 주식이 쌀을 벗어나 샐러드, 파스타, 국수 등으로 다양해진 결과죠. 그 과정에서 쌀 공급 과잉 문제가 생겼습니다. 보관 비용 증가, 품질 저하 같은 부작용도 발생했죠. 국내산 쌀로 가공식품을 만들어 시장을 키우면, 쌀 수급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원료 제공자와 제조자가 공생하는 비즈니스를 하는 거죠.”
박 대표는 사업 초창기에 일주일에
2번씩 경기도 안성의 계란 농장에서
쓸 계란을 직접 실어 날랐다.
/박기범 대표 제공
경기 김포에 짓고 있는
글루텐 프리 공장 조감도. /달롤컴퍼니
밀가루를 쌀가루로 대체하는 과정에서 시장의 모순을 발견했다. 밀가루를 쓰지 않은 모든 제품이 ‘글루텐 프리’인건 아니었던 것이다. “시중의 제빵용 쌀가루는 2~3%가량의 ‘활성 글루텐’(밀가루 반죽에서 녹말을 제거한 밀 단백질의 복합체)을 포함하고 있었어요. 활성 글루텐이 들어가면 베이킹이 용이하거든요. 그런데 정말 민감한 소비자들은 미량의 글루텐에도 반응해요. 100% 쌀가루를 표방하는 만큼 글루텐을 아예 배제한 쌀가루로 제품을 만들기로 했어요.”
식품의약품안전처의 ‘글루텐 프리’ 인증을 받는 과정이 만만치 않다. “우리나라에서는 쌀가루 1kg당 글루텐이 20㎎ 미만이어야 글루텐 프리 인증을 받을 수 있어요. 다른 국가보다 까다로운 편이죠.”
1년을 투자해 간신히 인증을 받았다. “인증 검사를 10번 가까이 받은 끝에 통과했어요. 인증을 위해 만든 롤케이크만 수백개에 달하죠. 소량이라도 글루텐을 썼기 때문이 아녔어요. 작업 공간이 화근이었어요. 주변에 둔 밀가루나 조리도구에 미량 묻어 있는 밀가루조차 식별하더라고요. 그때부터 작업 환경에서 밀가루를 아예 배제했습니다. 밀가루를 이용한 개발과 실험도 전면 중단했죠.”
◇밀가루 못 먹는 사람에게
빛과 같은 케이크
달롤컴퍼니의 쌀 베이커리 브랜드
'달미'의 글루테프리 쌀롤케이크.
총 15가지 맛으로 구성됐다.
/달롤컴퍼니
시행착오 끝에 2018년 온라인몰에 ‘글루텐프리 쌀롤케이크’를 첫출시했다. “국내산 원유로 만든 크림, 무항생제 달걀 등 좋은 재료만 썼습니다. 잘 될까 반신반의했는데 소비자 반응이 폭발적이었어요. 세상에 글루텐 불내증을 앓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 줄 몰랐어요. ‘밀가루 못 먹는 사람에게 빛과 같은 케이크’라는 후기에 자신감을 얻었죠.”
한 국내 대형 금융사의 임직원 선물 업체 입찰에서 대기업 베이커리를 제치고 선정됐다. “‘내가 택한 길이 맞구나’ 생각이 든 정말 기쁜 순간이었습니다.”
무농약 현미 누룽지칩(왼쪽)과
파운드 케이크 3종(오른쪽).
/달롤컴퍼니
쌀롤케이크의 성공을 발판으로 쌀 파운드 케이크, 무농약 현미 누룽지칩 등 신제품을 줄줄이 출시했다. “쌀 파운드 케이크는 거문도 해풍쑥, 고흥 유자 등 지역 특산품을 접목해서 만들었어요. 지역 농민과 공생하는 상품이죠. 누룽지 현미칩은 쌀을 소비하는 새로운 방식을 고민하다가 만들었어요. 무농약 현지 쌀을 즉석에서 도정한 후 7시간 내에 누룽지화했어요. 상온 보관이 가능하고 유통기한도 길죠. 지금까지 20만개 이상 팔렸습니다.” 현재 온라인몰에서 공동구매 행사를 하고 있다. (기사 맨 아래 연결 버튼 참고)
- 매장 중심으로 경력을 쌓다가
온라인 사업에 뛰어드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요.
“발품 파는 수밖에 없었어요. 직원이 3명뿐이었던 초기엔 트럭을 몰고 직접 배송을 다녔습니다. 배송 테스트를 수없이 했습니다. 택배 과정에서 제품이 망가져선 안 되니까요. 부산이나 제주도처럼 멀리 사는 친척과 지인에게 수시로 택배를 보내면서 제품이 온전하게 문 앞에 도달하는 노하우를 쌓았습니다. 이제는 몽골, 홍콩 등지에 수출까지 합니다.”
◇핵심은 ‘관찰’, 4년간 매출 10배 증가
포지티브 인사동 매장에서
인터뷰 중인 박 대표. /더비비드
4년 동안 직원수와 매출이 정확히 10배 늘었다. 올해 3월엔 농식품 모태펀드로부터 프리시리즈 A투자를 유치했다.
박 대표는 성과의 비결로 ‘관찰’을 꼽았다. “사람들의 생활 양식을 관찰하기 위해 짬을 내 연남동, 성수동 등지의 유명 상점에 꼭 들릅니다. 일종의 직업병인데요,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를 직접 경험하면서 영감을 얻어요.”
예컨대 1인 가구가 늘어나면서 사람들이 소형 케이크를 선호하는데 착안해, 연말마다 크리스마스 롤케이크를 한정 판매해요. 매번 1만개의 판매고를 올리는 효자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죠. 2019년 론칭한 차(茶) 브랜드 ‘포지티브’(positeave)와 지난해부터 시작한 반려동물 디저트 브랜드 ‘다펫’ 모두 그렇게 탄생했습니다.”
2019년 론칭한 차(茶) 브랜드
‘포지티브’(positeave) 카페.
/박기범 대표 제공
4월 코트라(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수출 유망 스타트업 50개사로 선정됐다. 해외에서도 통할 거라는 자신감이 생겼다. “11월부터는 쌀을 도정, 분쇄, 제분해 쌀가루를 직접 만들 계획이에요. 제조설비까지 글로텐 프리 인증을 받을 구상입니다. 경기 김포시에 국내 최초의 글루텐 프리 베이커리 제조 공장을 짓고 있는데요. GFFP라는 미국 글루텐 프리 제조설비 인증도 준비 중이에요. 국내외 소비자에게 쌀을 맛있고 건강하게 먹는 법을 제대로 보여드리겠습니다.”
/진은혜 에디터
첫댓글 빵에 미친 사람을 찾습니다.
함께 파라과이에서 제과사업으로 우뚝~~
파라과이는 세계적인 맛있는 빵집이
하나 정도는 우리힘으로 만들어 보고 싶네요.
빵이 주식이 되어버린지 오래되었지만,
유독 한국에서의 빵맛을 잊지 못하겠더군요,
보리빵, 쌀빵, 호비빵 까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