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숲
한 오백 년 사자는데 웬 성화냐는 노래 구절이 있다. 얼마 전만 해도 백 년도 채 살기 어려운데 무얼 그렇게 욕심내고 무엇을 그리 얻겠다고 아등바등 사냐고 했다.
삶이 풍족해지면서 100세 시대를 지나 120세 시대로 가고 있다는 지금이다. 60년 전만 해도 평균 수명이 겨우 50년 근처였는데 작년 말에 우리나라 여자 평균 수명이 90세를 넘었다니 인간의 한계 수명이 얼마인지를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인간의 수명이 아무리 길어져도 장구한 세월을 살아남은 자연 앞에 서면 비교하기조차 초라할 정도로 찰나에 불과하다. 하지만 지혜롭던 선인들은 미래 세대를 위해 세월과 시간을 품은 5백 년 숲을 유산으로 남겼다.
허름한 돌담에 제대로 된 울타리도 없었지만 아무도 숲을 훼손하지 않았다. 아이들 자치기에 청년들 공놀이로 늘 시끌벅적했다. 한여름에는 아낙들이 그늘 아래서 매미소리를 노동요 삼아 길쌈을 했다. 무시로 장사치가 찾아들고 추석이면 연극에 노래자랑 무대도 꾸며졌다. 숲이 마을의 역사가 되었다.
고향 마을의 산들은 조금 특이하다. 동쪽의 거대한 돌산을 하늘에서 보면 마치 먹이를 찾아 덮치는 솔개 형상이다. 반면 밋밋한 뒷산은 붉은 황토 산이다. 전해내려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솔개(鳶)가 먹이를 구하기 위하여 핏빛 뒷산으로 내려올 때마다 마을에는 크고 작은 변고가 생겼다 한다.
솔개의 준동을 막기 위해 돌산과 황토 산 사이에 보호림을 조성하였는데 이 숲이 5백 년도 훌쩍 넘은 노거수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 보호림은 1994년 7월 4일 경상남도의 기념물 제141호로 지정되었으며 느티나무 28그루와 팽나무 21그루, 말채나무 8그루, 이팝나무 3그루 등 60여 그루가 보호받고 있다.
모르긴 해도 인류의 시원(始原)은 산이나 강에서 시작되었지 싶다. 강은 풍요를 가져다주는 반면 산은 안락과 위로를 준다. 해마다 찾아오는 범람이 무서우면서도 떠나지 못하는 이유다. 더구나 그곳이 울창한 산림으로 덮인 곳이라면 육신을 위한 먹이뿐만 아니라 영적 위안을 제공한다.
산을 가로지르고 강 위를 나는 새들이 잠깐이나마 편안히 날개를 접을 수 있는 곳이 숲이다. 숲은 사시사철 머물고 지나가는 손님들이 다르다. 봄이면 직박구리가 둥지를 틀고 가을을 지나 겨울로 접어들면 동고비나 딱새가 무시로 날아든다.
커다란 나뭇등걸 아래 잡풀이 무성해지면 두꺼비나 누룩 뱀이 찾아 오기도 한다. 마을에서 자란 이들에게 숲은 잊을 수 없는 마음의 안식처요 영원한 고향 속의 고향이다.
스산한 손돌바람 몰려오고 저녁별 반짝이는 날, 노거수들끼리 발가벗고 서서 오백 년 세월을 버텨낸 숲으로 든다. 세상도 바람도 거추장하여 모든 잎들을 떨어내버린 나무들은 그들끼리 껴안는다.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살면서 이 산 저 숲으로 땔감을 구하러 다녔지만 마을 숲에 자라는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손대는 이가 없었다. 다들 숲을 지키고 가꾸는 것에 진심이었고 마을을 떠났다 돌아온 이는 무엇보다 숲의 안녕을 먼저 살폈다.
이제 숲은 텅 비었다. 나무도 자라기를 멈추었고 날짐승들도 찾지 않는다. 그래도 그 숲에서 꿈을 꾸며 세상 속으로 들어갔던 아이는 다시 숲으로 돌아와 옛 꿈을 더듬는다. 숲을 감고 도는 바람은 계절 따라 그 느낌을 달리했다. 봄은 나른했고 여름은 시원했다. 가을바람은 어떠했던가. 벼 냄새 짚 냄새로 넉넉하고 풍요로웠다. 겨울바람은 차가웠지만 숲 속은 충분히 안온했다. 그때도 그랬던 것처럼 오늘도 식구들을 기다리며 저녁밥을 짓는 푸른 청솔가지 연기는 멀리 떨어진 대밭을 감고 오른다. 여전히 사람은 오지 않을 것이고 기다림은 이어질 것이다.
오늘 숲은 쓸쓸하다. 해는 우듬지에서 더 이상 내려오지 않는다. 어스름마저 묻히고 밤이 깊어 가면 나목(裸木)은 달빛을 따라 홀홀히 벗은 가지를 흔들며 신의 몸짓으로 자연의 춤사위로 동면(冬眠)하는 허공을 채울 것이다.
팽나무 열매를 물고 노래하던 그 직박구리는 지금 어디쯤에서 삶을 이어가고 있을까. 봄이나 가을에는 차마 겨울을 예견하지 못했던 그 처연(凄然)한 존재의 부정은 계속되고 있을까. 그 부정(否定)은 노래였을까 울음이었을까 아니면 시간의 흐름에 대한 아쉬움 그 자체였을까.
반 천년의 세월을 앙버티고 선 나무들을 지탱하기 위한 뿌리는 감히 범접하기 어려운 근육질이다. 바위를 뚫고 물길을 찾는 숭고한 생명의 참 모습이 이럴까. 뿌리에서 흩어지는 달빛은 차갑다. 바람에 날리며 흩어진 낙엽은 메마른 뿌리를 덮지 못하고 세상의 진애(塵埃)로 변하여 천중(天衆)을 부유한다.
흙도 바위도 달구던 폭염은 이제 차가운 달 아래 숨을 죽이고 오한이 되어 세상의 끝을 향해 다가간다. 저세상으로 혹은 도시로 떠나버린 이들의 울음도 웃음도 더 이상 들을 수 없다. 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산을 넘어온다.
오래전에 들리던 닭 우는소리는 멈추었다. 새날이 밝아올 그때는 언제나 가슴이 뛰었다. 지금은 가녀린 가지 끝에서 걸리며 지나가는 바람 소리에 오한의 생채기가 새겨진다. 더 이상 이 숲에서 터 잡고 살던 딱쇠의 풀무질 소리도 시우쇠 두들기는 소리도 듣지 못할 것이다.
새벽이다. 동우(凍雨)는 가지 끝에 매달리다가 나목의 잔등이에 달라붙기 시작한다. 반투명 입자는 달빛에 드러나는 자신을 거부하다가 삭풍에 흔들리는 잎새와 함께 정처 없는 길을 떠난다. 그나마 서산마루에 걸린 갈고리달이 새색시의 잔즐거리는 웃음처럼 떨어지는 마른 잎들을 보고 있다.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는 숲속의 나목들은 당당하다. 모두들 떠난 밤, 바람 흔적이 사라지는 숲에서 미녀가 되고 장군이 된다.
그들만의 세상에서 이야기를 만들고 전설을 그려간다. 그렇게 천년의 세월을, 아니 영원의 시간을 변함없이 서있을 것이다. 아무도 살지 않아도 누가 오지 않아도 괜찮다. 세월과 함께 집들도 사람들도 숲에서 생명을 이어가던 자연의 많은 것들도 사라진다.
하지만 그들의 사라짐을 기억하고 추억하며 언제까지나 고향의 숲은 그 자리에 있기를 염원한다. 사람들은 떠나고 허름한 돌담마저 허물어졌지만 숲만은 고향으로 남아있다.
첫댓글 아득한 기억들의 소리가 들리는 듯 합니다. 이선생님 감사합니다.
오선생님
오랜만입니다.
언제 한번 오시인님 작품에 대한 뜯어보기를 해보고 싶습니다. ㅋ
이제야 쓰레기 치웠습니다. 바빴다는 핑계// 요즘 너무 바빠 대상포진이 왔습니다.ㅋㅋ
아니 오선생님 같이 바쁘신 분이~~~
어찌 대상포진, 만만치 않은 놈 같던데 잘 이겨내십시오. ㅎ
가끔 오물이 걸려 있을 때 마음이 언짢아집니다.
하기사 탄천이라고 어찌 맑은 물만 흐르겠습니까?
세상에 하도 쓰레기가 많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