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실습은 착취일뿐 안전한 노동이 아니다.
평등교육실현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박은경
부끄럽고 원통한 심정으로 억울한 죽음을 애도하고 전 이런자리에서 기자회견을 하거나 토론회를 합니다. 그리고, 다시는 이런 죽음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다짐을 하곤 합니다.
하지만 늘 이런식으로 수년간 일이 터지면 이목을 끌다가 시간이 지나면 또 잊고 합니다.
전 사실 이런 자리가 많이 힘듭니다.
두 해전 인가 현장학습으로 희생된 민호, 수연, 동준 부모님들을 만나 2박3일 많은 얘기들을 하면서 끝까지 함께하겠다 라는 약속을 잘 지키지 못했거든요. 하지만 요즘 현장실습폐지와 직업계고 정상화를 위해 고분분투 하며 평학 회원들과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또다시 늘 했던 대로 그렇게 슬퍼하고, 다시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일상으로 돌아가는 일을 반복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대한민국의 교육이 어떻게 학생들을 고통으로 밀어 넣고, 또 죽음으로 몰아가고 있는지 살펴야 한다. 행복을 배우고 누리는 데 도움을 주어야 할 학교 교육이 정반대로 가고 있는 현실을 주목해야 합니다
직업계 고등학교 학생들의 고통이 그 중 으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요?
직업계 고등학교를 정녕 학교로 대접하고 있는지 직업계 고등학교 학생들을 정녕 학생으로 존중하고 있는지 직업계 고등학교 학생들의 교육을 포기한 것이 아니고서, 어찌 취업률 숫자 놀음에 학생 신분에 있는 학생들을 공장으로 밀어 넣는가 말입니다.
졸업 후 마땅히 국가가 책임져야 할 직업계고 학생들의 취업 보장이 아닌가요? 현장실습이라는 이름으로 공장에 가서 일하게 하는 것이 정녕 교육일까요? 기업과 자본에 힘없는 직업계고 학생들을 저임금 노동력으로 팔아먹는 것이 진짜 교육이란 말입니까? 저학력이라는 이유로 어린 학생이라는 이유로 저임금 노동을 강요하고, 비인격적 대접까지 하는 현실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요? 울며 겨자 먹기로 학습권을 박탈당한 채, 저임금으로 무시당하면서라도 가족들의 생계에 보탬을 주려고 하는 직업계고 학생들의 경제적 약점을 이용하고 있는 우리 교육당국은 정녕 교육을 말할 자격이 있는가요? 왜 직업계고 학생들을 저임금 노동력으로 혹사시키는 현장실습을 포기하지 못하는가? 2011년, 2012년, 2014년, 2016년, 2017년 2020년, 거의 매해 직업계고 학생들이 죽음으로 항거한 현장실습은 어찌 이리도 목숨이 질긴 것인가요.
노동자의 권리는 누군가가 쥐어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쟁취해 내는 것이지만 현장실습생은 노동자로서의 권리가 보장되지 않습니다.
불안정한 상황에서는 늘 사고가 따르기 마련입니다.
교육부는 10월 6일 홍정운학생 사망사고 이후 산업안전전담관 제도 확대 운영을 후속 조치로 내놓았지만 기존에교감과취업담당부장에게 부여하였던 산업안전전담관 직책을 교감이나 취업담당부장을 통해 전달연수를 실시하도록 하고 전달연수를 받은 교사에게 산업안전전담관 직책을 부여하도록 하였습니다.
하지만 매우 높은 수준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산업안전을 전달연수 정도의 매우 낮은 수준의 교육을 통해 교사에게 산업안전전담관을 지정하고 운영하겠다는 발상을 보며 참담함을 느낀다고 하였습니다.
몇 푼되지 않는 수당을 챙겨주면서 현장실습학생들의 안전을 담보로 하며 교사에게 높은 수준의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비겁한 행정이었던 것입니다.
교사들에게는 산업체 현장에 대한 관리 감독의 권한이 없으며, 법률은 고용노동부의 근로감독관에게 관리 감독의 권한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산업안전전담관제도를 기획한 교육부 직업교육정책과에서 관련 법령에 대한 기본적인 검토도 없이 전국의 직업계고등학교 학생들의 안전을 벼랑끝으로 모는 상황은 교육부의 현장실습에 대한 정책의 신뢰를 기대하기 어렵게 하고 있습니다.
“게으름의 권리”를 보면 백 여 년 전에 쓰인 이 책에 여가를 둘러싼 전쟁”165쪽을 보면 학생이나 청소년 문제는 현재 널리 횡행하고 있는 산업교의 야만성과 잔인성을 보여주는 저주스러운 증거라고 했습니다.
생산성 증가를 위해 아이들에게 가해지는 압력이 점점 커지면서, 미래의 경제적 착취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방안에 막대한 역점이 주어진다고 서술하고 있습니다.
미국교육부는 끊임없이 교육 개혁이 아직도 부족하고 학생들에게 일을 하라는 압력을 강화 시킬 필요가 있다는 주장들이 펼쳐지고 있으며 교육제도는 생산성의 깃발아래 정말 심각하게 아이들이 동원되며 최근 10대 청소년들의 자살이 놀라운 속도로 증가하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라고 서술한것이죠.
대한민국의 현실 또한 어떠한가요?
11월이면 고3들은 12년 동안 공부한 것을 하루 한날 똑같은 시험을 보며 누구는 기뻐할 것이고 또 누구는 옥상에서 뛰어내려 삶을 마감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성적 때문에 고통스러워하고 자살을 생각하게 만드는 교육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청소년 자살률이 가장 높은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임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는 이러한 사실에 대해 외면하고 있을까요?
9월 하늘이 바삭거리고 눈이 부시던 날 여수에서 학생이 현장실습으로 따개비를 따다 죽었습니다.
거의 매해 되풀이되고 있는 현장실습생 사망 사고 때마다 늘 목이 터져라 외쳤습니다. 작년 4월에도 경북 s공고 학생의 죽음을 애도하는 성명을 발표하여, 직업계고 학생들을 거의 매년 죽음으로 몰아가는 현장실습과 기능경기대회를 폐지하고 직업교육을 정상화할 것을 촉구한바 있었으나 현장실습이라는 명목으로 학생들의 학습권을 기업에 팔아넘기고, 청소년 학생들을 저임금 노동력 시장에 내몰아 죽음에까지 이르게 한현장실습은 범죄행위 일뿐입니다. 교육부 장관과 노동부 장관이 합작하여 자본의 요구에 굴복하여 어린 청소년들의 노동을 헐값에 기업에 팔아먹은 것입니다. 교육부 장관은 청소년 학생들의 학습권을 짓밟았으며, 노동부 장관과 함께 아동 청소년 노동을 학습이라고 속여 정상적인 근로 계약 없이 헐값에 착취하도록 알선하였습니다. 죄질이 나쁜 것이, 노동 착취를 학습이라 속인 것이며, 가난한 노동자들의 어려운 형편을 악용하여 돈 몇 푼 쥐어 주는 것으로 수십 년 동안 특성화고 청소년 학생들의 노동을 착취해 온 것이다. 교육부에 가장 큰 책임이 있지만, 현장실습을 방치해 온 직업계고 교사들에게도 여수 현장실습생 학생의 죽음에 대해 일말의 책임이 있음을 묻고자 합니다. 직업교육을 목표로 하고 있는 직업계고 학생들의 취업에 도움이 된다는 명분을 구실삼아, ‘현장실습을 빙자한 청소년 노동 착취’에 학생들을 내몰았기 때문입니다. 직업계고 학생들이 학교를 떠나 산업체 현장실습에 참여하는 동안, 학생 지도의 수고로움을 덜 수 있다는 안이한 마음이 작용하였을 것이라는 지적도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2017년 제주 생수회사에서 현장실습 명목으로 노동에 내몰린 직업계고 학생이 사망한 후 ‘산업체 파견형 현장실습’을 폐지하고 ‘학습형 현장실습’만 허용하겠다고 '말로만' 대책을 발표한 교육부의 기만에도 불구하고 직업계고 교사들은, 여전히 본질적으로 똑같은 ‘청소년 노동 착취 현장실습’을 방치해 왔습니다. 2018년 이후 교육부가 내건 ‘학습형 현장실습’은 이전의 ‘산업체 파견형 현장실습’과 다르지 않다. 현장실습 주무부서가 노동부에서 교육부로 바뀌고 현장실습생이 받는 '임금'을 ‘현장실습 지원비’로 이름만 바꾸었을 뿐이다. 현장실습의 폐지를 대신하여 현장실습의 개선을 요구하는 것도 결과적으로 교육부의 범죄행위를 묵인하는 역할을 해 왔다는 점에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일입니다. ‘저임금 청소년 노동 착취’ 그 자체인 현장실습을 개선한다고 한들 저임금 청소년 노동착취의 본질이 달라지지 않는다. 고임금의 현장실습은 존재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학교의 명령에 굴복할 수밖에 없는 학생 신분인 직업계고 학생들의 노동을 착취하는 것이 본질인데, 노동 착취를 어떻게 하면 개선이 되겠는가. 직업계고 학생의 취업 불안을 담보로 전공과도 무관하며 취업을 지속하기 어려운 일자리로 학생 신분인 어린 청소년들을 내몰고 있는 것이 현장실습의 실상입니다. 따라서 현장실습의 개선을 말하는 것은 ‘아동 청소년 노동 착취’의 유지 혹은 옹호를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현장실습의 폐지 대신 굳이 개선을 요구하는 사람들에게 묻습니다. 여수 현장실습생의 나이가 18세 이상이었다면 괜찮은 것인가요? 수영을 잘 하는 학생에게 잠수 작업을 시켰다면 문제가 없는 것인가요? 5인 이상 사업장에만 현장실습을 허용하면 괜찮은가요? 노동부가 관리, 감독을 잘하면 청소년 노동 착취 현장실습은 계속되어도 좋은가요? 교육부가 안전 점검을 강화하고 학교의 노동 안전 교육을 제도화하면 현장실습은 더 이상 청소년 노동 착취가 아닐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현장실습의 본질은 청소년 노동 착취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과연 현장실습이 학생들의 학습인가요?
해양과학고등학교 직업계고 학생이 학습 기간 중에 요트 선체 바닥 이물질 제거 노동에 내몰리고 2017년 원 예과 재학 중인 특성화고 학생이 현장실습이란 이름으로 생수 공장에 가서 지게차를 운전하다가 죽음을 당하고 2017년 같은 해 애완동물과 재학 중인 학생이 통신사 콜센터에서 일하다가 죽음에 내몰렸는데, 이것이 현장실습인가요? 학습인가요?
교육부와 정부는 안전한 노동만을 말하고 있습니다.
착취를 학습이라 속인 것이며, 가난한 노동자들의 어려운 형편을 악용하여 돈 몇 푼 쥐어주는 것으로 수십 년 동안 직업계고 청소년 학생들의 노동을 착취해 온 것입니다.
안전한 노동이 어디 있는가 말입니까?
우리 평등교육실현을 위한 전국학부모회는 비통하고 부끄러운 심정으로 직업계고 학생의 죽음을 다시 한 번 애도하며, 우리 사회의 진정어린 반성과 다짐을 기대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소중한 자녀들이 공부 잘하는 아이와 공부 못하는 아이로 구별되고 차별받지 않기를 바랍니다. 또한,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이 비정규직으로, 낮은 임금으로 차별받지 않는 사회를 바랍니다.
더 이상 외면하지 말아 주십시요. 직업계 고등학교를! 그리고 직업계 고등학교 학생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