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완의 '서장'통한 선공부] <10> 서장 (書狀)
이참정에 대한 답서 (2)
직접 마셔야 물의 맛을 안다
"다만 범속한 정식(情識)을 없애면 될 뿐 따로 성스런 지해(知解)는 없습니다. 당신은 이미 한 번 웃음에서 활연히 정안(正眼)이 열려서 세간의 소식을 문득 잊었으니, 힘을 얻음과 얻지 못함은 마치 사람이 물을 마셔보아 그 차갑고 따스함을 스스로 알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선이란 '참 마음을 알고 자성을 보는 것'[識心見性]이다. 그러나 참 마음을 '알고' 자성을 '본다'라고 하지만, 마음은 '알려지는 물건'이 아니고 자성은 '보여지는 물건'이 아니다. 마치 허공이 그 속에 삼라만상을 담고 있듯이, 마음은 그 속에 무슨 물건이든 다 담겨지는 테두리 없는 그릇이다. 마음이라는 그릇은 테두리가 없으므로 그 속에 담겨지는 물건을 보아 그릇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뿐이고, 아무 물건도 담지 않은 빈 그릇이 되면 그 그릇은 알 수가 없다.
이처럼 알려지는 것은 다만 담겨지는 물건뿐이고 그릇은 알려지지 않지만, 그렇다고 물건을 보고 그릇이라고 할 수는 없다. 사실 그릇이라고 할 때에는, 그것이 쇠로 만들어진 것이든 도자기로 만들어진 것이든 그 테두리의 재질을 두고 그릇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물건을 담기도 하고 비워내기도 하는 역할을 두고 그릇이라고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참 그릇은 눈에 보이고 손에 만져지는 테두리가 아니라, 물건을 담기도 하고 비워내기도 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기능이다. 그러므로 보이고 만져지는 테두리가 없다고 하더라도 담기도 하고 비워내기도 하는 기능만 있다면 그것이 참된 그릇이다. 마음이 바로 이러한 그릇이다.
그러므로 마음이라는 그릇을 확인하는 길은 그 속에 담겨지는 정식(情識)이라는 물건 만을 보아서는 안되고, 그 정식이 담겨지고 비워지는 기능을 파악해야 한다. 그러나 물건이 없다면 기능은 파악되지 않으므로, 물건을 보되 물건을 보지말고 그 물건이 담겨지고 비워지는 그릇의 기능을 파악해야 한다. 마음이라는 그릇에 담겨지는 물건인 정식은 색깔·소리·냄새·맛·촉감·생각이라는 형태로 끊임 없이 들어왔다가 빠져나 간다. 참된 마음은 이처럼 무수한 정식이 들어왔다가 빠져나가는 기능이다.
따라서 매 순간 순간 들어오고 빠져나가는 정식을 보되 정식만을 보지 말고 정식의 생멸변화를 잘 보아서 정식을 담고 비워내는 기능을 파악해야 비로소 마음을 알 수가 있다. 기능이란 지금 이 순간의 생멸변화의 움직임일 뿐이므로, 어떤 행태로든 고정된 정식으로 파악되어서는 안된다.
그렇기 때문에 대혜 스님은 "다만 범속한 정식(情識)을 없애면 될 뿐 따로 성스런 지해(知解)는 없습니다."라고 하는 것이고, 또 "피부가 모두 탈락하면 오직 하나의 진실만이 있으니, 마치 전단( 檀) 나무의 무성한 가지가 모두 탈락하면 오직 참 전단만이 있는 것과 같다."고 하는 약산유엄 선사의 말을 인용하여 이것을 보충설명하는 것이다.
자성(自性)을 본다는 것은 바로 이 모양 없는 기능을 보는 것이다. 그 때문에 황벽 스님은 자성을 어떻게 보느냐는 배상공의 물음에, "보는 것이 곧 자성이니, 자성으로써 다시 자성을 볼 수는 없다. 또 듣는 것이 바로 자성이니 자성으로서 다시 자성을 들을 수는 없다. 만약 그대가 자성이라는 견해를 짓는다면, 들을 수 있고 볼 수 있는 자성 밖에 또 하나의 다른 법(法)이 생겨난다."고 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자성을 파악하고 참 마음을 알 수 있는 길은, 매 순간 매 순간의 보고·듣고·냄새 맡고·맛 보고·느끼고·생각하는 속에서, 색깔·소리·냄새·맛·촉감·생각 이라는 정식(情識)을 놓아버릴 때 열릴 수가 있다. 그러나 이것을 놓아야지 저것을 놓아야지 하는 격식을 앞세우고 수행한다면, 놓아버린다는 생각에 매달리게 되므로 정식을 벗어나기가 오히려 어렵게 된다.
그저 ["다만 범속한 정식(情識)을 없애면 될 뿐 따로 성스런 지해(知解)는 없습니다."라고 하는 말이 무엇인가?] 하고 간절히 참구할 뿐이다. 그리하여 한 번 웃음에서 활연히 정안(正眼)이 열려서 세간의 소식을 문득 잊어버린 이참정 같은 체험을 하여야 비로소, 물을 직접 마셔보아 그 차갑고 따스함을 스스로 알게 되는 것이다.
김태완/ 부산대 강사.철학
[출처 : 부다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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