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더 없이 친근한 두 보살님
업장은 현재…정업은 미래 받을 과보
관음보살과 지장보살만큼 우리나라 불자들에게 친근한 보살은 없을 것이다. 더구나 시식의식을 관음시식이라고 하고 있다. 그래서 관음시식은 더욱 친근하게 다가온다. 그런데 예전에 시식을 하며 지장보살을 거불하고 신묘장구다라니 대신 츰부다라니를 활용해 지장시식이라고 칭하거나, 왕생정토를 구현하므로 정토시식이어야 한다는 견해를 피력하는 분들을 간혹 보고 들었다. 그렇다면 관음시식이 왜 관음시식인지 그리고 지장보살은 시식의식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 것일까.
첫째 관음시식이 관음시식인 이유는 무엇인가. 지금은 시식의식에 다양한 게송이나 선적인 게송이 들어 있어 관음시식에 다양한 사상이 들어 있다고 설명하곤 한다. 잘못 말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고혼에게 법의 음식을 베푸는 시식의식의 근원을 속 깊이 들여다보면 그 답은 금세 드러난다. 고혼에게 법의 음식을 베풀 때 가장 큰 문제는 유한할 수밖에 없는 나의 공양물과 그 공양물을 받아야 할 대상이 무한하다는 것이다. 이를 해소하려면, 일단 유한한 공양물을 무한한 공양물로 변화하게 해주어야 한다.
이때 등장하는 법이 바로 특정 진언의 염송이다. 관음시식에서는 변식진언의 염송으로 이를 해결한다. 이 진언이 설해진 경전을 토대로 시식의식이 성립된다. 그 배경은 대략 다음과 같다. 부처님의 상수제자 아난존자가 깊은 밤에 소수법(所受法, 사념처의 둘째)을 닦다가 염구아귀를 만나게 되고, 아귀로부터 삼일 뒤 죽게 되고 아귀로 태어나게 된다는 말을 듣는다. 아난은 부처님으로부터 ‘일체대위력진언’을 받아 지니고 그 가지(加持)의 힘에 의지해 한량없는 염구아귀에게 음식을 베풀게 되고 그들을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이 진언이 오늘날 염송되는 변식진언인데, 진언의 원주인인 바로 관세음보살님이신데, 관세음보살이 석가모니부처님께 전해주고 그것을 다시 아난존자에게 전해주어 아귀들의 배 고품을 면하게 해줄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그래서 관음시식이라고 한다고 중국의 주굉선사는 설하며, 이때의 염구아귀는 관세음보살의 화신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시식의식에는 관음보살만 등장하는 것이 아니고 지장보살도 등장한다. 영산재의식의 시식의식인 전(奠)시식이나 구병시식 등의 구조를 보면, 일체 아귀영가들을 청해 삼보에 귀의하게 한 다음 공양을 베풀기에 앞서 ‘지장보살멸정업진언 옴 바라 마니다니 스바하’를 염송하여 영가들의 정업을 소멸해준다. 그리고 다시 ‘관세음보살멸업장진언 옴 아로륵계 스바하’를 통해 업장을 소멸해준 다음 계단에 소청해 삼매야계를 받고 음식을 받을 수 있도록 장치하고 있다.
여기서 한 번 생각해봐야 할 것은 관음보살과 지장보살의 다라니의 역할이다. 관음보살은 업장(業障)을 소멸하고, 지장보살은 정업(定業)을 소멸한다고 하였는데, 업장과 정업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업장은 업의 장애이므로 현재에 받는 장애라고 할 수 있고, 정업은 정해진 업이라고 볼 때 미래에 받을 과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수용한다면 아귀들이 업장과 정업을 소멸해야 시식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확연히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귀를 비롯한 일체 중생의 업장과 정업을 소멸해주는 두 보살님은 우리나라 불자들에게는 더 없이 귀한 인연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대부분의 우리나라 법당에는 두 보살님을 석가모니부처님과 함께 삼존불로 모시거나 아니면 대웅전 좌우에 별도의 전각을 건립해 모신다. 이같은 모습은 염구아귀 등 일체 중생을 구원하려는 하화중생을 상징하는데, 이는 좌우에 문수 보현의 봉안을 통해 지혜와 실천의 상구보리적인 모습을 상징하는 것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6.02.10 0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