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생각 (20) 싯다르타, 마침내 붓다가 되다
종교에서는
우상이
늘
민감한 문제입니다.
십자가만 봐도
그렇습니다.
개신교의 십자가와
가톨릭의 십자가는
서로 다릅니다.
개신교 십자가에는
못 박힌 예수의 형상이
없습니다.
그냥 단출하게
십자가만 있습니다.
반면
가톨릭의 십자가에는
못 박힌 예수의 형상이
올려져 있습니다.
이 역시
형상을 만들면
진리 대신 형상을
받들 수도 있다는,
다시 말해
우상을 섬길 수도 있다는
우려에서 나타난
차이입니다.
불교도
그렇습니다.
불교에서
처음에는 불상(佛像)이
없었습니다.
불상이 등장한 건
붓다 입멸 후
600년이 지나서였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이
북인도를 침략하면서
그리스 헬레니즘 문화와
인더스 문명이 만났습니다.
그 결과물로 나타난 게
간다라 미술입니다.
이때
그리스 조각의 영향을 받은
간다라 불상이
처음 생겨났습니다.
붓다는
형상에 갇히지 않을 때
진리를 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상(相)이 상(相)이 아닐 때
여래를 보리라.”
이 말이 바로
그런 뜻입니다.
붓다 역시
사람들이 형상에 집착할까 봐
무척 경계했습니다.
그래서
따로 숭배의 대상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사찰에 모셔진
불상을 거론하며
간혹
“불교는 우상을 섬기는 종교”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봅니다.
그건
불교에 대한 이해도가
너무 낮아서 일어난
오해입니다.
불교만큼
형상과 우상에
갇히거나
집착하지 말라고
강조하고,
또 강조하는
종교가 있을까요.
세상 모든 종교가
그렇습니다.
진리는
늘
형상이나 우상,
그 너머에 있습니다.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 아니라,
진리는
바로
달에 있습니다.
[출처:중앙일보]백성호:종교전문기자
(20) 싯다르타, 마침내 붓다가 되다
싯다르타는 악마의 유혹과 공격을 물리쳤다.
날아오는 화살은 꽃이 되어 뚝뚝 떨어졌다.
싯다르타는 보리수 아래서 더 깊은 고요 속으로 내려갔다.
나는 그 보리수를 찾아갔다.
지금은 인도 북부의 보드가야란 지역이다.
당시에는 마가다국의 가야 지방이었다.
네란자라 강 옆에 웅장한 보드가야 대탑이 우뚝 서 있었다.
불교에서 최고의 성지를 꼽으라면 단연코 보드가야다.
이곳에서 싯다르타가 깨달음을 성취했기 때문이다.
인도 정부에서도 보드가야 사원을 아주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다.
사원의 입구에는 늘 긴 줄이 늘어서 있다.
순례객의 가방과 물건도 모두 검색대를 통과해야 한다.
혹시 모를 테러에 대비하는 모습이었다.
보드가야 사원 안에 울창한 아름드리 보리수가 한 그루 있다.
2500년 전 붓다가 진리를 깨친 장소다.
나는 그곳으로 갔다.
사원 안으로 들어서려면 신발을 벗어야 했다.
순례객들은 다들 맨발로 다니고 있었다.
인도의 사원에서는 그게 종교적 예법이다.
보리수는 아름다웠다.
하늘을 향해 풍성한 가지를 한껏 펼친 모습이었다.
그 아래는 치열한 선방이나 다름없었다.
세계 각국에서 온 순례객들이 보리수 앞에서 가부좌를 틀고 명상에 잠겨 있었다.
태국과 스리랑카, 네팔과 베트남, 미얀마와 티베트, 한국 등에서 온 불교 신자들이었다.
그 밖에 서양인의 모습도 꽤 많이 보였다.
나는 보리수 앞쪽의 구석 자리에 가서 앉았다.
눈을 감았다.
2500년 전, 바로 이곳에 싯다르타가 앉아 있었다.
치열한 고행 끝에 목숨을 잃을 지경까지 갔던 그는 수행의 방향을 틀었다.
유미죽을 먹고서 기운을 차린 다음, 싯다르타는 이 나무 아래 고요히 앉았다.
그가 택한 수행의 방식은 치우침 없는 길이었다.
깨달음을 향한 열정.
그것은 종종 두 얼굴을 가진다.
앞뒤가 다른 동전의 양면처럼 말이다.
앞쪽의 이름은 ‘열정’이고, 뒤쪽의 이름은 ‘집착’이다.
서로 이율배반적이다.
치열한 수행에는 열정이 있어야 하는데, 그 열정의 뒷면에 집착이 숨어 있다.
불교는 우리가 깨닫지 못하는 이유를 ‘착(着)’이라 본다.
고집 혹은 집착 때문에 에고가 강해진다.
그래서 불교 수행의 첫걸음은 ‘내려놓음’이다.
치열하게 수행하려면 내려놓아야 하는데,
오히려 치열할수록 더 거머쥐게 되는 셈이다.
어쩌면 붓다 당시 고행림의 그 숱한 수행자가 품었던 고민일 수도 있다.
싯다르타가 새로 선택한 길은 달랐다.
열정도 아니고, 집착도 아니었다.
그 중간에 난 길이었다.
리라는 인도와 중동 일대에서 주로 쓰이는 현악기다.
리라를 연주할 때는 현(絃)의 탱탱함이 특히 중요하다.
너무 탱탱해도 소리가 안 나고, 너무 느슨해도 제소리가 나지 않는다.
그래서 너무 탱탱하지도 않고, 너무 느슨하지도 않은 현을 조율하는 게 무척 중요하다.
싯다르타도 그랬다.
그는 목숨을 건 치열함 대신, 편안하고 자연스럽고, 지혜로운 길을 택했다.
어린 시절,
잠부 나무 아래서 체험했던 명상의 희열과 집중력을 떠올리며 리라의 현,
수행의 현을 조율했다.
저 나무가, 저 구름이, 저 하늘이, 저 우주가 흐르듯이 싯다르타도 흐를 작정이었다.
그런 마음으로 보리수 아래 앉았다.
밤이었다.
하늘에는 별이 총총 올랐다.
나는 그 별들을 보고 싶었다.
보리수 아래서 바라보는 별.
그래서 이튿날 새벽 일찍 다시 보드가야 사원으로 갔다.
아직 어둠이 짙게 깔려 있었다.
보드가야 사원의 문이 열리자 꽤 많은 순례객이 안으로 들어섰다.
나는 깨달음의 보리수가 있는 곳으로 갔다.
딱 이 무렵이었다.
동트기 직전, 하늘에는 새벽별만 하나 남았을 때였다.
보리수 아래에 앉은 싯다르타는 생로병사의 뿌리를 따라갔다.
“늙음과 죽음은 어디에서 오는가.
그것은 태어남에서 온다.
그럼 태어남은 어디에서 오는가.
업(業)의 결과인 존재에서 온다.
존재는 어디에서 오는가.
집착에서 온다.
집착은 어디에서 오는가.
갈애에서 온다.”
그런 식으로 생로병사로 인한 인간의 절망, 그 뿌리를 향해 계속 내려갔다.
그러다가 싯다르타는 마침내 깨달았다.
지금껏 그가 알던 우주는 저마다 몸을 비웠다.
그건 우주가 와르르 무너지는 일이었다.
그리고 새로운 우주가 피어나는 일이었다.
색(色)이 몸을 비워서 공(空)이 되고,
없는 공(空)이 몸(色)을 빌려서 세상에 드러난다.
전에는 이런 이치를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때 그가 바라보는 새벽하늘에는 별이 하나 떠 있었다.
새벽별이었다.
싯다르타의 눈은 달라졌다.
그는 이제 세상을 그냥 보지 않는다.
뚫어서 본다.
형상에만 머물지 않는다.
형상을 뚫어서 본질을 본다.
그의 앞에 생로병사의 폭풍우가 몰아쳐도 이제는 흔들림이 없다.
태어남과 늙음,
병듦과 죽음의 파도가 본래 비어 있는 파도임을 꿰뚫어 보기 때문이다.
싯다르타는 이제 생로병사의 파도를 잠재웠다.
파도의 뿌리인 바다를 찾았기 때문이다.
그는 더 이상 흔들리지 않는다.
아무리 사나운 삶의 파도가 솟구쳐도 눈 하나 까딱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그는 이미 바다를 보고, 바다를 알고, 바다가 됐기 때문이다.
결국 이치의 문제다.
인간과 자연과 우주를 송두리째 관통하는 이치.
그걸 깨칠 때 우리는 자유로워진다.
사람에게도, 자연에게도, 우주에게도 참된 이치.
그게 바로 진리(眞理)다.
싯다르타는 그것과 하나가 됐다.
그는 이제, 붓다가 됐다.
그 새벽은 인류사에서 불교가 시작되는 첫날이었다.
[출처: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