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 사(士)자는 원래 도끼날의 모습을 본떠 만든 글자입니다. 당시 무사(武士)들이 도끼를 들고 다닌다고 해서, 사(士)자는 무사(武士)란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래서 병사(兵士)나 군사(軍士)에 선비 사(士)자가 들어갑니다. 도끼를 들고 다녔던 무사들은 당시 사회의 지배계층이었습니다.
[사진] 청동 도끼. 선비 사(士)자는 도끼의 모습에서 유래합니다.
주나라에서 시작된 봉건제도는 춘추 시대에 다음과 같은 5개의 계급이 정착되었습니다.
- 천자(天子) : 춘추 시대에는 주나라의 왕을 천자라고 불렀고 사방 500리 이내의 땅을 다스렸습니다. 이런 지역을 경기(京畿)라고 불렀습니다. 우리나라의 경기도(京畿道)라는 명칭도 여기에서 나왔습니다.
- 제후(諸侯) : 경기 지역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을 친척이나 공을 세운 신하에게 나누어 주고 제후로 봉하였습니다. 춘추 시대에는 이러한 제후국이 140여 개나 되었습니다.
- 대부(大夫) : 제후는 자신의 영지의 일부를 친척들이나 신하에게 일부 나누어 주고, 대부로 봉하였습니다. 제후나 대부가 거느리고 있던 신하들을 경(卿)이라고 불렀습니다.
- 사(士) : 대부는 친척들에게 군대를 이끌도록 하고, 무사(武士)라는 뜻의 사(士)라는 벼슬을 주었습니다.
- 서민(庶民) : 일반 백성
이러한 무사(武士) 계급은 문인 사회로 오면서 자연스럽게 지배층인 선비로 변화하게 됩니다. 쉽게 말하면, 옛날에는 도끼를 든 무사들이 지배층이 되었다가 차츰 사회가 안정되면서 글을 익힌 선비들이 지배층이 되는 문인 사회로 변화해 갑니다. 즉, 선비 사(士)자는 '도끼→(도끼를 든) 사내→(도끼를 든) 무사→군사, 병사→벼슬하다→관리(官吏)→선비' 등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양반이나 벼슬이 높은 집안의 사람이란 뜻으로 알려져 있는 사대부(士大夫)라는 단어는 춘추 시대의 벼슬인 사(士)와 대부(大夫)를 합쳐 만든 단어입니다.
▶ 왕(王:王:) : 임금 왕, 큰 도끼 모습
▶ 사(仕:仕:) : 벼슬할 사, 사람 인(亻) + [선비 사(士)]
▶ 장(壯:壮:) : 씩씩할 장, 선비 사(士) + [나무조각 장(爿)]
▶ 길(吉:吉:) : 길할 길, 입 구(口) + 선비 사(士)
☞ 임금 왕(王)
임금 왕(王)자는 선비 사(士)자와 마찬가지로 자루가 없는 큰 도끼날의 모양을 본떠 만든 글자입니다. 도끼는 무력을 상징으로 하는 것으로, 왕을 뜻하게 되었습니다. 임금 왕(王)자를 자전에서 찾으려면 구슬 옥(玉) 변에서 찾아야 합니다. 임금 왕(王)자의 획수는 4획으로, 자신의 부수(玉)보다 적습니다.
벼슬할 사(仕)자는 '도끼(士)를 든 사람(亻)이 벼슬을 한다'는 뜻입니다.
씩씩할 장(壯)자는 '무사(士)가 씩씩하고 굳세다'는 뜻입니다. 천하장사(天下壯士)는 '하늘(天) 아래(下)에서 가장 씩씩하고 굳센(壯) 사내(士)'입니다. 《일동장유가(日東壯遊歌)》는 '동쪽(東) 일본(日)을 씩씩하게(壯) 유람(遊)하고 지은 가사(歌)'라는 뜻으로, 조선 영조 때 김인겸이 일본 통신사를 따라가 11개월 동안 일본의 문물제도와 풍속, 풍경 등을 보고 경험하여 쓴 것이며 모두 8,000여 구에 달하는 장편 가사(歌辭)입니다.
"구경하는 왜인(倭人)들이 산에 앉아 굽어본다. 그 중의 남자들은 머리를 깎았으되, 뒤통수만 조금 남겨 고추상투를 하였고, 발 벗고 바지 벗고 칼 하나씩 차고 있으며..."
길할 길(吉)자는 선비 사(士)자와 입 구(口)자가 합쳐진 글자입니다. 도끼(士)와 입(口)에서 길하다는 의미가 생긴 이유에 대해서는 명확하지 않지만, 입(口)으로 길함을 비는 주술과 관련이 있을 듯합니다. 그냥 '선비(士)가 입(口)으로 하는 이야기가 길(吉)하다'고 암기하면 좋을 듯합니다. 입춘대길(立春大吉)은 '입춘(立春)을 맞이하여 크게(大) 길(吉)하라'고 기원하는 글귀로 예전에 봄이 시작될 때쯤 대문에 써 붙였습니다.
도끼 근(斤)
세워 놓은 도끼의 모습
도끼 근(斤)자는 세워 놓은 도끼의 모습을 본떠 만든 글자입니다. 옛날에는 밥을 짓거나 난방을 위해 땔감으로 나무를 사용했기 때문에 장작을 패기위한 도끼는 집안의 필수품이었습니다. 또한 전쟁이 나면 무기로 사용하였는데, 두 손(廾) 위에 도끼(斤)를 들고 있는 병사 병(兵)자가 그런 예입니다.
갑골문자가 만들어진 상나라에서는 장사가 성행하였고, 자연히 무게를 헤아릴 필요성이 대두되었습니다. 그래서 도끼 근(斤)자는 무게를 재는 단위로 사용되어 몇 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한 근(斤)은 원래 375g이었으나, 지금은 600g입니다.
도끼 근(斤)자는 가끔 소리로도 사용되는데 가까울 근(近), 기쁠 흔(欣), 빌 기(祈)자가 그러한 예입니다.
- 도끼로 자름
▶ 석(析:析:) : 가를 석, 나무 목(木) + 도끼 근(斤)
▶ 신(新:新:) : 새로울 신, 가를 석(析) + [매울 신(辛)]
▶ 단(斷:断:断) : 끊을 단, 도끼 근(斤) + 이을 계(㡭)
▶ 절(折:折:) : 꺾을 절, 손 수(扌) + 도끼 근(斤)
▶ 철(哲:哲:) : 밝을 철, 입 구(口) + [꺾을 절(折)→철]
▶ 참(斬:斩:) : 벨 참, 수레 차/거(車) + 도끼 근(斤)
가를 석(析)자는 '도끼(斤)로 나무(木)를 가르다'는 뜻입니다. 분석(分析)이란 '나누고(分) 가르다(析)'는 뜻으로, 복합된 사물을 그 요소나 성질에 따라서 가르는 일입니다. 투석(透析)은 '투과시켜(透) 가르다(析)'는 뜻으로, 필터나 반투막(半透膜)을 사용하여 불순물이나 특정 물질을 걸러 내는 것입니다.
새로울 신(新)자는 '도끼(斤)로 나무(木)를 쪼갠 자리가 깨끗하고 새롭다'는 뜻입니다. '새로운(新) 백성(民)의 모임(會)'이란 뜻의 신민회(新民會)는 1907년에 안창호가 국권 회복을 목적으로 조직한 항일 비밀 결사 단체입니다. 1910년에 데라우치(寺內) 총독 암살 모의 사건으로 많은 회원이 투옥됨으로써 해체되었습니다.
끊을 단(斷)자는 '이어진(㡭) 것을 도끼(斤)로 끊다'는 뜻입니다. 단절(斷絶)은 '끊고(斷) 끊다(絶)'는 뜻입니다. 단층(斷層)은 '땅의 층(層)이 끊어진(斷) 곳'으로, 지각 변동으로 지층(地層)이 끊어진 지형입니다.
[사진] 단층(斷層)
꺾을 절(折)자는 '손(扌)에 도끼(斤)를 들고 나무를 자르다, 꺾다'는 뜻입니다. 백절불굴(百折不屈)은 '백(百) 번 꺾여도(折) 굽히지(屈) 않는다(不)'는 뜻입니다. 이 글자에 입 구(口)자를 합친 밝을 철(哲)자는 '불이 밝다'는 뜻이 아니라, '입(口)으로 말을 잘 하는 사람이 도리나 사리에 밝다'는 뜻입니다. 철학(哲學)은 '인간이나 세상에 대한 진리를 밝히는(哲) 학문(學)'입니다.
참수(斬首), 능지처참(陵遲處斬), 부관참시(剖棺斬屍) 등의 형벌에 관한 글자에 등장하는 벨 참(斬)자는 원래 '도끼(斤)로 머리를 자르거나 사지를 절단하는 형벌'을 일컫는 글자에서 '베다'는 뜻이 생겼습니다. 참수(斬首)는 '머리(棺)를 베는(斬) 형벌'입니다. 능지(陵遲) 혹은 능지처참(陵遲處斬)은 '언덕(陵)에 올라가듯이 최대한 느리게(遲) 베어(斬) 죽이는 형에 처(處)한다'는 뜻으로, 그 형벌의 끔찍함이 너무 엽기적이라 구체적인 설명은 생략하겠습니다. 중국 명나라의 법전인 대명률(大明律)을 따랐던 우리나라에서도 능지처참이 도입되었는데, 너무 잔인하다하여 수레(車)에 사지를 묶어 사방에서 당겨 죽이는 거열형(車裂刑)으로 완화되었습니다. 부관참시(剖棺斬屍)는 '관(棺)을 쪼개어(剖) 꺼낸 시신(屍)을 베다(斬)'는 뜻으로, 옛날에 죽은 뒤에 큰 죄가 드러난 사람에게 내리던 형벌입니다.
- 전쟁과 관련되는 글자
▶ 병(兵:兵:) : 병사 병, 도끼 근(斤) + 손맞잡을 공(廾)
▶ 척(斥:斥:) : 물리칠 척, 도끼 근(斤) + 점 주(丶)
병사 병(兵)자는 '두 손(廾)에 도끼(斤)를 들고 있는 사람이 병사(兵士)다'는 뜻입니다. 부병제(府兵制)는 '마을(府)의 병사(兵) 제도(制)'라는 뜻으로, 중국의 수나라와 당나라 및 고려 말에서 조선 전기에 실시되었던 병농일치(兵農一致)의 군사제도입니다. 균전(均田)을 준 장정을 농한기에 훈련을 시킨 후, 3명 중 1명을 3년씩 돌아가며 징집하여 근무하게 한 제도로, 근무 중에는 조세를 면제하여 주었습니다. 관청 부(府)자는 '관청이 있는 마을'이란 뜻으로 사용됩니다.
물리칠 척(斥)자는 '도끼(斤)로 적을 물리치다'는 뜻입니다. 배척(排斥)은 '밀어서(排) 물리치다(斥)'는 뜻이고, 위정척사파(衛正斥邪派)는 '바른(正) 것을 지키고(衛), 사악(邪)한 것을 배척하는(斥) 파(派)'로, 조선 후기에 최익현을 중심으로 하여 대외 통상을 반대하고 통상 수교의 거부를 주장하던 무리입니다.척화비(斥和碑)는 '화친(和)을 배척(斥)하자는 비석(碑)'이란 뜻으로, 1866년의 병인양요와 1871년의 신미양요를 겪은 뒤, 대원군이 쇄국정책의 일환으로 온 백성에게 외세의 침입을 경계하게 하기 위해 1871년 서울을 비롯한 전국의 요소에 세운 비석(碑石)입니다.
[사진] 대원군이 세운 척화비(斥和碑)
- 기타
▶ 부(斧:斧:) : 도끼 부, 도끼 근(斤) + [아버지 부(父)]
▶ 장(匠:匠:) : 장인 장, 상자 방(匚) + 도끼 근(斤)
▶ 소(所:所:) : 바 소, 도끼 근(斤) + [지게문 호(戶)→소]
▶ 사(斯:斯:) : 이 사, 도끼 근(斤) + 그 기(其)
도끼 근(斤)자가 무게를 나타내는 단위로 사용되자, 원래의 의미를 보존하기 위해 아버지 부(父)자를 추가하여 도끼 부(斧)자를 만들었습니다. '도끼는 매우 무거워서 집안에서 아버지(父)만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수호지(水滸誌)》에 나오는 흑선풍 이규가 쌍부(雙斧)를 잘 다루었는데, 쌍부(雙斧)는 '쌍(雙) 도끼(斧)'입니다.
장인 장(匠)자는 상자(匚)에 도끼(斤)를 넣어 둔 모습으로 도끼를 가지고 나무를 깎아 물건을 만드는 사람이 장인(匠人)이라는 뜻입니다.
바 소(所)자는 '문(戶) 옆에 도끼(斤)를 놓아두는 자리'라는 뜻입니다. 이후 '자리→위치→곳→것→바'라는 뜻이 생겼습니다. 소재(所在)는 '있는 곳(所)', 소지(所持)는 '가진(持) 것(所)', 소임(所任)은 ‘맡은(任) 바(所) 직책’입니다. ‘소정의 원고료를 지급한다’의 소정(所定)은 ‘정(定)해진 바(所)’입니다.
이 사(斯)자는 키의 상형인 기(其)자와 도끼 근(斤)자가 합쳐진 글자입니다. 키는 곡물들에서 쭉정이나 티끌을 가려내는 도구이고, 도끼는 쪼개는 도구이므로 '쪼개어 가르다'는 뜻이 생겼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이것'이란 의미나 어조사로 사용됩니다. '사학의 권위자입니다'에서 사학(斯學)은 '그(斯) 방면의 학문(學)'입니다.
창 과(戈)
고대 중국의 창
창을 뜻하는 한자라고 하면 맨 먼저 머리에 떠오르는 글자가, '창(矛)과 방패(盾)'라는 뜻의 모순(矛盾)이란 고사성어에 나오는 창 모(矛)자입니다. 창 모(矛)자는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창입니다. 하지만, 갑골문자가 만들어졌을 당시의 은나라에서 가장 많이 사용한 창은 긴 막대기 끝에 벼를 베는 낫을 달아 놓은 모습입니다.
창 과(戈)자는 긴 막대기 끝에 낫이나 갈고리가 붙어 있는 모습입니다. 이러한 창은 전쟁할 때에는 무기로 사용하다가, 농사를 지을 때에는 낫으로 사용합니다. 그래서 싸울 전(戰)자에도 창 과(戈)자가 들어 있지만, '낫으로 추수를 하면 한 해가 간다'는 뜻의 해 세(歲)자에도 창 과(戈)자가 들어 있습니다. 특히 전쟁에서 마차를 타고 빠른 속도로 달리면서 마차 주변의 적을 베는 데에는 찌르는 창(矛)보다는 낫 모양의 창(戈)이 효율적이었습니다.
창을 뜻하는 글자로 이외에도 창 극(戟)자가 있는데, 극(戟)은 과(戈)와 모(矛)를 합쳐 놓은 창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