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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 5월호 아동문학 작품 월평(140호 작품)
작품 속 화자의 갈등과 순리
권영세
『대구문학』5월호에는 12편의 동시와 2편의 동화가 실렸다. 동시의 경우 다른 호에 비해 비교적 많은 작품이 첫선을 보였다. 하지만 여전히 기존의 동시 형태를 과감히 탈피하려는 변화의 조짐이 확연한 동시를 발견할 수가 없어 아쉬웠다. 발표된 작품 중에서 작품의 화자가 겪는 갈등 상황을 제재로 형상화한 작품과 이외에 작품의 구성상 순리를 택했지만, 시적 형상화가 특별히 개성적인 몇 작품만을 월평의 대상으로 한다. 따라서 이번 월평은 작품의 화자가 겪는 갈등과 순리를 화두로 하여 대상 작품을 살펴보고자 한다.
월평을 풀어나가기 위해 먼저 갈등과 순리의 의미와 문학 작품과의 의의를 정리해 본다. 갈등葛藤의 기본의미는 칡과 등나무이다. 이는 칡과 등나무가 서로 복잡하게 얽히는 것과 같이 개인이나 집단 사이에 의지나 처지, 이해관계 따위가 달라 서로 적대시하거나 충돌을 일으킴을 이르는 말이다. 심리적 측면에서의 갈등은 개인의 마음속에 상반되는 두 가지 이상의 감정이나 의지 따위가 동시에 일어나 갈피를 못 잡고 괴로워하는 상황이다. 이는 내적 요인이 갈등의 원인이므로 내적 갈등이라고 한다. 한편 문학에 있어서의 갈등은 소설이나 희곡에서, 인물과 인물, 인물과 운명, 인물과 환경 사이에서 일어나는 대립이나 충돌, 모순을 이르는 말이다. 또한 시에 있어서도 시속 화자의 갈등 상황이 작품을 형상화하는데 중요한 하나의 요인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순리順理는 무리가 없는 순조로운 이치나 도리를 일컫는 말이다. 즉 갈등 상황이 없이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 작품이 형상화되었다는 의미이다.
시적 화자의 갈등 상황이 빚어낸 동시
사회과탐구 시간에/ 알에서 태어난/ 왕들에 대해서 배웠다.// 고구려의 주몽/ 신라의 박 혁거세, 김알지, 석탈해/ 가야의 김수로// 5학년 2학기 때까지만 해도/ 사람은/ 척추가 있고/ 폐로 숨 쉬고/ 젖을 먹어서// 포유륜 줄로만 알았는데/ 아닌 모양이다!// 알에서 태어났다는데 그럼/ 조률까/ 양서률까?// 아직 알이었을 때/ 어미가 품어줘서 태어났다 면/ 조류가 분명할 테고// 알을 깨고/ 스스로 나왔다면/ 보나마나/ 양서류일 것이다.//
- 김규학,「조류일까, 양서류일까?」전문
이 동시의 소재는 고대국가의 개국신화로 잘 알려진 난생설화이다. 소재의 무게감 때문에 작품의 분위기가 제법 묵직하고 진지하다. 그래서 가볍게 읽히지 않고 깊이 생각하게 한다. 창작의 모티브는 사람은 분명히 포유류로 알았는데, 고대국가 난생설화의 주인공들이 알에서 태어났다고 하니까 혹시 조류가 아닐까 하는 의구심에서 유발되었음을 짐작케 한다.
작품 속으로 들어가 보면 화자는 지금 마음을 하나로 모으지 못한 채 갈등 상황에 놓여있다. 이것이 작품의 근간이 되기도 한다. 화자는 ‘5학년 2학기 때까지만 해도/ 사람은/ 척추가 있고/ 폐로 숨 쉬고/ 젖을 먹어서// 포유륜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6학년이 되어 ‘사회과탐구 시간에/ 알에서 태어난/ 왕들에 대해서’ 배우면서 의문을 품게 된다. 이것이 갈등의 주요인이다. 화자는 ‘아직 알이었을 때/ 어미가 품어줘서 태어났다면/ 조류가 분명할 테고// 알을 깨고/ 스스로 나왔다면/ 보나마나/ 양서류일 것이다.’란 일반적 이론을 떠올린다. 결국 화자는 사람은 ‘조류일까, 양서류일까?’란 제목의 물음에 대해 두 상황을 하나로 모으는 것을 유보한다. 그래서 사실을 정확하게 밝혀 하나로 정리하기 보다는 ‘〜일 것이다.’는 추측성 표현으로 마무리하고 만다.
작품의 구조를 보면 일관된 흐름을 유지하면서 비교적 긴 호흡의 작품으로 구성되었다. 하지만 담긴 내용은 그에 비해 대체로 간단하다. 또한 작품의 구성형태가 짧게 행갈이를 했기 때문에 간결한듯하지만 각 행을 이어보면 서술적 문장임을 느끼게 된다. 따라서 시적 긴장감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작품을 읽을 때면 동시의 본질인 작품 속 어린이 화자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현장감이 느껴진다.
분명히 어딘가에 있어/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은 정말 잘 찾아냈어/ 그 사람들에게 물어 보면/ 끊임없이 보물을 생각하고/ 끈질기게 물고 늘어져 본다는데// 보물일까?// 낌새만 보이면/ 뒤집어보고/ 닦아보지만/ 고물이다// 보물을 고물로 만들어버리는 건지/ 처음부 터 고물을 찾은 건지/ 내가 찾는 보물은/ 보물 같은 사람에게만 나타나는 건지/ 보물을 만나야 보물 같은 사람이 되는 건지/ 이래저래 만신창이가 되지만, 그래도/ 또/ 보물찾 기를 한다.//
- 김지원,「보물찾기」전문
앞의 동시「조류일까, 양서류일까?」가 수업시간 배웠던 외부의 일이 갈등의 원인이라면, 이 동시의 화자가 겪는 갈등은 자신의 마음속 즉 내부의 일이 원인이다. 또한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은 정말 잘 찾아’내기 위해 ‘끊임없이 보물을 생각하고/ 끈질기게 물고 늘어져 본’다는 다른 사람과의 비교가 갈등의 원인일 수도 있다. 동시의 중반부에서 ‘낌새만 보이면/ 뒤집어보고/ 닦아보지만/ 고물이다’와 후반부의 ‘내가 찾는 보물은/ 보물 같은 사람에게만 나타나는 건지/ 보물을 만나야 보물 같은 사람이 되는 건지/ 이래저래 만신창이가 되지만, 그래도/ 또’란 표현에서는 화자의 갈등이 고조에 달했음이 느껴진다. 이처럼 화자의 ‘보물찾기’에 대한 갈등은 동시의 전편에 펼쳐져 있어 갈등이 동시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작품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문장에서 성인의식이 그대로 드러나 보인다. 이는 동시로서의 품격과 거리감을 느끼게 하는 요인이 된다. 다만 ‘보물찾기’라는 진부한 소재로 사람들의 일반적인 심리를 실감나게 형상화했다는 점은 문학작품으로서의 의의가 있다. 특히 후반부의 ‘이래저래 만신창이가 되지만, 그래도/ 또/ 보물찾기를 한다.’는 표현에서는 화자의 끈질긴 의지를 느끼게 되어 눈길을 오래 머물게 한다.
메꽃 나팔꽃 고구마꽃처럼/ 생김새가 비슷한 우리// 광어 도다리 가자미처럼/ 구분하기 어려운 우리// 내 얼굴은/ 반쪽만 나와도/ 금방 알아보겠지만// 누가/ 승아인지/ 민지인 지/ 선미인지는/ 모르실 거다// 베트남에서 시집온 우리 엄마//
- 문근영,「단체 사진」전문
이 동시의 메시지는 중반부 이후에서 담겨있다. 즉 ‘내 얼굴은/ 반쪽만 나와도/ 금방 알아보겠지만// 누가/ 승아인지/ 민지인지/ 선미인지는/ 모르실 거다’는 표현이다. 이는 화자의 엄마가 베트남에서 시집왔기 때문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표현이다. 그래서 엄마는 늘 보는 화자는 쉽게 찾지만 베트남 아이들과는 얼굴 모습이 다른 화자의 친구들은 쉽게 구분할 수가 없다는 말이다. 그런 상황을 동시의 전반부에서 ‘메꽃 나팔꽃 고구마꽃처럼/ 생김새가 비슷한 우리// 광어 도다리 가자미처럼/ 구분하기 어려운 우리/ 내 얼굴은/ 반쪽만 나와도/ 금방 알아보겠지만’이라고 비유적으로 표현했다. 작품에는 직접 나타내지 않았지만 단체사진 속에서 화자의 친구 얼굴과 이름을 일치시키는 데는 많은 갈등이 있었을 것으로 상상해 볼 수가 있겠다. 그것은 생김새가 비슷하여 구분하기 어려운 꽃들과 바다 속 어류처럼 베트남에서 시집 온 엄마의 눈에는 아이들의 모습이 모두 비슷하게 보인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오늘날 다문화시대의 사회 현상을 담담한 어조로 형상화했다는 점에서 이 동시가 지닌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이제는 다문화가족인 시의 화자가 생각하는 엄마는 부끄러움의 존재가 아니다. 마지막 연처럼 ‘베트남에서 시집온 우리 엄마’라서 친구들을 쉽게 구분하지 못한다는 것일 뿐이다. 그것을 당연시 하는 화자의 당당함을 이 동시를 통해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순리로 형상화한 동시 공감하기
아기 염소가/ 엄마 염소 곁을/ 조금씩/ 조금씩/ 벗어나 봅니다// 토끼풀밭 지나고/ 민들 레꽃 핀 강둑을 지나/ 산비탈 사과 과수원까지 부득부득 갑니다// 그 사이/ 조금씩/ 조 금씩/ 다리가 튼튼해집니다/ 뿔이 돋아납니다//
- 김현숙,「아기 염소」전문
동시의 첫 인상은 시각적 이미지의 명징함이다. 그래서 시속에서 아기 염소가 풀을 뜯는 장면이 한 폭의 그림처럼 눈에 선하게 떠오른다. 특히 작품에서 느껴지는 시적 대상에 대한 화자의 잔잔한 어조와 소재를 보는 세밀한 관심이 매우 정겹게 다가온다.
동시의 전체적인 흐름을 보면 아기 염소가 ‘엄마 염소 곁을/ 조금씩/ 조금씩/ 벗어’난다는 것을 통해 그 만큼 자라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엄마 염소의 곁을 벗어난 아기 염소는 ‘토끼풀밭’에서 ‘민들레 핀 강둑’을 지나면서 조금씩 세상을 넓혀간다. 엄마 염소의 걱정을 아랑곳하지 않는 아기 염소는 ‘산비탈 사과 과수원까지 부득부득’ 간다. 산비탈 사과 과수원은 아기 염소를 보살펴야 할 엄마 염소에게는 너무 멀리 떨어진 곳이다. 하지만 시인은 마지막 연에서 ‘그 사이/ 조금씩/ 조금씩/ 다리가 튼튼해집니다/ 뿔이 돋아납니다’로 아기 염소의 성장을 다시 확인케 한다. 이 부분이 시인이 말하고 싶은 가장 핵심적인 메시지가 담긴 곳이다. 따라서 독자는 이 메시지를 통해 아기 염소가 성장해 가는 과정을 읽게 된다. 엄마 염소 곁에만 머물지 않고 멀리까지 부득부득 갔기 때문에 ‘다리가 튼튼해’지고, 뿔이 돋아‘날 만큼 성장한 아기 염소를 보게 된다는 것이다. 한편 독자는 동시 속의 아기 염소의 성장 과정을 보면서 세상을 조금씩 넓혀가는 아이의 삶과 견주어보게 될 것이다. 아기 염소가 엄마 염소의 곁은 조금씩 벗어나면서 홀로서기 하듯 아이들도 엄마의 슬하에서 조금씩 떨어지면서 성장해 가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 삶의 순리이기도 하다. 서술체 문장으로 묘사하여 막힘없이 자연스럽게 읽힌다. 정감 있는 목소리에 담긴 선명한 시적 이미지가 돋보인다.
저렇게 예쁜 피우려면/ 예쁜 마음이 없고서야 어떻게 피우겠어.// 저렇게 아름다운 향기 를 가지려면/ 아름다운 마음이 없고서야 어떻게 가지겠어.// 꽃 속에는 꽃처럼/ 예쁘고 아름다운 마음이 있는 게 분명해.// 그래서 꽃은/ 보는 것이기도 하지만/ 느끼기도 해야 해.//
- 박승우,「꽃 속에 꽃이 있다」전문
이 동시에서 가장 많이, 그리고 핵심적으로 사용한 낱말은 ‘마음’이다. ‘예쁜’이나 ‘아름다운’이라는 수식어를 앞에 썼지만 ‘마음’은 매우 추상적인 말이다. 그런데 이 동시를 다 읽고 난 다음에도 계속 가슴속에 울림이 남는다. ‘그래서 꽃은/ 보는 것이기도 하지만/ 느끼기도 해야 해.’라는 말 때문일까. 이 표현은 겉모습만으로는 사물을 다 보았다고는 할 수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문제는 ‘느낀다’는 것이다. ‘느낀다’의 명사형은 ‘느낌’이다. 이는 어떤 대상이나 상태, 생각 등에 대한 반응이나 지각으로 마음속에 일어나는 기분이나 감정이라는 뜻을 가진 말이다. 꽃을 볼 때는 피상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내면 깊숙이 살펴보아야 그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는 메시지가 전달된다. ‘저렇게 예쁜 꽃을 피우려면/ 예쁜 마음이 없고서야 어떻게 피우겠어’란 시인의 표현이 지닌 의미를 함께 공감할 때 꽃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그것은 ‘아름다운 향기’와 ‘아름다운 마음’을 결부시킬 때 비로소 꽃이 아름답다는 말의 의미가 완성되는 것과 같다.
이 동시는 언어 표현상 구어체로 쓰인 각 시행의 종결어미 ‘〜어’와 ‘〜해’가 매우 강한 어조로 느껴진다. 그리고 내용상에 있어서는 철학적인 요소가 다분히 포함되어 있어 깊이 생각하며 읽어야 한다. 그래서 모든 어린이 독자들이 이 동시가 지닌 의미를 선뜻 제대로 이해하고 공감하는 데는 성장의 시간이 필요하리라고 본다. 또한 동시의 전편全篇에서 다소간의 교훈성이 드러나 보이기도 한다. 다만 우리가 사물을 이해함에 있어 내면 깊숙이 관조하는 태도가 필요함을 일깨워주는 작품이라는 점에 의의를 두어야 할 것 같다.
작중 화자의 갈등 극복 과정 따라가기
『대구문학』5월호에는 노영희의 동화「아버지의 각설이타령」과 양경한의 동화 「얼룩 갈매기」가 실렸다. 2편의 동화 중에서 단편동화로서 비교적 완성도가 높은 노영희의 동화「아버지의 각설이타령」의 작중 화자가 갈등을 극복해 나가는 과정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동화의 주요 등장인물은 나와 아버지, 그리고 엄마이다. ‘나’는 사건에 직접 개입도 하지만 많은 부분에서 아버지의 행동을 전달해 주는 작중 화자이다. 사건의 주동 인물이 되는 아버지는 식당을 하다가 접고 가수의 꿈을 이루기 위해 시골장터를 돌아다니며 각설이타령을 하는 품바이다. 그리고 엄마는 아버지를 이해하기 위해 식당을 접고 아버지와 함께 다니는 품바이다. 이 외에도 여러 인물들이 나오지만 주로 이 세 사람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사건의 배경이 되는 장소는 작중 화자인 ‘나’의 집과 학교, 그리고 아버지가 각설이타령을 할 때 엄마는 생필품을 파는 시골장터이다. ‘나’는 집과 학교, 그리고 후반부의 진주 유등축제장 외에는 실제로 가보지 못한 곳이다. 그래서 여타 시골장터에서 벌어지는 아버지의 각설이타령에 대한 서사는 없다.
동화의 발단이 되는 처음 부분은 이렇게 시작된다.
아버지가 집을 나갔다.
아무런 말도 없이 나간 아버지는 오랫동안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아버지는 이곳에서의 모든 시간을 잊어버린 것 같았다.
엄마는 넋 놓을 새도 없이 아버지가 운영하던 식당을 맡아서 하느라 바빴다.
(중략)
아버지가 돌아왔다.
아버지는 누덕누덕 기운 옷을 입고 거지꼴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와 나에게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도 없이.
그날부터 아버지는 틈만 나면 우스꽝스러운 표정과 몸짓으로 각설이타령을 불렀다.(138쪽)
이와 같은 내용으로 짐작해 보건대 아버지는 집을 나가 있는 동안 어딘가에서 틀림없이 각설이타령을 배웠을 것이 분명하다. 엄마는 그런 아버지를 보며 얼굴이 하얗게 질렸지만 각설이타령을 부르는 아버지의 얼굴은 편안해 보였다.
시골장이 설 때마다 아버지는 엿판을 들고 집을 나섰다. 하지만 장터에서의 아버지의 행동을 ‘나’는 잘 알지 못한다. 다만 장터로 나갔던 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오는 날에는 북, 꽹과리, 엿판 같은 것들이 함께 돌아오는 것을 보게 된다. 각설이타령을 구경하러 온 사람들에게 팔다가 남은 것들도 함께. 어느 날 엄마도 결국 식당을 접고 아버지를 따라 나선다. 이제 혼자가 된 화자는 그런 자신이 서럽고 슬펐다. 며칠 만에 돌아온 엄마의 모습도 아버지처럼 우스꽝스럽게 변해버린 것에 ‘나’는 큰 충격을 받게 된다. ‘나’는 그런 엄마의 가슴에 고개를 파묻으며 묻는다.
“엄마는, 왜?”
“아버지를 이해해 보려고.”
“나는?”
울지 않으려고 했는데 걷잡을 수 없이 울음이 터져 나왔다.
“미안해.”
그렇게 말하면서도 엄마는 나를 내버려두고 매번 아버지를 따라나섰다.(140쪽)
그런 아버지와 엄마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는 복잡한 마음 때문에 ‘나’의 얼굴은 점점 시들어 간다. 아들인 ‘나’와는 정반대로 집으로 돌아오는 아버지와 엄마의 얼굴은 날이 갈수록 밝아지고 행복한 모습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나’는 각설이 분장을 한 아버지와 엄마의 모습이 친구들의 눈에 띄지 않기만을 빈다. 혹시나 친구들이 그 모습을 보면 자기에게 “거지새끼”라고 부르며 놀릴까봐. 어느 날부터 ‘나’는 외롭고 슬플 때면 집에서 혼자 노래를 불렀다. 아버지와 엄마가 원망스럽게 느껴질 때도 노래를 불렀다.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그럴 때면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러다 학교에서 반 친구들 앞에서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를 기회가 생겼다. 그러다가 ‘나’는 친구의 권유로 ‘멋진 아이들’ 모임에 들어가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춤을 추며 노래를 했다. 차츰 마음에서 갈등이 사라지고 편안해졌다. 어느 날 ‘나’는 아버지와 엄마를 따라 진주 유등축제에 가게 되었다. 거기에서 아버지의 멋진 공연 모습으로 보았다. 아버지는 무대에서 각설이타령과 함께 트로트를 불러 관객들로부터 많은 박수를 받았다. 아버지는 자신의 노래를 녹음한 시디를 만들어 파는 것으로 동화는 해피엔딩으로 끝을 맺었다.
끝까지 다 읽고 났는데도 동화 속 장면이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특히 인상적인 몇 장면은 오랫동안 머릿속에 머물렀다. 혼자 버려두고 품바가 된 아버지와 엄마를 이해하지 못하고 갈등하는 ‘나’가 너무나 애처롭게 느껴졌다. 시간이 지나면서 체념한 ‘나’가 집과 학교에서 춤을 추고 노래하며 차츰 갈등을 해소하는 장면에서는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결국 아버지와 엄마를 충분히 이해하게 되고, 트로트 시디를 낸 아버지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나’의 모습을 보며 비로소 안도할 수가 있었다.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된 동화의 결말 부분을 옮겨본다.
“아무렴, 팔복이가 처음으로 낸 시디인데 사줘야지.”
사람들이 아버지의 어깨를 두드리며 아낌없이 아버지의 시디를 사주었다.
“고마워유. 참말로 고마워유.”
아버지가 눈물을 그렁그렁한 눈으로 꾸벅꾸벅 인사를 했다.
어느새 날이 저물고 있었다.
강물 위에 뜬 등들이 형형색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강물도 등빛을 받아 고운 빛깔로 찰 랑이고 있었다.
나는 가장 밝게 빛나는 등불 위에 살포시 내 꿈을 실었다. 아버지의 꿈도.(150쪽)
이 동화는 시간의 흐름과 장소의 이동에 따른 형식의 플롯으로 매우 조직적으로 구성된 작품이다. 그리고 부분별 작은 이야기들의 일관된 메시지가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전체와 조화를 잘 이룬 것이 돋보인다. 특히 대화와 지문을 역동적 언어로 구사하여 문장에서 느껴지는 감동이 독자의 마음을 끌어들이기에 충분하다. 구성의 초반부에서 가족의 해체가 느껴지는 불안감이 여러 과정을 거치면서 주요 등장인물들이 각자 자기의 개성을 찾아가는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어 다행이었다.
결론적으로 오늘날 어린이 독자들에게는 자칫 진부한 소재로서 뒤로 밀쳐질 우리의 전래문화인 각설이타령이 주요 등장인물들의 개성적인 캐릭터 설정을 통해 생동감 있는 스토리로 형상화한 작가의 역량을 높이 살만한 작품으로 평가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