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성경을 배우는 자세: 마태복음 11장 28-30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우라
할렐루야! 자비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랫동안 이리저리 헤매며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려고 허덕이는 자를 마태복음 11장 29-30절의 말씀을 통해서 올바른 길로 인도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주님께서 메어주는 온유와 겸손의 멍에를 잘 메고 하나님의 말씀을 잘 배우게 하소서! 온 세상의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하고 사랑하고 잘 배우며 이를 잘 실천하게 하시되 이 말씀과 같이 온유와 겸손의 멍에를 메고서 예수님께 배우게 하소서!
샬롬!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지는데 세상은 여전히 코로나로 모임도 만남도 제한이 되고 있습니다. 온 세계적으로 가족과 함께 예배도 드리고 크리스마스도 보내야 될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신 가장 기쁜 날이 성탄절이고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 가장 큰 명절이지만 사랑하는 형제들과 직접적인 만남이 어렵게 되었고 교회에 출석도 어렵게 되었습니다. 이럴 땐 가족과 같이 동영상으로 예배드리고 기도하고 그리고 성경도 보면서 예수님의 오심을 기뻐해야 되겠습니다. 성경을 배울 때 가장 먼저 어떻게 성경을 배우는 것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하는데 이렇게 늦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이 말씀으로 마음을 새롭게 하게 되었으니 순서가 한참만에 바로 잡힙니다. 얼마나 우쭐대나 부실한 면이 많은 신앙인인지 모르겠습니다. 이제라도 주님과 함께 주님께서 메어 주시는 온유와 겸손의 멍에를 메고서 예수님께 성경을 잘 배워야 하겠습니다.
우선 멍에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겠지만 그림으로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성경의 본문을 개역개정, 공동 번역, 그리고 NIV로 보시겠습니다.
마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28.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지고 허덕이는 사람은 다 나에게로 오너라. 내가 편히 쉬게 하리라.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의 영혼이 안식을 얻을 것이다.
30.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28. "Come to me, all you who are weary and burdened, and I will give you rest.
29. Take my yoke upon you and learn from me, for I am gentle and humble in heart, and you will find rest for your souls.
30. For my yoke is easy and my burden is light."
28절의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라는 말씀은 설교도 자주 듣고 그리고 너무나 유명한 말씀이라 암기도 하고 있지만 29-30절의 말씀은 바로 뒤에 있는 구절이지만 앞 구절만 늘 신경을 쓰다 보니 그렇게 주목을 하지 못하고 살았던 말씀입니다.
제가 자료들을 약 3년 전부터 다음 카페와 네이버 블로그에 올리면서 읽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그리고 통계가 잡히면서 사람 숫자가 1만 명 5만 명 그리고 10만 명으로 늘어가면서 글을 올리고 가장 관심이 가던 부분이 얼마나 많은 사람이 글을 일고 어떻게 댓글이 달렸나 였습니다. 그리고 늘어가는 사람의 숫자에 빠져들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처음에 전도하면서 하나님께서 깨닫게 해 주시고 성경을 정리하면서 이해하게 해 주신 내용들을 숨도 쉬지 않고 단숨에 올리던 자세와는 많이 다르게 되었습니다. 약 30년 정도 전도하고 고시공부하고 신학 하며 성경을 공부한 자료와 그리고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은 욕구가 충만해서 컴퓨터 앞에 앉으면 그냥 몇 시간을 쉬지 않고 약 2년 정도 글을 썼습니다. 그런다가 사람들이 많이 글을 읽어주는 것에 매료가 되어서 글을 올리고 얼마나 읽었지? 하고서 통계자료를 보는 것이 너무나 달콤하게 다가왔습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해서는 아니 된다는 마음을 자제를 하려고도 해 보았으나 며칠이 지나지 않아서 또 통계자료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늘 하시는 말씀이 배우라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배운 자료를 올리면 되는데 왜 배우라고 하시는지 의야 했지만 너무나 다양하게 그리고 강하게 그렇게 말씀하시기에 저는 순종할 수밖에 없었는데 하나님께서 옳으시고 저는 옳지가 않았습니다.
성령을 받고 전도를 하고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로 골로새서 2장 1-3절의 말씀과 같이 성경의 말씀이 이해가 시도 때도 없이 되었고 그리고 신학도 했고 성경 정리도 20년 넘게 쉬다가 또 놀다가 하면서 그래도 쉬지 않고 했기에 이를 전하면 될 것이다 했는데 하나님께서 예수님께 배우라 하는 말씀에 순종해서 자세를 전하려는 자세보다 배우려는 자세로 바꾸었는데 조금 배웠다고 생각하는 제 마음이 틀렸음을 곧 알게 되었으니 성경의 방대함으로 비롯이 되었습니다. 어느 정도 성경에 대해서 이해를 했다고 생각한 저의 자세는 예언서를 보면서도 무너지게 되었지만 역사서를 배우면서도 또 무너졌었습니다. 약 10년, 5년 전의 제가 정리한 성경의 자료를 지금 보니 그때에 성경에 대해서 이해를 하는 만큼 그 이해를 바탕으로 정리를 한 내용을 지금 보니 너무나 엉성하게 정리를 했기에 전부 다시 정리를 해야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에 예언서는 여전히 배우기기 어려웠기에 제쳐 두고 있었습니다. 이제 조금씩 예레미야서를 공부하면서 배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역사서도 여전히 정리할 내용도 이해할 내용도 너무나 많았습니다. 어떤 분들은 단기간에 시험을 준비를 하면서 성경 전체의 내용을 대부분 암기하고 잘 배우는 것을 보았는데 저는 진도가 너무나 느리게 진행이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수님들과 잘 배우신 분, 잘 정리하신 분들의 자료를 제 자료와 비교를 해 보니 너무나 어린아이 수순임이 보이고 부끄럽기가 짝이 없을 때도 많이 있었습니다.
제가 8년 하루에 13시간씩 고시공부를 대학 대학원에 다니면서 했는데 10권이 넘는 고시 과목은 그래도 어느 정도 그렇게 공부를 하니 어떤 주제에 대해서 논하라 혹은 설명하라 하면 그냥 A4용지 20매 정도 2시간에 단숨에 쓸 수가 있게 공부를 했는데 성경은 한 권의 책이지만 30년 가까이 보고 있는데도 여전히 바다와 같이 광활하고 그리고 깊고 방대해서 정말로 어릴 때부터 전심으로 쉬지 않고 배워야 함을 늦게 깨닫고 있습니다. 이렇게 광활하고 방대하며 깊은 성경의 세계를 알고 읽는 자세부터 올바른 자세를 가지고 읽었어야 했는데 고시공부 생각을 하고 한 권의 책으로 보고서 덤볐습니다. 그렇게 20년이 넘었는데 이제야 성경의 깊고 넓고 방대한 부분이 보이니 어찌하겠습니까? 모태로부터 신앙생활을 하시고 어릴 때부터 성경을 접하신 모든 젊은 한국에서 가장 뛰어난 인재가 다니엘과 같이 어려서부터 세상의 학문도 대학 대학원까지 잘 배우고 그리고 성경도 어려서부터 부모님의 가르침대로 그리고 교회의 가르침대로 잘 배우고 그리고 반드시 성령을 받고 성령의 인도로 전도도 하고 그리고 성경도 이해해야 비로소 40-50세 이상 되어서 어느 정도 성경에 대한 이해가 올바로 생길 것으로 믿습니다. 저는 28세까지 늦게 예수님도 성경도 모르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은행에 들어갔고 카투사로 가서 영어를 조금 배운 후에 은행을 퇴사하고 늦게 대학에 들어갔고 그리고 대학원까지 고시공부를 하고 그리고 성경을 읽고 정리하고 신학을 하고 그리고 전도는 예수님을 믿고 늘 쉬지 않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진도가 늦게 진행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성령을 받고 전도하면서 그리고 신학대학원도 공부하고 그리고 성경을 읽고 정리한지도 20년이 지났고 이를 토대로 3년 동안 글을 올리면서 제가 가장 많이 배웠습니다. 그렇지만 그냥 아는 것을 속히 전해야지 하는 마음이 너무나 많고 그도 그럴 것이 글을 올리면 곧 읽어 주시는 분이 많으니 이를 보는 즐거움이 너무나 크기에 이런 마음이 너무나 앞서서 이제는 읽는 사람 숫자에 마음이 거의 빼앗길 정도가 되고 어떻게 하면 사람이 많이 읽을까 생각이 들었는데 하나님께서는 배우라고 강하게 주장하셨고 이를 여러 가지 경로를 통해서 또 경험을 통해서 제게 인식을 시키셨습니다. 그리고 곧 저는 예수님과 함께 모든 사람이 배우는 것을 선포하고 그렇게 하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정말로 제가 아는 것이 별로 없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정말로 성경의 세계를 하늘과 같이 넓고 바다와 같이 깊습니다. 누구도 모든 성경을 다 깊이 이해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리고 성령을 받지 않고 자의로 해석을 하는 분도 이 세상에 너무나 많습니다. 정말로 주의를 하지 않으면 나쁜 교사의 종이 되어서 일생을 잘못된 가르침 속에서 방황하다가 죽을 수도 있습니다.
최근에 어디를 가려고 숙소를 정하려고 지방의 어떤 장소를 물색하는 가운데 명문 신학대를 나온 목사가 운영하는 곳에 가려고 했는데 이 목사님이 전화를 해서 1시간 30분을 그분이 하는 말만 거의 경청을 했습니다. 모두가 아는 신학대학원을 나오고 모두가 아는 대형교회 부목사를 역임하신 분이고 저도 늘 배우려는 마음이 있으니 배운다는 자세로 인내하며 1시간 30분 동안 전화를 그 목사가 전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결론은 예수님도 없고 성경도 없는 참으로 이상한 분이었습니다. 자신은 하나님의 계시로 그렇게 전한다고 했는데 하나님도 없고 성경도 없고 예수님도 없이 이상한 소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어쩌다가 그렇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이런 분을 따라서 또 어떤 분은 가고 있다는 예기도 들었습니다. 저는 성경 모든 구절이 다 올바르고 기독교 2천 년 역사를 대부분 인정하고 그리고 성경을 읽으면 읽을수록 너무나 정확함을 보는데 그분은 믿기가 어렵겠지만 모든 기독교 역사도 예수님도 성경도 교회도 부정하고 계시록을 강의한다고 인터넷을 보라고 했습니다. 아내도 싫어하고 아들도 싫어하는데 1시간 30분 동안 들은 이야기는 예수님에 대한 부정이었습니다.
이 시대는 올바른 가르침에 목이 마른 시대입니다. 성도는 어디서 생명수를 마시려고 갈한 목을 가지고 이곳저곳을 기웃거리고 있습니다. 교회에 적을 두고 있지만 또 여러 군데에서 배우고 있고 교제를 맺고 있습니다.
본문으로 돌아갑니다. 예수님께서 저 보고도 그렇고 여러분 모두에게 예수님께서 메어주는 멍에를 메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멍에를 메고 예수님께 배우라고 하십니다. 이 말이 정답입니다. 결국은 우리가 교회에서도 배우고 개인적으로도 배우고 그리고 인터넷에서도 배우고 그리고 개인적으로 성경을 일고 묵상하며 실천하며 배우기도 합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배움은 예수님께 배우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3년 동안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십니다. 천국에 대해서 복음에 대해서 예수님 자신에 대해서 세상살이에 대해서 그리고 율법에 대해서 구약에 대해서 정말로 다 가르쳐주십니다. 제자들은 궁금한 것을 눈이 보이지 않는 천국에 대해서 예수님에 대해서 그리고 구약의 살았던 신자들에 대해서 다 여쭈어볼 수가 있었고 예수님은 다 대답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를 삼으라고 하시면서 자신에게 배운 것을 낱낱이 그들에게 가르치고 그리고 이들이 이 가르침대로 행하게 하도록 하셨습니다. 이것은 명령입니다. 이 제자들은 천국에 다 갔고 그들이 기록한 예수님에 대한 말씀과 편지와 기록이 남았으니 신약입니다. 이를 잘 배우면 될 것입니다. 교회에서 배우면 가장 좋을 것이고 개인적으로 혹은 학교에서 혹은 인터넷으로 혹은 강의로 배우면 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배우면 배울수록 가져야 하는 마음이 겸손입니다. 일이 잘 되거나 성공하면 성공할수록 겸손하기가 어려워집니다. 업적과 공적이 나타나고 사람들이 칭송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렇게 되면 곧 오는 것이 거만과 교만으로 틀림없이 죄를 짓게 되고 멸망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저도 역시 마찬가지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보시다시피 3년이 채 못되었는데 9만 명이 되었고 다음 카페에도 그 정도가 되니 약 20만 명이 가까워집니다. 그리고 온 세계 약 80개국에서 보고 있습니다. 자랑스럽게 늘 글을 읽는 분의 숫자에 관심이 가고 취한 듯이 컴퓨터 앞으로 쉬지 않고 다가가고 그리고 체크를 합니다. 이것이 저의 모습입니다. 복음을 전할 도구로 부름받은 자가 성도들이 읽고 도움이 되는 부분에 모든 관심이 다 가야 하는데 하나님께서 보고 계신데 이렇게 되었습니다. 이런 저를 하나님께서 약 6개월 전부터 배우라는 말로 깨우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곧 배운다는 자세로 먼저 배우고 올리자고 하니 정말로 배울 내용은 끝도 없이 많고 제가 아는 것은 정말로 작아 보입니다. 이렇게 싸움이 있고 이렇게 싸우면서 함께 예수님께 배우면서 진행이 되고 있고 정말로 저는 잘 배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이 말씀을 같이 묵상을 합니다. 배우려면 가장 먼저 가져할 자세가 겸손입니다. 왜 당대 최고의 지식인 율법학자가 예수님께 모두가 배우지 못했고 가난하고 무식한 어부들이 참된 진리를 먼저 배우고 이들이 성령을 받고 이 모든 율법학자를 뛰어넘는 성경의 교사가 되고 사도가 되었습니까? 이는 율법학자의 교만에서 비롯이 됩니다. 예수님께 절대로 배우고 싶지 않았고 그리고 이들을 책망할 땐 목수의 아들이 자신을 책망한다고 대들고 무시하고 그리고 외면했습니다. 그러나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계층에 있는 이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알았습니다. 집도 형제도 그물도 배도 그리고 잡은 고기도 모두 버리고 예수님께 올인하셨습니다. 먹고 마시고 자고 하는 문제도 모두 예수님께 맡겼습니다. 이들은 모두가 성공했고 영생을 얻었으며 성경을 기록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교만한 율법학자들은 자신을 사랑하고 민족을 사랑하고 온 인류를 사랑하시는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을 박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겸손은 중요한 덕목이고 그리고 배움에 있는 분들이게 꼭 필요한 요소입니다. 배우는데 머리가 중요하고 환경이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배우는 자의 겸손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스승에 대한 올바른 선택입니다. 교회에 가면 목사님이 계시고 그리고 교사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에 나오면 인터넷이 있고 성경학교가 있고 그리고 신학교도 있습니다. 그리고 교재들도 홍수같이 넘칩니다. 그리고 개인이 다양하게 성경을 배울 수가 있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모든 스승과 교재가 다 좋지만 우리는 오늘의 말씀에서 예수님께 배움이 가장 정확하고 가장 좋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영이시고 또 어디에게 계시며 늘 우리와 함께 하시는 성자 하나님이시기에 우리의 가장 좋은 스승이 될 수가 있고 이는 우리의 인정을 통해서 가능합니다. 그리고 믿음을 통해서 가능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마음가짐이 제가 앞에서 소개한 대로 자신의 생각만 전하려고 하거나 자신의 머리로 배우려고 하면 예수님께서 끼워드실 틈이 없습니다. 겸손은 이런 예수님의 존재와 능력을 인정하고 마음에 예수님께 순종하고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시도록 준비를 한다는 것입니다. 마음을 아예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시리라고 가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에 대해서 가장 확실한 겸손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오늘 말씀을 통해서 가르쳐주십니다.
아예 예수님께서 올려주는 멍에는 메고 배우라고 하십니다. 이 멍에의 이름은 겸손과 온유의 멍에입니다.
저는 오늘 소에 멍에는 메는 것과 같이 예수님께서 메어주시는 겸손과 온유의 멍에를 제 목에 올립니다. 이 멍에는 영원토록 벗지 말아야 하는 우리의 십자가가 될 것입니다. 이제 멍에에 대해서 알아보시고 우리는 이 멍에를 스스로 우리 목에 메고 영원토록 살아야 할 것입니다.
멍에는 소의 목에 메는 도구입니다. 사진으로 잘 설명을 드렸으니 모든 분이 알게 되었습니다. 소가 온순하게 처음부터 말을 잘 듣는 것이 아닙니다. 소가 처음부터 순한 것이 아닙니다. 저는 농촌에서 소를 키우는 집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소 마구간이 집 안에 있었고 어려서부터 머리가 크고 뿔이 달린 소를 무서워하지 않았습니다. 마구간에 들어가면 소가 언제나 가까이 와서 자신의 새끼를 핥듯이 늘 혀로 머리나 몸을 핥아 주었고 늘 순했고 늘 우리에게 잘 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소 곁에 가고 소를 만지고 그리고 소를 몰고 꼴을 먹이는 일이 어렵지가 않았습니다. 소는 늘 온순했고 끄는 데로 잘 따라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소가 그렇게 온순하게 사람의 말을 잘 듣는 데에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 하나님께서 소를 가축으로 창조하셨고 소가 온순한 동물이기에 그런 면이 있고 또 하나는 때가 되어서 사람이 조금 길을 들여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송아지는 멍에도 없고 소 코투레도 없습니다.
그래서 천방지축 온 동네를 마음대로 뛰어다닙니다. 그렇게 어미 젓을 먹고 크다가 어느 정도 크면 소 코에 뚜레를 채웁니다. 그리고 이를 끈으로 연결해서 소를 몰고 다닙니다. 당기면 코가 아프니 주인이 시키는 데로 움직이게 됩니다. 그리고 또 어느 정도 크면 멍에를 쒸웁니다. 그리고 고삐를 잡고 멍에에 줄을 연결해서 물건을 싣고 다니는 것을 훈련을 합니다. 이렇게 해서 이리저리 마음대로 뛰던 소가 순하게 되어서 사람이 필요에 따라서 논과 밭을 갈고 그리고 짐도 옮기는 말을 잘 듣는 일 소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농부는 이 소를 극진히 보살핍니다. 늘 마구간을 청소를 해서 깨끗한 건초를 넣어두고 겨울에는 가마 솥에다 여물을 삶아서 먹입니다. 그리고 풀이 나면 베어 오거나 혹은 풀어서 잘 먹입니다. 자신의 가족을 돌보는 것과 똑같이 아끼고 돌봅니다. 그리고 소도 가족의 일원이 되어서 가족과 함께 먹고 일하고 즐겁게 삽니다. 그리고 때가 되면 죽어서 사람의 양식이 됩니다. 소는 힘이 세지만 순하고 그리고 친근하고 그리고 다정합니다. 소만큼 충성스러운 동물도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주인도 정말로 자신의 몸을 돌보고 가족을 돌보는 것과 똑같이 돌보고 먹이고 입힙니다. 회사가 자신의 사원을 이렇게 사랑하면 좋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우리에게 메어 주시는 멍에의 무게와 그리고 어려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멍에가 배우는데 꼭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무겁거나 힘이 든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이 멍에는 쉽게 가볍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믿습니다. 정말로 가볍고 힘이 들이 않음을 믿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을 믿고서 약 34년 정도 되었습니다. 정말로 예수님과 함께하는 삶은 쉽고 행복하고 그리고 풍성하기 때문입니다. 인생은 잔잔한 바다가 아닙니다. 때론 거친 풍랑이 칩니다. 이 풍랑이 치는 배 위에서 누리는 평화가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화입니다. 어떤 이는 파도가 일렁이는 배를 타고 멀미를 하고 어떤 이는 배와 같이 파도에 몸을 맡겨 함께 출렁입니다. 배를 믿고서 그렇게 훈련을 했기에 잘 견딥니다. 인생도 그렇습니다. 모든 풍파가 있지만 예수님을 믿고 맡기고 그냥 흘러가야 할 때는 그냥 그렇게 흘러가야 합니다. 평안하게 흘러가야 합니다. 저도 이렇게 30여 년을 예수님과 함께 왔습니다. 가난의 풍랑은 쉬지 않고 몰아쳤습니다. 정말로 은행에서 나온 후 36년을 쉬지 않고 몰아쳤습니다. 이 풍랑이 있었기에 풍랑 속에서 잡을 수 있는 고기를 잡았으니 이것이 성경의 율법이요, 성경의 정의이며 온 세상을 하나님의 나라로 만드는 비결입니다. 제 오천만의 로마서를 통해서 모두 나누었습니다. 절대로 많이 가지고 누리는 사람이 가난한 자의 어려움을 알 수가 없고 돈도 많고 권력도 많은 자가 가난하고 힘이 없는 백성의 수난이나 고난을 알 수가 없습니다. 성경의 진리는 복음을 통해서 천국에 가는 길을 밝혀주기도 하지만 이 세상을 행복하게 천국으로 만드는 길도 역시 제시하고 있는데 이는 절대로 권력을 가지고 물질을 많이 가지고 사는 자는 알지도 깨닫지도 없으니 반드시 고난과 불의에 대한 눌림과 그리고 어렵고 힘들게 사는 사람들과 함께 하고 그리고 예수님과 이들과 동행할 때에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이런 진리의 세계로 저를 인도하시고 온 세상에 전하게 하셨으니 가난의 풍파가 아무리 거세어도 반드시 극복해야 되는 그렇다고 벗어던질 수도 없는 축복의 통로가 되었습니다. 제가 이런 원리를 알고 스스로 그랬겠습니까? 1%도 그렇게 살기도 싫었고 1%도 그런 가난하고 불의에 눌리고 세상의 무시를 당하는 위치에 있고 싶지 않았습니다. 아내는 늘 재촉을 하고 크는 아들은 늘 아버지의 성공을 재촉했지만 예수님께서 붙잡고 놓지를 않았으니 너는 나와 같이 이 가난과 늘 함께 하자 내가 너를 이 가난에서 내어보낼 수가 없다 너는 나의 도구이니라 너는 나에게 잘 배워야 한다. 그런데 이렇게 배워야만 성경의 율법의 가치와 정의의 원리에 대해서 배울 수가 있다 너는 선택이 되었다 내가 너를 끝까지 이곳에 붙잡고 있겠다 하는 것과 같이 저를 가난에 가두어 두셨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절대로 놓지 않으셨습니다. 어머니는 제가 사는 것이 너무나 안타까우셔서 자신의 장례비로 준비한 천만 원도 주시고 돈이 생기면 주셨습니다. 그리고 막냇동생도 결혼을 하지 않고 30년이 넘게 저를 도왔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께서는 이런 방법으로 주시고 정말로 먹고 살 만큼만 정말로 최저 생활비만 주셨습니다. 그리고 저는 배웠습니다. 성경의 정의를 배웠습니다. 미국의 하버드에 가서 샌들이나 롤스의 정의론을 배우고 그리고 성경의 정의도 배우고 싶었는데 하나님께서 구약의 율법을 통해서 정의가 그곳에 완벽하게 있음을 배워주셨습니다. 이를 예수님께 배우면서 모든 세상의 사람에게 다 공개를 했으니 오천만의 로마서의 모든 글들입니다.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반드시 밝혀야 하는 사실은 제가 성령의 선물을 받고 늘 성령께서 동행하시고 깨닫게 해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성도가 성령을 받아야 하고 성령의 충만과 인도를 받아야 하는 것은 너무나 중요하기에 아무리 강조를 해도 지나침이 없습니다. 전도를 할 때 언제나 할 말을 주시는 분이 성령님이십니다. 어떤 경우에도 상황에 맞게 지혜를 주시는 분이 성령님이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모르는 미래에 대해서 방언으로 쉬지 않고 기도를 시키시는 분이 성령님이십니다. 성령께서 성경을 깨닫게 해 주심으로 우리는 성경을 잘 배울 수가 있는데 성령께서 전도와 함께 예수님의 증인의 삶을 우리가 살게 하시는데 예수님에 대한 가장 올바른 이해는 성경의 올바른 이해이기 때문에 쉬지 않고 우리를 성경의 이해로 인도하십니다. 절대로 성령을 받았다고 전도만 하다간 나중에 성경을 올바로 배우지 못해서 후회하지 마시고 늘 성경을 읽고 묵상하면서 성령의 검을 잘 갈아 두어야 할 것입니다. 저의 모든 성경에 대한 이해도 성령의 도우심으로 전적으로 이루어졌음을 밝힙니다. 성령님의 내주와 감동과 함께 하심과 충만케 하심을 감사드리고 찬양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런 와중에 늘 또 배우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정말로 배울 것이 많음을 봅니다. 예레미야서를 최근에 모든 분과 배우고 있는데 참으로 많이 배웁니다. 그리고 이도 끝나면 남은 예언서를 또 배울 것입니다. 그리고 사복음서도 또 잘 배우고 그리고 서신서도 잘 배워야 할 것입니다. 그래도 계시록은 너무나 조심스럽습니다. 그냥 읽고 스스로 은혜를 받으면 될 것입니다. 배우는 것도 가르치는 것도 어렵지만 스스로 읽고 내용을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시는 데로 이해하고 위로받고 힘을 얻으면 될 것입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예수님 승천 후 2000년의 역사를 잘 살피고 그리고 계시록을 읽으면서 이해도 해야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계시록에 대한 글은 다른 분이 이미 쓴 소개 정도입니다. 언제 배울 때가 될지 모르겠습니다.
겸손은 낮추는 것입니다. 저도 낮추어라 하는 말씀이 너무나 자주 제 마음으로 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합니까 바로 예전에 예수님도 모를 때의 모습을 상상합니다. 그리고 죄를 지을 때를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가 정신이 나가서 방황할 때를 생각합니다. 늘 이렇게 마음이 제가 못났을 때 어려울 때의 상태로 있어야 하는데 여기 블로거에 들어와서 숫자를 보고 통계를 보면 어느 새 저도 모르게 높아져 갑니다. 그러면 곧 낮추어라 소리가 들리기도 하고 같이 사는 아내의 투정과 불평과 그리고 원성이 시작이 됩니다. 그리고 곧바로 설거지 하고 아들 밥을 해서 먹이고 그리고 아내를 매일 안마를 합니다. 아내는 제가 그냥 보통보다 못난 남편에 불과합니다. 정말로 그러니깐 그렇습니다. 15년이나 미인과 살았는데 집도 없고 땅도 없고 직장도 변변치 않고 늘 전기 수도 가스가 끊어지고 독촉장이 빗발치고 그리고 옷도 화장품도 여행도 보석도 해 준 것이 없기에 저를 그렇게 대해도 어떻게 반박할 말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높아질 틈도 없이 살고 빛도 있어 늘 조마조마한데 어떨 때는 마음이 홀로 높아져서 저 하늘로 날라다닙니다. 이렇게 살면 절대로 되지 않는 것은 부지 불시에 누구의 스승이 되어서 예수님의 자리에 앉을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낮추는즉 겸손하는 가장 좋은 비결이 예수님께서 메어주시는 멍에는 잘 메고 사는 일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도구 예수님의 도구로 부르심을 받았고 제가 그렇게 살고 싶다고 처음 하나님을 뵈올 때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 놓고 도구가 되기 위해서 노력을 정말로 거의 못했고 그냥 하나님께서 하자는 데로 살자 했지만 이도 잘 못했고 제가 하고 싶은 오락과 직장과 그리고 일들을 가장 많이 하고 살아서 이제는 후회가 되고 젊을 때 고시공부를 하듯이 열정적으로 성경을 배우지 못한 것이 후회가 되면서 이제라고 영어와 성경을 그렇게 배우고자 하나 젊을 때와 같이 그렇게 열정이 솟아나지 못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이렇게 숫자를 보면서 좋아서 정신없이 전하고 배우고 있습니다. 늘 저를 위해서 겸손한 전도자가 되게 기도해 주시기 부탁을 드립니다. 그리고 저도 역시 언제나 틈이 날 때마 이곳에 오시는 모든 분을 위해서 늘 간절히 정말로 쉬지 않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기도가 없이는 겸손한 마음을 가지기 어렵습니다. 부탁을 드립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면서 겸손하게 됩니다. 만국의 주요,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 그리고 천지의 창조주가 되시는 전능하신 분께서 우리와 같은 육체에 갇히시고 그리고 고난을 겪었습니다. 그리고 고난을 죄도 없이 자신이 만드신 피조물에게 겪으시면서도 불평치 않고 원망치 않으셨습니다. 이렇게 낮아지신 예수님을 보면서 우리도 낮추는 것을 따라서 할 수가 있습니다. 내가 어떤 고위직에 있어도 우쭐할 것이 없고 내가 물질을 많이 가져도 가난한 사람의 입장이 될 수가 있습니다. 그렇게 해야만 가난하고 약한 사람의 고통을 이해하고 이들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알고 해결을 하려고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50-60년 전에 가난했습니다. 큰 교회 목자도 그랬고 큰 부자가 된 장로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이 땅에는 그때와 같이 어렵고 힘든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이들을 보면서 자신들과 같이 성공해라 하는 것은 절대로 겸손이 아닙니다. 그런데 모두가 그렇게 본을 받으라고 하지 이런 자신의 과거의 같이 어려운 상황에 있는 사람의 곁으로 내려가서 자신의 가진 것을 나누며 이들과 함께 잘 사는 것이 겸손인데 이렇게 하는 것을 지극히 어렵게 생각하고 아예 그렇게 할 마음은 1% 없고 누가 자신의 것을 가져가려나 눈에 불을 켜고 지키려고 모두가 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한국의 현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들 여전히 가난하고 어렵고 힘들고 소망이 없는 분들과 함께 하시고 있음을 믿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시는 분은 모두가 속히 이렇게 내려오시기 바랍니다. 어떤 분은 20-30년 혹은 40-60년 전에 사 놓은 땅이 많게는 백배도 오른 분이 있고 적어도 수십 배는 올라서 너무나 큰 부자가 되신 분들이 많습니다. 목사도 있고 장로도 있고 권사님도 있습니다. 100억이 한국에서 별로 큰돈으로 느껴지지 않으나 5억을 전세에 걸고 95억을 4인 가족생활비 400만 원씩이라고 하면 일 년에 5천만 원, 십년에 5억, 100년에 50억, 약 200년을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먹고 살 너무나 큰돈입니다. 당연히 10억이면 약 20년을 온 가족이 먹고 살 수 있는 돈입니다. 50-60년 전에 초가집에 가을에 추수한 벼 몇백 킬로 그리고 콩과 잡곡 그리고 고구마 감자가 전 재산이었습니다. 그리고 긴 겨울을 놀고서 먹고 봄이 되면 먹을 것이 다 떨어졌으니 국민의 약 95% 이상이 이렇게 살았습니다. 그리고 식구도 약 가정에 10명은 되었습니다. 그래도 먹고 살았던 것은 모두가 집이 있고 농사지을 땅이 있었기 때문인데 지금은 집이 없는 사람이 적어도 2천 4백만 명이 되고 땅이 한 평도 없는 백성이 오천만의 70%인 3천5백만이 되었습니다. 과거에 지극히 어려워도 먹고 살 수 있었던 모두의 비록 초가지만 집과 모든 사람이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이 이제는 자본주의 경제제도의 자유경쟁 70년으로 이렇게 변화가 되었으니 누가 잘못을 했습니까? 이 두 문제가 해결이 되지 않으면 국민의 약 70%는 헌법에 보장된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소멸하게 되고 모든 자유권도 박탈이 되어 결국은 인간의 존엄은 땅에 떨어지고 희망이 없는 세상이 될 것인데 이를 누가 고치려고도 지적도 하지 않으니 잘 사는 자에 편승해서 성경의 정의도 무엇인지 예수님께서 오셔서 건설하시고자 했던 나라가 무엇인지도 알지도 못하고, 알려고도 하지 않고 오직 물질이 주는 쾌락에 영혼도 정신도 마음도 그리고 육체도 맡기고 세상의 가르침을 교회에 펴고 있는 어떤 목자들의 잘못이 가장 클 것입니다.
예수님을 보시면서 들판에 오세요! 가난한 자의 집이 없는 고난으로 오세요! 그리고 땅이 없어 세를 사는 자들의 불안한 나날의 삶으로 오세요! 어떻게 그렇게 할 수가 있습니까? 소유를 다 팔아서 가난한 성도와 나누시고 그렇게 가난하게 내려가시면 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겸손입니다. 목사의 도리입니다. 양이 굶주리고 양이 집이 없고 양이 땅이 없는 가운데서 몸부림을 치고 있는데 이들이 벌어다 준 헌금으로 큰 아파트에서 큰 차를 타시고 많은 월급과 퇴직금을 받고서 어떻게 예수님을 이름을 입이 올릴 수가 있고 성경을 가르칠 수가 있습니까? 속히 다 버리고 내려오시기 바랍니다. 누가 욕을 할 사람은 한 명도 없고 이를 따라서 장로가 가고 권사가 가고 그래서 세상에 빛이 오고 세상의 사람들이 각성하고 국가도 각성하고 그리고 젊은 이는 장가를 가게 될 것이고 입시 지옥도 사라지고 집 없는 사람의 한숨도 그치고 그리고 세상이 한국이 어려워서 자살을 하는 사람도 줄어들 것이 분명합니다. 200년 전에 1만 명이 자신의 생명을 버리며 이 땅의 신분제도를 타파한 천주교를 본받아서 개신교는 피를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자신의 재산을 가난한 성도와 이웃과 나눔을 통해서 이 세상의 물질의 우상을 깨뜨리게 될 줄로 믿으니 이것이 천주교에 진 빚을 갚을 유일한 길이 될 줄로 믿습니다. 300년의 영적인 전쟁을 통해서 수많은 사람이 순교를 하면서 이 세상을 예수님을 믿기 쉽게 다 바꾸어 놓은 토대 위에 개신교의 부흥이 이루어진 사실을 모든 개신교인을 인정을 해야 될 것입니다. 그리고 천주교에 대해서 모든 개신교인이 빚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하고 모든 불신자들도 이를 인정하고 예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려야 될 것입니다. 개신교 지도자들이 목사가 장로가 권사가 겸손해질 때가 바로 지금입니다.
절대로 두려워 마실 것은 저는 이미 36년을 그렇게 살았습니다. 먹을 것을 다 먹고 입을 것도 중고로 남이 버린 옷과 신발로 잘 살았습니다. 결혼은 두 번이나 해 보았고 대학원도 두 군데나 나왔으며 아들도 보았고 차도 100만 원짜리 지만 있고 전세로 늘 살지만 살만합니다. 그리고 보험도 없고 빚만 있지만 든든합니다. 어디에 있던 어떤 위치에 있던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그리고 붙잡아 주시면 가장 편안하고 든든하고 안전할 줄로 굳게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것을 버리고 오라는 곳이 가장 안전합니다. 그리고 천국에 가는데 지장이 없습니다. 지금은 이렇게 해야 될 때가 되었습니다. 가난한 형제를 불쌍이 여기시고 집도 주시고 땅도 부디 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부자 청년에게 하신 말씀이 지금 한국의 모든 부자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따라서 배우는 길로 나서야 될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낮아지심을 통해서 우리는 낮아질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멍에는 별로 무겁지가 않고 그렇게 어렵지도 않다고 하셨습니다. 제가 36년 가난이 어렵거나 힘이 들었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겸손의 문제도 역시 예수님의 말씀대로 쉽고 가벼울 것이 너무나 정확합니다. 절대로 겸손한 자가 망하는 법이 없습니다. 교만한 자가 망하고 멸망하고 낭패를 겪을 뿐입니다. 그리고 천국에 어찌 교만한 사람이 들어갈 수가 있습니까?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지게 하시는 온유와 겸손의 멍에를 메면 세상에서 예수님과 동행하시면서 예수님께서 우리의 문제를 다 해결을 해 주시겠다는 말이기도 하고 모든 문제를 다 책임을 져 주신다는 말도 됩니다. 우리가 겸손하게 예수님과 동행하면 예수님께서 우리의 모든 짐을 다 즉 먹고 마시고 자고 입고 결혼하고 직장을 가지고 하는 모든 문제를 다 해결을 해 주신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하고서 배워야만 비로소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을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세계는 너무나 광활하고 깊어서 인간이 일생을 모든 것을 다 투자해서 연구를 해도 일부분만 알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반드시 성령의 감동과 함께 예수님께 배워야 올바로 배울 수가 있습니다. 율법학자와 같이 예수님께 덤벼서는 절대로 율법의 올바른 의미를 깨달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을 제쳐 두고 조금 안다고 가르치려고 하면 역시 잘 배울 수가 없습니다. 모두가 형제요 자매이고 오직 예수님 홀로 스승인 것을 성경의 말씀과 같이 인정하고 우리는 모두가 예수님께 배워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또 멍에의 한 부분은 온유입니다. 온유의 반대는 냉랭이요 날카로움입니다. 칼과 같은 날카로움입니다. 냉랭은 인정도 사랑도 없는 것을 말합니다. 온유는 따뜻한 마음과 부드러운 마음입니다. 어떤 이의 마음은 우리가 마음으로 마음을 느낄 수가 있는데 봄바람과 같이 따뜻하고 부드럽습니다. 어떤 이는 칼날과 같고 그리고 딱딱 하기도 하고 그리고 완고합니다. 온유는 이런 마음을 이깁니다. 따뜻함이 녹일 수가 있습니다. 부드러움이 부서지지 않고 고난을 이기게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께서 메 주는 멍에를 맨다는 말은 이렇게 온유한 마음을 가지고 산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지금부터 영원토록 그렇게 산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야 예수님께 잘 배울 수가 있습니다. 성질이 급하고 조급하고 그리고 화를 잘 내고 그리고 누가 공격을 하면 몇 배로 더 악하게 대하고 칼과 같이 자르고 남에게 송곳이 되어서 상처를 주면서 예수님께 잘 배울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는 예수님의 가르침의 내용이 모두가 사랑을 실천하고 인내하고 용서하고 그리고 나누고 베풀며 그리고 자신의 욕구를 만족시키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정의를 행함에 대한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예수님을 믿기 전에 이렇게 냉랭한 마음의 일인자였습니다. 조그만 제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바로 무시하고 칼과 같이 잘랐습니다. 그리고 교만했습니다. 저보다 공부를 못하면 못난 사람으로 여기고 함부로 대했습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제일 잘난 사람으로 착각하고 살았던 사람입니다. 늘 주변에 상처를 주면서 저는 절대로 마음에 상처도 입지 않고 절대로 남으로부터 괴롭힘을 당하지 않고 대신에 남을 힘들게 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살면서도 제가 정말로 도덕적으로 그리고 세상적으로 정의롭고 올바르다고 생각했습니다. 스스로 성인군자라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참으로 큰 착각 속에 살았는데 전도자가 준 성경책이 이런 저를 고쳤습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서 바로잡아 주시고 죄에 대해서 회개하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 이름의 세레를 통해서 죄 사함을 받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된 것입니다.
소가 코에 뚜레를 차고 그리고 목과 등에 멍에를 메고서 훈련을 받고서 농부가 마음대로 밭을 갈고 부릴 수가 있는 것과 같이 우리도 예수님께서 메어 주시는 겸손의 멍에와 온유의 멍에를 잘 메고서 주님께서 마음대로 사용하실 도구가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세상의 권세자가 나를 자신의 백성으로 혹은 사원으로 부릴 때 보호를 하는 것과 비교도 할 수 없는 예수님의 사랑과 보호가 있음을 믿습니다. 때론 예수님의 친구도 되고 때론 신부도 되고 때론 아들과 딸이 되기도 하고 때론 그분의 도구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언제나 한결같이 우리를 존중하시고 선한 길로 인도하십니다.
그리고 세상이 온 세상의 최고의 대학의 교수가 가르쳐 줄 수가 없는 진리를 가르쳐 주십니다. 이 진리를 우리는 반드시 예수님께 나아와서 겸손히 그분 앞에 부복하고 죄인임을 고백하고 그리고 그 분으로부터 죄를 용서받고 그리고 멍에를 메고 잘 배워야 할 것입니다.
그분 앞에 겸손은 그분 앞에 우리가 죄인임을 고백하고 우리의 죄를 회개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창조주가 되십니다. 너무나 우리와는 신분이 다르신 분이십니다. 우리는 유한한 인간이지만 그분은 영원한 분이십니다. 처음이요 마지막이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전능하신 분으로서 이 세상을 그분의 능력으로 말씀으로 창조를 하신 분이십니다. 우리는 그분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피조물입니다. 우리는 죄로 인해서 죽은 소망이 없는 사람이지만 예수님께서는 죄가 없으시고 우리를 구원하신 분이십니다. 우리는 그분이 창조하신 세상에서 사는 사람이며 심판을 받아야 되는 인간이지만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으로서 우리를 모두 심판하실 분이십니다. 그리고 그분은 우리를 언제나 사랑하시고 우리는 그분의 사랑을 받고 있는 존재입니다. 우리는 부분적으로 정말로 조금 아나 그분은 완전히 알고 전지하신 분이십니다. 인간의 겸손은 예수님의 이런 모습을 인정하고 그분을 공경하고 찬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 앞에 나아가기 위해서 우리는 특별히 우리를 단장할 필요는 없습니다. 있는 죄인의 모습 그대로 부족한 모습 그대로 예수님께 나아가서 부복하고 겸손히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비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우리 모든 죄를 예수님께서 다 용서해 주시고 우리를 품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같은 죄인을 용서하시고 구원하셔서 영원한 천국에서 예수님과 함께 영원토록 살도록 하시기 위해서 오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저는 죄인입니다. 정말로 악한 죄인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랑을 실천하는 삶은 1% 살지 못했습니다. 저는 스스로 올바르고 착하다고 착각하며 살았습니다. 예수님! 저는 제 잘못을 인정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회개하고 예수님과 이웃을 사랑하며 살겠습니다. 저를 인도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다시는 예전과 같이 냉랭하고 성급하고 그리고 교만한 삶을 살지 않겠습니다. 겸손하게 온유하게 예수님께서 메어 주시는 멍에를 달게 메고 살겠습니다.
저를 선한 도구로 삼아 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하면 반드시 예수님께서 선한 도구로 삼아 주십니다.
우리는 다 자신이 다른 달란트를 가지고 태어납니다. 모든 사람이 저와 같이 부르심을 받지는 않습니다.
어떤 이는 대통령이 되실 것이고 어떤 이는 재벌이 되실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이는 음악가가 될 것이고 어떤 이는 목사가 될 것입니다. 어떤 이는 직장인이 되고 어떤 이는 농부가 되며 어떤 이는 어부가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어떤 직장을 갖든 어떤 직분을 가지든지 우리는 언제나 똑같이 예수님께서 메어 주시는 멍에를 일생 동안 메고서 겸손하게 온유하게 살면서 일생을 예수님께 배우는 삶을 사는 것은 똑같을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모든 세상에서 성공하시고 일류가 되시고 그렇지만 모든 믿음의 사람을 형제로 사랑하고 도울 사람을 돕기를 바랍니다. 어떤 위치에 있든지 형제를 밟고 올라가지 마시고 내가 성공하면 형제를 여러 명 건져서 함께 성공하시기 바랍니다. 유대인의 성공은 이렇게 온 세상에 흩어진 유대인이 율법 안에서 한 형제로 살기에 온 민족 위에 뛰어난 민족이 된 것입니다. 이를 절대로 잊지 마시고 자신의 달란트 대로 모든 세상 사람을 이기고 뻗어나가시길 기원합니다.
쉽고 가벼운 멍에를 일생 동안 잘 메시고 저도 잘 메고 예수님께 우선은 잘 배우고 그리고 예수님께서 인도하시는 데로 예수님과 함께 일생 동안 승리의 길로 나아갑시다.!!! 즐겁고 행복한 성탄이 되시기 빕니다.
메리 크리스머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