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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불교와 여행을 사랑하는 사람들 원문보기 글쓴이: 관문
영어 공부와 불서 읽기의 묘미 - 불기 2559년(2015년) 6월 11일 후기
Bhikkhu Bodhi 스님의 In the Buddha's Words (20)
서울경기강원지역방 3344번 글 http://cafe.daum.net/altlovebuddha/PEK/3344
의 후속타입니다.
<Bhikkhu Bodhi 스님의 In the Buddha's Words>를 스무 번째로 읽었습니다. 오늘 영어 불서읽기에는 환희장엄 법우, 클나라 법우, 저 관문 이렇게 3명이 참석했습니다.
오늘도 지난번에 모였던 장소 ‘Cafe 57th’에서 모임을 가졌습니다. 이곳은 지하철 3호선 안국역 1번 출구에서 나와 80 미터 가량 직진하신 후 풍문여고를 오른 쪽에 끼고 돌아서 약 60 미터 가면 보이는 곳입니다. 모이는 때는 매주 목요일 오후 7시입니다.
오늘은 교재 <Edited and introduced by Bhikkhu Bodhi, In the Buddha's Words> 중 IV. The Happiness Visible in This Present Life 제4장 이번 생에서 누릴 수 있는 행복의 Text를 읽었습니다. 교재 118페이지 밑에서 10째 줄부터 128페이지 밑에서 8째 줄까지입니다.
<Bhikkhu Bodhi 스님의 In the Buddha's Words>를 읽는 동안의 후기는 영어 원문과 저희가 시도해 본 번역을 올리겠습니다. 아직 이 책의 우리말 번역본이 없어서 이 후기는 순전히 저희 영어불서 읽기 모임의 작품이 되겠습니다.
IV. The Happiness Visible in This Present Life
제4장 이번 생에서 누릴 수 있는 행복
2. The Family
2. 가정
(1) Parents and Children
(1) 부모와 자식
(a) Respect for Parents
(a) 부모를 공경함
“Monks, those families dwell with Brahmā where at home the parents are respected by their children. Those families dwell with the ancient teachers where at home the parents are respected by their children. Those families dwell with the ancient deities where at home the parents are respected by the children. Those families dwell with the holy ones where at home the parents are respected by their children.
“비구들이여, 집에서 자식들이 부모를 공경하는 가정은 브라흐마[범천(梵天)]와 함께 살고 있다. 집에서 자식들이 부모를 공경하는 가정은 태곳적부터의 스승과 함께 살고 있다. 집에서 자식들이 부모를 공경하는 가정은 태곳적부터의 천신들과 함께 살고 있다. 집에서 자식들이 부모를 공경하는 가정은 거룩한 분들과 함께 살고 있다.
“‘Brahmā,’ monks, is a term for father and mother. ‘The ancient teachers’ is a term for father and mother. ‘The ancient deities’ is a term for father and mother. ‘The holy ones’ is a term for father and mother. And why? Parents are of great help to their children; they bring them up, feed them, and show them the world.”
“비구들이여, ‘브라흐마[범천(梵天)]’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가리키는 말이다. ‘태곳적부터의 스승’은 아버지와 어머니를 가리키는 말이다. ‘태곳적부터의 천신들’은 아버지와 어머니를 가리키는 말이다. ‘거룩한 분들’은 아버지와 어머니를 가리키는 말이다. 어째서인가? 부모는 자식들에게 크게 도움이 된다. 부모는 자식들을 양육하고, 먹이고, 세상을 가르쳐주신다.”
(AN 4:63; II 70)
(b) Repaying One’s Parents
(b) 부모의 은혜를 갚음
“Monks, I declare that there are two persons one can never repay. What two? One’s mother and father.
“비구들이여, 사람이 결코 은혜를 갚을 수 없는 두 사람이 있다고 나는 분명히 말한다. 두 사람은 누구인가? 어머니와 아버지이다.
“Even if one should carry about one’s mother on one shoulder and one’s father on the other, and while doing so should live a hundred years, reach the age of a hundred years; and if one should attend to them by anointing them with balms, by massaging, bathing, and rubbing their limbs, and they should even void their excrements there—even by that would one not do enough for one’s parents, nor would one repay them. Even if one were to establish one’s parents as the supreme lords and rulers over this earth so rich in the seven treasures, one would not do enough for them, nor would one repay them. For what reason? Parents are of great help to their children; they bring them up, feed them, and show them the world.
“어머니를 한 쪽 어깨에 아버지를 다른 어깨에 태우고 다닐지라도, 그렇게 하면서 백 년을 살더라도, 나이가 백 살이 되더라도, 또 부모님께 시중들기를 향으로 발라드리고, 안마를 해드리고, 목욕시켜드리고, 팔다리를 문질러드리고, 심지어 대소변을 받아낸다고 해도, 그렇게 함으로써 부모님께 다 해드리지 못하고, 부모님의 은혜를 다 갚지 못한다. 일곱 가지 보배가 가득 차 있는 이 세상에 최고 높은 군주와 통치자로 부모님을 모신다고 해도, 부모님께 다 해드리지 못하고, 부모님의 은혜를 다 갚지 못한다. 무슨 이유 때문인가? 부모는 자식들에게 크게 도움이 된다. 부모는 자식들을 양육하고, 먹이고, 세상을 가르쳐주신다.
“But, monks, one who encourages his unbelieving parents, settles and establishes them in faith; who encourages his immoral parents, settles and establishes them in moral discipline; who encourages his stingy parents, settles and establishes them in generosity; who encourages his ignorant parents, settles and establishes them in wisdom—such a one, monks, does enough for his parents: he repays them and more than repays them for what they have done.”
“그러나 비구들이여, 믿지 않는 부모님을 격려해서, 믿음에 자리 잡고 확고하게 해드리며, 부도덕한 부모님을 격려해서, 계율에 자리 잡고 확고하게 해드리며, 인색한 부모님을 격려해서, 보시에 자리 잡고 확고하게 해드리며, 무지에 사로잡힌 부모님을 격려해서, 지혜에 자리 잡고 확고하게 해드리는 사람이 부모님께 다 해드리는 것이다. 그는 부모님의 은혜에 보답하고 부모님이 해주신 것보다 더 많이 보답한다.”
(AN 2: iv, 2; I 61–62)
(2) Husbands and Wives
(2) 남편과 아내
(a) Different Kinds of Marriages
(a) 여러 종류의 결혼 생활
On one occasion the Blessed One was traveling along the highway between Madhurā and Verañjā, and a number of householders and their wives were traveling along the same road. Then the Blessed One left the road and sat down on a seat at the foot of a tree. The householders and their wives saw the Blessed One sitting there and approached him. Having paid homage to him, they sat down to one side, and the Blessed One then said to them:
한 때 세존께서 마두라와 웨란자 사이의 큰길을 따라서 여행하고 계셨고, 많은 재가신도들과 아내들이 같은 길을 따라서 여행하고 있었다. 그때 세존께서 길을 벗어나 나무 아래 자리 잡고 앉으셨다. 재가신도들과 아내들이 세존께서 앉아 계신 것을 보고 세존께 다가갔다. 그들이 세존께 절을 하고 한편에 앉자 세존께서 그들에게 말했다.
“Householders, there are these four kinds of marriages. What four? A wretch lives together with a wretch; a wretch lives together with a goddess; a god lives together with a wretch; a god lives together with a goddess.
“재가신도들이여, 이러한 네 종류의 결혼 생활이 있다. 무엇이 넷인가? 철면피가 철면피와 함께 사는 것. 철면피가 여신과 함께 사는 것. 신과 철면피가 함께 사는 것. 신이 여신과 함께 사는 것이다.
“And how does a wretch live together with a wretch? Here, householders, the husband is one who destroys life, takes what is not given, engages in sexual misconduct, speaks falsely, and indulges in wines, liquor, and intoxicants, the basis for negligence; he is immoral, of bad character; he dwells at home with a heart obsessed by the stain of stinginess; he abuses and reviles ascetics and brahmins. And his wife is exactly the same in all respects. It is in such a way that a wretch lives together with a wretch.
“어떻게 철면피가 철면피와 함께 사는가? 재가신도들이여, 여기 남편은 생명 있는 것을 죽이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고, 성적 비행(非行)을 저지르고, 거짓으로 말하고, 게으름의 근원인 포도주, 독주, 취하는 것에 탐닉한다. 그는 부도덕하고, 나쁜 성격을 가졌다. 그는 인색함의 흠에 사로잡힌 마음을 가지고 집에서 산다. 그는 수행자와 바라문들을 욕하고 비방한다. 그의 아내도 모든 면에서 그와 꼭 같다. 이런 식으로 철면피가 철면피와 함께 산다.
“And how does a wretch live together with a goddess? Here, householders, the husband is one who destroys life … who abuses and reviles ascetics and brahmins. But his wife is one who abstains from the destruction of life … from wines, liquor, and intoxicants; she is virtuous, of good character; she dwells at home with a heart free from the stain of stinginess; she does not abuse or revile ascetics and brahmins. It is in such a way that a wretch lives together with a goddess.
“어떻게 철면피가 여신과 함께 사는가? 재가신도들이여, 여기 남편은 생명 있는 것을 죽이고 … 그는 수행자와 바라문들을 욕하고 비방한다. 그러나 그의 아내는 생명 있는 것을 죽이는 것을 삼가고 … 포도주, 독주, 취하는 것을 삼간다. 그녀는 계를 지키고, 좋은 성품을 가졌다. 그녀는 인색함의 흠이 없는 마음으로 집에서 산다. 그녀는 수행자와 바라문들을 욕하고 비방하지 않는다. 이런 식으로 철면피가 여신과 함께 산다.
“And how does a god live together with a wretch? Here, householders, the husband is one who abstains from the destruction of life … who does not abuse or revile ascetics and brahmins. But his wife is one who destroys life … who abuses and reviles ascetics and brahmins. It is in such a way that a god lives together with a wretch.
“어떻게 신이 철면피와 함께 사는가? 재가신도들이여, 여기 남편은 생명 있는 것을 죽이는 것을 삼가고 … 수행자와 바라문들을 욕하고 비방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의 아내는 생명 있는 것을 죽이고 … 수행자와 바라문들을 욕하고 비방한다. 이런 식으로 신이 철면피와 함께 산다.
“And how does a god live together with a goddess? Here, householders, the husband is one who abstains from the destruction of life … from wines, liquor, and intoxicants; he is virtuous, of good character; he dwells at home with a heart free from the stain of stinginess; he does not abuse or revile ascetics and brahmins. And his wife is exactly the same in all respects. It is in such a way that a god lives together with a goddess.
“어떻게 신과 여신이 함께 사는가? 재가신도들이여, 여기 남편은 생명 있는 것을 죽이는 것을 삼가고 … 포도주, 독주, 취하는 것을 삼간다. 그는 계를 지키고, 좋은 성품을 가졌다. 그는 인색함의 흠이 없는 마음으로 집에서 산다. 그는 수행자와 바라문들을 욕하고 비방하지 않는다. 그의 아내도 모든 면에서 그와 꼭 같이 한다. 이런 식으로 신과 여신이 함께 산다.
“These, householders, are the four kinds of marriages.”
“재가신도들이여, 이것이 결혼 생활의 네 종류이다.”
(AN 4:53; II 57–59)
(b) How to Be United in Future Lives
(b) 미래 생에 함께 살려면
On one occasion the Blessed One was dwelling among the Bhagga people, near Suṃsumāragiri, in the Deer Park of the Bhesakalā Grove. One morning the Blessed One dressed, took his upper robe and bowl, and went to the dwelling of the householder Nakulapitā.3 Having arrived there, he sat down on the seat prepared for him. Then the householder Nakulapitā and the housewife Nakulamātā approached the Blessed One and, after paying homage to him, sat down to one side. So seated, the householder Nakulapitā said to the Blessed One:
한 때 세존께서 숨수마라기리 근처의 베사깔라 숲의 사슴 동산에서 박가 사람들 사이에 머물고 계셨다. 어느 날 오전에 세존께서는 옷을 입고, 가사를 입고 발우를 들고, 나꿀라삐따 장자의 집으로 가셨다.(주3) 그곳에 도착해서 준비된 자리에 앉으셨다. 그러자 나꿀라삐따 장자와 그 아내 나꿀라마따가 세존께 다가와서, 세존께 예를 올리고, 한 쪽 편에 앉았다. 이렇게 앉은 나꿀라삐따 장자가 세존께 말했다.
NOTE 3. The householder Nakulapitā and the housewife Nakulamātā were the foremost of the Buddha’s lay disciples with regard to their trust in him. See Nyanaponika and Hecker, Great Disciples of the Buddha, pp. 375–78.
(주3) 나꿀라삐따 장자와 그의 아내 나꿀라마따는 붓다를 믿는 믿음에 관련해서 재가 신도들 중 으뜸이었다. Nyanaponika and Hecker의 <붓다의 위대한 제자들> pp. 375–78을 보라.
“Venerable sir, ever since the young housewife Nakulamātā was brought home to me when I too was still young, I am not aware of having wronged her even in my thoughts, still less in my deeds. Our wish is to be in one another’s sight so long as this life lasts and in the future life as well.”
“세존이시여, 젊은 아내 나꿀라마따가 저도 젊었을 때 저희 집에 시집온 이후로 저의 행동은 말할 것도 없고, 생각으로도 그녀를 부당하게 대한 기억이 없습니다. 우리의 소원은 금생이 지속되는 한 또 미래 생에서도 서로를 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Then Nakulamātā the housewife addressed the Blessed One thus: “Venerable sir, ever since I was taken to the home of my young husband Nakulapitā, while being a young girl myself, I am not aware of having wronged him even in my thoughts, still less in my deeds. Our wish is to be in one another’s sight so long as this life lasts and in the future life as well.”
그러자 아내 나꿀라마따도 세존께 이렇게 말했다. “세존이시여, 제가 젊었을 때, 젊은 남편 나꿀라삐따의 집에 시집온 이후로 저의 행동은 말할 것도 없고, 생각으로도 남편을 부당하게 대한 기억이 없습니다. 우리의 소원은 금생이 지속되는 한 또 미래 생에서도 서로를 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Then the Blessed One spoke thus: “If, householders, both wife and husband wish to be in one another’s sight so long as this life lasts and in the future life as well, they should have the same faith, the same moral discipline, the same generosity, the same wisdom; then they will be in one another’s sight so long as this life lasts and in the future life as well.”
그때 세존께서 이렇게 말했다. “재가신도들이여, 만일 아내와 남편이 둘 다 금생이 지속되는 한 또 미래 생에서도 서로를 볼 수 있게 되기를 원한다면, 그들은 같은 믿음, 같은 계율, 같은 보시, 같은 지혜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러면 그들은 금생이 지속되는 한 또 미래 생에서도 서로를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When both are faithful and generous,
Self-restrained, of righteous living,
They come together as husband and wife
Full of love for each other.
두 사람이 모두 믿음 있고 관대하며,
스스로를 다스리고, 올바른 생활을 할 때,
그들은 부부로서 함께 지낸다,
서로에 대한 사랑을 가득 담고.
Many blessings come their way,
They dwell together in happiness,
Their enemies are left dejected,
When both are equal in virtue.
많은 축복이 그들에게 일어나며,
그들은 함께 행복하게 살고,
그들의 원수는 기가 죽어 떠나간다,
두 사람이 똑같이 계를 지킬 때.
Having lived by Dhamma in this world,
The same in virtue and observance,
They rejoice after death in the deva-world,
Enjoying abundant happiness.
덕성과 계를 같이 지키며,
이 세상에서 담마를 따라 살았으니,
그들은 죽은 후에 천상계에 태어나 기뻐한다,
무한한 행복을 누리면서.
(AN 4:55; II 61–62)
(c) Seven Kinds of Wives
(c) 일곱 종류의 아내
On one occasion the Blessed One was dwelling at Sāvatthī in Jeta’s Grove, Anāthapiṇḍika’s monastery. In the morning the Blessed One dressed, took his bowl and robe, and went to Anāthapiṇḍika’s house, where he sat down in a seat prepared for him. On that occasion people in the house were making an uproar and a racket. The householder Anāthapiṇḍika approached the Blessed One, paid homage to him, and sat down to one side.4 The Blessed One then said to him: “Why are people in your house making this uproar and racket, householder? One would think they were fishermen making a haul of fish.”
한 때 세존께서 사바티의 제따 숲, 아나타삔디까 승원[기수급고독원(祇樹給孤獨園)]에 머무르고 계셨다. 오전에 세존께서 옷을 입고, 가사를 수하시고 발우를 들고, 아나타삔디까 장자(長者)의 집에 가셨다. 거기서 준비된 자리에 앉으셨다. 그 때 그 집안의 사람들이 큰 소란을 피우고 있었다. 아나타삔디까 장자가 세존께 다가가서, 세존께 예를 올리고, 한쪽 편에 앉았다.(주4) 그러자 세존께서 장자에게 말했다. “장자여, 장자의 집 사람들이 왜 이리 큰 소란을 피우고 있소? 남들이 들으면 고기 그물이라도 끌어당기는 줄로 생각하겠소.”
NOTE 4. Anāthapiṇḍika was the Buddha’s foremost male lay supporter. See Nyanaponika and Hecker, Great Disciples of the Buddha, chapter 9.
(주 4) 아나타삔디까는 붓다의 으뜸가는 남자 재가신도 후원자였다. Nyanaponika and Hecker의 <붓다의 위대한 제자들> 제9장을 보라.
“That, venerable sir, is our daughter-in-law Sujātā. She is rich and has been brought here from a rich family. She does not obey her father-in-law and mother-in-law, nor her husband. She does not even honor, respect, esteem, and venerate the Blessed One.”
“세존이시여, 그건 저희 며느리 수자따 때문입니다. 며느리는 부유하고, 부잣집에서 자라서 이곳으로 시집 왔습니다. 며느리는 시부모의 말을 듣지 않고, 남편 말도 듣지 않습니다. 며느리는 심지어 세존도 존경하지 않습니다.”
Then the Blessed One called the daughter-in-law Sujātā, saying, “Come, Sujātā.”
그러자 세존께서 며느리 수자따를 불러서 “이리 오너라, 수자따야.”라고 말했다.
“Yes, venerable sir,” she replied, and she went to the Blessed One, paid homage to him, and sat down to one side. The Blessed One then said to her: “There are these seven kinds of wives, Sujātā. What seven? One like a slayer, one like a thief, one like a tyrant, one like a mother, one like a sister, one like a friend, and one like a handmaid. These are the seven kinds of wives. Now which of these seven are you?”
“예, 세존이시여,”라고 그녀는 대답하고, 세존께 가서, 예를 올리고, 한쪽 편에 앉았다. 그때 세존께서 그녀에게 말했다. “수자따야, 이러한 일곱 종류의 아내가 있다. 어떤 일곱인가? 살인자 같은 아내, 도둑 같은 아내, 폭군 같은 아내, 어머니 같은 아내, 누이 같은 아내, 친구 같은 아내, 하녀 같은 아내이다. 이것들이 일곱 종류의 아내이다. 그대는 이 일곱 가지 중 어떤 아내인가?”
“I do not understand in detail the meaning of the Blessed One’s brief statement. It would be good, venerable sir, if the Blessed One would teach me the Dhamma in such a way that I might understand the meaning in detail.”
“저는 세존의 간단한 말씀의 의미를 자세히 알지 못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자세히 그 의미를 알 수 있도록 세존께서 담마를 저에게 설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Then listen, Sujātā, and attend carefully. I will speak.”
“그러면 수자따야, 주의 깊게 귀를 기울여 잘 들어라. 내가 말하리라.”
“Yes, venerable sir,” Sujātā replied. The Blessed One said this:
“예, 세존이시여,”라고 수자따가 대답했다.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With hateful mind, cold and heartless,
Lusting for others, despising her husband;
Who seeks to kill the one who bought her—
Such a wife is called a slayer.
“차갑고 무정하며, 증오하는 마음을 가지고,
남편을 경멸하면서, 남들에게 색정을 품고,
자기를 사들인 사람[남편]을 죽이려고 애쓰는 사람—
이런 아내를 살인자 같은 아내라고 부른다.
“When her husband acquires wealth
By his craft or trade or farm work,
She tries to filch a little for herself—
Such a wife is called a thief.
“남편이 기술이나 장사 또는 농사를 지어,
재산을 모을 때,
그녀는 자신을 위해 조금씩 좀도둑질하려고 한다—
이런 아내를 도둑 같은 아내라고 부른다.
“The slothful glutton, bent on idling,
Harsh, fierce, rough in speech,
A woman who bullies her own supporter—
Such a wife is called a tyrant.
“게으름만 피우고 나태한 대식가이며,
말이 모질고, 사납고, 거칠고,
자신을 부양하는 자를 못살게 구는 여자—
이런 아내를 폭군 같은 아내라고 부른다.
“One who is always helpful and kind,
Who guards her husband as a mother her son,
Who carefully protects the wealth he earns—
Such a wife is called a mother.
“언제나 도움을 주고 친절하며,
어머니가 아들에게 하듯이 남편을 보호하고,
남편이 벌어들이는 재산을 조심스럽게 지키는 사람—
이런 아내를 어머니 같은 아내라고 부른다.
“She who holds her husband in high regard
As younger sister holds the elder born,
Who humbly submits to her husband’s will—
Such a wife is called a sister.
“손아래 누이가 오빠를 존경하듯이
남편을 존경하고,
남편의 뜻에 겸손하게 순종하는 여자—
이런 아내를 누이 같은 아내라고 부른다.
“One who rejoices at her husband’s sight
As one friend might welcome another,
Well raised, virtuous, devoted—
Such a wife is called a friend.
“한 친구가 다른 친구를 환영하듯이
남편의 모습을 보고 기뻐하고,
잘 교육받고, 덕스럽고, 헌신적인 사람—
이런 아내를 친구 같은 아내라고 부른다.
“One without anger, afraid of punishment,
Who bears with her husband free of hate,
Who humbly submits to her husband’s will—
Such a wife is called a handmaid.5
“처벌을 두려워하고, 화내지 않고,
미워함이 없이 남편이 말하는 것을 참을성 있게 들으며,
남편의 뜻에 겸손하게 순종하는 사람—
이런 아내를 하녀(주5) 같은 아내라고 부른다.
NOTE 5. Dāsī: literally, a female slave. Fortunately, in Buddhist societies this recommendation has not been taken very seriously and the first three models of the ideal wife have prevailed.
(주 5) 문자적으로는 여자 노예이다. 다행히도, 불교 사회에서 이러한 충고는 아주 심각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이상적인 아내의 처음 세 가지 유형이 널리 퍼져 있다.
“The types of wives here called a slayer,
A thief, and the wife like a tyrant,
These kinds of wives, with the body’s breakup,
Will be reborn deep in hell.
“여기에서 살인자, 도둑이라 불리고,
폭군 같은 아내라고 불리는 유형의 아내들은
몸이 무너질 때,
깊은 지옥에서 다시 태어날 것이다.
“But wives like mother, sister, friend,
And the wife called a handmaid,
Steady in virtue, long restrained,
With the body’s breakup go to heaven.
“하지만 어머니, 누이, 친구 같은 아내들과,
하녀라고 불리는 아내는,
계를 꾸준히 지키고, 오래 자제해서,
몸이 무너질 때 천상으로 간다.
“These, Sujātā, are the seven kinds of wives. Now which of these are you?”
“수자따야, 이것이 일곱 종류의 아내이다. 자, 그대는 이 중에서 어떤 아내이냐?”
“Beginning today, venerable sir, you should consider me a wife who is like a handmaid.”
“세존이시여, 오늘부터, 세존께서는 저를 하녀 같은 아내라고 여기셔야 합니다.”
(AN 7:59; IV 91–94)
3. PRESENT WELFARE, FUTURE WELFARE
3. 금생의 복지, 미래 생의 복지
On one occasion the Blessed One was dwelling among the Koliyans where there was a market town of the Koliyans named Kakkarapatta. Then the Koliyan family man Dīghajānu approached the Blessed One, paid homage to him, and sat down to one side. So seated, he said to the Blessed One:
한 때 세존께서는 깍까라빳따라고 하는 장터가 있는 꼴리야의 성읍에 꼴리야 사람들 사이에 머물고 계셨다. 그때 꼴리야 족의 재가자 디가자누가 세존께 다가와서, 세존께 예를 올리고, 한쪽 편에 앉았다. 그렇게 자리를 잡고, 그는 세존께 말했다.
“Venerable sir, we are laypeople who enjoy sensual pleasures, dwelling at home in a bed crowded with children, enjoying fine sandalwood, wearing garlands, scents, and unguents, accepting gold and silver. Let the Blessed One teach the Dhamma to us in a way that will lead to our welfare and happiness both in the present life and in the future life as well.”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자식들로 가득 찬 침대가 있는 집에서 살면서, 고급 백단향을 즐기고, 화환을 목에 두르고 향을 뿌리고 연고를 바르고, 금과 은을 받으면서, 감각적 즐거움을 즐기는 재가신자들입니다. 세존께서는 이러한 저희들에게 금생뿐 아니라 미래 생에도 복지와 행복으로 이끌 수 있는 담마를 저희에게 설해주소서.”
“There are, Byagghapajja, four things that lead to the welfare and happiness of a family man in this very life. What four? The accomplishment of persistent effort, the accomplishment of protection, good friendship, and balanced living.
“비야가빠자[호랑이가 다니던 길에 사는 자]여, 재가자에게 바로 이 현생에서 복지와 행복으로 이끄는 네 가지가 있다. 어떤 네 가지인가? 끊임없는 노력의 성취, 보호의 성취, 좋은 우정과 균형 잡힌 생계이다.
“And what is the accomplishment of persistent effort? Here, Byagghapajja, whatever may be the means by which a family man earns his living—whether by farming, trade, cattle raising, archery or civil service, or by some other craft—he is skillful and diligent; he investigates the appropriate means, and is able to act and arrange everything properly. This is called the accomplishment of persistent effort.
“끊임없는 노력의 성취는 무엇인가? 호랑이가 다니던 길에 사는 자여, 여기 재가자가 생계를 유지하는 수단이 무엇이든지간에—농사, 장사, 목축, 궁술이나 공무원, 그 이외 어떤 다른 기술—그는 거기에 숙련되고 부지런하며, 적절한 수단을 강구하고, 모든 것을 알맞게 실행하고 잘 정돈할 수 있다. 이를 일러 끊임없는 노력의 성취라 한다.”
“And what is the accomplishment of protection? Here, Byagghapajja, a family man sets up protection and guard over the wealth acquired by energetic striving, amassed by the strength of his arms, earned by the sweat of his brow, righteous wealth righteously gained, thinking: ‘How can I prevent kings and bandits from taking this away, fire from burning it, floods from sweeping it off, and unloved heirs from taking it?’ This is called the accomplishment of protection.
“보호의 성취란 무엇인가? 호랑이가 다니던 길에 사는 자여, 여기 재가자가 열정적인 노력으로 얻었고, 팔의 힘으로 모았고, 이마에서 땀을 흘려 획득했으며, 정의롭게 법에 따라서 얻은 그의 재물을 보호하고 지키는 것을 확립한다. 그는 이렇게 생각한다. ‘어떻게 하면 나의 이 재물을 왕과 도둑이 가져가지 않도록, 불이 태워버리지 않도록, 홍수가 쓸어가 버리지 않도록, 나쁜 마음을 가진 상속자가 받지 않도록 막을 수 있을까?’라고. 이를 일러 보호의 성취라 한다.”
“And what is good friendship? Here, Byagghapajja, in whatever village or town a family man dwells, he associates with householders or their sons, whether young or old, who are of mature virtue, accomplished in faith, moral discipline, generosity, and wisdom; he converses with them and engages in discussions with them. He emulates them in regard to their accomplishment in faith, moral discipline, generosity, and wisdom. This is called good friendship.
“좋은 우정이란 무엇인가? 호랑이가 다니던 길에 사는 자여, 여기 재가자가 어떤 마을이나 성읍에 살든지, 그는 젊거나 나이 들었거나, 성숙한 덕성을 갖추고, 믿음, 계, 보시, 지혜를 성취한, 장자나 장자의 아들들과 교제한다. 그는 그들과 함께 지내고 대화하고 토론한다. 그는 믿음, 계, 보시, 지혜의 성취에 관해서 그들에게 뒤지지 않으려고 애쓴다. 이를 일러 좋은 우정이라 한다.”
“And what is balanced living? Here, Byagghapajja, a family man knows his income and expenditures and leads a balanced life, neither extravagant nor miserly, so that his income exceeds his expenditures rather than the reverse. Just as a goldsmith or his apprentice, holding up a scale, knows, ‘By so much it has dipped down, by so much it has tilted up,’ so a family man leads a balanced life.
“균형 잡힌 생계란 무엇인가? 호랑이가 다니던 길에 사는 자여, 여기 재가자가 자신의 수입과 지출을 알고, 사치하지도 않고 인색하지도 않게 균형 잡힌 삶을 산다. 그래서 그의 수입이 지출을 웃돌고 그 반대는 아니다. 마치 금세공인이나 그의 도제가 저울을 들고서 ‘이만큼 저울이 가라앉았구나, 이만큼 저울이 올라갔구나.’라고 아는 것처럼, 재가자는 균형 잡힌 삶을 산다.
“The wealth thus amassed has four sources of dissipation: womanizing, drunkenness, gambling, and evil friendship. Just as in the case of a tank with four inlets and outlets, if one should close the inlets and open the outlets, and there would not be adequate rainfall, a decrease rather than an increase of the water could be expected in the tank, so these four things bring about the dissipation of amassed wealth.
“이렇게 모은 재산이 흩어지는 네 가지 원인이 있나니, 여색에 빠지는 것, 술 취하는 것, 노름, 나쁜 친구와 사귀는 것이다. 마치 네 개의 입구와 네 개의 출구가 있는 물탱크의 경우처럼, 만일 입구를 닫아버리고 출구를 열어두었는데 마침 비까지도 알맞게 내리지 않는다면, 물탱크는 물이 늘어나기보다는 줄어들게 되듯이. 이 네 가지는 모은 재산이 흩어지는 원인이 되는 것이다.
“Similarly, there are four sources for the increase of amassed wealth: abstinence from womanizing, from drunkenness, from gambling, and from evil friendship. Just as in the case of a tank with four inlets and outlets, if one should open the inlets and close the outlets, and there would be adequate rainfall, an increase rather than a decrease of the water could be expected in the tank, so these four things bring about the increase of amassed wealth.
“그와 유사하게, 모은 재산이 늘어나는 네 가지 원인이 있나니, 여색에 빠지는 것, 술 취하는 것, 노름, 나쁜 친구와 사귀는 것을 자제하는 것이다. 마치 네 개의 입구와 네 개의 출구가 있는 물탱크의 경우처럼, 만일 입구를 열어두고 출구를 닫아두었는데 마침 비까지도 알맞게 내린다면, 물탱크는 물이 말라 버리게 될 것이고 물이 줄어들기보다는 물이 늘어나게 되듯이. 이 네 가지는 모은 재산이 늘어나는 원인이 되는 것이다.”
“These four things, Byagghapajja, lead to a family man’s welfare and happiness in the present life.
“호랑이가 다니던 길에 사는 자여, 이러한 네 가지가 재가자에게 금생에서 복지와 행복을 가져다준다.”
“Four other things lead to a family man’s welfare and happiness in the future life. What four? Accomplishment in faith, moral discipline, generosity, and wisdom.
“다른 네 가지 일이 재가자에게 미래 생에서 복지와 행복을 가져다준다. 네 가지는 무엇인가? 믿음, 계, 보시, 지혜의 성취이다.”
“And how is a family man accomplished in faith? Here, Byagghapajja, a family man has faith; he places faith in the enlightenment of the Tathāgata: ‘So the Blessed One is an arahant, perfectly enlightened, accomplished in true knowledge and conduct, fortunate, knower of the world, unsurpassed leader of persons to be tamed, teacher of devas and humans, the Enlightened One, the Blessed One.’ In this way a family man is accomplished in faith.
“그러면 어떻게 재가자가 믿음을 성취하는가? 호랑이가 다니던 길에 사는 자여, 여기 재가자에게는 믿음이 있다. 그는 여래의 깨달음에 믿음을 가진다. ‘그렇게 세존께서는 아라한[응공(應供)], 완전히 깨달은 분[정변지(正遍知)], 진정한 지혜와 덕행을 성취한 분[명행족(明行足)], 피안으로 잘 가신 분[선서(善逝)], 세간을 잘 알고 계신 분[세간해(世間解)], 가장 높은 분[무상사(無上士)]이고 사람을 잘 길들이는 분[조어장부(調御丈夫)], 천신과 인간의 스승[천인사(天人師)], 깨달은 분[불(佛)], 세존(世尊)이시다.’라고. 이렇게 재가자는 믿음을 성취한다.
“And how is a family man accomplished in moral discipline? Here, Byagghapajja, a family man abstains from the destruction of life, from stealing, from sexual misconduct, from false speech, and from wines, liquors, and intoxicants, the basis for negligence. In this way a family man is accomplished in moral discipline.
“어떻게 재가자가 계를 성취하는가? 호랑이가 다니던 길에 사는 자여, 여기 재가자는 생명 있는 것을 죽이는 것, 도둑질, 성적인 비행(非行), 거짓말, 나태의 근본이 되는 포도주, 독주와 중독성 물질을 삼간다. 이렇게 재가자는 계를 성취한다.
“And how is a family man accomplished in generosity? Here, Byagghapajja, a family man dwells at home with a mind devoid of the stain of stinginess, freely generous, open-handed, delighting in relinquishment, one devoted to charity, delighting in giving and sharing. In this way a family man is accomplished in generosity.
“어떻게 재가자가 보시를 성취하는가? 호랑이가 다니던 길에 사는 자여, 여기 재가자는 인색함의 흠이 없는 마음으로 집에 살면서, 아낌없이 보시하고, 선심을 잘 쓰고, 주는 것을 기뻐하고, 자선에 헌신적인 사람이고, 베풀고 나누어 가지는 것을 좋아한다. 이렇게 재가자는 보시를 성취한다.
“And how is a family man accomplished in wisdom? Here, Byagghapajja, a family man possesses the wisdom that sees into the arising and passing away of phenomena, that is noble and penetrative and leads to the complete destruction of suffering. In this way a family man is accomplished in wisdom.
“어떻게 재가자가 지혜를 성취하는가? 호랑이가 다니던 길에 사는 자여, 여기 재가자는 현상의 일어남과 사라짐을 꿰뚫어 보는, 고귀하고 통찰력이 있고 완벽하게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지혜를 가지고 있다. 이렇게 재가자는 지혜를 성취한다.
“These four things, Byagghapajja, lead to a family man’s welfare and happiness in the future life.”
“호랑이가 다니던 길에 사는 자여, 이러한 네 가지 일은 재가자에게 미래 생에서 복지와 행
복을 가져다준다.”
(AN 8:54; IV 281–85)
4. RIGHT LIVELIHOOD
4. 올바른 생계 수단
(1) Avoiding Wrong Livelihood
(1) 그릇된 생계 수단을 가지지 말라
“These five trades, O monks, should not be taken up by a lay follower: trading in weapons, trading in living beings, trading in meat, trading in intoxicants, trading in poison.”
“오 비구들이여, 이 다섯 가지 거래에 재가 신도가 손을 대서는 안 된다. 무기 거래, 생명이 있는 것의 거래, 육류 거래, 취하게 하는 것의 거래, 독의 거래.”
(AN 5:177; III 208)
(2) The Proper Use of Wealth
(2) 재산의 올바른 사용법
[The Blessed One addressed the householder Anāthapiṇḍika:] “With the wealth acquired by energetic striving, amassed by the strength of his arms, earned by the sweat of his brow, righteous wealth righteously gained, the noble disciple undertakes four worthy deeds. What four?
[세존께서 아나타삔디까 장자에게 말씀하셨다.]
“열정적인 노력으로 얻었고, 팔의 힘으로 모았고, 이마에서 땀을 흘려 획득했으며, 정의롭게 법에 따라서 얻은 재산을 가지고, 고귀한 제자는 네 가지의 가치 있는 일을 한다. 어떤 네 가지인가?
“With the wealth thus gained he makes himself happy and pleased and properly maintains himself in happiness; he makes his parents happy and pleased and properly maintains them in happiness; he makes his wife and children, his slaves, workers, and servants happy and pleased and properly maintains them in happiness; he makes his friends and colleagues happy and pleased and properly maintains them in happiness. This is the first case of wealth gone to good use, fruitfully applied and used for a worthy cause.
“이렇게 모은 재산으로 그는 자신을 행복하고 만족하게 하고 자신을 바르게 행복에 머물도록 한다. 그는 부모님을 행복하고 만족하게 하고 바르게 행복에 머물도록 한다. 그는 그의 아내와 자식, 노예, 일꾼, 하인들을 행복하고 만족하게 하고 바르게 행복에 머물도록 한다. 그는 친구와 동료들을 행복하고 만족하게 하고 바르게 행복에 머물도록 한다. 이것이 재산을 알맞게 사용하고,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가치 있는 명분을 위해 쓰는 첫 번째 경우이다.
“Further, householder, with the wealth thus gained the noble disciple makes provisions against the losses that might arise on account of fire and floods, kings and bandits and unloved heirs; he makes himself secure against them. This is the second case of wealth gone to good use.…
“더 나아가, 장자여, 이렇게 모은 재산으로 고귀한 제자는 화재와 홍수, 왕과 도둑, 나쁜 마음을 가진 상속자로 인해 일어날지도 모르는 손실에 대한 대비를 한다. 이것이 재산을 알맞게 사용하고,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가치 있는 명분을 위해 쓰는 두 번째 경우이다.
“Further, householder, with the wealth thus gained the noble disciple makes the five kinds of offerings: to relatives, guests, ancestors, the king, and the devas. This is the third case of wealth gone to good use.…
“더 나아가, 장자여, 이렇게 모은 재산으로 고귀한 제자는 다섯 가지 바치기를 한다. 즉 친척에게, 손님에게, 조상께, 왕께, 천신에게. 이것이 재산을 알맞게 사용하고,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가치 있는 명분을 위해 쓰는 세 번째 경우이다.
“Further, householder, with the wealth thus gained the noble disciple establishes a lofty offering of alms to those ascetics and brahmins who refrain from vanity and negligence, who are settled in patience and gentleness, who are devoted to taming themselves, to calming themselves, and to attaining Nibbāna—an offering that is heavenly, resulting in happiness, conducive to heaven. This is the fourth case of wealth gone to good use, fruitfully employed and used for a worthy cause.
“더 나아가, 장자여, 이렇게 모은 재산으로 고귀한 제자는 숭고한 보시를 행한다. 즉 허영과 나태에서 벗어나서, 인내와 부드러움에 자리 잡고, 자신을 길들이고, 자신을 고요하게 하고, 열반을 성취하는 데 몰두하고 있는 수행자와 바라문들에게 보시를 한다. 이는 천상의 일이고, 행복을 낳고, 천상에 태어나게 하는 보시인 것이다. 이것이 재산을 알맞게 사용하고,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가치 있는 명분을 위해 쓰는 네 번째 경우이다.
“These, householder, are the four worthy deeds that the noble disciple undertakes with the wealth acquired by energetic striving, amassed by the strength of his arms, earned by the sweat of his brow, righteous wealth righteously gained.
“장자여, 이것이 열정적인 노력으로 얻었고, 팔의 힘으로 모았고, 이마에서 땀을 흘려 획득했으며, 정의롭게 법에 따라서 얻은 재산을 가지고, 고귀한 제자가 하는 네 가지의 가치 있는 일이다.
“For anyone whose wealth is expended on other things apart from these four worthy deeds, that wealth is said to have gone to waste, to have been squandered and used frivolously. But for anyone whose wealth is expended on these four worthy deeds, that wealth is said to have gone to good use, to have been fruitfully employed and used for a worthy cause.”
“누구든지 이 네 가지 가치 있는 일 이외에 다른 일에 재산을 사용하는 사람은, 재산을 낭비했고, 허비했고 하찮게 쓴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누구든지 이 네 가지 가치 있는 일에 재산을 사용하는 사람은, 재산을 알맞게 사용하고,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가치 있는 명분을 위해 쓴 것이라고 말한다.”
(AN 4:61; II 65–68)
(3) A Family Man’s Happiness
(3) 재가자의 행복
The Blessed One said to the householder Anāthapiṇḍika: “There are, householder, these four kinds of happiness which may be achieved by a layperson who enjoys sensual pleasures, depending on time and occasion. What four? The happiness of possession, the happiness of enjoyment, the happiness of freedom from debt, and the happiness of blamelessness.
세존께서 아나타삔디까 장자에게 말씀하셨다.
“장자여, 때와 경우에 따라서, 감각적 즐거움을 즐기는 재가 신도가 얻는 네 가지 행복이 있다. 어떤 네 가지인가? 소유하는 행복, 즐기는 행복, 빚 없는 행복, 비난받을 일이 없는 행복이다.
“And what, householder, is the happiness of possession? Here, a family man possesses wealth acquired by energetic striving, amassed by the strength of his arms, earned by the sweat of his brow, righteous wealth righteously gained. When he thinks, ‘I possess wealth acquired by energetic striving … righteously gained,’ he experiences happiness and joy. This is called the happiness of possession.
“장자여, 그러면 무엇이 소유하는 행복인가? 여기 재가자가 열정적인 노력으로 얻었고, 팔의 힘으로 모았고, 이마에서 땀을 흘려 획득했으며, 정의롭게 법에 따라서 얻은 재산을 소유하고 있다. 그가 ‘나는 열정적인 노력으로 얻었고, 팔의 힘으로 모았고, 이마에서 땀을 흘려 획득했으며, 정의롭게 법에 따라서 얻은 재산을 소유하고 있다.’라고 생각할 때, 그는 행복과 기쁨을 경험한다. 이것을 소유하는 행복이라고 부른다.
“And what, householder, is the happiness of enjoyment? Here, with the wealth acquired by energetic striving, amassed by the strength of his arms, earned by the sweat of his brow, righteous wealth righteously gained, a family man enjoys his wealth and does meritorious deeds. When he thinks, ‘With the wealth acquired by energetic striving … righteously gained, I enjoy my wealth and do meritorious deeds,’ he experiences happiness and joy. This is called the happiness of enjoyment.
“또 장자여, 무엇이 즐기는 행복인가? 여기 열정적인 노력으로 얻었고, 팔의 힘으로 모았고, 이마에서 땀을 흘려 획득했으며, 정의롭게 법에 따라서 얻은 재산을 가지고, 재가자는 그의 재산을 즐기고 공덕 쌓는 일을 한다. 그가 ‘열정적인 노력으로 얻었고, 팔의 힘으로 모았고, 이마에서 땀을 흘려 획득했으며, 정의롭게 법에 따라서 얻은 재산을 가지고, 나는 즐기고 공덕 쌓는 일을 한다.’라고 생각할 때, 그는 행복과 기쁨을 경험한다. 이것을 즐기는 행복이라고 부른다.
“And what, householder, is the happiness of freedom from debt? Here, a family man is not indebted to anyone to any degree, whether small or great. When he thinks, ‘I am not indebted to anyone to any degree, whether small or great,’ he experiences happiness and joy. This is called the happiness of freedom from debt.
“또 장자여, 무엇이 빚 없는 행복인가? 여기 재가자가 적거나 많거나 간에, 누구에게도 어떠한 빚도 지지 않고 있다. 그가 ‘나는 적거나 많거나 간에, 누구에게도 어떠한 빚도 지지 않고 있다.’라고 생각할 때, 그는 행복과 기쁨을 경험한다. 이것을 빚 없는 행복이라고 부른다.
“And what, householder, is the happiness of blamelessness? Here, householder, a noble disciple is endowed with blameless conduct of body, speech, and mind. When he thinks, ‘I am endowed with blameless conduct of body, speech, and mind,’ he experiences happiness and joy. This is called the happiness of blamelessness.
“또 장자여, 무엇이 비난받을 일이 없는 행복인가? 여기 장자여, 고귀한 제자는 비난받을 일이 없는 몸과 말과 마음의 행위를 타고났다. 그가 ‘나는 비난받을 일이 없는 몸과 말과 마음의 행위를 타고났다.’라고 생각할 때, 그는 행복과 기쁨을 경험한다. 이것을 비난받을 일이 없는 행복이라고 부른다.
“These, householder, are the four kinds of happiness that a layperson who enjoys sensual pleasures may achieve, depending on time and occasion.”
“장자여, 이것이 때와 경우에 따라서, 감각적 즐거움을 즐기는 재가 신도가 얻는 네 가지 행복이다.”
(AN 4:62; II 69–70)
첫댓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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