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시대’가 눈앞에 성큼 다가왔지만 은퇴준비가 부실한 사람이 태반이다.
‘오래 오래 장수하시라’는 말이 축복이 아니라 재앙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그래서 ‘재수 없으면 100세까지 살수 있다’는 농담이 우습게만 들리지 않는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가 최근 발간한 ‘2013 한국 비(非) 은퇴 가구 노후준비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작년 노후준비지수(기준 100)는 50.3으로 해마다 2~3포인트 감소 추세다. 특히 50대의 재무준비지수는 32.8로 지난해보다 7.1포인트나 낮아졌다.
미래에셋 은퇴연구소가 발표한 50대 부부의 적정 은퇴 생활비는 약 300만원이다.(2014년 화폐가치 ?) 적정 은퇴 생활비는 건강한 은퇴자 부부가 매달 중산층 이상의 생활을 하는데 부족함이 없는 비용을 의미한다.
국민연금공단이 발표한 부부 기준 필요 적정 노후생활비도 184만원 수준(2014년대 화폐가치)이다. 은퇴 후 매월 184만~300만원의 고정적인 소득이 발생해야 원활한 노후 생활을 즐길 수 있다는 의미다.
그래서 요즘 은퇴를 앞둔 50대들 사이에서는 자신이나 혹은 부인이 공무원이나 교사로 오랜기간 근무해서 특수직연금을 받을 수 있다면 부러움의 대상이 된다.
공무원이나 교사 등 특수직연금 대상자의 노후 준비는 양호한 편이다. 퇴직 시 호봉이나 직급에 따라 차등 적용되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20년 이상 근무할 시 150만~350만원 사이의 연금이 평생 지급되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에 장기간 가입한 회사원이나 자영업자도 노후 자금으로는 부족하지만 100만원 안팎의 연금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국민연금에 조차 가입하지 않은 사람들은 퇴직 이후가 막막하다. 일을 하지 않으면 먹고 살 걱정을 해야 한다. 각자 개인이 필요에 따라 보험사나 증권사, 은행에 가입하는 개인연금 가입률은 매우 저조한 수준이다.
보험개발원에 따르면 2012년 기준 우리나라 국민들의 개인연금 가입률은 15.7%(약 800만명)로 조사됐다. 하지만 개인연금 가입자 중 60세 이상 고령자의 가입률은 5.7%에 불과해 개인연금을 이용한 노후대비가 부족한 상황이다.
더군다나 개인연금 가입률은 소득수준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인다. 고소득층 가입률은 60%를 넘어서지만 저소득층의 경우 2%도 채 되지 않아 소득계층 간 가입률 양극화가 발생하고 있는 것.
최근 사회적 이슈는 직장인들의 퇴직연금 문제이다. 퇴직연금은 국민연금, 개인연금과 함께 대한민국 월급쟁이의 ‘노후용 월급 지갑’이지만 그동안 운용실적을 보면 실망을 금할 수 없다.
퇴직연금 수익률이 연 3%에도 미치지 못해 직장인들의 노후 불안을 해소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오는 9월 정부가 발표할 ‘사적연금 활성화 대책’에 직장인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
안전성을 너무나 강조해 초저금리 상품에 단기로 운용되는 바람에 수수료를 떼면 정기예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익률을 올리고 있다. 2005년 말에 도입된 퇴직연금은 기업이 사내에 퇴직금을 적립하는 대신에 은행이나 증권사 보험사 등에 돈을 맡겨 굴리도록 하는 제도이다. 국민연금, 개인연금과 함께 직장인들의 ‘노후 보루’인 셈이다. 현재 470만명의 직장인이 가입했다. 이 제도는 원래 퇴직금 지급보장과 아울러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적립금을 채권 주식 선물등 다양한 금융상품에 투자해 수익률을 높이자는 것이었다. 지난 3월말 기준으로 퇴직연금 중 원금보장형 상품이 차지하는 비율은 93%에 달했다. 퇴직 이후에 써야 할 돈이다 보니 안정성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수익률이 너무 낮다는 지적도 많다. 퇴직연금의 지난해 수익률은 연 2.3%정도로 국민연금(연 4.2%)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고 호주의 퇴직연금 평균수익률 17.5%와는 비교를 할 수 없을 정도이다. 조선일보가 금융투자협회와 공동으로 퇴직연금이 국민연금과 같은 수익률을 올릴 경우 현재 84조원 가량의 퇴직연금이 얼마나 늘어날 것인지 계산해봤다. 2006년부터 2013년까지 퇴직연금이 국민연금과 같은 수익률을 달성했다면 적립금이 7년새 94조1000억원으로 불어나는 것으로 계산됐다. 퇴직연금 총액이 약 10조원 불어나기 때문에 퇴직연금 가입자 한명당 208만원씩 퇴직금을 더 받을 수 있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퇴직연금의 낮은 수익률은 퇴직연금의 운용 적립방식과 관련이 있다고 지적한다. 퇴직연금은 크게 두가지로 운용되는데 퇴직할 때 받을 돈을 확정해 놓는 ‘확정급여(DB형)’과 회사가 퇴직연금에 불입하는 돈의 규모만 정해놓고 근로자가 이 돈을 굴릴 방식을 선택할 수 있는 ‘확정기여(DC형)’이다. 각 회사별로 노사가 합의해서 방식을 결정하는데 대부분 회사가 안정성을 추구하다 보니 확정급여 형식을 선택했다. 확정급여형은 보통 퇴직직전 3개월 평균 월급에 근속연수를 곱해 산정된다. 이 방식대로라면 매년 연봉이 올라가는 만큼 퇴직금이 늘어나게 된다. 회사는 통상적으로 매년 직원의 약 한달치 월급을 퇴직금용으로 계약된 금융회사에 적립하지만 근로자의 입장에서는 퇴직금만 정해진 대로 받으면 될뿐 회사가 퇴직연금을 얼마나 잘 굴리는지는 별 관심사가 아니다. 회사도 운영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정기예금 수준의 원금보장형 상품에 가입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전문가들은 퇴직연금의 수익률을 높일려면 가입자가 어느 상품에 투자할지를 결정할 수 있는 확정기여형 퇴직연금 비중이 지금보다 높아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확정기여형은 회사가 매년 한달치 월급정도를 퇴직연금 적립용으로 적립하되 그 돈을 어떻게 굴리고 불릴지는 가입자가 직접 선택할 수 있다. 현재 대부분 회사가 근로자가 선택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나 아직 홍보가 부족한 탓인지 퇴직연금의 확정기여형의 비율은 20%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한국의 퇴직연금의 주식투자(펀드 포함)비율은 0.2%로 사실상 제로에 가까운 수준이다. 지난해 퇴직연금 수익률이 17.5%인 호주의 경우 주식투자비율이 30%가량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정부는 퇴직연금의 가입자를 확대하고 자산운용규제를 대폭 완화하는 방향으로 오는 9월중 종합대책을 내놓을 것이라고 한다. 지난 8월 KDI, 노동연구원, 자본시장연구원 등 국책연구기관 주관으로 개최된 정책세미나에서 정부에 건의된 내용을 보면 대충 정부의 퇴직연금 종합대책의 가닥이 그려진다. 일부 언론은 정부가 은퇴자들의 안정적인 노후소득을 보장하기 위해 대책을 마련중인데 우선 2016년까지 근로자 300인 이상 기업을 대상으로 퇴직연금 가입을 의무화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정부가 퇴직연금 의무가입제 도입을 검토하게 된 것은 퇴직연금 가입률을 높이기 위해서다. 작년말 기준 퇴직연금 가입 사업장 비율은 16%선이다. 그나마 91.6%는 일시금으로 수령하고 8.4%만 매달 연금형태로 받고 있다. 정부는 국민연금처럼 연금형태로 퇴직금을 받는 시스템이 정착돼야 직장인들이 노후에 필요한 자금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의무가입제 및 일시금 수령 금지 방안 도입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노동조합 등 근로자측은 일시금 수령을 선호해 반발이 예상되는 만큼 논의 과정에서 의무가입제 도입이 무산될 수도 있다. 또 퇴직연금에 대한 자산운용규제를 대폭 완화해 주식 채권 등 위험자산별 보유한도를 없애는 대신 원리금 보장상품을 뺀 총 위험자산 보유한도를 70%까지 늘려주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현재 확정기여형 퇴직연금의 위험자산 보유한도는 40%이다. 자산운용 규제가 풀리면 은행 예금, 국채 등 안정적인 상품에 집중됐던 퇴직연금의 투자처가 증권시장으로 확대될 것으로 투자업계는 기대하고 있지만 리스크가 그만큼 높아지기 때문에 안정적인 수급에 대한 불안감은 높아질 수 밖에 없다. 모든 금융상품 투자에는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란 철칙이 따르기 때문에 정부가 퇴직연금을 자본시장 활성화 재원으로 보는 시각을 버려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해야할 일은 퇴직연금의 안정적인 수급권을 보장하는 것이며 이를 위해 연금운용방식을 더욱 투명하게 하고 운영기관의 책임성을 더욱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제언하고 있다. 금융업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는 셈이다. 김영도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금융회사들 역시 문제가 없는지 스스로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사적연금을 운용하는 은행 보험 증권 등 각종 금융회사들이 초기 시장 선점을 위해 엄청난 경쟁을 펼치고 있다. 자사 퇴직연금상품 판매로 시장점유율을 높이는 데 혈안이 돼 있다. 김 연구위원은 “국민들에게 금융업체들 간 판매 경쟁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며 “오히려 판매 이후의 관리와 운용이 훨씬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연금상품의 운용성과에 따라 자신의 노후생활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연금상품은 수익자가 1~2년 동안 운용하고 중단하는 상품이 아니라 십수 년 또는 그 이상의 기간을 염두에 두고 미래를 위해 투자하는 상품이다. 금융업체들은 어떻게 원금을 최대한 보장하면서도 효과적인 운용을 통해 더 높은 수익률을 거둘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최근 퇴직연금의 낮은 수익률을 살펴봐도 이런 관행이 이어질 경우 과연 어떻게 국민의 기대를 만족시킬 수 있을지 우려된다. 김 연구위원은 401(k)로 대표되는 미국의 퇴직연금이나, 호주의 퇴직연금인 수퍼애뉴에이션의 성장은 자국의 금융시장을 성장시키고 발전시키고 국민의 안정된 노후생활에 큰 기여를 했다고 강조한다. (미국 엔론은 퇴직연금의 대부분을 자사주로만 자산운용을 할 수 있도록 했다 => 모두 휴지조각으로 전락)
100세 시대를 맞이해 국내에서도 이러한 선순환의 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국가 차원에서도 고령화에 대비하고, 금융이 국민의 신뢰를 되찾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강력한 금융 없이 편안한 노후를 보장한 선진국은 없었다. 우리의 100세 시대도 금융업에 달려 있다. 정부가 부처간 협의와 노사 이해관계자의 의견 수렴을 거쳐 내달 발표할 ‘사적연금 활성화 대책’에 직장인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