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그릇 心椀과
함께 배우는 불교
제 1186편
* 불교(佛敎)
역대 선사(歷代 禪師(祖師))
오도송(悟道頌) 및
선시(禪詩)
오도송(悟道頌)이란 무엇인가 ?
불교(佛敎)를
공부(功夫)하는
수행자(修行者)가
자신의 깨달음을 읊은
선승(禪僧)의 게송(偈頌)
가운데(中) 하나를
오도송(悟道頌)
이라고 한다.
오도송(悟道頌)과
열반송(涅槃訟)은
게송(偈頌)의 하나로써
구체적으로
비교해서 설명하면
고승(高僧)이
자신만의 깨달음(覺)을
노래(歌, 句)한 것이
바로
오도송(悟道頌)이며
고승(高僧)이
자신의 임종(臨終) 전에
남겨놓고 가는 노래(歌, 句)를
열반송(涅槃訟)이라고
한다.
게송(偈頌)이란
불교의 가르침(敎義)을
함축(含縮 집약)하여
표현(表現)하는
운문체(韻文體)의
짧은 시구(詩句 문자)를
말하는데
곧 선시(禪詩) 내지
또는 선어(禪語 문장)를
이르는 말이다.
본래(本來)
게(偈)와 송(頌)은
같은 의미로
《게(偈)》
라는 글자(字)는
산스크리트어(梵語)
《가타(gatha)》의
음을 빌려와(音借) 따서
만든 말이고
《송(頌)》
이라는 글자(字)는
《가타(gatha)》를
한문(漢文)으로 번역한
것이다.
이렇듯
자신의 깨달음(正等覺)을 읊은
선승(禪僧)의 게송(偈頌)
역대(歷代)
조사(佛祖師 선사)
스님(高僧)들의
게송(偈頌)
즉,
오도송(悟道頌)과
열반송(涅槃訟)은
오랫동안
수련과정(修練過程)을
통해 함축된 의미로
세속(사바세계)의
사람(大衆)들에게
무엇인가를 전(傳)하고
말(說法 이야기)하고저
하는 것이며
후세(후학)들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역사적(歷史的)
문헌 기록상(文獻記錄上)
오도송(悟道頌)을
가장 먼저 남긴 이(僧侶)는
조동종을 일으킨
동산 양개(洞山良价,
807∼869) 선사(禪師)
이다.
생사일여(生死一如)의
구분이 부질없는 일임에야
사람들은
태어남을 기뻐하고,
헤어짐은 슬퍼한다.
오랜 세월
훌륭한 선승(禪僧)이나
선사(禪師) 스님들의
깨달음의 길(佛道行)이
매우 힘들고 어려우며
지난(至難)하듯이
역대(歷代)
조사(佛祖師 선사)
스님(高僧)들의 남겨진
오도송(悟道頌)과
열반송(涅槃訟)은
일반인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이렇듯
깨달음의 노래는
다시 한번
자신(수행자)의 삶(人生)을
돌이켜보게 하고
느슨해졌던 마음을
추스리게 한다.
여기
역대(歷代)
조사(佛祖師 선사)
스님(高僧)들의
오도송(悟道頌)과
열반송(涅槃訟)을
올려놓으니
그 깊은 뜻이야
어찌 우리가 모두 다 헤아려
알 수 있겠는가마는
행간(行間)의
곳곳(處處)에 숨겨져 있는
깊고 깊은 심오(深奧)한 뜻을
함께 발견(發見)하고
공부(功夫)하며
오늘을 사는
지혜(반야 보리 광명 智慧)를
찾아보시기 바램해 본다.
본론(本論)
불교(佛敎)
역대 선사(歷代 禪師, 祖師)
선시(禪詩)와
임종게(臨終偈) 및
오도송(悟道頌) 설해(說解)
"
구름없는 가을 하늘
(雲盡秋空一鏡圓)
마조 도일(馬祖道一) 선사
운진추공일경원
雲盡秋空一鏡圓
한아척거우성흔
寒鴉隻去偶成痕
남양노자통소식
南陽老子通消息
천리동풍불부언
千里東風不負言
구름 없는 가을 하늘
하나의 둥근 거울이여
외기러기(寒鴉) 날아가며
차가운 흔적을 남기었구나
남양에 사는 노인네
이 소식 통해 알았으니
꽃바람(東風) 천리 사이에
말이 없어도 전하여 통하리라
"
위(上記)의
시(詩, 게송, 禪詩)는
선사(禪師)들 사이에
있었던 여러 일화(一話) 가운데
한 토막이다.
중국(中國)의
불교사(佛敎史)에
유명(有名)한
선(禪修行)의 거장(巨丈)
마조 도일(馬祖道一,
709~788) 선사(大禪師)
스님(僧, 大沙門)이
계셨다.
어느 날
커다란 동그라미
일원상(一圓相)을 그려서
경산 도흠(徑山道欽,
713~792) 선사(禪師)에게
보냈다.
이 그림(圖)을
받아 보게(觀) 된
경산 도흠(徑山道欽)은
일원상(一圓相) 가운데
점(點)을 하나 콕 찍어서
다시
마조 도일(馬祖道一)
선사(禪師) 스님(僧)에게
되돌려 보냈다.
바로 이 일(一圓相一點)이
두루 널리 퍼지고 소문나서
남양 혜충(南陽慧忠,
?~775) 국사(國師) 스님이
전해 듣고
이렇게 말했다.
"
음 ~
도흠(徑山道欽)이
마조(馬祖道一)의 속임수에
그만 넘어갔구나
허 허 허 ~
"
위(上記)의
시(詩, 게송, 禪詩)는
구름 한 점 없는
높고 푸른 가을 하늘에
외기러기(寒鴉)가
저홀로 날아가는 것을
바라 보다가
문득
마조 도일(馬祖道一) 선사
경산 도흠(徑山道欽) 선사
남양 혜충(南陽慧忠) 국사
당대(當代,
그 때 당시, 당면한 시대)의
고승(高僧大德)들 사이에서
오고 가며 있었던
일화(一話)를
생각하고
그 때 당시(當時)에
자신의 심회(心懷)를 읊은
시(詩, 게송, 禪詩)이다.
둥글고 둥근
거울같이 맑은 하늘(淸天)이
일원상(一圓相)이고
외기러기(寒鴉)가
경산 도흠(徑山道欽) 선사가
찍은 점(一點)이라는
말이다.
무엇 때문에
기러기(寒鴉)가 푸른 하늘을
날아가는가 ?
남양 혜충(南陽慧忠,
?~775) 국사(國師)가 말하기를
점(一點) 찍은 일을
속았다고 언급(言說)했는데
기러기(寒鴉)가
맑은 하늘(淸天)에 속아서
날아간다는 말인가 ?
일념생기즉번뇌
(一念生起卽煩惱)
한 생각 일으키면
그 것이 곧 번뇌(망상, 煩惱)요
허물(虛物, 잘못)인데
한 생각(一念生起))
이전의 소식(以前疏息)이
청매(淸昧, 일심청정 삼매)
자신(自身,
자기 자신, 마조도일)과
남양(南陽, 남양 혜충) 사이에
천리(千里)의
머나먼 거리 간격(拒里間格)을
사이에 두고도
서로 서로가
전(傳)하고자 하는 뜻과 의미가
이미 통(通, 만사형통)해졌다는
말이다.
※
마조도일(馬祖道一,
709~788) 선사(大禪師)는
초기선종의
보리 달마(菩提達磨)를
초조(初祖)로 해서 출범한
중국의 선(禪)은
능가종을
필두로 하여
동산법문(東山法門)
북종선(北宗禪)
남종선(南宗禪)으로
번창 일로를 걷는다.
시대적 사조와
문화의 경향에 따라
맑은 냇물처럼
조용히 흐르던 중국의
선불교(禪佛敎)는
강서(江西)의
마조 도일(馬祖道一,
709~788)과
호남(湖南)의
석두 희천(石頭希遷,
700~790)을 통해
중국인의
거대한 종교로
거듭날 수 있는 전기를
마련한다.
이미 도교(道敎)와
유교(儒敎)가 있었지만
선불교(禪佛敎)처럼
일반 대중(大衆) 속으로 넓게
파고드는 종교(宗敎)는
선불교(禪佛敎)가
처음이었다.
마조(馬祖道一)와
석두(石頭希遷)는
삼매(三昧)나
신비적 습선(習禪)의
카데고리를 벗어던져
버렸다.
그와 동시에
중국인의 현실적인 생활 속
종교로 거듭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다시 말하면
인도로 부터 전래된 명상의
실천행으로서
귀족적인 선(禪)은
명상의 영역을 탈피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마조와 희천은
중국인들의 일상생활에
융합될 수 있는
보편적
생활선(生活禪)으로
탈바꿈을 시도했다.
마조와
희천의 뒤를 이어
등장한 후
보편적
생활선을 주창한
선종(禪宗)의
수많은
종장(宗匠)들은
인간을 보는 관점을
혁신함과 동시에
중국인에게 필요한
새로운 불교운동을 제창했다.
경전(經典)이나
법문(法門)을 통해서
인식되는 부처보다는
눈 앞의
시간과 공간 속에
현존재로서
살아있는
《인간 부처》를
더욱 공경하는 선불교운동을
전개했다.
이들은
귀족사회의
권위주의적인 가치관을
벗어던지고
자연 그대로
있는 그대로의 인간 존재를
가치있게 보는 관점을
장려했다.
이 것은
살아있는 인간(중생)의
현실성을
그 어떤 개념보다
우위에 놓으려는 운동이었으며
가장 올바른 현실성의
확인작업이었다.
생활선을 주창한
선종의 종장들은
율원(律院)으로부터
과감하게 뛰쳐나와
선원청규
(禪苑淸規)를 근간으로한
생산교단(生産敎團)을
형성했다.
※
ㅡㅡㅡㅡㅡ
※
원문을
해석함에 있어서
지극히 개인적 견해(見解)와
해석(解釋)으로
오역(誤譯)
오판(誤判)한 부분도
분명있을 것이다.
언제든지
글 내용 가운데
잘못 된 부분은 옳고 바르게
지적(指摘)해 주시고
새로운 가르침을 주시기를
간절히 바램해 본다.
- 마음그릇 心椀 드림 -
ㅡㅡㅡㅡㅡㅡㅡㅡ
마음그릇 心椀과
함께 배우는 불교
《== 다음편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