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뜸북 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 뻐꾹 뻐꾹 뻐꾹새 숲에서 울 때, 우리오빠 말 타고 서울 가시며, 비단구두 사가지고 오신다더니' 이런 동요를 내가 처음 배운 것은 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키가 크고 체격이 우람하신 이두윤 교감선생님께서 풍금을 치시며 어찌나 열심히 가르쳐 주셨는지, 그때의 선생님모습은 지금도 눈앞에 어른거린다. 뜸부기는 벼논에서 뜸북! 뜸북! 하며 우는 모습이 그려지고, 뻐꾸기도 산에서 우는 소리가 쟁쟁하게 들려오며 그 풍경이 그려졌다.
그런데 오빠가 사온다며 약속했던 여자 아이의 비단구두는 선뜻 눈에 그려지지 않았다. 뒤 굽이 높은 뾰쪽 구두는 아닐 테고, 그렇다고 아버지가 신으시던 남자구두는 더욱 아니겠기에 비단구두는 막연하게 예쁜 구두라는 것과 도시의 부자가 상상되어 왔던 것이다.
그런데 3학년 때다. 김공녀 담임선생님께서 결혼을 하기 위해 퇴직하는 관계로 후임 담임선생님을 소개하는 자리였다. 그때 새로 오신 처녀 선생님의 구두가 반구두, 단화였다. 처음 본 여자구두가 어찌나 신기했는지 나도 모르게 '구두를 좀 보소! 구두를 좀 보소!' 아마 그것이 영남아리랑의 '날 좀 보소!'를 흉내 내며 흥얼거렸지 싶다. 그러자 김공녀 선생님께서는 민망하고 당황스러웠던지 내게 와서 군밤을 먹이며 웃음을 참느라 애쓰시던 모습도 어제 일만 같다. 그때 호기심 많은 소년의 눈에는 왜 아닐까, 그동안 선생님께서는 맨날 검정 베 운동화만 신으셨으니 신기할 만도 했을 것이다.
수원 화성의 봄 '오빠생각' 가사에서 구두는 원래 '댕기'였던 것을 오빠의 권유로 바뀌었다는 것은 e수원뉴스의 '시, 수원을 노래하다'에서 이미 알게 되었다. 당시로서는 여자아이들에게 댕기는 최고의 신나는 선물이었겠지만 그런 차원을 넘어, 말 타고 서울 가는 오빠와 함께 도시의 부자를 떠올릴 수 있었고, 그래서 더 강하게 전해왔는지도 모른다.
'오빠생각' 동요는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지 않을까 싶다. 1925년에 발표 된 이 노래는 당시 일제치하의 어두운 세상이 담겨져 오며, 온 국민의 가슴을 저미게 하는 애틋함 속에 그래도 희망을 갖게 하는 노래라고 생각된다. 그 시절 비단구두는 희망이며, 나라의 독립이 아니었을까. 이 노래를 처음 배우며 선생님의 지휘에 맞춰 열심히 따라 불렀던 어린 소년은 그로부터 60여년이 훌쩍 지나, 이제는 당시를 회상하며 세상을 향해 말한다고 생각하면 이 또한 어찌 감회가 새롭다하지 않겠는가.
'오빠생각'은 누가 뭐래도 '고향의 봄'과 함께 우리의 국민동요가 아닐까싶다. 1925년11월에 '오빠생각'이 발표되고 이듬해인 1926년4월에 '고향의 봄'이 발표되었다고 한다. 작사를 했던 최순애와 이원수의 사랑도 인간사 운명적이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고, 당시의 상황을 나름대로 살짝 엿보기 하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그 시기는 잘 모르겠지만 고향의 봄을 쓴 이원수가 아침 여덟시 반, 기차를 탔는데 옆에는 공무원풍의 신사가 탔다고 한다. 서로 말은 한마디도 안하다가 화장실 갈 때나 '저~'하고 운을 떼고 일어서면 비켜주고 했다는 것이다. 그래도 서로 불편하지 않았노라고. 그러다가 삼랑진서 기차를 바꿔 타고 마산으로 가는 길, 옆자리에 젊은 여자가 앉고부터는 지금 어디에는 살구꽃이 곱게 피었다는 등 서로 재미있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며, 그 여자를 꼭 살구꽃 같은 여인이라고 부르고 싶었다는 글이 생각나는 것이다. 이제 생각해보면 처가인 수원에 다녀가는 길이 아니었을까.
수원은 그리 보면 '오빠생각'을 쓴 최순애를 낳기도 했지만 '고향의 봄'을 쓴 이원수를 사위로 맞았으니 이 또한 겹경사임이 틀림없을 것 같다. 이런 수원의 팔달산 언덕에 '고향의 봄'시비가 있다고 해서 처음에는 의아했다. 자세한 뜻은 모르지만 그런 수원과의 인연에서가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오빠생각'또한 함께 세워졌어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욕심도 들며, 우연히 만난 '수원사랑'지난해 가을 호를 통해서 '오빠생각'도 시비가 세워져야 한다는 정수자 시인의 글을 읽게 되었다. 이는 수원이 해야 할 당연한 몫이며, 역사와 문화의 고장에서 보면 많이 늦었다는 생각도 지울 수가 없다. 특히 '수원사랑'은 수원문화원에서 수원시의 지원을 받아 발행하는 계간지로서 수원사랑에 대한 마음을 나누고 있다. 이런 좋은 책이 배포되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을 뿐만 아니라, 나름대로는 나의 수원사랑도 뜨겁다고 자부했다. 하지만 '수원사랑'을 보며 얼마나 우물 안 개구리였음을 알게 되었다.
'고향의 봄'과 함께 나란히 팔달산 언덕이나 관련이 있는 장소에 '오빠생각'비도 세워져 영원한 수원의 꽃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