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시아 백성들을 멸하게 한 왕의 조서는 정당하였는가?
"조서에는 왕이 여러 고을에 있는 유다인에게 허락하여 저희로 함께 모여 스스로 생명을 보호하여 각 도의 백성 중 세력을 가지고 저희를 치려하는 자와 그 처자를 죽이고 도륙하고 진멸하고 그 재산을 탈취하게 하되" (에 8:11)
앞에서 언급한 대로 에스더서의 역사성을 의심하는 학자들은 그 주요 내용의 가능성이 없을 뿐 아니라 윤리성도 결여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본문이 그 중에 하나로 에스더의 고발로 하만의 사악한 유대인 박멸 계획을 알게 된 왕은 유대인을 그의 손에서 구출하고 그 대신 하만과 유대인들을 말살시키려 했던 백성들을 멸할 수 있도록 허용하였다. 이 새 왕의 조서에 대해 본서의 역사성을 의심하는 학자들은 어느 통치자가 실제로 잘못을 범하지 않은 다수의 백성을 포함해서 그의 신하를 죽이도록 허용하는 조서를 발표하겠는가고 반문한다. 그러나 앞서 왕이 유대인을 하만으로 말살시키도록 한 조서에 어인을 찍은 것을 생각한다면 그 반대로 된 조서를 발표 못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전례가 없었다면 혹시 그 조서에 대해 의심을 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본문은 조서의 내용 중 파멸의 대상이 달라진 것뿐이다(3:13과 8:11을 읽어 보라). 이런 반대에 대해 본문을 옹호하는 학자들 중에서는 하만은 하나님께서 사울에게 박멸하도록 지시하신 아말렉의 후손이었다고 주장한다(1). 따라서 에스더서는 구약의 눈은 눈, 이는 이(출 21:23-25)의 보복의 법칙을 수행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본문을 자세히 읽어보면 그런 반대들이 잘못된 것임을 알게 된다.
여기서 유대인들의 자세는 페르시아 사람을 원수시해서 박멸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기 방어의 어떤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유대인들이 페르시아인에 대한 적개심을 불태워 무죄한 백성들 예컨대 처자들까지 몽땅 죽이려 한 것이 아니었다. 먼저 저들이 유대인을 파멸시키려 했기 때문에 저들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고 보호할 수 있는 길을 택한 것뿐이었다. 그러므로 이 문제는 윤리적인 것이 아니라 생존에 관한 것이었다.
또 윤리적인 면에서 보아도 이 사건은 비난받을 일이 아니었다. 3:13에서 하만의 계략에서는 동사 전멸시킨다는 말의 대상이 노소와 처자에 구분이 없이 전 유대인이었다. 그러나 8:1에서는 그 동사의 대상이 어떤 무장한 세력이요 유대인을 공격할 사람들의 처자였다. 그러므로 유대인의 행동을 반대하는 어떤 윤리적인 반대도 이 구절에 근거하지 않고 일반적 원리에 따른 오해임을 알 수 있다(2). 따라서 영어 성경에서는 파멸의 대상을 유대인의 처자를 대항해서 행동한 원수를 가리키는 것으로(NIV, 분명함, RSV ED JB는 분명하지 않음) 보았고 히브리어 문법 구조에 따르면 이런 낱말들은 멸하고 죽이고 전멸시키고 한 부정사의 대상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므로 그들의 원수에 대항하는 유대인의 행동을 가리켰다(KJB, NAB, NASB, NEB)(3).
이렇게 볼 때 모르드개의 편지는 심는 대로 거두리라는 격언을 확증한 것뿐이며(4) 일반적인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원리의 실천일 뿐이었다. 또 실제로 수산성에서 유대인들이 아달월 13일에 죽인 사람의 수는 500명으로 그 당시 그 곳에 살고 있던 50여만 명의 인구에 비한다면 얼마나 제한된 소수였는지 알 수 있다. 물론 그 다음날도 하루 더 수산성에서 300명을 죽였으나 그것은 자기 방어를 위해 필요한 조처였으며 왕도 유대인의 방어를 위해 그 일이 필요했기 때문에 허용했을 것이다.
주
1. Walter C. Kaiser., Jr., Hard Sayings of the Old Testament(Downers Grove: IVP, 1988), p.145
2. Joyce G. Baldwin, Esther(Downer Grove: IVP, 1984), p.98
3. F. B. Huey, Jr., Esther, E. B. C, Vol.4(Grand Rapids: Zondervan, 1988), p.831
4. Cary A. Moore, Esther(Garden City: Doubleday, 1988), p.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