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권세의 비밀
(수 15:1-14)
1. 또 유다 자손의 지파가 그들의 가족대로 제비 뽑은 땅의 남쪽으로는 에돔 경계에 이르고 또 남쪽 끝은 신 광야까지라 2. 또 그들의 남쪽 경계는 염해의 끝 곧 남향한 해만에서부터 3. 아그랍빔 비탈 남쪽으로 지나 신에 이르고 가데스 바네아 남쪽으로 올라가서 헤스론을 지나며 아달로 올라가서 돌이켜 갈가에 이르고 4. 거기서 아스몬에 이르러 애굽 시내로 나아가 바다에 이르러 경계의 끝이 되나니 이것이 너희 남쪽 경계가 되리라 5. 그 동쪽 경계는 염해이니 요단 끝까지요 그 북쪽 경계는 요단 끝에 있는 해만에서부터 6. 벧 호글라로 올라가서 벧 아라바 북쪽을 지나 르우벤 자손 보한의 돌에 이르고 7. 또 아골 골짜기에서부터 드빌을 지나 북쪽으로 올라가서 그 강 남쪽에 있는 아둠밈 비탈 맞은편 길갈을 향하고 나아가 엔 세메스 물들을 지나 엔로겔에 이르며 8. 또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로 올라가서 여부스 곧 예루살렘 남쪽 어깨에 이르며 또 힌놈의 골짜기 앞 서쪽에 있는 산 꼭대기로 올라가나니 이곳은 르바임 골짜기 북쪽 끝이며 9. 또 이 산 꼭대기에서부터 넵도아 샘물까지 이르러 에브론 산 성읍들로 나아가고 또 바알라 곧 기럇 여아림으로 접어들며 10. 또 바알라에서부터 서쪽으로 돌이켜 세일 산에 이르러 여아림 산 곧 그살론 곁 북쪽에 이르고 또 벧 세메스로 내려가서 딤나를 지나고 11. 또 에그론 비탈 북쪽으로 나아가 식그론으로 접어들어 바알라 산을 지나고 얍느엘에 이르나니 그 끝은 바다며 12. 서쪽 경계는 대해와 그 해안이니 유다 자손이 그들의 가족대로 받은 사방 경계가 이러하니라
오늘은 "영적권세의 비밀“이라는 제목입니다. 본문은 유다지파가 받은 기업의 경계에 대한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의 12지파 중 2지파 반 즉 루우벤 갓 므낫새 반지파는 요단 동편에서 이미 기업을 받았고, 현재 9지파 반이 기업을 받지 못했는데 오늘 본문에 보면 그 중 맨 먼저 유다지파가 기업을 받습니다. 영적 장자 지파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특별히 본문에 매이지 않고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참고로, 아홉 지파 반의 기업 분배는 두 곳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유다지파와 요셉지파는 길갈에서 분배를 받고, 나머지는 실로에서 분배를 받습니다. 길갈은 가나안을 정복하기까지 이스라엘 군대의 진영이 있는 곳이고, 실로는 여호와의 성막이 있는 곳입니다. 이처럼 영적으로 싸우고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하늘의 복락을 누립니다. 특히 유다지파와 같은 영적으로 싸우시기 바랍니다. 그런 적극적인 믿음이 필요합니다. 그러면 영적 권세가 나타납니다.
영적 권세의 소유자가 되는 비밀은 무엇일까요?
1. 하나님의 자녀의 확신입니다.
유다는 아브라함과 이삭으로 내려온 야곱의 넷째 아들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언약의 자손입니다. 이것이 가장 기본입니다. 유다지파가 기업을 얻은 것은 뭐니뭐니해도 이 기본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영적권세를 받으려면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어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여야 합니다.
요1:12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굉장한 권세자입니다. 그러므로 영권을 받은 자라는 확신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여기서 이것을 강조하는 이유는 성경에서 흔히 가장 중요한 내용이 생략되는 부분이 많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면 시편 1:1절의 복 있는 자가 누군가에서 죄짓지 않고 말씀을 묵상하는 자라는 내용인데 여기에는 가장 중요한 것이 생략되어 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이란 것입니다.
신약으로 말하면 예수 믿어 구원을 받아야 한다는 내용이 빠져 있습니다. 그것은 그 말씀의 대상이 이미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영권을 논하기 전에 이 부분을 망각해서는 안 됩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 믿는 성도에게는 영적 권세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걸 모르고 처음 예수 믿을 때 영권 받으려고 얼마나 애탔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막16:17-18에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믿는 자는 능력과 권세를 가졌다고 믿으시기 바랍니다.
2. 권세에 순복하시기 바랍니다.
유다 영적 장자권 획득을 이해하려면 상대적으로 그 반대인 장자권을 잃은 형 루우벤을 연구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일로 루우벤이 장자권을 잃었는가? 그걸 안다면 유다가 어떻게 장자권을 획득했는지 역설적인 의미에서 그 힌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유다는 루우벤의 실수를 범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루우벤이 장자권을 잃은 원인이 있습니다. 대상5:1-2에 “ 이스라엘의 장자 르우벤의 아들들은 이러하니라 (르우벤은 장자라도 그의 아버지의 침상을 더럽혔으므로 장자의 명분이 이스라엘의 아들 요셉의 자손에게로 돌아가서 족보에 장자의 명분대로 기록되지 못하였느니라” 했습니다. 아버지의 아내를 범한 것은 결국 아버지께 대한 도전입니다. 그래서 육적장자는 요셉에게로 돌아가고, 유대는 영적 장자입니다.
이처럼 영적으로 성도에게 어머니는 교회입니다. 갈4:26에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했습니다. 이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계21:2의 그리스도의 신부를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어머니는 곧 교회입니다. 교회의 양육을 멸시하지 않아야 합니다. 예배와 말씀과 기도와 찬송과 교제와 헌신 등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교회에 도전하면 안 됩니다. 그래서 벧전5:5-6에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에 도전하면 하나님을 도전한 것입니다. 겸손해야 은혜를 주십니다. 이것이 루우벤의 실패를 통한 교훈입니다.
3. 말씀에 견고히 서시기 바랍니다.
또 유다가 영적 장자가 된 것은 다른 형들인 레위와 시므온의 죄의 전철을 역시 밟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믿음의 형제들을 미워하고 죽였습니다. 세겜 사람들은 이방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추장 세겜이 자기가 열연하는 야곱의 딸 디나를 아내로 맞이하기 위해서 온 성민과 함께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인으로 귀화하였습니다. 온 성이 복음화되었습니다.
그런데 할례로 고통 받는 기간을 이용하여 시므온과 레위가 앙심을 품고 그들을 모두 죽였습니다. 즉 믿음의 형제를 죽인 것입니다. 언약을 무시했습니다. 언약백성을 죽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루우벤이 실패한 장자의 권리를 둘째도 셋째도 물려받지 못합니다. 그래서 영적장자권은 이제 4남인 유다에게로 넘어 온 것입니다(창49:8-12). 형들의 실패가 유다에게 성공이 되었습니다.
여기서 보여주는 교훈은 언약을 무시하지 말라. 기브온 거민들이 여호수아를 속였지만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했기 때문에 그들을 죽이지 못했던 것처럼 언약을 귀히 여겨야 합니다. 그러므로 언약의 말씀인 성경에 견고히 서시기 바랍니다. 막11:22-23에 “하나님을 믿으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끝까지 믿는 것이 영권입니다.
4. 영권의 비밀은 사랑입니다.
시므온과 레위는 죄를 덮고 사랑하지 못했기에 영적장자의 기회에서 탈락되었습니다. 반면 유다는 어떠했습니까? 애굽의 총리 요셉이 형제들을 첩자의 누명을 씌워 베냐민을 구류시킬 때 유다는 자신이 대신 잡히길 자청했습니다. 베냐민과 형제들을 살리기 위해 목숨을 걸었습니다. 장자로서 책임감과 희생정신의 모습이 보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고 성도를 사랑하고 영혼을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요한일서에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어두움 속에 있으며(요일1:1), 하나님께 속하지 않고(요일3:10),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고(요일3:14), 미워하는 자는 그 속에 영생이 없으며(요일3:15), 예수를 믿고 서로 사랑함으로 주 안에 거하고 주도 저 안에 거한다고 말씀합니다(요일3:23-24). 영적 성장은 곧 사랑의 성장입니다. 남을 섬기고 기도하다가 능력을 받습니다.
5. 하나님을 시인하시기 바랍니다.
유다의 이름은 '찬송'이라는 뜻입니다. 이처럼 찬송할 때 심령이 강해지고 은혜가 넘칩니다. 시22:3에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거하시는 주"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찬송을 많이 하는 개인이나 교회는 강한 성령의 임재를 느낍니다.
바울과 실라를 보십시오. 그들이 기도하고 찬송할 때 옥터가 움직이며 간수가 회개하는 이적이 나타났습니다(행16장). 여호사밧왕도 찬양대를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찬양할 때 모압과 암몬과 세일산의 사람들이 멸망되는 이적이 나타났습니다(대하20장). 왕하 3장에도 이스라엘과 유다 연합군이 모압사막에서 물이 없어 죽어갈 때 엘리사가 거문고를 탈 때 골짜기에 개천을 파서 풍족히 마셨습니다.
찬송 속에 하나님을 경외함이 있고 복음의 승리가 있으며 입술로 시인하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찬송가에 좋은 찬양들이 많지만 우리의 신앙을 더 잘 표현할 수 있는 복음적인 찬양들이 많이 작곡되었으면 합니다. 아버지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승리를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행3:12-13에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놀랍게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그의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했습니다. 이것이 기적의 믿음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복음에 서면 세상도 사단도 죄악도 저주도 다 물러가고 예수 안에서 승리와 영광을 누립니다.
6. 강한 의지의 신앙이 필요합니다.
창49:9에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내 아들아 너는 움긴 것을 찢고 올라 갔도다 그의 엎드리고 웅크림이 수사자 같고 암사자 같으니 누가 그를 범할 수 있으랴" 했습니다. 유다는 사자에 비유된 축복을 받았습니다. 여기 새끼는 젊은 사자를 가리킵니다. 그러니 용맹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사자는 강하고 두려움을 모릅니다. 영권을 받고 누리려면 사자같이 강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겨울에 춥고 발은 저려도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보자 하면서 모포를 둘러쓰고 기도합니다. 죽어도 기도하다 죽자는 각오로 기도를 드립니다. 그러더니 큰 능력을 받았습니다. 약하면 유다지파가 되지 못합니다. 유다지파는 강했습니다. 갈렙도 강했고 그의 조카 옷니엘도 강했습니다. 행군할 때도 언제나 최선봉이었습니다. 핍박을 두려워 마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유다지파를 통해서 영적 권세를 배웁니다. 예수 믿었으니 하나님의 자녀라는 믿음에 서고, 언약의 말씀을 견고히 믿고, 겸손과 충성으로 교회생활 잘하고, 희생과 헌신으로 지체와 이웃을 섬기며, 승리의 복음에 굳게 서서 감사하고 찬양하고 명령하고, 사자처럼 담대하여 굳게 서서 뒤로 물러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 유다지파처럼 하늘의 권세를 받아 누리는 가장 복된 하나님의 사람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