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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24: 19. 아이 밴 자 - 마 24: 20. 겨울이나 안식일
마 24: 19. 아이 밴 자 - 그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 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로다. (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로다. )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다는 것은 피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결혼은 정당한 일이지만 심신의 고통도 뒤따르며 환난의 때에는 더욱 그러하다.
* 고전 7: 26-28 – 26 내 생각에는 이것이 좋으니 곧 임박한 환난으로 말미암아 사람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27 네가 아내에게 매였느냐? 놓이기를 구하지 말며, 아내에게서 놓였느냐? 아내를 구하지 말라. 28 그러나 장가가도 죄 짓는 것이 아니요, 처녀가 시집가도 죄 짓는 것이 아니로되, 이런 이들은 육신에 고난이 있으리니 나는 너희를 아끼노라.
1]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가스트리 에쿠사이스)
여기서 '가스트리'는 배를 나타내기도 하고 자궁(Womb)을 뜻하기도 한다.
* 마 1: 18, 23 – 18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 막 13: 17 -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로다.
* 눅 1: 31 –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 살전 5: 3 - 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리니 결코 피하지 못하리라.
'에쿠사이스'는 '소유', '보관', '결혼', '사랑의 소유', '즐긴다', '필요하다', '궁핍하다' 등 여러 뜻을 지니고 있다. 여기서는 '자궁'(*)이라는 단어와 연결하여 '임신하다'는 말로 사용되었다.
* 눅 21: 23 -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니 이는 땅에 큰 환난과 이 백성에게 진노가 있겠음이로다.
* 계 12: 2 - 이 여자가 아이를 배어 해산하게 되매 아파서 애를 쓰며 부르짖더라.
임신한 사람과 아기에게 젖을 먹여야 하는 이는 홀몸이 아니다. 자신의 일만 있는 것이 아니라서 자신의 구원에 몰두하기 어렵다. 그래서 남보다 더 큰 어려움을 당하게 될 것이 확연하다.
여자에 대한 저주도, 임신부와 어린이를 키우는 어미를 비난하는 것도 아니다. 오직 그날의 고통이 남을 돌볼 만큼 여유 있게 대처할 만한 것이 못되기에 미리 미리 종말의 때에 대비하여야 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그날이 오면 민첩하게 구원의 일에 몰두하도록 하기위해 준비를 할 것이며, 다른 일로 인하여 자신의 구원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말이다.
한편 A. D. 70년 예루살렘 멸망 당시 미처 도피하지 못한 유아와 어머니들이 예루살렘을 가득 메웠고 식량 부족으로 인해 아사자(餓死者)와 고통을 받는 자가 수없이 많았다고 전한다(Jos, Wars, V 10:3).
이 말의 영적 의미를 알아야 한다. 성도와 예수 그리스도와의 결합(영접)은 결혼과 같다. 성숙한 처녀는 자녀(새 성도)를 생산(전도)해야 한다.
생산하지 못하고 태중에 있는 사람들은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열매가 없기 때문이다.
생산된 자녀는 성숙한 자가 되도록 성장시켜야 한다. 예수의 재림은 성숙 된 성도와의 결혼을 위한 혼인 잔치가 열린다. 어린아이는 신랑을 맞이할 수 없다.
그러므로 어머니의 젖만 먹는 아이가 아니라 단단한 식물을 먹는 성인으로 길러야 한다.
2] 젖 먹이는 자들에게
여기서의 '화가 있으리로다'라는 표현은 저주 선언이 아니라 동정을 표시하는 탄식문이다.
즉 '아! 안되었도다'라는 뜻으로 쓰이거나 또는 '오! 슬프도다'라는 표현으로 쓰이기도 한다. 본래 '우아이'(*)라는 뜻은 두 가지의 뜻을 갖고있다.
새 번역에서는 '화를 입을 것이다'로 번역되어 있고, 공동 번역에서는 '불쾌하다'로 번역되어 있는데 새 번역의 표현이 더 적절하다.
3] 화가 있으리로다.
다니엘은 멸망의 가증한 것이 나타날 때의 종말론적 대환란은 아이 밴 자들과(마 24: 19)젖먹이는 자들, 그리고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어려움이 온다고 말했다.
* 계 8: 13 - 내가 또 보고 들으니 공중에 날아가는 독수리가 큰 소리로 이르되, 땅에 사는 자들에게 화, 화, 화가 있으리니 이는 세 천사들이 불어야 할 나팔 소리가 남아 있음이로다. 하더라.
또한 그들은 환란을 피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1) 말세에는 아이 밴 자들이 화를 당한다.
'아이를 밴'.<엔 가스트리 에쿠사이스>는 아이를 배어 있는 상태(임신 중)를 말한다.
① 욕심이 가득히 차 있는 상태를 뜻하는 말이다.
* 약 1: 15 -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환란의 때 곧 신앙생활의 큰 위기에 처하게 될 때 세상일로 많이 얽혀있는 자는 어려움이 크다는 것을 말한다.
세상의 사업에만 얽매이고 세상 욕심의 노예가 되어버리면 환란의 그날이 와도 깨닫지 못하고 위험이 닥칠 때 무서운 시련을 당하게 될 것이다.
② 죄에 머물러 있는 상태를 말한다.
죄의 무거운 짐을 지고서는 그들에게 환란이 닥칠 때 도망치기가 어렵다. 결국 죄는 환란을 면케 하지 못한다.
노아 시대에도 하나님의 심판이 예고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저들은 죄악에 깊이 잠들고 있었기 때문에 홍수의 심판에서 화를 면하지 못했다.
③ 출산(전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받은 자들이다. 예수 피를 받았으면 새 생명을 잉태해야 하는데 낳지 못하고 뱃속에만 담고 있으면 이는 은혜를 저버리는 것이다.
세상의 법도 일정한 임신기간이 지나면 산모가 출산해야 한다. 그런데도 출산하지 못함은 산모와 아이에게 위험하다.
(2) 젖먹이는 자들은 화를 당하게 된다.
① '젖먹이는 자'도 역시 세상적인 애정과 쾌락에 빠져 있는 자들을 의미한다.
아이가 없기때문에 그 아이가 죽임을 당하는 것을 보지 않아도 되는 자는 행복할 것이다. 그러나 환란 날에 아이를 밴 자나 아이에게 젖을 먹이는 자들은 불행한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시련과 고통을 당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첫째로, 환란 때에 그들에게 기근이 닥친다면 이것이 쓰라린 고통이 되기 때문이다.
* 애 4: 3-4 – 3 들개들도 젖을 주어 그들의 새끼를 먹이나 딸 내 백성은 잔인하여 마치 광야의 타조 같도다. 4 젖먹이가 목말라서 혀가 입천장에 붙음이여 어린 아이들이 떡을 구하나 떼어 줄 사람이 없도다.
② 그날에 칼의 위협이 닥칠 때 무서운 시련이 되기 때문입니다.
* 왕하 15: 16 - 그 때에 므나헴이 디르사에서 와서 딥사와 그 가운데에 있는 모든 사람과 그 사방을 쳤으니 이는 그들이 성문을 열지 아니하였음이라. 그러므로 그들이 그 곳을 치고 그 가운데에 아이 밴 부녀를 갈랐더라.
* 호 13: 16 - 사마리아가 그들의 하나님을 배반하였으므로 형벌을 당하여 칼에 엎드러질 것이요. 그 어린 아이는 부서뜨려지며 아이 밴 여인은 배가 갈라지리라.
* 암 1: 13 -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암몬 자손의 서너 가지 죄로 말미암아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자기 지경을 넓히고자 하여 길르앗의 아이 밴 여인의 배를 갈랐음이니라.
③ 그날에 그들에게 환란이 닥칠 때 도망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환란의 때 곧 신앙생활이 큰 위기에 처하게 될 때 세상일로 묶여 있는 자는 고난이 크다는 것을 말한다. 성도는 세상일에서 무관할 수 없으며, 떠날 수는 없지만 영적으로는 가능하다.
④ 재림 예수는 신랑으로 오신다.
다시 오시는 예수는 세상을 심판하시고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성도들을 인도하신다. 그러나 먼저 예수를 믿는 성도에게는 주님과의 혼인 잔치에 참여하게 되는데 어린아이 같은 신부는 주님을 영접할 수 없다.
열 처녀 비유(마 25: 1-13)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⑤ 단단한 식물을 먹지 못하기 때문이다.
* 히 5: 12-14 – 12 때가 오래 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 13 이는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14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
어린아이는 어머니의 젖을 먹고 산다. 바울 사도는 단단한 식물을 먹지 못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지 못한다고 하셨다.
젖은 설교자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얻는 것이라면 단단한 식물은 성령의 충만함을 입은 자가 기록한 성경을 의미한다.
요한계시록은 작은 책으로 이는 갖다 먹어버리는 말씀으로 다시 예언할 말씀이다.
* 계 10: 2, 7-11 – 2 그 손에는 펴 놓인 작은 두루마리를 들고 그 오른 발은 바다를 밟고 왼 발은 땅을 밟고 7 일곱째 천사가 소리 내는 날. 그의 나팔을 불려고 할 때에 하나님이 그의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하나님의 그 비밀이 이루어지리라 하더라. 8 하늘에서 나서 내게 들리던 음성이 또 내게 말하여 이르되, 네가 가서 바다와 땅을 밟고 서 있는 천사의 손에 펴 놓인 두루마리를 가지라. 하기로 9 내가 천사에게 나아가 작은 두루마리를 달라 한즉, 천사가 이르되. 갖다 먹어 버리라. 네 배에는 쓰나 네 입에는 꿀 같이 달리라. 하거늘 10 내가 천사의 손에서 작은 두루마리를 갖다 먹어버리니 내 입에는 꿀 같이 다나 먹은 후에 내 배에서는 쓰게 되더라. 11 그가 내게 말하기를 네가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 하더라.
마 24: 20. 겨울이나 안식일 - 너희가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 ( 너희의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 )
주께서는 겨울에나 안식일에도 피난하기 어려우니까 그런 때를 피하도록 기도하라고 말씀하셨다.
1] 너희가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겨울과 안식일은 유대인에게 있어서 활동하는데 가장 어려운 때이다. 겨울에는 비가 오는 계절이라서 땅이 질고 식량 확보도 어려워 유대인들에게는 취약(脆弱)한 계절이다.
안식일에는 종교적 행사에 주력해야 했으며, 율법적으로 1.8Km이상 이동하는 것이 금지되었기 때문에 산으로 오른다거나 피신하는 행위는 사실상 불가능하게 된다.
이 경고로 미루어보아 안식일을 그 당시에 철저히 준수한 것으로 보인다.
예수께서도 바로 이러한 때에 환란 날이 오지 않도록 기도하라는 권면하신다.
역사적으로 볼 때 B. C 168년 수리아왕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의 침공이 있던 날도 안식일이어서 유대인들은 무방비 상태로 살육을 당했던 적이 있었다.
이 말도 영적의미를 알아야 한다. 겨울은 모든 식물들의 성장이 멈추는 계절이다. 성령의 역사가 멈춰지지 않도록 간구해야 한다.
안식일은 구약의 절기이다. 주일은 신약의 절기로 이어지는 45절의 '때에 따른 양식'을 먹고 마시는 성도들이 되어야 한다.
2] 기도하라.
땅에거하는 자들이 화를 당하게 된다. 땅에'거하는' 이라는 말은 '세상에 거주한다', '자리잡느다',' 산다'는 뜻으로 이 세상에 계속하여 붙어사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이처럼 죄를 잉태하고 쾌락적인 삶을 추구하며 이 세상에 붙어사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의 화가 임할 것을 예언하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보다 세상을 사랑하고 집착한 자들로 영혼보다 육체를 소중히 하고 가꾼 사람들입니다. 영원을 사모하지 않고 일시적이고 가시적인 것만을 추구한 사람들이다.
결국 하늘의 복음을 거부하고 땅의 것을 좇다가 화를 당한 경우다. 땅은 영적으로 어두운 곳을 말한다. 그날 이곳에 속한 모든 사람들에게는 큰 환란이 임할 것이다.
그러므로 그날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너희의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20절).
'도망'은 믿는 자의 피난을 뜻하는 것으로 일반적으로 사회적인 고난과 재난을 당할 때 신자들이 기도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기도하는 것은 모든 고통에 대하여 위로와 평강을 가져다준다.
(1) 겨울에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겨울에는 낮이 짧고 날씨가 춥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꼭 겨울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고 비오고 바람부는 사나운 날도 뜻하고 있다.
(2) '안식일'에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안식일에는 장거리 여행이 금지되었기 때문에 도망하기 어렵다. 주전 168년 수리아의 안디오커스가 예루살렘을 침략했을 때가 안식일이었으므로 유대인들은 아무런 저항도 못하고 참변을 당하고 말았다.
우리나라 6.25 사변도'주일'에 일어났기 때문에 더 많은 인명이 희생되었다. 현대의 침략군들은 주일을 택하여(세계 2차 대전의 독일군, 진주만을 공격한 일본군) 기습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거룩한 안식일 (주일)에 환란의 날이 되지 않고 조용하고 안정된 안식을 가질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하겠다. 안식일은 평강과 사랑의 주인이신 예수님의 날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