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맡김의 영성포름 (상위카페 마처예함) 영감의 중요성
김소영데레사(무소) 15.04.25 08:29
햇살은 빛과 열을 동시에 발산합니다. 영감은 천상의 빛이며 열로 충만합니다.
영감은 좋은 기회를 알아보고 그 기회를 따르고자 하는 불타는 열망을 불어넣습니다.
영감이 없으면 우리 영혼은 얼어붙어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하느님의 빛인 영감은 우리 마음을 비추고 결단을 촉구합니다.
"주 하느님께서 흙의 먼지로 사람을 빚으시고, 그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창세2,7)
이 영원하신 하느님이 우리 영혼 안에 영적 삶에 대한 영감을 불어넣어 "생명을 주는 영"(1코린15,45) 이 되게 하셨습니다.
거룩한 영감에 끊임없이 마음을 여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그들은 어떤 환경에서도 건강하게 경건한 삶을 살며 부족함이 없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온갖 생물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본능을 주셨듯이, 우리한테도 살고 일하고 영성 생활을 해나가는데 필요한 영감을 주십니다.
한 번에 한 가지씩 관심을 집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악마는 우리의 능력 이상으로 덤벼 들게 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너무 많은 일을 하다 지쳐 아무것도 못할 때가 있습니다.
성 예로니모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중요한 것은 시작이 아니라 끝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소화시킬 수 없을 만큼 과식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현혹하는 영은 일을 하도록 부추기지만 성령께서는 시작은 목적에 이른 수단임을 알려줍니다.
성 안셀모는 나무를 자주 옮겨 심으면 뿌리를 내리지 못해 열매를 맺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이런저런 계획에 관심을 두는 우리 영혼도 마찬가지입니다. 완성은 시작이 아니라 끝까지 해냄으로써 이루어집니다.
우리는 흐트러짐 없이 하느님의 영감에 따라야 합니다.
우리는 좋은 것을 두고 더 좋은 것을 찾다가 좋은 것마저 잃고 더 좋은 것도 찾아내지 못합니다.
더 큰 보화를 얻으려 하기 보다 앞에 있는 작은 보화를 손에 넣는 것이 지혜롭습니다. 알지 못하는 미래를 위해 지금 하는 일을 중단하라고 유혹하는 '영감'은 의심해야 합니다.
하느님이 주시는 영감에 따라 천상 사랑을 키우고 걸맞은 사명감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악마는 다른 일을 하도록 부추깁니다.
때로는 다른 일이 한결 멋져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궤도에서 벗어나면 그 길이 가능하지 않음을 알게 되고 또 다른 길을 찾아 나섭니다.
이렇게 완성에 이르는 길을 찾다가 결국 실패로 끝납니다.
경험이 없는 사냥개는 다른 냄새가 날 때마다 새로운 사냥감을 쫓기 위해 무리에서 벗어납니다.
하지만 노련한 사냥개는 처음 맡은 냄새를 끝까지 따라갑니다.
만일 그대가 그대 소명에 대한 하느님의 거룩한 뜻을 찾는다면 사랑으로 성실하게 하십시오. 분별력과 투신으로 거룩한 목표를 이루십시오.
( 하느님을 찾는 이들에게 - 8 하느님 뜻을 따름,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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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사제 2017.07.20 11:00
가~끔
참으로 거룩한 냄새, 거룩한 내맡김의 냄새를 잘 못 맡은 사냥개들이 다른 이상한 냄새, 마귀의 냄새에 이끌려 <거룩한 내맡김 봉헌서약>을 깨뜨리고 우리 무리에서 벗어납니다. ㅠㅠㅠㅠㅠㅠ
사랑하는 아버지! 경험 없는 사냥개들을 맡기오니 그 사냥개들이 보신탕이 되지 않게 이끌어주소서! (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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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맡김의 영성포름 (상위카페 마처예함) 영감의 중요도에 따라 달리해야 할 행동
배명순요안나(무량) 2015.06.23
하느님으로부터 온 영감이라 여겨지는 것에 대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알려면 또 한 가지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 영감의 대상이 무엇이며 얼마만큼 중요한가 하는 점이다.
주님은 내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모두 나누어 주고 안토니오 성인을 본받아 사막으로 떠나라고 하실 수도 있고, 이제까지 예를 든 것처럼 좀 더 작은 일들에 대한 영감을 주실 수도 있다.
물론 이미 말했듯이 어떤 영감도 소홀히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듯한 것이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일 수도 있다.
어느 날엔가 피정 지도를 하던 일이 생각한다. 묵주 기도를 하고 있었는데 문득 참석한 사람들에게 그곳에 세워진 십자가에 경배를 드리도록 하고 싶다는 내적 충동이 일었다.
나는 속으로 '그렇게 하는 것은 너무 많은 시간이 드는 일이야.' 하며 이 충동에 따르기 전에 몹시 갈등해야 했다.
그러나 결국 십자가 경배를 하게 되었는데 경배 도중에 척추에 큰 문제가 있던 사람이 치유되었다.
하느님께 대한 작디 작은 순종은 때로 우리가 몇 년 동안 계획적으로 노력한 것보다 훨씬 큰 영적 진보를 가져다줄 수도 있다.
작은 은총에 대한 충실이 더 큰 은총을 끌어들인다.
성령의 영감 가운데 많은 경우는 어떤 의미에서 너무 진지하게 대할 필요가 없는 것들도 있다. 흔히 그것은 어차피 해야 할 일을 완수하기 쉽도록 우리를 도와주는 내적 움직임이기 때문이다.
내가 누군가에게 원한을 품고 있을 때 그를 용서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미사 드릴 시간이 되었는데 급하게 해결해야 할 일에 좀 더 매달리고 싶지만 모든 것을 중단하고 성당으로 가라는 내면의 소리가 나를 재촉한다.
이런 움직임은 좋은 충동임이 명백하므로 따르기만 하면 된다.
만일 우리가 성령의 움직임에 더 깊이 주의를 기울이고 순종한다면 성령께서는 우리를 더욱 부추기실 것이다.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의 말을 들어보자.
"성령의 영감이 없다면 우리 영혼은 게으르고 둔하며 불모의 삶을 살 것이다. 그러나 신적 영감의 빛이 오면 우리는 활기찬 열기가 느껴지는 빛을 느낀다.
이 빛은 우리 판단력을 밝혀주고 의지를 일깨워 활기차게 하며 영원한 구원에 속하는 선을 바라고 행할 힘을 준다." <신애론> 8권.10장)
때로 성령의 충동은 애덕활동, 봉사, 기도, 작은 희생, 겸손의 행위 등을 하도록 부추긴다. 이런 경우 영감 받은 일을 재빨리 평가해야 한다.
그 일이 합당해 보이는지, 의무를 이행하는 데 장애가 되지 않는지, 그 일에서 예수님의 목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일에 마음이 기울 때 평화로운지를 살펴본 후 이 모든 물음에 긍정적 답을 할 수 있다면 그 영감을 실천에 옮기기만 하면 된다.
반대로 "순종이 없을 경우" 우리는 악마의 장남감이 되기 십상이다.
우리에게 권위를 지닌 다른 누군가에게 순종하지 않은 채 영감을 서둘러 실현하려 할 때 악마는 우리를 속여 차츰 "하느님 뜻과 아무 상관 없는 일들"을 하도록 이끈다.
어떤 행동을 따라야 할지 의심스러올 때는 어쨌든 우리가 신뢰하는 한두 사람에게 마음을 열고 그들의 의견에 동의하는 것이 개인적 숙고와 평가를 하느라 우리 자신 안에서 맴돌며 혼란만 가중시키는 것보다 더 낫다.
자크 필립의 <성령 안에 머물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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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사제 2017.10.27. 11:13
<어느 날엔가 피정 지도를 하던 일이 생각한다. 묵주 기도를 하고 있었는데 문득 참석한 사람들에게 그곳에 세워진 십자가에 경배를 드리도록 하고 싶다는 내적 충동이 일었다.>
제가 2012년 2월 <일본에 들어가게 된 것>도 내적 충동 아니, ★ 매우 강한 내적 충동 ★ 을 받고 그렇게 된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내적 충동>이 확실했습니다. 아니면 도저히 일본에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이었음을 나중에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일본에 들어가고 싶은 강한 내적 충동을 처음 받은 것이 일본 관동대지진으로 인한 쓰나미로 많은 일본인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TV로 지켜보면서였고,
그것이 2011년 3월 11일었는데 지인으로부터 받은 메일은 3일 전 3월 8일자 메일이었음에도 착각을 일으켜 3월 11일 이후에 받은 것으로 생각했던 것, 그리고 6개월이 지난 후 지인들과 저녁식사하며 대화를 하던 중 다시 두번째로 매우 강한 내적 충동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때 저는 식사 도중이지만 아는 신부님께 일본에 들어가고 싶은 의사를 밝히게 되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일본에서 대학 강사 생활까지 경험 있는 어떤 신부님이 이미 내정되어 있었던 사실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일본교포사목을 신청한 신부님이 게셨음에도 하느님의 섭리가 저를 일본으로 이끌어주셨던 것입니다.
저는 그 영적 충동 겸험 이후, 제 안에서 일어나는 내적 충동이 어떤 충동이든 모조건 받아들이고 그 내적충동에 따라 가는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이 세상의 그 어떤 무엇도 바라지 않고, 끊임없는 화살기도로 아버지께 집중몰입하면서 오직 아버지만 바라는 사람에게 일어나는 내적 충동은 <아버지 하느님이 주시는 영감>으로 받아들이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아닌 것 같으면 <아님말구>하면 될 것입니다, 100% 내맡긴 영혼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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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기도(3) 2. 시나이 헤시카즘과 예수기도
정신이 예수기도로 정화되고 통합되었을 때 우리의 생각들은 평온한 바다 속에서 즐겁게 헤엄치는 돌고래처럼 예수기도 안에 잠긴다.
그러면 그리스도와의 대화가 시작되어, 그리스도가 내 안의 주인이 되고 내 마음에 그분의 뜻을 알려주신다
이러한 개념에 따르면, 예수기도의 최종 목적은 신비로운 침묵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다.
예수기도(7) 6 예수기도의 실천
성령과 예수 호칭 기도 사이에는 "성령 강림과 함께" 시작된 그리스도인의 사명과는 다른, 더욱 내밀한 관계가 존재한다.
구원자의 이름을 부르며 우리는 성자와 성령 사이의 관계에 대한 확실한 "경험" (그 진위가 불분명하지만 강한 인상을 주는 경험들도 포함한 개념의 경험)을 가져다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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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교육 (마처예함) 산다는 것과 믿는다는 것 (라마크리슈나의 가르침 88)
엄효선리나56(무화) 16.09.03
82. [문] 우리는 왜 속박 속에서 살고 있는가? 왜 신을 보지 못하는가?
[답] 인간의 에고, 그 자체가 바로 마야다. 이 마야가 신의 빛을 가린다.
<내>가 죽게 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
신의 은총에 의해서「......하는 자는 내가 아니다.」라는 예지를 얻은 사람은 이 삶 속에서 오히려 자유롭게 된다.
이 모든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게 된다..
※교양 [삶으로 다시 떠오르기 11-1편]
무화 23.11.08 00:34
그러니까 모든 수행이라는 것은 눈 뜰 때부터 시작해서 깨어서 관찰해 보면 안팎으로 다 보인다.
이것이 안 막히고 툭 트이면 내외가 명철 밝게 뚫려 가지고 다 보여서 안 막히고 있으면 마음은 그냥 정말 자유롭고 잘 통하지.
잘 통하는데 만약에 뭔가가 좀 찝찝하면서 생각이 계속 나면 그게 지금 막혀 있는 거니까, 얼음이 얼어버리니까.
마음은 물과 같은데 얼어 있는 것을 다시 싹 녹여야지. 그게 싹 풀리면 다시 마음은 항상 통해 흘러야 돼요.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 마땅히 집착하고 머무르고 마음을 빼앗기는 바가 없이 이생기심( 而生其心) 통해 흘러라.
마음은 일어나지 않는다가 아니고 통해 흘러야 된다 이거죠. 근데 보통 사람들은 어딘가에 매여 있다. 매여 있으니까 생각이 자꾸 나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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