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2:8) 베드로에게 역사하사 그를 할례자의 사도로 삼으신 이가 또한 내게 역사하사 나를 이방인의 사도로 삼으셨느니라
(갈 2:9) 또 기둥 같이 여기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도 내게 주신 은혜를 알므로 나와 바나바에게 친교의 악수를 하였으니 우리는 이방인에게로, 그들은 할례자에게로 가게 하려 함이라
지난 주 우리나라는 너무 더웠다. 이 무더위 속에서 다들 잘 버텨냈다. 우리가 잘 버텨낼 수 있었던 이유는 희망 때문이었다. 이 무더위 속에서 하루 하루 버텨내기만 하면 곧 시원한 바람이 부는 가을이 올 것이라는 희망 때문이었다. 이런 경우는 우리의 희망이 우리에게 닥친 더위라는 고비를 넘기게 해 주는 다리이다.
가만히 서 있기도 힘든 이 더위에 불과 함께 일해야 하는 사람들도 있다. 쇠를 녹이는 불과 함께 일하는 제철소 사람들과 뜨겁게 달구어진 철판 위에서 일하는 조선소 사람들, 그리고 화재를 진압하는 소방대원들이다. 쇠를 녹이는 불이 쇠를 녹이는 곳에 불똥이 튀고 쇳물의 온도는 1500도이다. 그 근처에 있으면 숨을 제대로 쉴 수 없다. 거기서 일하는 사람이 특수한 옷을 벗자 얼굴과 몸은 땀 투성이이다. 휴식 시간에는 에어컨이 설치되어 있는 휴식 공간에 들어가고 얼음이 제공된다. 뜨거운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쉬는 시간만 생각한다고 한다. 에어컨이 있는 시원한 곳에 가서 얼음 빙수를 먹을 수 있다는 생각만 하면서 뜨거운 현장 작업을 견뎌 낸다고 한다. 조금만 참으면 휴식 공간에 갈 수 있다는 희망이 다리가 되어 주지 않으면 그들은 그 뜨거운 곳에서 견딜 수 없을 것이다.
1. 사람이 다리가 된다.
사람은 어려운 일을 당할 때 그 고비를 넘어갈 수 있게 하는 징검다리가 필요하다. 그 징검 다리는 돈도 될 수 있지만 무엇보다도 사람이 징검 다리가 된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함께 해 주는 사람이 없어 그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자살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 주에 노회찬 국회의원이 돈을 받았다는 혐의를 받고 조사를 받다가 아파트 17층에서 뛰어내려 죽었다고 한다. 그가 가진 돈과 명예는 그가 고비를 넘기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사람이 죽고 나서 그를 추모하려고 사람들이 많이 왔다느니, 국회 장례를 치루었다느니, 그 사람을 영원히 잊지 않겠다느니, 그 사람이 가진 뜻을 받들겠다느니, 그 사람이 없었다면 지금 자기는 없었을 것이라느니 하지만, 결국 떠들썩하게 장례를 치루는 사람들 중에 그 누구도 그가 위험한 강을 건널 때 다리가 되어 주지 못했던 것이다.
요즘 혼자 밥먹고, 혼자 술먹고, 혼자 여행을 하는 싱글 라이프 세대가 등장했다고 한다. 혼자가 편하다는 것이다. 그렇게 사는 것이 왠지 멋 있는 것처럼 꾸며져서 방송된다. 그러나 그것은 편안한 것이 아니라 외롭고 두려운 것이다. 사람은 사람과 연결되어 있을 때 비로소 안정을 찾는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강도를 만난 사람을 도와준 사람에 대하여 말씀해 주시면서 우리에게 그 착한 사람과 같이 살라고 하셨다.
(눅 10:36)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눅 10:37)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험한 세상의 다리가 되어라는 명곡이 있다.
https://youtu.be/d6j_NWeeU58
(Bridge over troubled water-사이먼,가펑클)
When you're weary 당신이 지쳤을 때
feeling small 당신의 힘이 떨어졌다고 생각될 때
When tears are in your eyes 당신의 눈에 눈물이 흘러 내일 때
I'll dry them all 나는 당신의 그 슬픔들을 닦아 말려 드릴게요.
I'm on your side 나는 당신의 곁에 있어요.
oh, when times get rough 당신의 삶이 거칠 때
And friends just can't be found 당신의 친구들이 당신의 옆에 없을 때
Like a bridge over troubled water 당신이 험한 물이 흐르는 강을 건너야 할 때
I will lay me down 나는 당신의 다리가 될게요.
Like a bridge over troubled water
I will lay me down
우리는 각자 자신의 인생에서 험한 곳을 지날 때 다리가 되어준 사람을 생각해 보자.
지난 주 입원하신 어머니에게 간병인을 구해 드리려고 하였다. 교통사고이기 때문에 보험 회사에서 간병인 비용을 대준다. 그러나 어머니는 간병인을 거부하셨다. 집사람과 아버지와 형님 목사님이 있는데, 간병인이 왜 필요하냐는 것이었다. 사람이 어려움을 당할 때 자기를 도와줄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가?
본문에 보니 바울 일행과 베드로 일행이 만나서 악수를 했다. 이 사람들은 다리의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베드로 일행은 유대인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다리였고, 바울 일행은 유대인이 아닌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다리였다. 착한 그들은 동질감을 느끼며 악수를 하였던 것이다.
(갈 2:8) 베드로에게 역사하사 그를 할례자의 사도로 삼으신 이가 또한 내게 역사하사 나를 이방인의 사도로 삼으셨느니라
(갈 2:9) 또 기둥 같이 여기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도 내게 주신 은혜를 알므로 나와 바나바에게 친교의 악수를 하였으니 우리는 이방인에게로, 그들은 할례자에게로 가게 하려 함이라
목회 생활 16년이 되었다. 요즘 나는 생각을 한다. 나는 다리의 역할을 잘 하고 있는가? 어떤 사람들을 도왔고 어떤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갈 수 있게 하는 다리가 되었다. 우리는 누군가를 밟고 어려움을 극복하며, 누군가의 어려움을 극복하게 하는 다리가 되기도 한다.
2. 예수님은 하나님이 놓으신 다리이다.
여기서 저기로 가는 데 사람이 도저히 건널 수 없는 거센 강이 가로 막혀 있다고 생각해 보자. 그곳에 다리가 하나 놓였는데, 그 다리를 통해서 가면 빠르고 안전하게 저 곳으로 갈 수 있다. 그런 다리는 얼마나 고마운 다리인가?
그러나 사람이 건설하는 다리나 터널, 댐 등은 안전하지 못하다.
며칠 전 우리나라 SK건설사가 라오스에 짓고 있던 댐이 무너져서 300명이 죽는 큰 피해를 입혔다. 미국에서도 다리를 건설하다가 무너져서 여러 사람이 죽고 다쳤다. 평택에서도 짓고 있던 다리가 무너져내렸다. 다리와 터널을 뚫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람들은 이런 위험과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왜 다리를 지으려고 하는 것일까? 그것은 다리와 터널이 우리의 삶에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 사람들이 지은 다리 숫자는 2017년 기준 33,572개나 된다.
우리가 하나님께로 갈 수 없었을 때, 우리가 아무리 기도해도 하나님께서 들으시지 않았을 때,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희생시키시면서까지 우리를 위해서 다리를 놓으셨다. 그 다리의 이름은 예수 그리스도이고 그 다리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께 건너갈 수 있다.
(행 3:6)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
(행 3:16) 그 이름 을 믿으므로 그 이름 이 너희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 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요 14:13)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요 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하나님께로 가는 다리는 사람들의 노력이 들어간 다리가 아니다. 사람들은 도덕, 윤리, 철학, 과학 등으로 하나님께로 가는 다리를 건설하려고 애 써 왔다. 그러나 그 어떤 노력도 하나님께로 가는 다리를 놓는데는 실패했다. 우리가 건설할 수 없는 다리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건설하신 것이다. 오직 이 다리로만 하나님께로 건너갈 수 있다.
베드로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 외에 하나님께로 건너갈 수 있는 다른 다리는 없다고 말했다.
(행4:12)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느니라.
하나님께서 놓으신 다리이기 때문에 이 다리는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
애써서 완공한 다리라도 시간이 지나면 다리는 낡아서 보수 공사를 해야 하고 더 시간이 지나면 폐기 되어 사용하지 않는 다리가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다리를 폐쇄하고 새로운 다리를 놓는다.
그러나 하나님이 놓으신 예수 그리스도라는 다리는 완전하고 영원하고 무너지지도 않고 보수 공사도 필요 없다.
3. 예배는 성도의 인생길의 휴식처이다.
나도 중국에 가서 몇 시간 씩 고속 도로를 달려 보았지만, 외국에는 우리나라 고속도로 곳곳에 있는 휴게소와 같은 것이 없다고 한다. 외국사람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자주 자주 나타나는 휴게소를 보면 놀란다고 한다. 외국에 우리나라 고속도로 휴게소를 수출하면 대박이 날 것이라고 한다. 미국 같은 큰 나라 고속도로에는 아무리 달려도 휴게소가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졸음 운전으로 대형 사고가 정말 많이 나는데도 간이 화장실만 있을 뿐이지 휴게소가 없다고 한다. 우리는 처가집인 거제도에 갈 때에도 집사람과 아이들이 벌써 휴게소에 들를 생각으로 들떠있다. 거의 휴게소에 들를 목적으로 거제도에 가는 것처럼 보인다. 거기에는 운전자와 승객을 위한 모든 편의 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다. 주유소는 물론이고 편의점, 빵 가게, 약국, 식당, 취침실, 샤워실, 정원, 특산물 매장,....... 휴게소에 진입하면 사람을 들뜨게 하는 뽕짝이 어느 휴게소나 흘러 나온다. 뽕짝 들리는 데서 손톱 깎이니 모자니 옷이니 썬글라스니....... 모든 잡화를 다 살 수 있다. 우리나라 영동 고속도로 덕평자연휴게소는 디자인과 시설, 서비스 면에서 세계적이라고 한다. 졸리면 쉬어 가는 휴게소는 고속도로를 달리는 사람들에게 오아시스와 같은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의 삶을 도와 주는 다리, 고단한 인생 길을 가는 성도들에게 쉼을 주는 휴게소와 같은 것은 예배이다.
사람들은 자기를 도와 주는 뭔가가 있을 때는 그것의 고마움에 대하여 잘 모른다. 그것이 없어져 봐야 '아, 그것이 얼마나 고마운 것이었는가!'라고 말하게 된다.
시편 137편은 예배를 드릴 수 없게 된 사람이 고통을 호소하는 시이다. 그는 성전에서 예배를 드리며 살다가 다른 나라로 포로로 끌려가서 더 이상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수 없게 된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이었다.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그 중의 버드나무에 우리가 우리의 수금을 걸었나니
이는 우리를 사로잡은 자가 거기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며 우리를 황폐하게 한 자가 기쁨을 청하고 자기들을 위하여 시온의 노래 중 하나를 노래하라 함이로다
우리가 이방 땅에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까.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을진대 내 오른손이 그의 재주를 잊을지로다."
예배는 우리가 매 주일, 혹은 매 번 하는 행위이다. 그래서 때로는 예배가 우리의 삶에 거의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 처럼 생각되지만, 성도가 예배를 드리지 못하게 되었을 때 비로소 큰 두려움을 느낀다. 성도는 예배를 드릴 때 가장 큰 안도감을 얻는다. 예배는 우리가 하나님께로 왕래하는 다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