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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윤의 실학으로 읽는, 지금」(14)
(14) 환상통을 앓는 ‘데브루예 부’와, ‘클렙토크라시’의 대한민국 ,
“하루아침에 부자가 되기 위해 너무 많이 훔치면 잡힙니다.” |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감사합니다. 국민 여러분의 위대한 선택에 머리 숙여 깊이 감사드립니다. 저는 오늘 대한민국 제 19대 대통령으로서 새로운 대한민국을 향해 첫걸음을 내딛습니다. 지금 제 두 어깨는 국민 여러분으로부터 부여받은 막중한 소명감으로 무겁습니다. 지금 제 가슴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열정으로 뜨겁습니다. 그리고 지금 제 머리는 통합과 공존의 새로운 세상을 열어갈 청사진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2017년 5월 10일, 제19대 대통령에 당선된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사다. 가슴이 뛰었다. 촛불혁명의 결실이 맺어지는 순간이었다. 감격에 찬 그의 목소리는 간결하면서도 힘차게 이어졌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지난 몇 달 우리는 유례없는 정치적 격변기를 보냈습니다. 정치는 혼란스러웠지만 국민은 위대했습니다. 현직 대통령의 탄핵과 구속 앞에서도 국민들이 대한민국의 앞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우리 국민들은 좌절하지 않고 오히려 이를 전화위복으로 승화시켜 마침내 오늘 새로운 세상을 열었습니다. 대한민국의 위대함은 국민의 위대함입니다. 그리고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우리 국민들은 또 하나의 역사를 만들어주셨습니다.” 문장은 맑은 물이 흐르듯 청량감이 있었다. 벗들과 광화문에 가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외치던 그 날들이 떠올랐다. 가슴이 울컥하였다. 새 대통령의 힘찬 말은 다시 이렇게 이어졌다.
“나라 안팎으로 경제가 어렵습니다. 민생도 어렵습니다. 선거과정에서 약속했듯이 무엇보다 먼저 일자리를 챙기겠습니다. 동시에 재벌개혁에도 앞장서겠습니다. 문재인 정부 하에서는 정경유착이라는 낱말이 완전히 사라질 것입니다. 지역과 계층과 세대 간 갈등을 해소하고 비정규직 문제도 해결의 길을 모색하겠습니다.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겠습니다.” 이어지는 문장은 길이 역사에 남을 명문이 되었다.
“거듭 말씀드립니다. 문재인과 더불어민주당 정부에서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이런 나라가 될 줄 알았다. 그러나, 그 19대 대통령이 20대 대통령을 위한 숙주(宿主)가 될 줄은 몰랐다. 19대 대통령을 숙주 삼아 태어난 20대 대통령은 국민들의 뜻은 아랑곳 않고 이렇게 명령한다.
“콩고민주공화국(민주콩고)에는 헌법이 14조뿐이다. 그러나 ‘헌법 15조’라는 관용어가 있다. 벨기에의 식민지였던 이 나라의 공용어인 프랑스어로 ‘데브루예 부(débrouillez-vous)’이다. 이 법조문을 해석하면 ‘너 스스로 해결하라.’ ‘혼자 알아서 헤쳐가라.’ ‘너 자신은 네가 지켜라.’라는 뜻이다. 이 ‘헌법 15조’를 공포하니 모름지기 너희들 스스로 살아가라. 이 말은 윤석열 정부는 국민의 의사를 따르지 않고 국민은 윤석열 정부에 순종하라는 뜻이다. 아니면 모두 검찰행이다.”
‘데브루예 부’는 국가가 국가 역할을 못하니, 각자 알라서 살아가라는 ‘각자도생 생존법’이다. 콩고민주공화국의 독재자 모부투 세세 세코(Mobutu Sese Seko,1930~1997) 시대에 창조된 말이다. 모부투는 벨기에 식민지 시대에 군에서 콩고인이 오를 수 있는 최고인 소령까지 지냈다. 그는 1970년 헌법 개정으로 자신의 ‘대중혁명운동(MPR)’을 유일한 합법 정당으로 만들어 장기 독재를 시작했다. 모부투는 반대파 세력에 대한 탄압과 자신의 우상화에 열정적이었다. 이는 부정부패와 경제 파탄으로 이어졌다. 1994년 르완다에서 일어난 끔찍한 인종 청소 당시 50만 투치족 학살에도 관여했다. 그렇게 장 베델 보카사, 시아드 바레, 이디 아민, 멩기스투 하일레 마리암과 함께 아프리카 역사상 최악의 독재자 중 한 명이 되었다.
모부투는 ‘친미·반공’을 내세워 언론을 탄압하고 국가 권력을 이용한 국민침탈 행위로 아예 ‘클렙토크라시(kleptocracy:도둑 정치)’라는 신조어도 만들었다. ‘클렙토크라시’는 ‘절도(kleptomania)’와 ‘민주주의(democracy)’의 합성어다. ‘도둑정치 또는 도둑체제’라는 이 말은 이제 독재체재로 개인의 권력을 탐하느라 국가의 사회·경제적 문제들을 등한시함으로써 위기에 직면한 악하고 무능한 권력자를 뜻한다.
냉전 종식과 함께 친미반공이 사라지자 서방 세계는 모부투에게 등을 돌렸다. 이후 무소불위 권력을 휘둘렀던 모부투는 몰락으로 치닫는다. 1997년 국민들에게 잡혀 축출된 그는 전립선암으로 한 병실에서 초라하게 죽었다. 자신이 언젠가 말한 “하루아침에 부자가 되기 위해 너무 많이 훔치면 잡힙니다.”라는 말처럼.
8·15 광복절 기념식조차 사라진 대한민국, 20대 대통령이 취임하며 정치·경제·언론,…심지어 역사 왜곡까지, 무엇하나 정상적인 게 없는 혼돈의 세상이다. 그래서인가. ‘데브루예 부’, ‘클렙토크라시’라는 말을 주억거리고 제 19대 대통령의 취임선서를 다시 읽으며, 욱신욱신 환상통(幻想痛, phantom pain, 신체 일부가 절단되었거나 원래부터 없어 물리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상태인데도 그 부위와 관련해서 체험하게 되는 통증)을 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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