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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람(伽藍) 스님들이 한데 모여서 수행 생활을 하는 장소, 산스크리트 어 ‘상가 아라마’를 음역한 승가(僧伽)람마의 줄임말. 절. 사찰(寺刹), 사원(寺院) 등이 같은말이다. 중국의 선종(禪宗) 사찰이래로 정립된 기본구조는 7당 가람이다. 즉 불전 강당 승당 주고 욕실 동사 산문 등이 7당(堂)으로 꼽힌다.
각오(覺悟) 마치 잠에서 깨는 것처럼 지혜로써 무명(無明)을 깨치고 진리를 훤히 깨닫는 것을 말한다. 같은 말로 보리 증오(證俉) 깨달음등이 있다.
각자(覺者) 스스로롤 깨닽고 남을 깨닫게 하는 이 또는 깨닫기 위한 수행을 완전히 마친사람. 부처를 뜻함
각해(覺海) 깨달음의 바다
각황(覺皇) 깨달음의 황제, 곧 부처님을 가림킴. 각왕(覺王)이라고도 한다.
간화선(看話禪)
선은 부처님이 깨우침을 얻은 직접적인 수행법이다.
교리 중심의 인도불교가 중국으로 전래되면서 수행법에 하나의 변화가 있었다. 이른바 화두나 공안인데 이는 하나의 문제를 깊이 참구해 그것의 본래 의미를 확실히 깨닫는 간화선으로의 변화다. 이 수행법은 화두(話頭)를 통해 수행자가 큰 의심을 일으키고 스스로 그 의심을 해결하는 수행법으로 언어에 숨겨져 있는 근본 내용을 정확히 깨달아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하는 방법이다.
선종의 중심이 된 간화선은 달마대사를 초조(시조)로 삼아 혜능 스님에 이르기까지 중국에서 발달하였다. 이때 정리된 1천7백여개의 화두가 정리되어 한국에 도입되면서 한국 선불교 수행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감로(甘露) 천신(天神)의 음료, 하늘에서 내리는 단이슬이라는 뜻. 불교 경전에서는 주로 부처님의 교법이 중생을 잘 제도하는 데에 비우하는 예로 쓰인다.
감로(甘露)도 조상숭배 신앙이나 영혼 숭배 신앙을 표현한 그림. 우란분경 변상도, 영가단 탱화, 감로탱황, 감로와도라고도 한다.
감응(感應) 중생의 감(感)과 부처님의 응(應)이 서로통하여, 불심이 중생의 마음 가운데 들어가고 중생이 이를 느껴 서로 사귀는 것
강림(降臨) 보살이 인간 세상으로 내려오는 것
거사(居士) 출가하지 않고 가정에 있으면서 불교에 귀의한 남자
건달바(健達婆)
일 없이 빈둥거리며 노는 사람을 건달이라고 하는데, 그 건달의 원형은 바로 건달바이다. 불교에서는 건달바가 팔부신중의 한 무리로 끼여 있고 천상의 음악을 연주하는 악사, 어린아이의 수호신으로 등장한다. 건달바의 산스크리트명은 간다르바(Gandharva)이다. 여기서 간다(gandha)라는 말은 香을 의미하므로 이 간다르바는 향을 먹고 살아가고 있다고 통속 어원적으로 해석되어 식향(食香) 또는 심향(尋香)으로 의역된다. 그것의 음역이 건달바이다. 건달바(健達縛)도 그 음역의 갈래이다. 이 신역시 단수로서 하나의 개체가 아닌 다수의 무리를 형성하고 있다. <리그베다>에 건달바의 이름이 등장하는데 온전한 신도 인간도 아닌 반신(半神)에 가깝게 묘사되고 잇다.
건달바의 무리들은 천상을 노닐면서 인드라 신의궁전에서 뛰어난 약사로서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해 신들을 기쁘게 한다 인도 말로 간다르바 비드야(Gandharva vidya)가 음악을 의미한다는 것에서도 이들과 음악의 깊은 연관성을 엿볼 수 잇다 건달바는 물의 요정이자 춤의 요정인 압사라(Apsaras)와 어울리며 그녀를 아내로 맞아들이고 잇다. 그는 수태를 관장하는 신으로서의 역할도 하는 것 같다. 건달바는 불교권에 들어오면서 제석천 인드라의 시중을 들며 음악을 연주하는 음악의 신으로 그 위치를 굳건히 다진다는 사실과 비천으로서의 그의 역할을 주시해 보아야 한다. 더불어 건달바가 팔부 신중, 관음33신, 천수관음 28부 중의 한 인물로 자리잡는 것을 보면 불교에 끼친 그의 영향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특히 밀교에서 건달바는 주로 어린아이들에게 해를 가하는50가지 귀신들을 묶어 태아와 소아를 보호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건달(乾?)바 심향(尋香), 식향 등으로 변역, 술과 고기는 일체 먹지 않고 향기만 먹고 사는 천신의 일종. 제석천(帝釋天)을 섬기고 음악을 담당하는 신으로 언제나 부처님이 설법하는 것에 나타나 찬탄하며 불법을 수호하는 역할을 한다.
걸망 출가자가 경전이나 발우등의 소지품을 넣고 다니는 큰주머니
겁(劫) ①인도에서는 범천(梵天)의 하루, 곧 인간세계의 4억 3천 2백만 년능 ㄹ1겁이라 함. ②불교에서는 보통 시간 개념으로는 헤아릴수 없는 아득한 시간, 대게 겁을 표현하는데 개자 또는 불석의 두가지 비유를 든다. 개자겁이란 둘레 40리 되는 성중에 개자를 가득 채워놓고 장수(長壽) 천인(天人)이 3년마다 한알씩 빼낸다면 모두 없어질 때까지의 기간을 1겁이라함, 불석겁이란 둘레 40리가 되는 돌을 하늘사람이 무게가 3수되는 천의(天衣)로써 3년마다 1번씩 스쳐서 그돌이 달아서 없어질 때까지의 기간을 1겁이라함.
겁화(劫火) 큰 3재(災)중의 하나로 세계가 괴멸할 때 일어나는 큰화재. 일곱 개의 해가 나타나 초선(初禪)천(天)가지 모두 다 이 화재로 불타 버린다는 무서운 불꽃
계송 부처님의 공덕을 찬탄하거나 교리를 기록한 것. 대략 3-8자를 1구로 하고 4구를 1게송으로 한다.
견성(見性) 자기의 심성을 사무쳐 알고 모든 법의 실상인 당체(當體)와 일치하는 정각(正覺)을 이루어 부처가 되는 것
결가부좌(結跏趺坐) 석가모니의 좌법(坐法)에서 유래된 것으로 앉는 방법의 하나. 양다리를 교차시킨 뒤 왼쪽발을 오른쪽허벅다리 위에 올려놓고, 오른발을 왼쪽 허벅다리에 올려놓는 좌법, 전가(全跏)부좌, 본가부좌, 여래(如來)좌 등으로 불림
경계(境界) 감각기관 및 의식(意識)을 주관하는 마음의 대상
경전과 선
경전들에 설하여진 부처님의 모든 가르침을 한데 묶어 ‘교’라 하여, 이를 선종의 ‘선’에 대비시키는 사고방식이 있어 왔다. 선종의 ‘불립문자. 교외별전’의 기치를 내 세워, 아무리 부처님에 의해 설해졌다 해도 분별 자체인 언어를 쓰신 바에는 상대성에서 벗어날 수 없음이 ‘교’인 것과는 달리 자기네야말로 부처님의 깨달음(마음) 바로 그것을 고스란히 이어 받고 있다는 주장이 그것이었다.
말할 것도 없이 그들이 이런 엄청난 선언을 하고 나온 근거로 내세우는 것은 염화 시중의 장면이다. 어느 날, 부처님께서 꽃을 들어 대중에게 보이시자 모두가 어리둥절해 있는 중에 홀로 가섭만이 빙그레 웃으니, 바로 이 순간 이심전심으로 부처님의 도의 진수는 가섭에게 전수되었다 함이 그것이다.
그리하여 조사들에 의해 계승되어 온 그것을 이어받고 있는 것이 선종인 점에서 선종이야말로 불교의 정통에 속한다는 것인데, 중요한 것은 그들의 이러한 발상에 담겨진 내용을 따져보는데 있으므로 염화시중의 사실 여부따위는 논외로 돌려둔다.
그러면 이 같은 견해에는 어떤 허설이 있었던가. 불교의 핵심을 이루는 것이 마음임을 대 전제로 하여 마음이 본체인 불성이야말로 우리모두의 본래면목이라 하고, 바로 그런 까닭으로 해서 깨달음이란 제 본래면목으로 돌아가는 일이요, 더 단적으로 말해서는 자기가 자기를 확인하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 하여, 돈오를 표방하고 나선 데에는 긍정이 간다.
<화엄경>에 보이는 ‘마음과 부처와 중생의 셋은 차별이 없다’는 말씀은 모든 경전에 공통되는 시각이라 해도 좋고, 본래의 자기를 되찾는 일이요. 깨달음이라 함도 <법화경> ‘궁자유’가 대표하듯 대승일반의 견해인 까닭이다. 그리고 돈오설 또한 생즉열반 번뇌즉보리라는, 대승의 표방하는 원융의 도리와 일치한다.
그러면 이것으로 만사는 끝난 것일까. 어쩌면 ‘교외별전’이라는 한마디로 팔만대장경에 설해진 온갖 교리의 무거운 짐에서 벗어난 듯 싶어 홀가분하게 느낄지도 모른다. 그러나 장점은 곧 단점도 될 수 있으므로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일생동안 ‘한 마디도 설한 바 없다(불설일자)’는 <능가경>의 말씀에 나타나 있듯 부처님께서는 언어의 한계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계셨다. 그러므로 설하신 말씀보다는 그 말씀 뒤에 깔린, 말씀하지 않으신 부분도 중요하다는 뜻이 되겠으나, 보기에 따라서는 설하신 부분도 똑같이 중요하다고 하겠다. 그 말씀들은 말할 수 없는 부분들의 최대한의 반영이요 시사인 까닭이다. 그런 터에 이를 도외시해도 좋을 것인가. 물론 교와 선이 다르지 않다는 이견을 내놓은 선사들도 없지는 않다. 그러나 이런 목소리가 교외별전의 합창소리에 짓눌려 버린 것은 재고되어야 한다.
선의 수행만해도 그렇다. 여러 형태의 선정이 부처님에 의해 설해졌건만 눈길하나 주지 않았는데, 과연 이래도 좋은 것인지, 이 또한 의문이 아닐 수 없다.
돈오에 의해 얻었다는 깨달음도 마찬가지다. 중국 특유의 방법으로 수행하여 많은 이들이 고차원의경 지에 도달했음은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에 만족하고 있었다면 문제가 있다. 불도의 수행이 성불에 이르러서야 끝나는 사실이 증명하듯 진정한 깨달음은 부처님의 깨달음 하나밖에 없음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아라한이건 십지의 보살이건 스스로 족하다 여길 처지는 결코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자기 나름의 깨달음을 얻고 난 선사들은 불도를 성취한 듯 자처해 부처님에 대해 불손한 언행까지 서슴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분들을 부처님이라 보아야 하겠는가. 아니면 증상만에 빠진 것이라 보아야 하겠는가. 또 깨달음을 인가하는 근거도 애매하다. 오십이위 같은 기준없이 스승의 주관에 의존한다면 저와 닮은 선사만 길러냄이 되고 말 것이다.
이제 선도 일대 개혁을 감행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뼈아픈 반성 위에 흙을 북돋우고 거름을 주어 새로운 생명체로 되살려야 할 것이 요구된다. 그런 점에서 ‘경전’이라는 이름의 거울 앞에 앉아, 지금까지의 선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차근히 살펴봄이 있어야 할 것이다.
계(戒) 죄악을 범하지 못하게 하는 규정, 방비(防備)지악(止惡)을 뜻함
계족(戒足)도(道) 계의 발로써 도의 길을 밟아서 모든 덕이 원만하고 일체의 악이 다 없어져 적멸한 원적산에 올라간다는 뜻.
계청(啓請) 다라니를 외우기 전에 관세음 보살과 다라니를 찬탄하며 관세음 보살을 따라 큰 원(願)을 일으키며 여러 불보살에게 청원하는 것
고해(苦海) 사바세계를 듯함, 이세상은 생로병사(生老病死)등의 4고(苦) 8고(苦)가 있는 괴로움의 바다라는 뜻. 8고는 생로병사외 사람하는 이와 헤어지는 고, 미워하는 사람과 만나는 고, 구하여도 얻지 못하는 고, 오온(五蘊)에 집착되어 있기에 일어나는 고 등의 4고를 더하여 말한다.
곤륜(崑崙) 곤륜산을 뜻함. 중국 절강성에 있는 산이름. 옥이 많이 나오며 불사(不死)의 선녀인 서왕모가 산다는 서방의 낙토(樂土)를 상징함.
공양(供養) 공시(供施), 공급(供給), 공(供)이라고도함, 공급하여 자양(慈養)한다는 뜻. 음식, 옷 등을 3보, 부모, 스승, 죽은이등에 공급하는 것
과(果) 열매라는 뜻. 원인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법을 말한다. 선한 원인에따라 일어나는 법을 선과(善果)라고 하며, 부처의 과를 불과(佛果), 묘과(妙果), 무상(無上)과라고 한다.
관(觀) 지혜로서 개관의 대경을 조견하는 것. 마음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
관세음(觀世音) 보살 일체중생의 온갖 소리를 모두 자유 자재롭게 관찰하고, 천개의 눈과 천 개의 손으로써 모든 중생을 고통에서 구제해 주는 보살 이름, 관자재(觀自在) 보살 또는 줄여서 관음 보살이라고도 함.
극락전
극락전은 아미타부처님이 정좌하고 계신 곳이다. 좌우에 아미타불의 권능으로 고해의 중생을 극락으로 인도하는 관세음보살과 대세지 보살 또는 관세음 보살과 지장보살이 자리잡고 잇다. 삼존불 뒤쪽으로 극락의 법회장면을 보사란 극락회상도나 극락구품탱화 등을 현괘하여 극락의 모습을 보다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극락전은 극락정토 왕생을 위한 신행의 장소이며, 우리에게 깃든 무량한 빛과 영원한 생명을 찾는 수련의 도량이다.
극락은 고뇌하는 중생의 영원한 피안이다. <십육관경>에는 아미타불의 극락정토를 향한 설화가 있다. 부처님 당시 마갈타국의 아자타 태자는 부왕인 빔비사라왕을 몰아내고 왕위를 찬탈 옥에 가둬 굶겨 죽이려 했다. 몸에 벌꿀을 바르고 감옥을 드나든 부인 마이데히 마져 감금했다. 이때 불전에서 깨끗한 세상을 보여달라고 서원한 부인 앞에 부처님은 광명을 뿜어 모든 부처님 정토를 보여 줬다.
부처님은 아미타불의 모습을 마음으로 생각하고 극락세계를 주야로 생각하면서 자비심, 삼보 귀의, 계행 등 세가지 복업을 닦을 것을 강조하셨다. 아미타불의 참모습은 법계에 두루 하고 모든 사람의 마음 속에는 아미타 여래가 항상 존재하고 계신 것이다. 부처님을 생각하는 마음, 그 마음이 곧 아미타불이요, 일심으로 아미타불을 생각할 때 모든 죄업은 이미 소멸되어 있고 일체의 공덕은 이미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아미타의 참모습은 일심에서 발현된다. 극락의 핵심은 여기에 있다.
광명과 수명과 공덕의 상징인 아미타불. 구도자는 그 이름을 통하여 깊은 지혜를 배우고 청정본원이 되는 것이다. 망상의 잡초가 거름으로 바뀔 때 마음은 청정해지고 극락은 그 자리 정한 행을 배우고 위 없는 깨달음을 배운다.
참 보살이 되자. 그대 아미타의 본원이 나에게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면 아미타불의 무량한 빛과 무량한 수명이 우리마음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 그 자체를 알게 될 것이다.
구룡(龍) 아홉 마리의 용. 석가모니가 탄생할 때, 하늘에서 아홉 마리의 용이 내려와 입으로 물을 뿜어 깨끗이 씻어 주었다는 설화에서 유래됨
구업(口業) 입으로 지은 죄업, 즉 거짓말, 발림말, 이간하는말, 악담하는 말등을 말함.
구족(具足) 빠짐업이 고루 갖추었다는 뜻
군다리 보살 보배병을 들고 있으며, 일체 고액을 제도해 주는 일을 맡아서 자비를 펴는 보살이다.
궤범(軌範) 본보기가 되는 규범이나 법도.
귀면성
눈은 반구형으로 돌출됐다. 코는 중앙에서 넓은 자리를 차지하면서 높이 솟아 콧구멍이 드러났다. 머리카락이 있고 눈위족 좌우엔 큰 뿔이 솟았다. 입을 크게 벌려 커다란 치아를 드러냈다. 아래위로 나있는 날카로운 송곳니가 위압적이다.
금산사 미륵전 궁창의 귀면의 모습이다. 귀면은 ‘낯휘’라고도 불린다.
‘낯’은 얼굴 ‘휘’는 몇 가지의 색깔띠로 나눠 채색한 것을 가리킨다.
강화전등사 대웅전, 법주사 팔상전, 수덕사선방, 화엄사 원통전등에 새겨진 ‘낯휘’엔 당초 비슷한 풀잎과 봉오리 진 연꽃을 물고 있다. 이러한 형식은 사찰 장식에만 나타나는 것으로 산발한 머리에 뿔이 달린 우리나라 전래의 도깨비와는 구별된다. 도깨비가 인간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반면 사찰의 귀면상은 사찰과 불법수호의 기능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귀면상에서 흥미로운 것은 바라보는 시선이 다양하다는 것. 단독으로 장식된 경우는 주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으나 둘 이상일 경우에는 바라보는 방향이 각각 다르게 설정돼 있다. 이는 언제 어느 것으로 들어올지 모를 사악한 무리들을 막아 사찰을 수호하는 벽사상의 기능을 한다는 의미다.
최근 귀면에 대한 다양한 이론들이 제기되고 있다. 귀면으로 알려진 신라기와의 조각들이 귀신이 아닌 용의 얼굴을 새긴 것이며, 이에 따라 그 동안 ‘귀면와’로 불려온 기와 이름을 ‘용면와’로 불러야 한다는 주장이다. 성덕대왕 신종의 용두와 중국 문헌서 나타나는 용 모습을 근거로 한 ‘용면와’설은 안압지 사천왕사지 등에서 나온 기와를 ‘귀면와’로 불러온 학계에 대치되는 것이다.
사찰의 귀면상은 여의주 외엔 다른 어떤 것도 입에 물고 있지 않는 용과 달리 풀잎이나 연꽃을 물고 있다. 인도 불교사원의 하나인 아잔타석굴 사원에 새겨진 키르티누가상은 우리나라 사찰의 귀면상과 유사하다. 키르티무가는 인도 고대의 신인 시바의 상징물이었으나, 이후 시바사원에 거는 전형적인 장식물이 되었고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불교에 수용되어 불교사원의 수호신 역할을 하게 되었다.
나무 산스크리트 어의 음역어, 원뜻은 귀의(歸依), 돌아가 의지함, 생명을 바쳐서 의지하는 것 등을 뜻함
나찰(羅刹) 악귀의 이름, 야차(野次)와 함께 비사문천의 권속이라 하며 또는 지옥에 있는 귀신이라고도 한다. 여성은 나찰녀라고 함.
남순 동자(童子) 관세음보살을 왼쪽에서 모시는 보처(補處)존의 이름.
다기(茶器) 불단 위에 맑고 깨끗한 물을 올리는데 쓰이는 그릇.
다라니 총지(摠持), 능차라고 번역함. 모든 악한 법을 끊어 없애고 한량없이 좋은 법을 지니어 가진다는 뜻. 법문으로 된 긴 구(句)를 번역하지 않고 그대로 독송하는 것으로서 다라니는 신비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는 주문입니다. 보살님이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다라니(무량하고 무변한 이치를 얻어 상실하지 않는 힘)를 얻어야 하며, 다라니를 얻으면 불법을 잊어버리는 일이 없으므로 대중 가운데에 있어도 두려움 없이 불법을 설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당간지주
당간을 지탱하기 위해 당간 좌우에 세우는 잣대이다. 사찰구조물인 당간지주는 그 곳이 신성한 사찰이 있는 지역이라는 것을 나타낸 선사시대의 ‘솟대’신앙과도 연결된다.
찰간 또는 장간 정간 번간 등으로 불리는 당간지주는 주로 나무돌 구리로 불리는 당간지주는 주로 나무 돌 구리 쇠 등으로 만든다. 당간의 끝에는 보통 당을 달지만 현재 당이 남아있는 것을 거의 볼 수 없으며 당간을 지탱하는 지주만이 남아 있다. 지금까지 알려진 당간지주들은 모두 통일 신라 이후의 것이며 그 이전에 조성된 것은 남아있지 않다.
부석사 당간지주, 숙수사지 당간지주를 비롯해 기단부까지 완전하게 남아있는 금산사당간지주등은 통일 신라의 것으로서 각 부에서 시원하고 세련된 느낌을 주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827년이라는 제작연대를 밝힌 명문이 새겨져 있는 중초사지 당간지주는 다른 당간지주의 편년을 고찰할 수 있는 기준자료가 되고 잇다. 그러나 보원사지 당간지주등 고려시대의 당간지주는 무늬가 약화돼 정교하지 못하고 치석도 고르지 않아 둔중한 느낌을 준다. 조선시대에 들어서면 당간지주는 대개 작고 낮으며 선문등의 조식이 없는 지주에 목조의 당간을 세웠는데 그나마 지금은 당시 중창한 여러 사찰에 그 흔적만 남아 있다.
당간은 ‘그릇된 길을 버리고 정법을 창현한다’ 는 파사현정을 뜻한다. <범어사지적>에 의하면 33범천을 상징하여 33단을 세웠다고 적혀있고 <고려도경> 흥국사조에는 개성흥국사에는 10여장즉 30미터 되는 동주당간이 법당 뒤
마당에 새워줘 있다고 전해진다. 당간표면에는 황금칠을 하고 당간 정상에는 봉황의 머리장식을 했으며 그곳에 비단기인 당을 달았다고 기록돼 있다.
978년에 세운 보원사법인국사보승탑비는 당간을 절마당에 세웠으며 범패를 그위에 달았음를 말해준다. 목제당간은 희귀하다. 담양 읍내리 석당간 옆에 세워져 있는 비문에 의하면 현존하는 석재당간은 1839년에 중창한 것으로 원래는 나무당간이었으나 큰 태풍에 의해 절단되어 석제로 대치 했다고 한다. 당간을 받치기 위해 선 보통 연화문을 조각한 받침들을 놓거나 기단형식이 대로 받치고 있다.
대각(覺) 스스로 깨닫고 남을 깨닫게 하는 것, 부처님의 다른 이름
대륜(大輪) 보살 태장계 금강수원(金剛手院)의 33존중 하나. 미혹을 끊는 지혜와 덕이 매우 크기 때문에 대륜(大輪)이라고 한다. 손에는 3고(錮)의 금강저를 들고 있기 때문에 대륜 금강(金剛)이라고도 한다.
대세(大勢)지 보살 뛰어난 지혜를 상징하며 3악도(惡道)를 떠나 위없는 힘을 얻게 해주고 모든 것을 베풀어 주는 보살이다. 아미타 3존불 중하나로서 아미타불의 우보(右輔)처 보살이다. 득대세(得大勢) 보살이라고도 하며 줄여서 세지 보살이라고도 한다.
대장경(大藏經) 부처님의 교설을 모아 놓은 경문에 대한 총칭. 일체경(一切經) 또는 삼장경이라고도 함. 줄여서 장경(藏經)이라고 한다.
대중
사람들 사이에서 널리 불려지는 노래를 ‘대중가요’라고 하고 그 노래를 부르는 이를 ‘대중가수’라고 부른다. 일반 서민들 누구나가 이용하는 목욕탕은 ‘대중탕’이라고 하며 사람들 사이에서 두루 읽혀지는 소설을 ‘대중소설’이라 한다. 많은 수의 사람들을 일컫는 개념인 동시에 특수층에 대한 노동자, 농민 등의 일반서민들을 일컫는 개념이 바로 ‘대중’이다.
그러나 대중의 본뜻은 많은 수의 스님들 불교교단을 구성하고 있는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등 사부대중을 가르키는 것으로 ‘법회에 참석하는 사람들을 총칭’하기도 한다. 범어의 ‘mahasamgha’의 번역으로 경전마다 부처님께서 대중들에게 이르셨다는 구절을 많이 볼 수 있다.
도량 도를 닦는 장소, 불교의 수행처를 가리키는 말 석가모니 부처가 성도(成道)한 장소.
도산(刀山) 칼산 지옥. 10대지옥의 하나로서 칼이 박혀있는 산을 밟고 가는 고통을 겪는 지옥
도신
선종을 우리시대까지 오게 한 토대를 구축한 인물은 3조 승찬의 탁월한 제자 도신이다. 속성이 사마씨인 도신은 산속에 은거하며 수행을 하고 있는 승찬선사를 찾아가 가르침을 구했다. 도신선사는 이전의 스승들과 다르게 투철한 수행을 바탕으로 한 대중교화활동을 왕성하게 펼쳐 선종을 하나의 종파로 확립하는데 성공한다. 60년동안 장좌불와를 한데서 밝혀지듯 투철한 수행으로 폐불과 전란속에서 하나의 종파를 확립한 것으로 보인다.
도신스님의 심지 법문을 들어보자. “깊은 깨달음에 도달한 보살은 스스로 생사에 들어 중생을 이끌고 돕지만 집착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는다. 만일 중생에게 생사의 번뇌가 있음을 보고 내가 그들을 이끌고 돕는다라고 말한다면 보살이 아니다. 중생들을 생사의 번뇌에서 구원한다고 생각하면 대승의 수행자가 아닌 것과 같다. 남을 피안으로 이끌어 주는 것은 마치 허공을 이끄는 것과 같다.”
실천과 수행을 동시에 강조한 도신의 법문은 대승불교의 원형을 전하고 있는 듯하다. 스스로 생사에 들어 중생을 이끌고 돕지만 집착하지 않는 마음이 바로 수행의 요체임을 일깨우고 있다.
60년 장자불와의 신화가 말해주듯 시대 말 혼란한 상황 속에서 5백여명의 수행자가 그의 문하에서 수학했다는 것은 수행과 대중포교의 전범이었음을 생생하게 전해준다.
독성각
“천태산 위에서 홀로 선정을 닦고 계신 나반존자께 귀의합니다.”
남인도 천태산에서 홀로 선정을 닦는 성자 나반존자. 그는 독성각의 주인이다. 삼명과 자리이타 두가지 이익을 두루 갖춘 나반존자는 중생의복을 키우는 복밭이 돼 미륵불이 출현하는 용화세계가 올 때까지 세상에 머무른다고 전한다.
삼명이란 전생을 아는 지혜를 뜻하는 숙명명, 미래를 꿰뚫는 천안명, 번뇌를 끊는 지혜 누진명을 말한다. 나반존자는 이같은 삼명이 능력으로 자리와 이타의2리를 원만하게 이룬다.
구전에 의하면 독성은 부처님의 제자로서 아라한과를 얻고 부처님의 수기를 받아 남인도 천태산에 머무르다가 말법시대 중생의 복덕을 위해 출현했다고 한다. 말세의 현실적 행복을 강조하는 신앙 유형이 널리 유행하게 됨에 따라 독성각을 따로 건립하고 모든 소원을 들어준다는 나반존자만을 모시게 된 것이다. 독성각에는 특수하게 나반존자상만을 모시는 경우가 있기는 하나, 일반적으로 독성탱화를 많이 봉안한다. 독성탱화는 수독성탱 나반존자도라고도 하는데 보통 16나한도와 같은 구도법으로 그려져 있다.
불교의식집의 독성청 유치를 보면 나반존자는 “층층대 위에 조용히 머물러 선을 즐기거나 낙낙장송 사이를 자유롭게 오가며,---- 눈처럼 흰눈섭이 눈을 덮고 있으나 공을 관하고 있다”고 했다. 독성탱화는 이 글과 같이 천태산과 소나무, 구름등을 배경으로 하여, 희고 긴 눈썹을 가진 비구가 오른 순에는 석장을 왼손에는 염주 또는 불로초를 들고 반석 위에 정좌 하고 있는 모습으로 그리는 것이 통례다.
우리나라 독성각중 영험이 빼어나기로 널리 알려진 곳은 청도 운문사 사리암을 비롯하여 서울 수유동의 삼성암, 합천 해인사의 희랑대 등을 꼽을 수 있다. 나반존자는 무섭고 엄해서 기도하는 이는 마땅히 목욕재계하고 공양물도 제대로 갖춰야 한다고 전해진다.
그는 지극한 정성과 마음의 기도를 요구하는 것이다. 나반존자의 참뜻을 향해 독성각을 찾자.
돈오(頓悟) 일순간에 깨우침을 얻는 것. 깊고 묘한 교리를 듣고 단박에 깨닫는 것
동안거(冬安居) 겨울동안에 승려들이 한곳에 모여 있으면서 도업(道業)을 수행하는 것. 여름철의 안거는 하안거라고 함
동지
동지는 이십사 계절의 하나로, 태양이 이때 가장 남쪽에 기울어져 한낮의 태양이 뜨고 지는 방향도 가장 남쪽으로 기울어지며, 북쪽으로 갈수록 그 도는 심하여 북극은 수개월 동안 태양이 전혀 지평선위로 나타나지 않는 곳이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태양이 떠있는 시간이 일년 중 가장 짧고 열량도 가장 적으며, 밤이 길고 낮이 짧습니다.
그러나 이날을 기점으로 짧아만 지던 낮의 길이가 다시 길어지기 시작하는 날입니다. 그래서 동지를 일양시생지일이라 하는데 양의 기운이 비로소 시작되는 날이라는 뜻입니다. 밤이 가장 긴 날이면서 양이 시작하는 날이라는 것은 매우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인간만사는 홍진비래요, 고진감래이듯이 자연 현상도 이처럼 양지와 음지가 교차하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민간에서 동지팥죽을 쑤어서 대문이나 문간에 죽물을 뿌림으로써 악귀를 쫓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이날 팥죽을 뿌리는 유래는 <형초세시기>에 보면 공공씨라는 사람이 불효자식을 두었는데 이 아들이 동짓날에 죽어서 역귀가 되어서 이를 천도하기 위해서 였다는 것입니다.
죽어서 역귀가 된 공공씨의 아들은 평소에 붉은팥을 무서워했기 때문에 동짓날에 붉은 팥죽을 쑤어서 병과 재앙을 면하기를 빌었다고 합니다. 또 삼국유사에는 선덕여왕을 사모한 지귀라는 사람이 죽어서 역시 역귀가 되었는데 전국적으로 피해가 극심하므로 팥죽을 쑤어서 지귀귀신을 물리친 데서 비롯되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절에서 구병시식을 할 때 붉은 팥을 사용하는 것이라든지, 부적을 붉은 색깔의 경명주사를 사용하는 것은 같은 맥락에서라고 볼 수 있습니다.
동짓날은 하지로부터 짧아지던 낮 시간이 이날을 기하여 조금씩 길어지기 때문에 새해가 시작되는 날이라고 보고 ‘작은 설’이라고도 여겼고, 천문학계에서는 이날을 신년의 원단으로 치는 풍습도 있었던 것입니다.
또 작은 설이라 하여 동지 팥죽을 정오에 먹는 떡국과 마찬가지로 나이를 한 살 더 먹는 표상으로 삼은 것은 역시 고대에는 새해에의 첫날 즉 설로 생각했던 유풍으로 보입니다.
이 동지와 관련된 풍습을 살펴보면 이날에 관상감(기상대)에서는 달력을 임금에게 올렸고 임금은 이 달력을 모든 관원에게 나누어 주었는데 하사하는 달력에는 동문지보라는 임금의 인장을 찍었다고 합니다. 절에서도 대개 동짓날에 새해의 달력을 배포하는 풍습이 있습니다.
요즘은 동짓날에 특별히 하는 일이 없지만 옛날에는 농사와 관계되는 일로 무척 바빴다고 합니다. 새끼도 꼬고 가마니도 짜고 지붕을 새로 이는 일도 이 달에 했던 것입니다.
농가월령가에 보면 이 달을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동지는 명일이라, 일양이 생하도다.
시식으로 팥죽 쑤어 이웃과 즐기리라.
새책력 반포하니 절후 또한 어떠한고
해 짧아 덧이 없고 밤길어 지리하다.
절에서도 해마다 이날이 되면 팥죽을 쑤어서 부처님 전에 공양을 올리고 화를 멀리 여의고 복을 받고자 하는 원화소복의 기도를 올리고 있습니다.
동지팥죽과 나한님의 신통에 얽힌 일화에 관한 이야기가 잇습니다
마침 그날은 동짓날이어서 절에서는 팥죽을 쑤어 부처님께 올리는 날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날따라 마하사의 공양주보살님이 그만 늦잠을 자고 말았습니다.
주지 스님이 공양주 보살님을 깨웠습니다.
공양주 보살님은 정신이 번쩍 들어 부엌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늦잠을 잔 덕분에 아궁이의 불씨마저도 까맣게 꺼져 버리고 재만 남아 있었습니다. 요즘이야 웬만한 산중 절에도 가스렌즈를 사용하고 있지만 옛날에는 성냥도 없었기 때문에 불씨를 신주단지 모시듯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불씨가 꺼져 버리고 재만 남았으니 큰일이었습니다.
공양주 보살님은 그만 가슴이 덜컹 내려 않고 눈앞이 깜깜했습니다. 늦장을 부려 부처님께 드릴 공양이 너무 늦어진 것입니다.
얼른 절 아랫동네에 사는 김서방네 집에 가서 불씨를 얻어오려고 발길을 재촉했습니다. 동짓달 찬바람이 쌩쌩 불고 눈은 발목까지 푹푹 빠지는데 그날 따라 그 집은 멀리 느껴졌습니다. 한참 내려가 김서방을 큰소리로 불렀습니다
그러자 그는 “아니 아침부터 공양주보살님이 웬일이십니까?”
“불씨를 얻으러 왔습니다. 제가 그만 늦잠을 자는 바람에 오늘이 동짓날인걸 깜빡 잊었습니다.”
그러자 김서방이 이상한 듯이 “아까 행자님이 와서 불씨를 얻어 갔는데 아니 불이 또 꺼졌나요?”
“행자님이라니요? 우리 절에는 행자님이 없는데요.”
“무슨 말씀이세요. 조금 전에 행자님이 와서 불씨를 얻어 갔어요.” 공양주 보살님은 마치 도깨비에 홀린 것 같았습니다. 그 절에는 주지스님과 자기 두 사람 밖에 없는데 행자라니 이해 할 수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다시 부리나케 달려서 절에 도착한 공양주 보살은 부엌에 들어가 보니 정말 놀랍게도 아궁이에서는 장작불이 활활 타고 있었습니다. 공양주 보살은 이상한 생각이 들었지만 우선 서둘러 팥죽을 쑤었습니다.
가까스로 팥죽을 쑤어 올리던 공양주보살님은 까무러치게 놀라고 말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나한님이 공양주를 내려다 보면서 빙그레 웃고 계시는데 그 나한님의 입가에 붉은 팥죽이 묻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공양주 보살님은” 아이구! 나한님 잘못했습니다.” 하고 그대로 엎드려 크게 절을 올렸습니다. 김서방네 집에 불씨를 얻으러 갔던 행자가 바로 그 나한님이었던 것입니다.
어느 절에나 나한전에 모신 나한님의 입술이 유난히 붉은 것은 바로 동짓날 드신 그 팥죽이 묻어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나한은 아라한의 준말로 장로 즉 남방불교에서는 가장 높은 경지에 이르신 성자를 말합니다. 나한전에 모신 분들은 부처님 당시의 제자들입니다. 16나한, 오백나한등은 나한전에 모신 아라한의 숫자를 말합니다.
예부터 나한님들은 신통력 들이 대단하셔서 나한님과 관련된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많이 전해오고 있는데 이 팥죽과 관련된 일화는 나한님을 우리 인간과 차원이 다른 신앙대상으로서 보다는 친근한 이웃으로 생각하게 하는 재미있는 설화입니다.
득도(得度) 생사의 고해를 건너 이상향인 열반에 이르는 것. 또는 불도 수행을 완성하는 것.
라훌라
라훌라가 도를 깨닫기 전이었다. 그는 아직도 세속의 때가 남아있어 심성이 거칠고 사나웠으며 그의 말에는 진실성이 없었다. 그래서 부처님은 어느 날 라후라를 불러 말씀하셨다.
“너는 현재정사에 가서 있거라. 말을 삼가고, 마음을 잘 다스려서 부지런히 정진하도록 하여라.”
라후라는 부처님 곁을 떠나 현재정사에서 90일 동안 머물면서 紫신의 허물을 부지런히 고쳐나갔다.
하루는 부처님께서 그곳을 찾아오셨다. 라후라는 반가이 부처님을 맞아들이고 평상을 펴드렸다. 부처님은 평상에 걸 터 앉으신 채 말씀하셨다.
“대야에 물을 길어와서 내 발을 씻어라.”
라후라는 물을 떠와 부처님 발을 씻어 드렸다. 발을 다 씻고 나자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발씻은 물을 보아라. 이물을 먹거나 양치질을 할 수 있겠느냐?”
라후라는 부처님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잠시 멈칫하다가 대답했다.
“이 물은 쓸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본래는 깨끗한 물이었으나 발을 씻어서 더러워졌기 대문에 사용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다음과 같이 들려주셨다.
“너도 이 물과 같다 비록 나의 제자요, 국왕의 손자로서 세상의 영화를 버리고 사문이 되었지만 너의 마음 속에는 탐진치의 삼독이 가득차 있으니 더러운 물과 무엇이 다르겠느냐?”
이렇게 말한 다음 다시 라후라에게 이르셨다.
“발씻은 물을 버려라.”
라후라는 대야의 물을 버렸다. 부처님이 또 물으셨다.
“비어 있는 대야에 음식을 담을 수 있겠느냐?”
“담을 수 없습니다. 이미 발 씻은 대야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음식을 담을 수 없습니다.”
너도 이 대야와 같다. 비록 사문이 되었으나 입에는 진실한 말을 담지 않고, 심성이 거칠며 부지런히 수행할 생각을 하지 않으니 너에 대한 평판은 마치 발 씻은 대야처럼 나쁘게 나 있다. 말씀을 마치신 부처님은 대야를 던지셨다. 대야는 굴러가다가 멈추었다.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너는 혹시 저 대야가 깨어지지 않을까 걱정을 했느냐?”
라후라가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발을 씻은 그룻이요, 값싼 물건이라 설사 깨어진다 해도 그렇게 아까울 것은 없습니다.”
“너 자신도 내동댕이 쳐진 대야와 같다. 계행을 지키지 않고, 거친 말과 나쁜 욕설로 남을 중상하는 일이 많으므로 남들이 싫어하고 있다. 나중에 죽으면 삼도에 윤회하면서 한없는 괴로움을 받을 것이다. 여러 부처님과 성현들이 너를 아끼지 않는 것은 발 씻은 대야를 아까워하지 않는 것과 같으니라.”
라후라는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비로소 자신을 깨닫고 열심히 정진하였다.
마군(摩軍) 악마들의 군병. 불도 수행을 방해하는 온갖악한 일을 모두 마군이라고도 한다.
마니(摩尼) 여의주(如意珠)를 가르킴. 이구슬은 용왕의 뇌속에서 나온것이라 하며 사람이 이 구슬을 가지면 독이 해칠수 없고 불에 들어가도 타지 않는 공덕이 있다고 함.
마하(摩何) 크다, 많다, 뛰어나다는 뜻
마하살(薩) 대사(大士)의 원어인 마하삿트와의 음역어로 보살에 대한 미칭(美稱). 보살은 자리(自利) 이타(利他)의 대원행(大願行)을 가졌으므로 마하살이라 함. 부처를 제외하고 중생가운데서 맨 윗자리에 있으므로 대(大)자를 더하여 대사라고 한다.
만다라 모든 법을 원만하게 갖추어 결함이 없는 것을 뜻함. 단(壇), 도량, 윤원구족(具足)등으로 번역된다.
만복사의 저포기 (김시습의 금오신화1편)
남원 고을에 부모를 일찍 여의고 항상 외롭게 살아온 노총각 양생이 있었습니다.
양생은 아름다운 배필을 짝지어 달라고 만복사 부처님에게 발원했습니다.
어느 날 부처님은 양생의 정성에 감복하여 화현을 하셨습니다.
양생은 저포(윷놀이)로 내기를 하여 자신이 이기면 소원을 들어달라고 합니다.
부처님은 양생이 이기도록 해주십니다.
내기 약속대로 양생은 한 여인을 만나 그녀와 사랑에 빠집니다.
그러나 3일 후 만복사에 갔다가 자신과 사랑한 여인이 3년 전에 죽은 처자임을 알게 됩니다. 양생은 천도기도를 하여 그 여인이 천상으로 편안하게 돌아가도록 해줍니다.
이렇듯 불교는 발원사상입니다. 발원을 하면 무엇이든지 이루어 질 수가 있습니다.
끊임없이 정진하십시오.
악을 그치고 선을 닦는 지악수선의 생활
낳고 죽는 괴로움을 여의는
나고 죽음이 없
는 열반의 즐거움을 얻는 이고득락의 수행생활과
어리석음을 굴려 깨달음을 여는 전미개오의 수행생활
불사 수행하여 복덕구족 하여지고
염불 수행하여 삼매현전 하여지고
간경수행하여 혜안통투 하여지고
주력수행하여 업장소멸 하여지며
참선수행하여 의단독로 하여지이다.
경전결집 육사성취 정신을 확실히 믿고 받들어 행하는 것이 불자의 할 일입니다.
각자 근기에 맞는 불교5대 수행으로 회향해야 합니다.
불사수행이란 성불인연을 짓는 일입니다. 인연법이든 근본법이든 간에 소중한 것이 있다면 복덕과 지혜입니다. 불사는 복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기 때문에 경전(공경 경. 밭전)
부모나 은사 어른과 국가의 은혜를 갚는 은전(은혜은. 밭전).
불쌍한 사람을 돕는 비전(자비비. 밭전)등 삼복전에 주력해야 합니다.
주력수행은 진실한 말인 진언과 선법을 모두 지녀서 흩어져 잃어버리지 않게 하는 다라니를통하여 모든 악한 법을 버리고 한량없는 착한 법을 가지는 것입니다.
간경수행은 경을 보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경문을 소리없이 눈으로 보고 읽어 나아가는 것이 좁은 의미에서의 간경 수행입니다. 말하는 것입니다.
염불수행은 올바른 마음을 가지고 부처님의 이름을 부르면 됩니다.
올바른 마음의 첫걸음이 부처님 마음입니다. 나의 본심은 허상이 아니고 불생불멸의 실상임을 관해 들어가면 부처님의 성품과 같은 불성이 나에게도 있다는 확신 속에 곧 견실심을 보는 수행입니다.
백사람이 모이면 백사람의 기호와 근기가 다르기 때문에 불자들이 자신의 근기에 맞춰 한가지의 수행을 해야 한다. 어떤 경우라도 부처님의 모든 선을 받들어 행해야 하며, 그 마음을 청정히 받들어야 합니다. 악을 그치고 마음을 청정히 해서 선을 닦아 깨달음을 이루는 것이 부처님 가르침입니다. 내 마음 가는 곳에 부처님이 계시니 일과이치에 따라서 불교를 믿으십시오.
만월(滿月)보살 둥근 달과 같이 공덕이 원만하고 상호가 원만한 보살로서 빛을 모든 중생에게 골고루 비춰준다. 관음 보살의 화신임.
명주(明珠) 명월(明月) 마니 라고도 함. 보주의 빛이 밝은 달과 같으므로 이롸 간이 말함.
명호(名號) 이름과 호칭. 특히 불보살의 이름을 가리키는 말.
목어(1)
한 스승이 배를 타고 강을 건너는 데 등에 커다란 나무가 난 물고기가 뱃전에 머리를 들이대고 슬피 울고 있었다. 전생을 살펴보니 그 불고기는 바로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일찍 병들어 죽은 자신의 제자였다. 가여운 생각에 스승은 수륙재를 베풀어 물고기의 몸을 벗어나게 해주었더니 그 날밤 스승의 꿈에 나타나 이렇게 말하였다.
“바라옵건대 스님, 저의 등에 달린 나무를 베어서 저와 같이 생긴 물고기를 만들어서 나무 막대로 쳐주십시오. 그리고 수행자들에게 제 이야기가 좋은 교훈이 되도록 제 이야기를 들려 주십시오.”
목어의 유래에는 이같이 인과와 자비, 서원의 법문으로 그 울림은 투박스럽다 못해 구성진 소리를 담고있다. 중국과 우리나라 선종에서 사찰 규범의 지침서로 삼았던 <백장청규>에 의하면, 물고기는 밤낮으로 눈을 감지 않으므로 수행자에게 자지말고 도를 닦으라는 뜻으로 목어를 만들었다고 했다. 그것을 두드려 수행자의 잠을 쫓고 혼침(어둡고 혼미한 정신상태)을 경책한다고 하였다.
현재는 조석예불과 큰 행사가 있을 때 이 목어를 두드려서 물 속에 사는 모든 중생을 제도한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포함 하고 잇다. 그러나 초기에 목어는 식당이나 창고등에 걸어두고 오로지 대중을 모으는 데만 사용했다고 전한다.
목어는 대부분 물고기 모습이나 물고기 형상에 용의 얼굴을 한 것도 잇다. 용의 얼굴을 한 목어는 거의 여의주를 물고 있다. 이는 잉어가 용으로 변하는 어변성룡, 해탈을 상징한다. 길고 곧은 고기 모양으로 만들어 걸어 놓고 치는 목어는 후대로 내려오면서 둥글게 변했고 둥근 것이 다시 변형되어 목탁이 되었다.
“눈을 뜨라, 눈을 뜨거라. 물고기 처럼 항상 눈을 뜨고 있어라 . 깨어 있어라. 깨어 있어라. 언제나 혼침과 산란에서 깨어나 일심으로 살아라. 그와같은 삶이라면 너도 살고 남도 살리고 너도 깨닫고 남도 능히 깨닫게 하리니…
구성진 음성을 토하는 목어가 혹업의 중생을 불국토로 인도하고 있다.
목어 (2)
행실이 고약했던 승려가 몹쓸 병에 걸려 죽게 되었는데 등에 나무가 솟은 이상한 물고기의 형상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었다. 거추장스러운 나무 때문에 헤엄치기는 고사하고 조금만 물살이 높아도 나무가 흔들려 등에서 피가 솟았다. 어느날 생전의 스승이 배를 타고 강을 건너가고 있었다. 그런데 등에 솟은 물고기가 다가와 슬피 우는 것이 아닌가. 자세히 보니 죽은 제자였다. 스승은 수륙제를 베풀어 제자의 혼이 자유롭도록 해주었다. 그날 밤 꿈에 물고기의 몸을 벗은 제자가 찾아와 이렇게 말하였다. “스승님, 등에 난 나무를 베어 저와 같이 생긴 물고기를 만들어 막대로 쳐주십시오. 물에 사는 물고기가 그 소리를 들으면 해탈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목탁
목탁은 속이 텅 비어 있다. 그것은 공음이고 원음이며 불음으로서, 속을 비게하여 공심이 되게 한다. 진실을 체험하고 성불을 염원하는 구도자들은 목탁의 울림에서 공한 마음으로 공한 기도를 올린다.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의 삼독이 비어 있으면 공한 마음이다. 또 공한 마음으로 부터 삿됨과 허망함이 없는 공음이 우러나올 때 모든 중생의 업을 녹이고 모든 중생에게 청량과 해탈을 심어줄 수 있는 것이다.
목어가 변해서 생겨난 목탁은 목어에서 유래했기 때문에 그 형태는 고기 모양을 하고 있다.
그러나 긴 고기 모양의 목어와는 달리 둥근 형태로 만들어져 앞부분의 긴입과 입옆의 둥근 두 눈으로 고기임을 나타내고 있다. 목어에 얽힌 전설이나 잠을 자지 않는 고기를 연상하여 열심히 수행하는 것을 유도하는 도구로 사용되었던 것.
목탁의 재료는 대추나무가 가장 좋고 박달나무 은행나무 괴목 등을 이용하기도 한다.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목탁을 포단 위에 얹어 놓고 스님들이 않아 두드리면서 염불하거나 독경을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대중을 모으거나 깨니 때를 알리기 위해서 이 목탁을 많이 사용했으나 오늘날에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목탁은 언제나 손과 함께 한다. 왼손에는 목탁을, 오른손에는 목탁채를 쥐고 잇다. 왼쪽의 목탁은 불변의 체이고 오른 쪽의 목탁채는 움직이는 용이다. 이 둘의 마주침으로 생겨나는 목탁소리에서 체와 용의 일체화를 옛스님들은 읽었던 것이다.
목탁은 어디든지 들고 다니면서 두드릴 수 있다. 절하며 굽힐 때나 절한 뒤 일어날 때 법당에서나 거리에서, 목탁과 구도자는 언제 어디서나 한 몸이다. 그래서 ‘너나 없이 모든 중생이 함께 성불하는 길로 나아가기를’ 기원하는 것이다.
목탁을 두드리는 자는 진정한 목탁이 되어야 한다. 공한 마음으로 모든 중생을 수용하고 공한 음성으로 중생의 업장을 녹이는 목탁의 울림을 깨우쳐야 한다.
목환자(木患子) 무환자과의 낙엽교목. 열매는 염주의 소재가 된다. 무환자(無患子) 또는 목란자(木欒子) 나무라고도 한다.
몽중(夢中)사 꿈속의 일. 허망한 인생이 바로 꿈을 꾸고있는 것 같다고 비유한말
묘각(妙覺) 불과(佛果)를 말함. 보살 수행의 계위(階位)중 마지막 단계. 등각(等覺)위에 있는 보살이 다시 무명을 끊고 이지위에 들어간다. 온갖 번뇌를 끊어 버린 부처의 자리이다.
묘경(妙境) 불가사의 한 경계. 관법의 지혜로 볼때에는 그 대상인 만법의 하나 하나가 모두 실상의 이치를 가지고 있는 것을 뜻함.
묘법(妙法) 미묘한 법문. 묘란 불가사의한 것, 법은 교법(敎法)을 뜻한다. 즉 부처님 일대의 설교 전체를 가리킨다. 제법(諸法) 실상(實相)에 대한 법문을 뜻한다.
묘용(妙用) 교묘한 할용. 신묘(神妙)한 것
목자가 소를 몰고 가듯
부처님께서 왕사성의 죽림정사에 계실 때였다.
어느 날 부처님은 제자들과 길을 가다가 많은 소를 몰고 성안으로 돌아가는 한 목자의 행렬과 마주쳤다. 소들은 살찌고 배가 불러 이리저리 뒤거나 서로 떠받으면서 좋아하였다.
이 광경을 보고 부처님은 게송을 읊으셨다.
소치는 사람이 막대를 들고
들에 나가 소를 먹이듯이
늙음과 죽음도 또한
사람의 복숨을 기르
며 몰고 간다.
명문 거족의 남자나 여자들
아무리 재산을 쌓고 모아도
망하거나 죽지 않은 자 없었거니
그것은 하나뿐 아니요 백 천이더라
한번 태어난 것은 밤이나 낮이나
제 목숨 스스로 깎으면서 가나니
그 목숨 차츰차츰 줄어드는 것
가뭄에 잦아드는 논물 같네.
그 뜻을 묻는 아난다에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난다여, 아까 본 것은 백정네 소 떼들이다.
본래는 천마리였는데 성밖으로 목자를 보내어 맑은 물과 풀을 먹여 살찌게 한 다음 날마다 살찐 놈을 골라 잡는다. 지금은 죽은 소가 절반도 넘지만 다른 소들은 그것도 모르고 서로 떠받고 뛰놀면서 좋아하고 잇다. 아난다여, 어찌 그 소들뿐이겠느냐, 이 세상 사람들도 그와 같다. 항상 자기자신과 소유에 집착하여 그것의 덧없음을 알지 못하고 오욕락 즉 재산과 색과 음식과 명예와 잠에 빠져 그 몸을 기르고 실컷 향락하면서 서로 해치고 죽인다. 그리고 자신의 죽음의 아무런 기약도 없이 갑자기 닥쳐오게 되는데도 그들은 그런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으니 저 소들과 무엇이 다르겠느냐.”
<법구비유경 무상품>
무간(無間)지옥 8열(熱) 지옥중 하나. 괴로움이 쉼없고 끝없으므로 무간이라 한다.
무기(無記)왕생(往生) 4종 왕생의 하나. 평생동안 신심(信心)을 내어 아미타불의 구도(救度)를 받던이 이는 임중 때에 무심 상태에 빠져서 그대로 절명하더라도 반드시 극락 세계에 왕생하게 되는 것.
무념(無念) 대상의 상(相)을 초월한 진여(眞如)의 본성을 관(觀)하여 마음까지도 여의는 것
무량광(無量光) 아미타불이 발하는 밝은 빛
무량광천(無量光天) 색계18천 중 제 5천이며, 제2선천 중 제2천. 이하늘에 태어나면 몸에서 빛을 발하는 것이 한량없기 때문에 무량광천이라 이름함.
무량(無量)수(壽) 한량없이 긴 생명
무량정천 색계의 3선천 중 제 2천. 마음에 즐거운 감각이 있으며, 그 아래 선천보다 승묘함이 헤아릴 수 없기에 무량정천이라함
무번천(無煩天) 색계 18천 중 제 14선천 중에서 불환과를 증득한 성자가 거주하는 것인 정거천(淨居天) 중하나
무상(無常) 물(物), 심(心)을 비롯하여 모든 사물이 한 찰나에도 생멸 변화하여 상주(常住)하지않음을 뜻한다.
무상(無常)각 불과(佛果)를 가리킴. 위가없이 높은 깨달음. 부처님의 지혜로 깨닫는 열반의 묘한 이치
무아(無我) 마음이 온통 한곳에 쏠려 자기자신을 잊는 것. 도는 나라는 관념이 없는 것, 자신의 존재마저 잊는 것. 만물은 상주(常住) 불변한 어떤주체도 없다는 사상
묵조선
묵조선은 묵묵한 좌선수행으로 일관하는 ‘묵’과 마음으로는 본래부터 깨달은 존재라는 것을자각하는 ‘조’를 의미한다. 이러한 선법은 중국 송대의 굉지정각(1091-1158)에 의해 형성되고 체계화 되었지만 연원은 인도의 수행법과 달마와 혜능의 조선관 및 선수행과 직결된다. 특히 일상행위 그대로의 좌선이 진정한 좌선인 이유는 그 근저에 중생과 부처가 다르지 않다는 본각사상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굉지정각이 바 이점을 좌선이라는 형식으로 새롭게 재해석한 것이 묵조의 좌선법이다.
묵조선은 중국적이라기 보다 인조불교 초기의 수행법에 가깝다. 또한 묵조선의 구조는 본래 부처임을 깨닫는 본증자각을 설하고 있는 것으로 모든중생은 불성을 갖추고 있다는 대승불교관과도 일맥상통한다.
묵조선은 인간의 존엄성을 그대로 드러낸다 모든 인간은 본래 타고날 때부터 깨달음을 갖추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또 마음을 내어 않아 있는 그 자체가 부처임을 자각하는 행위이다.
미륵(彌勒)보살 석가모니가 입적한 뒤 56억 7천만년후에 다시 사바세계에 출현하여 화림원의 용화(龍華)수 아래서 깨달음을 성취한뒤, 용화세계를 건설하고 3회의 설법을 통해 수많은 중생을 구제해줄 보살
미진(微塵) 극미(極微)의 일곱 배를 가리키는 말, 극미란 마주 작은 물결을 가르킴.
미타(彌陀)굴 아미타불(阿彌陀佛)이 거처하는 곳
밀(密)행(行) 비밀한 행 또는 면밀한 행. 남이 살펴도 알수 없는 행동, 오로지 수행에만, 힘쓰는 행업(行業).
미륵전(彌勒展)
미륵전은 미래의 부처님인 미륵이 용화세계에서 중생을 교화하는 것을 상징화한 법당이다. 중생을 교화하는 것을 상징화한 법당이다. 즉 미륵신앙의 근본도량을 사찰 속에 응축시킨 것이 미륵전인 것이다. 미륵부처님은 미래의 희망이고 또한 참회와 발원의 장소이다.
그래서 미륵전을 새로운 불국토 용화세계를 상징한다고 해 용화전이라고도 한다. 법당 안에는 통상현재 도솔천에서 설법을 하며 내세에 성불하여 중생을 교화할 미륵보살을 봉안하거나 용화세계에서 중생을 교화하게 될 미륵불을 봉안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보통 미륵불을 봉안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미륵신앙은 지난날 부처님께서 그 제자중의 한 사람인 미륵에게 장차 성불하여 제 1인자가 될 것이라고 수기한 것을 근거로 삼고 이를 부연 편찬한 <미륵삼부경>을 토대로 하여 발생된 신앙이다.
<삼부경>에서는 각각 상생과 하생과 성불 세가지 사건을 다루고있다. 미륵보살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아 부지런히 덕을 닦고 노력하면 이세상을 떠날 때 도솔천에 태어나서 미륵보살을 만날 뿐 아니라 미래의 세상에 미륵보살이 성불할 때 그들은 염부제로 내려와서 제일 먼저 미륵불의 법회에 참석 깨달음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도솔천의 미륵보살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열반에 든 뒤 56억 7천만년이 지나면 이 사바세계에 출현부처가 되는 분이 미륵불이다. 그때 이 세상은 이상적인 국토로 변하여 땅은 유리와 같이 평평하고 깨끗하며 꽃과 향이 뒤덮여 있다고 한다.
또한 인간의 수명은 8만 4천세나 되며 지혜와 위덕이 갖추어져 있고 안온한 기쁨으로 가득 차 있는 곳이 된다. 우리나라에서 미륵신앙에 대한 기록은 없다. 그러나 고구려에 불교를 전하하기 위해 순도를 파견했던 전진의 왕 부견이 서역으로 여러 차례 사신을 파견하여 간절한 마음으로 미륵불상을 구해왔던 것으로 보아 고구려에 불교가 전래된 초기부터 미륵신앙이 전개되었다고 추측하고 있다. 우리나라 대표적인 미륵도량으로는 금산사가 있다. 미륵신행을 위해 미륵전을 갖춘 많은 사찰들은 일심의 참회가 끊이지 않는 미륵정행과 미륵정과의 도량이 되어야겠다.
바라문 인도의 4성계급중 최고의 지위에 있는 종족으로서 수행자 계급
바라밀다 도피안을 뜻하는 음역어, 이상적인 경지인 해탈 열반에 도달하는 것을 뜻함.
반야(般若) 법의 실다운 이치에 계합한 최상의 지혜(智慧)
반야(般若)선(船) 성불로 이끌어 주는 지혜의 배. 최상의 지혜를 상징적으로 표현한말
반연(攀緣) 마음의 대상에 의지해서 작용을 일으키는 것, 번뇌 망상의 시초이며 근본이 된다.
발우(鉢盂) 스님들이 공양할 때 사용하는 그릇 종류.
발우공양의 의미와 예절
불가에는 예로부터 발우공양이라는 독특한 식사법이 전해 내려오고 잇습니다. 여기서 발우란 밥그릇을 말하는 것인데, 부처님 계실 때부터 수행자들이 엄격히 지켰던 식사법에 사용되는 용기를 말합니다.
아마도 완전 초심자가 아니라 불교와 조금의 인연이라도 맺었던 분이라면 수련회나 사찰연수 등을 통해 발우공양을 한번쯤은 경험해 보았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릇 네 개를 가지런히 펼쳐놓고 숨소리도 크게 못 내는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음식을 받아 씹는 소리는 물론이요 목을 통해 삼키는 소리조차 내지 않아야 하는 공양시간, 아마도 기억에 생생할 것입니다.
공양을 마친 후에도 일일이 발우를 닦아 마셔야 하는 그 물을 남김없이 마셔야 하는 고역 덜 나아가 그릇을 씻어 음식찌꺼기를 가라앉힌 후 윗부분의 맑은 부분을 청수통이란 그릇에 모아 담은 물이 조금이라도 뿌옇기만 해도 모든 대중이 다시 고루 나눠서 마셔야 하는 벌칙을 받을 때면 연신 구역질이 나오는 경험이 있었을 것입니다.
이처럼 발우공양은 그 과정이 매우 엄격하고 철저해서 그 자체가 수행의 한 과정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음식에 대한 고마움과 소중함, 그리고 자신이 음식을 먹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하며 식사를 하는 것이니 그 과정 자체가 얼마나 진지하고 엄숙한 것이겠습니까.
음식찌꺼기를 일체 남기지 않는 발우공양 식사법은 오늘날 심각한 사회문제로 되어 있는 음식 낭비와 식수오염으로 생명류의 생존권이 위협 받고 있는 현실에서 음식쓰레기와 이로 인한 환경오염을 완벽하게 막을 수 있는 대안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기도 합니다.
발우공양의 의미는 공양을 시작하기에 앞서 외우는 각종 게송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공양을 할 때에는 먼저 부처님과 보살님 그리고 삼보를 생각해야 합니다. 청정법신 비로자나불 원만보신 노사나불 천백억 화신 석가모니불 등에 귀의하고 찬탄하는 마음을 을 갖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는 발우를 두 손으로 받쳐들고 “공양을 받고 원하옵나니 모든 중생이 禪의 기쁨으로 밥을 삼고 法의 기쁨이 충만하여 지이다”라는 게송을 읊습니다. 세 번째로 ‘다섯 가지를 살펴 생각하는 게송’이 있는데 내용은 “이 공양이 오기까지 모든 이들의 노고를 생각하고 내 덕행을 해아려 바른 생각으로 이 몸 지탱하여 불도를 이루기 위하여 이 공양을 받나이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보통의 경우는 이 ‘다섯 가지를 살펴 생각하는 게송’만을 읊는 것이 상례이지만 여기서는 발우공양의 의미를 더 자세히 설명하기 위해 앞서 두 가지 게송을 함께 소개해 보았습니다.
아무튼 발우공양을 할 때 외우는 게송은 지방이나 사찰마다 조금씩 다를 수 있겠지만 부처님의 생애를 생각하면서 그 위대한 사상과 공덕을 찬탄하고 공양이 오기까지 공양물에 깃든 모든 이들의 노고와 은혜에 감사하며, 자신의 수행을 돌아보며 반성하고, 고양을 받은 인연으로 탐내고 화내고 어리석음을 끊어 마침내 불도를 이루어 보답하리라는 각오를 새롭게 다지는 의미를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습니다.
다음은 발우공양에 깃든 정신에 대해 살펴보면 크게 다섯 가지로 나누어 설명되고 있습니다. 발우공양은 진리를 위한, 진리의 세계로 나아가기 위한 공양이므로 마치 부처님을 모시고함께 공양을 하는 마음가짐으로 시종 경건하고 조심스럽게 진행해야 합니다. 따라서 평상복이 아닌 가사를 여법하게 수하고 (스님의 겨우) 나름대로의 서열순에 따라 차례로 공양을 하는 엄격한 위계가 필수적인 것입니다.
다섯 가지 정신이란 평등, 청결, 절약, 공동(체), 복덕공양을 말합니다.
평등공양은 모든 대중이 차별 없이 독같이 나누어 먹는 정신이요, 청결공양은 철저히 위생적인 원칙을 말합니다. 절약공양은 음식찌꺼기 하나 버리지 않는 것이요, 공동공양은 화합과 단결을 높이는 대중공양을 말하며, 복덕공양은 한없이 큰 공덕을 성취하리라는 정신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발원(發願) 원하고 구(求)하는 마음을 내는 것. 수행에 게으르지 않으며 반드시 증과(證果)에 이르고자 서원을 세우는 것. 기원(祈願)이라고도 함.
방광(方廣) 대승 경저을 가리키는 말. 대승경에 말한 이치는 방정(方正)한 것이므로 방(方)이라 하며, 뜻이 원만히 구비되고 언사가 풍족하므로 광이라 함
방편(方便) 방(方)은 방정한 이치 또는 방법을 말하고, 편(便)은 교묘한 말 또는 편리를 뜻한다. 일체 중생의 근성(根性)에 계합하는 교화수단을 말한다.
방표 스님들이 입는 4각형 가사
백고좌(百高座) 법회의 이름. 사자좌 100개를 만들고 큰스님들을 모셔다가 설법하는 대법회를 말한다. 수나라의 사신 왕세의 가 왔을 때 황룡사에서 백고좌를 차리고, 원광법사 등을 맞아 들여 경법을 설한 것이 우리나라의 최초었다.
백의(白衣) 관음 33관음 보살 중 하나. 항상 힌옷을 입고 힌 연꽃위에 않아 있는 관세음 보살.
백팔번뇌(百八煩惱) 108결(結)이라고도 한다. 중생의 번뇌 수효가 108종이라는 말이다. 6근(根)으로 6진(塵)을 대할 때 저마다 호(好), 오(惡), 평등(平等)등의 세 가지가 서로 같지않아서 18번뇌를 일으키고, 또 고(苦), 낙(樂), 사(捨)등 3수가 있어 18번뇌를 내므로 모두 합하면 36종, 다시 과거, 현제, 미래3세(世)로 곱하면 108번뇌가 된다.
백호상(白毫相) 32상의 하나. 부처님의 두 눈썹 사이에 있는 희고 빛나는 가는 터럭을 말한다. 깨끗하고 부드러워서 마치 세향과 같으며 오른쪽으로 말린데서 끊임없는 광명을 발한다고 함.
번뇌(煩惱) 자아를 중심으로 햐여 일어나는 나쁜 경향의 마음 작용. 눈앞의 고락(苦樂)에 미혹되고, 탐욕, 진심(嗔心), 우치(愚癡)등에 의하여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몸과 마음을 뇌란하는 정신작용이다.
번뇌(煩惱)장 깨달음에 이르는 길을 방해해서 열반을 얻지 못하게 하는 번뇌의 장애.
범어(梵語) 고대 인도에서 쓰였던 아어(雅語). 곧 산스크리트 어를 지칭한다. 이는 완성이란 뜻을 가졌다. 교양 있는 사회의 용어로써 완성된 언어를 가리킴, 범토의 말이라 범어라고 한다. 교 경전 중 대부분의 원본은 범어로 쓰여졌다.
범종(梵鍾)
‘…삼진의 오묘한 이치를 보게 하고/ 신종을 내어 달아 일승원음(一乘原音) 깨닫게 하노라/ 그 소리 마치 용이 우는 듯하여/ 저 묏부리에까지 미치나니…’ <성덕대왕 신종 명문 中>
수미산에 우뚝 선 불이문 일직선상에는 범천의 종소리가 흘러 나오는 넓은 종각이 있다. 범종은 불이문으로 들어서는 구도자를 환영, 불이의 경지에 올랐음을 입증하는 ‘하늘의 주악’을 말한다. 범종각에서 울려나오는 소리는 그래서 중생을 교화하 는일심의 작용이자, 부처님의 위대한 가르침을 상징한다. 범종뿐만 아니라 범종각에는 법고 목어 운판등 ‘불전사물’이 함께 배치되어 있다. 불전사물은 불이문을 통과한 구도자의 법열이 소리로 화현돼 구도자의 내면세계가 사물을 빌어서 울려 퍼지는 것이다. 그 울림은 일승의 진리를 설파하는 원만한 음성으로 중생들에게 고하는 부처님의 사자후이다. 범종의 기원은 과거 인도에 건추 (종의 범어)라는 악기에서 유래되었다. <증일아함>제14에 의하면 다문제일 아 난이 건 추를 쳐서 교단의 사람들을 한군데 모았다고 전하다. 중국 은나라 주나라에도 종이 있었고 춘추전국시대에는 동탁이 있었다. 우리나라도 삼국시대부터 범종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으나 현존하는 종은 8세기 이후 통일 신라 때 것들이다. 한국범종은 용뉴, 음관, 천판, 유곽, 유두, 비천, 당좌, 종구 등으로 겉모양을 갖추고 있는데 특히 음관(용통)은 외국종에서 찾아볼 수 없는 한국 범종만의 특징이다. 한국 범종은 또 한국종이라는 학명을 얻을 정도로 독자적이다. 특히 신라종은 매우 과학적이어서 그 우수성은 국내외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남아있는 신라 범종 중에서 가장 오래된 상원사 종(국보 36호)은 국내에 현존하는 最古 아름다운 범종으로 한국범종의 조형인 동시에 규범이 되는 종으로 꼽힌다.
마음의 눈을 뜨지 않고 마음의 귀를 열지 않은 채 보고 들으면 부처의 원음도 한낱 소음에 불과할 것이다. 불음과 원음의 참뜻을 되새겨 천의를 날리며 주악을 울리는 소리 이전의 소리 깨달음의 소리를 들어보자.
법(法)공양 보살행을 닦아서 대법을 수호하고 중생을 이롭게 하는 것. 교법으로써 여래에게 공양하는 것.
법계(法戒) ①법(法)은 성법(聖法), 계(界)는 인(因)을 뜻하므로 성법을 내는 원인이 되는 것을 말함. ②법은 일체 모든 법, 계는 성(性)을 뜻하므로 만류제법의 체성을 말함. ③법은 모든 법, 계는 분제를 뜻하로 분제(粉劑)가 서로 같지 않은 모든 법의 모양으로서 곧 만유 제법을 포함하여 가리키는 말.
법난(法難) 역사상 불교 교단이 받은 박해.
법당(法堂) 법을 설하는 건물. 선가(禪家)에서 대법을 펴고 종지를 연설하는 등 온갖 법요식을 행하는 곳을 가리킴. 우리 나라에서는 불상을 봉안한 곳도 법당이라 부른다.
법랍(法臘) 출가하여 스님이 된 해부터 세는 나이. 납은 연말에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을 뜻하며, 세말을 일컫는 말이다. 비구는 세속과 달라서 안거의 제도에 의하여 음력 7월 15일을 연말로 하고 안거를 마친 횟수에 의하여 나이를 세게 된다. 법세(法歲), 계랍(戒臘), 하랍(夏臘), 좌랍등이라고도 함.
법륜(法輪) 불교의 교법을 가리킴. 부처의 교법이 중생의 번뇌 망상을 없애는 것이 마치 전륜성왕의 윤보(輪寶)가 산과 바다를 부수는 것과 같으므로 법륜이라 한다. 또 교법은 한 사람, 한 곳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고 늘 굴러서 여러 사람에게 이르는 것이 마치 수레바퀴와 같으므로 이렇게 부른다.
법륜(法輪)-진리의 전파
부처님의 가르침인 진리의 전파를 말한다. 범어 다르마 차크라(dharma-cakra)의 번역이며 범륜(梵輪)이라고도 한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흔히 전륜성왕의 윤보(輪寶)에 비유되고 있다. 전 세계를 통솔하는 이상적인 제왕인 전륜성왕이 윤보로써 모든 적을 굴복시켰듯이, 부처님이 교법을 통해 일체 중생의 번뇌를 제거하는 것을 법의 수레바퀴로써 표현하는 것이다. 법륜의 바퀴인 윤보는 본래 무기로서 비쉬누신이 갖고 다니는 휴대품 중 하나다. 전륜성왕은 전생에 쌓은 복덕으로 윤보를 얻었고, 전륜성왕이 가는 곳에는 윤보가 앞장서 땅을 평평하게 할 뿐만 아니라 적군마저 평정시킨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와 더불어 수레바퀴가 때와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굴러가듯이 부처님의 가르침도 어느 한 사람, 어느 한 곳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속세의 모든 중생을 교화한다는 뜻에서 수레바퀴를 전법(傳法)의 상징으로 보고 있다.
초기교단에서는 부처님의 설법을 법륜이라고 했다. 부처님이 설하시는 것을 전법륜(轉法輪)이라고 하고, 부처님이 녹야원에서 다섯 비구에게 법을 설하신 최초의 설법을 초전법륜(初轉法輪)이라고 한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다.
이처럼 법륜은 만(卍)자와 더불어 불법의 상징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불상이 조성되기 전의 조각이나 회화에는 보리수와 불탑 등과 같이 부처님의 형상을 대신해 법륜을 사용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초전법륜상이다.
백팔번뇌
중 생의 5욕7정에 얽힌 온갖 고뇌를 통틀어 백팔번뇌라고 한다.
인간이 갖고 있는 눈. 귀.코.혀.몸.뜻의 여섯 가지 감각기관이 감관의 대상을 접할 때마다 갖게 되는 좋다(호), 나쁘다(악), 그저 그렇다(평등)와 괴로움(고), 즐거움(락), 괴로움도 즐거움도 아닌 것(사)의 여섯 경우가 먼저 36가지 번뇌를,일으키고 또 이것들이 과거. 현재. 미래로 갈려 결국 모두 108가지 번뇌가 된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백팔 번뇌에 특별한 의미를 둔다. 백팔염주를 만들어 염불하게 하고 번뇌의 바다에서 벗어나라고 가르친다.
법고
깊은 산사의 잠을 깨우는 것들이 있다. 목어소리 종소리 불소리 그리고 찰랑찰랑 넘치는 약수물 소리.
산사의 신 새벽을 여는 소리들은 너무도 청량해 세상의 번뇌와 무명을 잠재운다. 산사에서 울리는 법고이다. 법고는 법을 전하는 북이라는 뜻이다. 세간과 출세간으로 펴져 나가는 법의 소리는 불법의 진리로 중생의 마음을 울려 일심을 깨우친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우리에게 전해지는 불경 속에는 여러 가지 북이름이 기록되어 있으나 우리나라 사찰에서 사용되고 있는 북은 홍고 (또는 대고라고 한다)와 소고로 나눈다. 홍고는 범종과 같이 범종각에 두고 조석예불에 치게 되며 소고는 염불의식 때 많이 사용된다. 우리나라 전통문화예술의 하나인 승무에는 소고가 필수적이다.
일반적으로 법고의 몸통은 잘 건조된 나무로 구성하고 두드려서 소리를 내는 양면은 소의가죽을 사용한다. 특히 양면에는 암소와 수소의 가죽을 각각 따로 부착해야 좋은 소리를 낸다. 암수소의 가죽을 양면으로 대는 것은 특별히 한쪽으로 치우쳐서는 안 된다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이른바 음양의 조화인 것이다. 음으로만 이루어지거나 양으로만 이루어져서는 결코 좋은 소리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나무로 된 두 개의 불채로 마음 심자를 그리며 두드려대는 법고에서 나는 화합과 조화의 소리는 곧 중생들을 깨달음의 길로 안내할 수 있는 지름길이 된다. 소가죽을 댄 법고에는 또다른 의미가 있다. 축생의 제도이다.
짐승을 비롯한 땅에 사는 모든 중생의 어리석음을 깨우치기 위해 법고는 예불시간에 가장 먼저 울려 퍼진다. 그리고 북의 몸체부분에는 보통 용을 그리거나 조각을 하면 두드리는 부분의 가운데는 만자를 태극모양으로 둥글게 그리기도 하고 진언을 적어 넣기도 한다.
법명(法名) 불교에 입문한 이에게 주는 이름. 출가자에게는 집을 버리고 불문에 들어와서 득도식을 마칠 때에 주며, 속가에 있는 신남(信男), 신녀(信女)에게는 수계(受戒)나 귀경(歸敬)식을 할 때에 준다. 법호(法號), 계명(戒名)이라고도 한다.
법사(法師) 불법에 정통(精通)하고 청청한 행을 닦아서 세간의 모범이 되어 중생을 교화하는 스님을 말한다. 후세에는 불법을 강설하는 이를 일반적으로 법사라 일컫는다. 우리나라에서는 법맥을 전해 준 스승을 말한다. 전법(傳法)사의 준말이다.
법성(法性)신 법신(法身)의 다른말로 시방 허동에 두루하고 법계의 이치와 일치한 부처님의 진신(眞身) 빛깔도 형상도 없는 본체(本體)인을 말한다.
법신(法身) 진리 그자체. 부처의 3신을 말한다.
법요(法要) 교법가운데 요의. 법의 주요한점. 법용(用)용이라고도 부른다.
법호(法號) 법휘 법명, 계명이라고도 한다. 불문에 들어온 사람에게 주는 이름이다. 후세에는 죽은뒤에 받는 시호를 법호라 한다.
법회(法會) 설법하는 집회 승려와 신도가 한곳에 모여 불사를 하는 모임이다
변상(變相)도 부처님의 일대기 또는 불교 설화에 관한 여러 가지 내용을 그림으로 나타낸 것.
보광사
파주의 보광사가 고달픈 영혼을 천도하는 영험한 ‘지장도량’이 된 사연이 담긴 이야기이다. 절에 목어를 걸어 두는 것은 경고의 의미이다. 목어에서 울리는 소리를 들으며 죄를 짓지 말라는 경고의 의미이다. 스님들이 두드리는 목탁도 이 목어와 같은 이야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모두가 선을 행하여 참됨을 얻으라는 경각심의 소리인 것이다.
보광사의 목어는 특히 우렁차다. 여의주를 물고 커다란 눈을 부릅뜬 모습이 마치 어떤 죄라도 용서치 않겠다는 표정이다. 날렵한 유선형 몸체에 용수의 흔적이 분명하고 귀와 불, 뒷지느러미 부분은 만들어 끼웠다. 처음 단순한 물고기의 형상으로 만들어지던 목어가 차츰 용의 형상을 띠게 된 것은 어변성룡의 뜻이 담겨 있다. 도화꽃이 피면 황하의 잉어들은 상류의 협곡에 있는 용문을 다투어 통과하는데 그 문을 지나면 용이 된다고 한다. 이는 곧 깨달음을 얻게 된다는 뜻이다. 죄를 짓지 말고 깨달음을 얻으라는 것이 목어를 두드리는 진정한 의미라 할 수 있다.
대웅전 외벽은 가이없는 아름다움의 정화를 보는 듯하다. 외벽은 모두 나무로 마감하였고 아미타 연못과 반야용선, 까치호랑이 등의 벽화가 세면을 따라 그려져 있다. 특히 아미타연못은 민화적 기법을 이용하여 고운 색감을 욕심없이 사용한 그림으로 법당 벽화 가운데 걸작으로 꼽힌다. 한가한 정취와 무욕의 풍요로움이 보는 이의 마음을 마치 어린 시절의 꿈속으로 되돌려 놓는 듯한 착각을 들게 할 정도다.
파주군 광탄면 영장리 산 13번지 고령산에 자리한 조계종 제 25교구 본사 봉선사의 말사이다. 신라시대인 894년 왕명에 따라 도선에 의해 비보 사찰의 하나로 창건되었고, 그 뒤 임진왜란때 폐허화된 것을 광해군 때에 설미 덕인 두 스님이 함께 중건했다. 영조 16년에는 부근에 숙종의 후궁으로 영조임금을 낳은 숙빈 최씨의 묘 소령원이 있는 관계로 절을 숙빈최씨의 원찰로 삼아 대웅보전 광응전을 중수하고 만세루를 창건했다고 한다.
보리 깨달음을 뜻하는 산스크리트 어의 음역어. 도(道), 지혜(智慧), 각(覺)등으로 번역함. 불교최고의 이상인 깨달음의 경지. 정각(正覺)의 지혜
보리살타 보살의 본딧말. 원어인 보디삿트와의 음역어
보살(菩薩) 불과(佛果)을 얻으려고 수행하는 이를 총칭하는말. 재가와 출가를 불문하고 대승 불도를 수행하는 이를 가리킴
보시(布施) 자비심으로써 다른 이에게 조건없이 주는 행위. 재시(財施), 법시(法施), 무외(無畏)시 등이 있다. 흔히 신도들이 스님에게 독경을 청하거나 불사를 행한뒤 공양으로써 금전이나 물품을 주는 것을 가리켜 말함.
보타(補?)산 보타(補?)락가산의 줄임말. 산스크리트 어인 포탈라카를 음역하여 보타락가라고 함. 인도의 남쪽해안에 있는 8각형의 산으로서 관세음 보살이 머무는 곳이라 함. 광명(光明)산, 해도(海島)백화(白樺)산등으로 번역함.
복장(腹藏)에 경전이 많은 이유
불상에 넣은 복장물은 보통 후령통이라는 곳에 한꺼번에 담겨 안치되는데, 이때 복장물은 불상이 기울어지거나 숙여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불상의 배와 목과 팔 등 비어있는 부분에 각종경전이나 사경본을 집어넣어 불상의 균형을 잡기 위한 기능으로 사용되었다. 장흥보림사 목조 사천왕사의 어깨부분에서 최초 국역 불전인 보물급 월인석보가 발견되었고 봉원사 명부전의 12지신 복장에서 나온 경전은 불경언해 활자본 7권을 비롯 모두 70권등 도굴범들이 리어카로 싣고 갈 정도로 많은 경전들이 나왔었다. 온전하게 보전되었더라면 얼마나 많은 경전들이 보존되고 연구자료로서 쓰였을 텐데……
복전(福田) 불보살과 출가 수행자 등 공양을 받을 만 한 법력이 있는 이에게 공양하면 복이 되는 것이, 마치 농부가 밭에 씨를 뿌려 다음에 수확하는 것과 같다는 비유.
부도(?屠) 스님의 사리나 유골을 넣어 안치한 조형물이다.
사찰에 들어서면 자그마한 항아리 모양 부도에서부터 화려한 장엄이 눈부신 탑형 부도들의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곳이 있다. 바로 옛고승들의 체취를 느낄 수 있는 부도 밭이다. 부도
밭에 앞서거니 뒤서거니 서있는 부도에는 대개 탑비도 건립되어 있어 스님의 행장뿐만 아니라 당시의 사회문화상까지 생생하게 알 수 있다. 건축 조각 회화 등을 종합한 예술의 극치인 부도는 전체적으로 안정된 조형미와 표면 장식의 정교한 조각 등이 뛰어나 석조미술 가운데 당당한 하나의 주류를 이루며 당시의 문화적 양식까지 알려주고 있는 귀중한 사료이다.
경전상에 나타난 최초의 사리탑은 부처님의 사리를 봉안한 8개의 탑이다. 기원전 3세기에 조성된 인도의 산치대탑은 나중에 석종형 부도의 모태가 되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불교전래 초기에는 나타나지 않았던 부도는 선종전래 이래 선사의 사리존숭을 계기로 유행처럼 번져나간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신라에서 가장 오래된 부도는 원광법사 혜숙스님의 부도이고 백제는 혜현스님의 부도로 나타나는데 두 부도 모두 7세기경 건립된 것으로 아쉽게도 지금은 남아 있지 않다. 현존하는 부도 중 가장 오래된 것은 도의선사 부도로 추정되는 진전사지 부도(보물 439호)로 사각기단 위에 팔각형 탑신이 어우러져 있다. 건립연대가 확실한 최고의 부도는 문성왕 6년(844)에 건립된 염거화상탑(국보 104호)으로 팔각원당형 부도의 시조로 일컬어진다.
9세기에 이르면 팔각원당형 부도들이 선보이고 고려시대부터 석종형이 뒤를 이어 유행한다. 신라시대말기부터 고려시대에 걸쳐 조성된 부도에는 운룡무늬가 새겨진 것들이 많고 사천왕 가릉빈가 연화 비천상 등의 유려한 조각들이 화려함을 한층 더한다.
우리나라 전시대를 통하여 가장 수려한 부도로 알려져 있는 쌍봉사 철감선사탑(국보 57호)에는 곧 날아갈 듯한 비천상과 가릉빈가의 모습이 생생하게 새겨져 있다. 연곡사 동부도(국보53호)는 정교한 조각이 일품인데 중대석의 팔부신중조각은 불법수호의 의지를 단적으로 표현한 듯 힘이 넘친다.
이외에도 보림사 보조선사창성탑(보물 157호), 실상사 증각대사응료탑(보물 38호) 등이 팔각원당형 부도들로 통일 신라시대에 조성된 것들이다. 고려시대까지 석종형과 더불어 조성되던 팔각원당형은 고려말 조성됐던 수종사 부도를 최후로 자취를 감추게 된다.
고려시대로 넘어오면 팔각원당형이 아닌 평면을 사각으로 잡은 법천사 지광국사현묘탑(국보 101호)과 정토사 홍법국사실상탑(국보 102호)이 유명하다. 현묘탑은 탑신 가득 비천상 비룡상 외에도 옥개석에 불상이 조각되어 있는 듯 다양하고 정교한 조각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는데 아라비아 양식이 엿보인다. 신륵사의 보제존자 부도와 같은 석종형은 인도석탑의 복발형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 석종형부도는 신라 말기에 나타나서 고려시대에 이르러 통도사 금산사 안심사 등을 비롯하여 개성 부근의 화엄사와 불일사의 지공부도 등에서 본격적으로 나타난다.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특이한 양식의 전개없이 팔각원당형과 석종형등이 혼합되어 이어진다. 팔각원당형으로 탑신부에 배흘림이 독특한 청룡사 보각국사정혜원융탑(국보197호)은 옥개석에 귀꽃이 만발해 있다. 둥근 탑신에 운룡무늬가 가득 새겨진 회암사지 부도(보물 388호), 후기 석조물로는 뛰어난 형식미를 자랑하는 연곡사 서부도(보물 154호)등이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부도들이다.
이렇게 남아 있는 부도 가운데 국보로 지정된 것은 고달사지 부도, 연곡사 동부도 등을 포함해 8개이고 보물은 실상사 수철화상능가보월탑, 봉암사 지증대사적조탑 등 42개에 이른다.
분신(分身) 불보살이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그몸을 나투어 곳곳에 화현하는 것. 변화하여 나타낸 몸을 뜻한다.
분향(焚香) 향을 태우는 것. 불공의 일종으로서 의식 외에도 일반적으로 많이 행해지는 예법의 하나.
불공(佛供) 불보살에게 향, 등, 꽃, 차, 과일등으로 공양하는 것
불상(佛像) 불보살등의 형상을 동, 나무 등으로 조각한 형상, 금속으로 부어 만든 형상, 천이나 종이에 그린 형상, 흙으로 빚어 만든 형상등이 있고, 그 외에도 석상(石像), 목상(木像), 주상(鑄像), 화상(畵像), 토상등이 있다.
불심(佛心) 자비와 사랑이 가득찬 부터님 마음, 중생의 마음가운데 본래 구족한 불성(佛性)
불자(佛子) 부처의 교법을 신봉하는 이. 일체 중생모두 불성을 갖추어서 부처가 될 수 있으므로 불자라 한다.
불전(佛典) 불보살의 상을 봉안한 건물, 인도에서는 향전, 우리나라에서는 법당(法堂), 선종에서는 불전(佛典)이라 하며, 설법(說法)당위에 짖는 것이 보통이다. 당우를 많이 짖지 않은 잘에서는 설법당과 겸하여 쓰기도 한다.
비구(比丘) 출가하여 걸식으로 생활하는 남자승려로서 250계를 받아 지니는 이. 걸사(乞士)라고도 하는데, 그까닭은 비구란 항상 밥을 빌어 깨끗하게 생활하기 때문이다. 즉 위로는 법을 빌어 지혜의 목숨을 돕고, 아래로는 밥을 빌어 몸을 기르기 때문에 걸사라 한다.
비구니(比丘尼) 출가하여 348계를 받아 지니는 여자 수행자. 석가모니의 이모 마하파자파티가 최초의 비구니이다.
빈도(貧道) 도를 닦은 것이 아직 모자란다는 뜻이다. 스님들이 자신을 지칭할 때에 겸허하는 칭호로 쓰인다. 산스크리트어인 사문(沙門)을 번역한 말이다. 사문은 올바른 도를 닦아서 생사의 빈핍(貧乏)을 끊었으므로 이렇게 일컫는다.
사경(寫經) 붓으로 쓴 경전. 인쇄술이 발달되지 못하었을때에는 붓으로 경문을 써서 오래 전하고 널리 퍼뜨렸으나 인쇄본이 나온뒤에도 국가를 진호(鎭護)하기 위하거나 부모와 조상의 추복(追覆)을 위하여 지성으로 경문을 베껴쓰기도 한다.
사리(舍利) 산스크리트 엉인 샤리라의 음역어, 본래 골조(骨組) 또는 신체를 가리키는 말. 이로부터 유골, 특히 부처의 유골을 가리키는 말로 쓰임. 계(戒), 정(定), 혜(慧)를 갈고 닦은 결정체로서 한량없는 6바라밀의 공덕체이므로 얻기가 매우 어렵다고 하며, 수행자나 불자를 화장할 때 나오는 작은 구슬모양의 결정체. 신골, 영골, 우신 등으로 번역함.
사리(舍利)자(子) 석가모니의 10대 제자 중의 한사람이며, 지혜 제일이다. 본래 6사외도의 한사람이며 회의론자였던 산자야의 제자였으나 목건련과 함께 산자야의 제자 250명과 함께 석가모니에게 귀의 했다
사문(沙門) 수행자를 가리킴. 슈라마나라는 산스크리트어의 음역어. 부지런히 좋은 일을 닦고 나쁜일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뜻.외도, 불굗를 불문하고 처자 권속을 버리고 수도 생활을 하는 이를 총칭함. 근식(勤息), 빈도(貧道), 식심(息心), 정지(靜志)등 으로 번역함
사바세계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가리키는 말, 사바는 산스크리트 어 사하의 음역어 이며, 인토(忍土), 감(?)인토(忍土), 인계(忍界)등으로 번역한다. 이세상의 중생은 온갖 고통과 고뇌를 인내해야 한다는 뜻을 지님.
사부대중 불교 교단을 구성하고 있는 네부류의 사람들, 즉 비구, 비?!--"<-->
비구(比丘)
출가하여 걸식으로 생활하는 남자승려로서 250계를 받아 지니는 이. 걸사(乞士)라고도 하는데, 그까닭은 비구란 항상 밥을 빌어 깨끗하게 생활하기 때문이다. 즉 위로는 법을 빌어 지혜의 목숨을 돕고, 아래로는 밥을 빌어 몸을 기르기 때문에 걸사라 한다.
비구니(比丘尼)
출가하여 348계를 받아 지니는 여자 수행자. 석가모니의 이모 마하파자파티가 최초의 비구니이다.
빈도(貧道)
도를 닦은 것이 아직 모자란다는 뜻이다. 스님들이 자신을 지칭할 때에 겸허하는 칭호로 쓰인다. 산스크리트어인 사문(沙門)을 번역한 말이다. 사문은 올바른 도를 닦아서 생사의 빈핍(貧乏)을 끊었으므로 이렇게 일컫는다.
사경(寫經)
붓으로 쓴 경전. 인쇄술이 발달되지 못하었을때에는 붓으로 경문을 써서 오래 전하고 널리 퍼뜨렸으나 인쇄본이 나온뒤에도 국가를 진호(鎭護)하기 위하거나 부모와 조상의 추복(追覆)을 위하여 지성으로 경문을 베껴쓰기도 한다.
사리(舍利)
산스크리트 엉인 샤리라의 음역어, 본래 골조(骨組) 또는 신체를 가리키는 말. 이로부터 유골, 특히 부처의 유골을 가리키는 말로 쓰임. 계(戒), 정(定), 혜(慧)를 갈고 닦은 결정체로서 한량없는 6바라밀의 공덕체이므로 얻기가 매우 어렵다고 하며, 수행자나 불자를 화장할 때 나오는 작은 구슬모양의 결정체. 신골, 영골, 우신 등으로 번역함.
사리(舍利)자(子)
석가모니의 10대 제자 중의 한사람이며, 지혜 제일이다. 본래 6사외도의 한사람이며 회의론자였던 산자야의 제자였으나 목건련과 함께 산자야의 제자 250명과 함께 석가모니에게 귀의 했다
사문(沙門)
수행자를 가리킴. 슈라마나라는 산스크리트어의 음역어. 부지런히 좋은 일을 닦고 나쁜일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뜻.외도, 불굗를 불문하고 처자 권속을 버리고 수도 생활을 하는 이를 총칭함. 근식(勤息), 빈도(貧道), 식심(息心), 정지(靜志)등 으로 번역함
사바세계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가리키는 말, 사바는 산스크리트 어 사하의 음역어 이며, 인토(忍土), 감(?)인토(忍土), 인계(忍界)등으로 번역한다. 이세상의 중생은 온갖 고통과 고뇌를 인내해야 한다는 뜻을 지님.
사부대중
불교 교단을 구성하고 있는 네부류의 사람들, 즉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등을 가리킴.
사생(四生)육도(六道)
중생은 모두 네가지로 태어나 크게 여섯가지세계에 살다가 죽는다는 뜻. 6도는 지옥, 아귀 , 축생, 인간, 천상, 아수리 등의 여섯세계를 가리키며, 태어나는 방법에 따라 알로 낳는 난생(卵生), 태로 낳는 태생(胎生), 습기로 인해 태어나는 습생(濕生), 지옥(地獄), 천당(天堂)처럼 화하여 나는 화생(化生)등의 네가지로 분류된다.
사시(巳時)
오전 9시부터 11시까지의 시간
사십구제
칠칠(七七)재(齎)라고도 한다. 사람이 죽은지 49일동안 7일마다 지내는 법사(法事). 그기간동안은 중유(中有)라고 함. 중유상태에 있는 동안, 살아서 지은 업에 따라 다음 생을 받을 연(緣)이 정해진다. 7일마다 경을 읽고 불보살에게 예배하는 것은 죽은 이가 다음 생에는 좋은 곳에 태어나기를 기원하는 것이다.
사의지(四依地)
출가자가 닦아야 할 네가지 법. 즉 분소의를 빕는 것, 항상 밥을 빌어먹는 것, 나무아래서 정좌(靜坐)하는 것, 부란(腐爛)약을 쓰는 것 등.
사자(師資)
상승(相乘) 스승이 제자에게 학해(學海)법문을 전해주고 제자는 그가르침을 받아 지녀서 그맥이 끊이지 않는 것
사자후(獅子吼)
부처의 설법을 사자의 포효에 비유한말. 부처님의 한번 설법에 뭇악마가 굴복하고 귀의한다는 것을 뜻함. 일반적으로는 크게 외치면서 열변을 토하는 연설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사지(四智)
부처님이 깨달은 네가지의 지혜. 대원경지, 평등성지, 묘관찰지, 성소작지 등
삼계(三界)
욕계(欲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등 세 종류의 세계, 중생이 생사에 유전하는 어리석음과 괴로움의 세계, 곧 유정(有情)의 경계를 셋으로 나눈 것, 생종의 세계에 대한 분류이므로 3유라고도 한다.
삼독(三毒)
탐욕(貪慾), 진에, 우치(愚癡)등의 3종의 번뇌. 3계의 온갖 번뇌를 포섭하고 온갖 번뇌가 중생을 해치는 것이 마치 독사나 독룡과 같아서 독이라 함.
삼륜(三輪)
받는 사람, 받는 물건, 주는 사람 등을 가리킴.
삼매(三昧)
산란한마음을 한 곳으로 몰아 움직이지 않게 아며 마음을 바르게 하여 망년에서 벗어 나는 것.
산스크리트어인 사마디의 음역어로 삼마지라고도 함. 정(定), 등지(等地), 정수(正受), 조직정, 점심행처등 으로 번역함.
삼세인과
과거, 현재, 미래에 걸쳐 생겨나는 인과, 업감(業感)의 이치. 즉 과거의인에 의하여 연재의 과를 받고, 현재의 인에 의하여 미래의 과보를 받는 것을 말한다.
삼세제불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부처님
삼삽이상
부처님 몸에 갖춘32종의 표상. 이상을 고루갖춘 이라면, 세속에서 전륜성왕이 되며, 출가하면 깨달음을 얻는다고 함.
삼악도(三惡道)
중생이 윤회 전생하는 6도 중에서 지옥, 아귀, 축생 등의 세가지. 죄악을 범한 결과로 태어나서 고통을 받는 악한 곳. 3악취(惡趣)라고도 한다.
삼업(三業)
① 신업(身業), 구업(口業), 의업(意業). 곧 신체의 동작, 언어, 의지의 작용등으로 짓는 업. ②복업(욕계의 선과를 받을 업), 비복업(외업이라 하여 욕계의 악과를 받을 업), 부동(不動)업(색계와 무색계에 태어날 선업) ③ 선업(善業)(안온하게 자기의 뜻에 알맞은 결과를 받을 업), 악업(惡業)(자기의 뜻에 맞지 않는 결과를 받을 업, 무기업(無記業)(선악에 치우치지 아니하며 또 선악의 어떤결과도 받지 않는업)
삼천(三千) 세계(世界)
소천(小天) 세계가 천 개 합해져서 중천 세계가 되고, 중천 세계가 천 개 합해지면 대천 세계된다. 이를 1대천 세계라 하는데, 이러한 대천(大天) 세계가 3개 모인 것을 일러 삼천 대천세계라 하며, 이를 줄여서 삼천 세계라 한다.
상호(相好)
용모와 형상. 상(相)은 몸에 뛰어나게 잘 생긴 부분을 말하고, 호(好)는 상 가운데서 다시 세밀하게 좋은 부분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불보살의 상호에 대해서 32상 80종호를 구별하여 말한다.
색(色) 빛깔. 모든 물질의 모양. 외계(外界)의 사물 일체를 총칭한 말. 객관의 세계를 가리킴.
생멸(生滅)
생기와 멸진. 인연이 화합하여 성립된 만유가 나고 죽음을 거듭 변천하는 것.
생불(生佛)
살아 있는 부처. 즉 부처님과 같이 존경스러운 인물에 대한 찬미어.
서방 정토
아미타불의 정토, 극락 세계. 서방에는 수 많은 나라들이 있지만, 서쪽으로 10만억 국토를 지나면 극락 세계가 있다고 함.
선(禪)
① 생각을 고요히 하여 산란치 않게 하는 것. 마음을 한 곳에 모아 고요한 경지에 드는 일. 조용히 앉아 선악을 생각하지 않고 시비에 관계치 않고 유무에 간섭하지 않아서, 안락 자재한 경계에 마음을 소요(逍遙)케 하는 것. 좌선(坐禪)의 줄임말. ②선을 주된 수행방법으로 삼는 종파인 선종(禪宗)의 줄임말.
선교(禪敎) 양종(兩宗)
선종과 교종. 조선 시대 때 7종으로 갈라졌던 불교 종파를 선종과 교종, 두 파로 통폐합 한 것 . 세종6년(1424)에 조계종, 총남종, 천태종을 합하여 선종으로, 화엄종, 자은종, 증신종, 시흥종을 합하여 교종이라 하고, 홍천사를 선종 도회소, 흥덕사를 교종 도회소로 삼았다.
선근(善根)
좋은 과보를 받을 좋은 인(因). 착한 행업의 공덕 선근을 심으면 반드시 이 선과(善果)를 맺는다고 한다. 온갖 선을 내는 근본이란 뜻.
선남자(善男子) 선여인(女人)
①지난 세상에서 지은 선한 공덕이 현세에 나타나 부처님의 교법을 듣고 믿는 사람. ② 현생에서 불법을 믿고 선을 닦는 남녀. ③ 부처님 명호를 듣고 염불하는 남자와 여자. 예를 들면 죄악이 많은 이라도 마음을 돌이켜 참회하고 염불하면 곧 선남자 선여인이라 함.
선방(禪房)
참선(參禪) 수행을 하는 방. 시끄러운 세속을 떠나 조용히 불도를 닦는 선실(禪室).
선사(禪師)
선정 수행에 뛰어난 스님에 대한 호칭.
선재 동자
화엄경의 입법계픔에 나오는 구도자의 이름. 53선지식을 차례로 만난 뒤, 맨 마지막으로 보현 보살을 만나서 10대원을 듣게 되는 동자의 구법 행로는 대승 보살의 구도행을 대표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선지식(善知識)
부처의 교법을 다른 이들에게 설하여 고통을 벗어나게 돕는 이. 남녀 노소, 귀천을 가리지 않고 모두 불연을 맺게 해 주는 이를 지칭하는 말.
설교(說敎)
교법을 말하여 사람들을 인도하는 것. 설법이라고도 함.
세간 중생이 서로 의지하며 사는 세상.
소의(所衣) 경전
각 종파에서 근본 경전으로 의지하는 경전.
수계
계를 받음. 소승 계율에는 5계, 8계, 10계, 250계, 대승 계율에는 10중금계,48경계,3취정계 등이 있다.
수기(授記)
부처님이 보살 성문들에게 다음 세상에 성불할 것을 약속하시는 것.
수라(修羅) 싸움을 좋아하는 천신. 남이 잘되는 것이나 선한 행을 싫어하고 방해하여 다른 천신과 항상 싸움만 하는 신. 아수라의 줄임말.
수미(須彌)산
세계의 중심에 있는 산, 높이는 8만 유순이며 꼭대기에는 제석천이, 중턱에는 4천왕이 산다고 함.
수월(水月) 보살
32관음의 하나. 밝은 달이 바다 위를 환하게 비쳤을 때, 연꽃 위에 서 있는 상태로 몸을 나타내는 관음 보살.
순생(生) 순생업을 뜻하며, 금생에 지은 과보를 다음 생에서 받는 것을 말함.
순현(現)
순현업을 뜻하며, 금생에 지은 업의 과보를 금생에 받는 것.
순후업
현세에서 지은 행업으로 제3생이후에 받는 과보.
스님
스승님을 뜻함. ① 도제가 자신의 은사나 법사를 존경하여 부르는 호칭. ②자기와 사자의 관계가 없어도 상대하여 말할 때 존칭하여 부르는 호칭. ③옛날과 지금을 막론하고 보통 이름, 특히 법호밑에 붙여 부른 말. 예컨대 원효 스님, 청허 스님 등. ④직명 밑에 붙여서 부르는 호칭. 예컨대 종정 스님, 주지 스님 등. ⑤ 일반적으로 출가 수도하는 승려를 통칭하는 말.
승당(僧堂)
많은 승려들이 모여 수행하는 곳을 총칭하는 말.
시방 세계
동, 서, 남, 북, 동북, 동남, 서남, 서북, 상, 하 등 10방위에 있는 무수한 세계.
식(識)
심왕(心王)식, 분별을 일으키는 의식의 근원.
신광(神光)
①마음을 가리킴, 인간의 본성인 심성이 오묘하다는 것을 비유한 말.② 불보살이 발하는 불사의한 빛. ③ 중국 선종의 제2조였던 혜가 스님(487~593년)의 이름.
신도(信徒)
일반적으로 불법을 믿는 세속 재가자를 일컫는 말.
신통(神通)
선정의 수행을 통해서 얻어지는 자유로운 초인간적인 능력.
심우도
수행자가 정진 수행을 통해서 자기 본성을 깨달아 가는 과정을 잃어버린 소를 찾는 일에 비유해서 그린 선화. 전체 과정이 10단계로 구분되어 있기 때문에 십우도라고도 함.
십일면 보살
아수라에 빠진 중생을 구제하는 관음.
사물
불교가 내리는 십계에는 그 첫째가 살생하지 말라. 그러나 기독교의 십계명은 첫째가 다른 신을 섬기지 말 것, 둘째가 우상을 섬기지 말 것, 셋째는 하느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하지 말 것 넷째 안식일을 지킬 것 다섯째 어버이를 공경할 것, 여섯째에야 살인을 하지 말 것을 이르고 있다.
불교는 사람 목숨뿐 아니라 모든 생명을 해치지 말라고 하는데 비해 기독교는 사람만을 죽이지 말라고 가르치고 있으니 생명을 아끼고 사랑하는 일에 있어서 그 차원이 하늘과 땅 차이이다.
절에서 아침 저녁으로 하루도 빠뜨리지 않고 울리는 범종, 두드리는 법고, 운판, 목어를 두드리는 것도 알고 보면 이세상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을 위해서이다.
해질녘 산사에서 울리는 범종소리는 산을 넘고 들판을 가로질러 멀리 멀리 울려 퍼진다. 이 범종을 치면서 스님들은 이렇게 독경을 한다.“이 종소리 듣고 번뇌 끊어지고 지혜가 자라고 보리심이 생겨나 지옥을 벗어나 부처 이루어 중생을 건지사이다.”
지옥에 있을 중생들을 위해, 화탕지옥의 괴로움에서 벗어나고자, 그래서 범종은 아침저녁 빠짐없이 그 장중한 범음을 산 넘고 들을 지나 구만리 장천까지 울려 보내고 잇다. 범종은 살아 있는 자들을 위해 울리는 것만이 아니라 죽은 자들을 제도하고자 넉넉하고 자비롭고 포근한 소리를 울리고 있다.
북은 이 땅에서 살고 있는 모든 축생들을 위해서, 운판은 이 세상에 살고 있는 모든 물속에 살고 있는 생명들을 위해서 하루도 거름 없이 아침저녁 울리고 있다.
지옥에서 허공에서 땅 위에서 물속에서 고통 받고 있는 모든 생명 있는 중생들이여, 이 종소리를 듣고 이 운판소리 듣고, 이 북소리 듣고, 이 목어소리 듣고, 지혜의 눈을 떠서 근심 걱정 괴로움의 바다인 육도윤회에서 벗어나소서. 그리하여 부처 이루어 또 다른 중생을 구하옵소서. 이렇게 간절히 독경하며 스님들은 아침저녁 범종을 울리고 북을 두드리고, 운판을 치고, 목어를 두드린다.
이 세상에 이보다 더 지극한 생명 사랑이 가르침이 또 어디에 있을까. 풀 한포기 벌레 한마리인들 어찌 그 생명이 존귀하지 않으랴. 요즘에 자연보호다. 생명사랑이다. 환경보호다 떠들고 있지만, 석가모니 부처님은 실로 2,500여년 전에 ‘이미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저것이 있으므로 이것이 있다’고 가르치셨다.
풀 한 포기 벌레 한 마리가 제대로 살수 있는 세상이라야 사람도 살고 짐승도 살 수 있다. 물고기 한 마리가 마음 놓고 살수 있는 물이라야 사람도 다른 생명도 살 수가 잇다. 모든 생명 있는 것을 아끼고 사랑하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은 이 땅에 들어와서 우리조상들의 생활 속에 깊이 뿌리를 내렸고 실천되었다.
우리나라 금기어 가운데 살아있는 목숨을 죽이지 말라는 가르침을 그대로 담고 있는 것을 살펴보면 불교가 우리 조상들의 아름다운 심성을 가구고 지키는데 얼마나 크게 기여했는가를 금방 알 수 있다.
참새고기 먹지 말아라. 그릇을 잘 깬다.
까마귀고기 먹지 말아라. 깜빡 잘 잊는다.
오리고기 먹지 말아라. 손발 붙은 자식을 낳는다.
기러기 잡지 말아라. 부부간에 이별 수가 있다.
원앙새 잡지 말아라. 부부간에 사별 수가 있다.
새끼 밴 짐승 잡지 말아라. 자식이 단명한다.
생명 사랑의 실천을 위해서 불교는 이렇게 타이르고 가르쳐 왔다. 그리고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늦가을 과일 나무에서 과일을 딸 적에 날 짐승들의 겨우살이를 염려한 나머지 과일 나무에 까치 밥을 남겨두는 아름다운 마음, 넉넉한 마음을 가꾸며 살았다.
산목숨 죽이지 말라. 불교의 모든 계율 가운데 첫째 계율인 불살생은 서양종교의 살인하지 말라와는 차원이 다르다. 하지만 우리의 논두렁에는 미꾸라지가 없고, 실개천에는 송사리가 없고, 하천에는 모래무치가 없고 강에는 썩은 물, 바다마저 갈수록 오염되어 나날이 생명들이 사라지고 있다. 이 일을 어찌할거나.
산신각
산신은 불교와는 관계가 없는 민족고유의 토속신앙이다. 그러나 불교가 재래 신앙을 수용할 때 호법신장의 하나로 삼아 불교를 보호하는 역할의 일부를 산신에게 부여했다. 화엄신중 속에 산신이 들어있고 사찰의 신중탱화 속에서 산신의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조선 중기 이후 산신 원래의 성격을 불교 안에서 되찾게 되어 사찰 속에 산신각과 산신탱화가 등장하게 된 것이다. 산신각은 불교 바깥의 하근기 사람들을 불교 속으로 끄러 들이기 위한 방편에 의해 건립된 것으로 일반에 알려졌다.
현재 산신은 요마를 물리치는 가람 수호신의 기능과 함께 산속 생활이 평온을 비는 외호신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신도들은 복 많이 받고 돈 많이 벌고 가족 모두 질병 없이 부귀장수하기를 기원하는 소재강목의 장소로 산신각을 찾고 있다.
불교적 산신탱화는 스님이 손에 <법화경>등의 불경을 들거나 단주를 쥐고 있는 경우가 많다. 옷 또한 적록색에서 금박이나 노란색으로 그린 문양이 새겨져 잇는 경우가 많아 가사를 변경시켜 입혀놓은 듯하다. 산신 탱화 속의 동자상은 산신령으로 과일이나 차 꽃을 올리는 모습으로 많이 묘사되는 산신령이 시봉이다.
전통적으로 여자 산신이 관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지리산 계룡산 속리산 등의 사찰에는 할머니의 모습을 한 여자산신탱화나 소장을 드물게 나마 찾아볼 수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속리산 천황사 지리산 실상사 약수암의 산신탱화와 계룡산 동학사의 산신상 등이다. 이 경우 할머니는 트레머리에 댕기를 둘렀으며 치마저고리를 입은 인자한 모습으로 호랑이를 걸터 타거나 기대고 있다. 그리고 손에는 반드시 불로초를 들고 잇다.
산신 탱화에서 산신만큼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호랑이다. 신성스런 영물 호랑이는 위엄이 있으면서도 애교스럽게 친근감이 담겨 있어야 한다. 산신탱화가 전국 사찰에 모셔져 있다는 것은 곧 우리의 전통적인 산악 숭배사상이 여러 종교와 습합되고 난 이후 불교에서 이들을 모두 수용하였음을 입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산신기도
국토의 7할 이상이 산으로 이루어진 우리나라이기에 산에 대한 숭배는 세계 어느 민족보다 강렬하였다. 산에는 신이 잇고, 이 신은 산아래의 인간을 보살펴준다는 것이 우리 민족의 생각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이와 같은 산약 숭배와 함께 전국의 곳곳에는 산신을 모신 산신당을 건립하고 인간의 소원을 빌었다/
산신은 원래의 불교와는 관계가 없는 민족 고유의 토속신이다. 그러나 불교가 재래 신앙으로 수용할 때 호법신중의 하나로 삼아, 불교를 보호하는 역할의 일부를 산신에게 부여하였다. 그 증거로는 화엄신중 속에 산신이 들어 있고 사찰의 신중탱화 속에 산신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조선 중기 이후에 산신 원래의 성격을 불교 안에서 되찾게 되어, 사찰 속에 산신각과 산신 탱화가 등장하게 된 것이다. 즉, 산신각은 불교 바깥의 하근기 사람들을 불교 속으로 끄러 들이기 위한 방편에 의해 건립된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산신은 요마를 물리치는 가람 수호신의 기능과 함께 산속 생활의 평온을 비는 외호신으로 받들어지고 있으며, 신도들은 복 많이 받고 돈 많이 벌고 가족 모두 질병 없이 부귀장수하기를 기원하는 소재강복의 장소로 산신각을 찾고 잇다.
산신각 안에는 호랑이와 노인의 모습으로 묘사한 산신상을 봉안하거나, 이를 탱화로써 묘사한 산신상을 봉안하거나, 이를 탱화로서 도사화한 그림만을 모시기도 한다. 산신탱화는 여러 가지로 분류된다. 우선 탱화의 중심인물이 남자인 경우와 여자인 경우를 보자.
전통적으로 여자 산신이 관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지리산 계룡산 속리산 등의 사찰에는 할머니의 모습을 한 여자 산신탱화나 소상을 드물게나마 찾아볼 수 잇다. 그 대표적인 것이 속리산 천황사, 지리산 실상사, 약수암의 산신 탱화와 계룡산 동학사의 산신상 등이다.
남자산신탱화는 도교, 유교, 불교적인 것의 세 종류로 대별된다.
도교적 산신탱화는 백발의 수염에 머리는 벗겨지고 긴 눈썹이 휘날리는 신선의 모습으로 묘사되며, 손에는 하얀 깃털 부채나 파초선 불로초 등을 들고 있다.
그리고 산신의 뒤쪽으로는 삼산이 그려지는데, 이는 신선이 살고 있다는 봉래산. 영주산. 방장산을 상징적으로 묘사한 것이다.
유교적 산신탱화는 머리에 복건이나 유건 정자관을 쓰고 지팡이를 들고 있는 모습의 산신할아버지가 그려진다. 또 할아버지 옆에는 이름을 알 수 없는 책거리나 대나무 등의 장식물이 놓이고 차를 달이는 도구들이 빠지지 않고 묘사되어 있다.
불교적 산신탱화는 삭발한 스님이 손에 법화경 등의 불경을 들거나 단주를 쥐고 있는 경우가 많다. 옷 또한 문양이 새겨져 있는 경우가 많아 가사를 변형시켜 입혀놓은 듯하다.
그리고 산신탱화에서 영험이나 회화적 가치가 좌우된다고도 한다. 무섭고 위엄이 있으면서도 애교스럽게 친근감이 담겨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백호. 황색호랑이. 흑호 표범. 줄범. 수레를 끄는 호랑이 등 다양한 종류의 호랑이가 그려지지만, 입. 밖으로 자랑스럽게 들어내고 있는 송곳니 두 개와 소나무 사이로 길게 뻗어 구름 속까지 닿게 한 꼬리는 호랑이의 기상과 기개를 나타내기 위한 특이한 표현법이다.
특히 왕방을 만한 눈을 하면서도 언제나 아래로 내려 뜨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하게 되며 눈동자의 동공은 삼각형 사각형 마름모꼴 이중 동그라미 등의 형으로 그려지는데 눈동자에 파란색과 금박이 들어가 있어 독특한 느낌을 주는 경우가 많다.
또한 산신탱화 속의 동자상은 산신령에게 과일이나 차 꽃을 올리는 모습으로 많이 묘사되는 산신령의 시봉이다.
이와 같은 다양한 모습의 산신탱화가 전국 사찰에 모셔져 있다는 것은 곧 우리의 전통적인 산악 숭배사상이 여러 종교와 습합되고 난 이후 불교에서 이들을 모두 수용하였음을 입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불교의 혼란기에 우리의 사찰 안에는 전과 당과는 다른 각이라는 건물이 생겨나게 되었다. 다른 불교 국가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우리만의 각의 신앙!
오늘날의 우리는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고 받아들일 것인가?
물론 신앙은 없는 것보다 있는 것이 나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구복의 차원에선 기원일지라도 기도가 삼매를 이룬다면 큰 힘과 함께 마음을 맑힐 수도 있으리라. 따라서 이들을 마냥 배척할 문제만은 아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참된 가르침은 욕구를 따르기 보다 인과를 믿고 스스로의 마음을 맑히면서 뭇 생명 있는 이들을 사랑하고 구제하는 실천의 길과 해탈로 모아진다.
인간은 과연 무엇을 어떻게 믿고 어느 곳을 향해 마음을 모아야 하는 것일까? 해답은 각자가 찾을 일이다. 해답은 스스로가 갖고 있음이리라.
일심이 청정하면 일신이 청정하고
일신이 청정하면 다신이 청정하며
나아가 시방중생의 원각이 청정하여라---
<원각경>
산화
산화는 불교에서 치르는 의식으로 부처님 앞에 꽃을 뿌려 공양하는 것이다. 여러 경전에 산화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현장스님이 지운 <대당서역기>에 다음 구절이 등장한다. “부처님이 열반한 날이면 수십만 명의 대중이 보리수 아래 모여 꽃을 꽂고 향을 뿌리고 등불을 밝히면서 음악을 연주하고 공양한다”
스리랑카 불교
스리랑카는 경건한 불교도의 나라이다. 오늘날까지 약 2200년 동안 이교도의 수 없는 침략에서 불교를 꿋꿋하게 지켜왔다. 스리랑카의 문화유산은 번영과 고난으로 점철된 불교도의 역사를 우리에게 잘 보여준다.
아누다라푸라는 19세기 지속되는 싱할라 왕조가 세운 최초의 도시이다. 전설에 의하면, 도시는 기원전 5세기에 건설되었으며, 10세기까지 번영하여 스리랑카의 황금시대를 구가하는 무대가 되었다. 기원전 3세기 인도 아소카 왕의 아들 마힌다가 불교를 전하기 위하여 아누라다푸라에 왔다. 아소카 왕은 인도의 전국토를 통일하고 불교를 근간으로 한 법을 제정해 나라를 다스리고 있었다.
싱할라 왕조의 제7대 왕인 데자 남파야 티 사(재위 기원전250 - 기원전210)도 이를 따라 스리랑카에 불교를 도입했다.
민중에게 불교의 가르침을 전하기 위해서는 도시 근처에도 사원을 세울 필요가 있었다.
데바 남피야 티샤왕은 도시 남쪽 근처에 스리랑카 불교의 총본산인 마하비하라 사원을 건설했다.
왕은 이 마하비하라 사원에 인도에서 가지고 온 보리수를 모시는 사당을 만들었다. 부다가야의 보리수는 그 뒤 없어졌으나, 아누다라푸라의 그 보리수는 놀랍게도 약 2200년이 지난 지금도 살아 있다.
또한 왕은 보리수와 마찬가지로 인도에서 들어온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투파라마 불탑을 세웠다. 사람들은 부처의 사리를 넣어둔 이 불탑을 부처로 생각하고 불탑 앞에 모여 절을 올렸으며, 부처님을 대신하여 승려들로부터 여러가지 가르침을 들었다. 이러한 불탑이 계속 생겼으며, 일반신도에게 불교를 보급하는 데에 큰 역할을 하였다.
두타가마니 왕은 사람들 사이에 불탑 신앙이 번성하는 것을 보고 더 큰 불탑을 세우기로 결심했다. 왕은 마하비하라 사원에 높이 100m가 넘는 루완엘리세야 불탑을 세우기 시작했다. 불탑은 왕위를 이은 동생인 제 15대왕 사다티사(BC137- BC 119)시대에 완성되었다.
현재 마하비하라 사원에 솟아 있는 순백색의 루완엘리세야 불탑은 19세기에 다시 세워진 것이다. 불탑은 벽돌로 만들었으며, 기단 위에 부처님의 사리를 넣은 반구형으로 왼 사발모양의 덮개가 올려져 있다.
아귀(餓鬼)
굶주린 귀신. 살아서 남의 재산을 많이 강탈하고 인색하게 살면 죽은 뒤에 아귀보를 받는다고 한다. 목은 바늘 구멍만 하고 배는 큰 산과 같은데 음식이 입에 들어가면 불로 변하기 때문에 아무 것도 먹을 수 없는 고통을 받는 귀신이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 아누다라삼막삼보리의 속음.
무상(無上) 정등 정각(正覺), 무상(無上) 정등각(等覺)등각 등으로 번역함. 위없이 높고 바른 깨달음으로서 불과의 지혜를 가리키는 말.
아라한(阿羅漢)
존경받을 만한 성자. 대승 불교에서 소승의 성자를 가리키는 말. 응공이라고도 하며 여래의 열 가지 칭호 가운데 하나이다.
아미타불(阿彌陀佛)
줄여서 미타 또는 여러 이름이 있으나 일반적으로 아미타불 또는 무량수불(無量壽佛)이라 함. 정토 3부경에 있는 이 부처님의 역사는 오랜 옛적 과거세에 세자재왕불의 감화를 받은 법장(法藏)이 2백10억의 많은 국토에서 훌륭한 나라를 택하여 이상국을 건설하기로 기원하였다. 또 48원을 세워 자기와 남들이 함께 성불하기를 소원하면서 장구한 수행을 거듭한 끝에 마침내 성불하여 아미타불이 되었다. 오랜 예적에 성불한 아미타불에 대하여 이 부처님을 10겁 전에 성불한 아미타불이라 한다.
아비 지옥
무간 지옥이라고 하며 8열 지옥 중 가장 밑에 있는 지옥.
아수라(阿修羅)
싸우기를 좋아하는 천신. 줄여서 수라라고도 함.
아승기겁 (아승지겁)
산스크리트어 아상키야 칼파의 음역어. 헤아릴 수 없이 긴 시간을 뜻함. 겁이란 인간이 상상하기 어려운 영원에 가까운 시간의 단위이며, 아승기는 인도에서 사용하는 수의 단위로서 헤아릴 수 없는 수를 뜻한다. 따라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무한한 시간을 가리켜 아승지기겁 또는 줄여서 아승기라고 함.
악업(惡業)
악한 결과를 받을 입,몸,뜻으로 짓는 동작이다. 5악, 10악 등이 있다.
안거(安居)
출가 수행자들이 4월 15일부터 7월 15일까지 한 곳에 모여서 외출을 금하고 수행하는 제도. 고대 인도의 브라만 교에 안거하는 제도가 있었는데, 6군 비구들이 여름에 행각하다가 폭풍우를 만나고 초목과 벌레들을 죽이게 되어 많은 비난을 받았으므로, 비가 오는 때에는 외출을 금지하고 한 곳에 머물러 있던 것이 음력 10월 15일부터 정월 15일까지 겨울 안거를 지낸다.
업(業)
입,몸,뜻으로 짓는 말과 동작과 생각하는 것과 그 세력. 선업과 악업이 있으며 10선업, 10악업 등 여러 종류의 업으로 나뉜다. 때로는 악업의 경우만을 업이라고 지칭하여 말하기도 한다.
업보(業報)
선악의 업에 의해 받는 고락의 과보.
여래(如來)
부처님의 다른 이름. 여실한 진리에 수순하며 이 세상에 와서 진리를 보여 주는 이
여래(如來)십호(十號)
부처의 열 가지 다른 이름. 응공 ㆍ 정변지 ㆍ 명행족 ㆍ 선서 ㆍ 세간해 ㆍ무상사 ㆍ 조어장부 ㆍ천인사 ㆍ불 ㆍ 세존등.
여시(如是)아문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라는 뜻. 부처님의 가르침을 제자가 들은 바 대로 믿고 의심하지 않음을 선언하는 문구로서 경문의 서두에 쓰이는 상용구.
여여(如如)
한결같고 변함이 없다는 뜻.
여의(如意)륜 보살
6관음 보살중의 하나. 손에는 여의주와 보륜을 들고 있는데, 여의주는 중생의 소원을 들어주고, 보륜은 불법을 굴리는 것을 상징한다.
여의주(如意珠)
뜻한 바대로 모든 것을 이루어 주는 구슬.
연등불(練燈佛)
석가모니불의 전생에 보살이었을 때 미래세에 반드시 성불할 것을 수기해 주었던 부처. 제화갈라불, 또는 정광불이라고도 함.
연등(燃燈)회
고려 때 왕궁,서울, 시골 할 것 없이 매년 정월 보름날에 이틀 밤 동안 등불을 켰던 풍습. 성종 때 폐지하였다가 현종 1년(1010) 윤 2월에 다시 행하였다. 그 후부터는 매년 2월 보름에 연등회를 베풀었다. 공민왕 1년 (1352) 4월 8일 궁중에 연등을 걸고 궐내에서 100분의 스님에게 공양한 후로 매년 연등회를 거행했다. 조선 시대에도 국초부터 반세기 전까지 왕궁에서 여러 가지 등을 만들어 불을 켰고, 서울 종로에서도 각 상점마다 등을 만들고 불을 켜서 4월 8일을 성대하게 보냈다.
연화장 세계
비로자나불이 잇는 공덕무량, 광대 장엄의 세계를 말한다. 십련 화장 자엄 세계해, 연화장 장엄 새계해, 화장계등이라고도 한다.
염부(閻浮)제
4주의 하나로서 수미산의 남쪽에 있으며, 7금산과 대철위산 중간, 바다에 있는 대주의 이름, 염부나무가 무성한 나라 또는 염부단금을 산출하는 나라라는 뜻, 섬부주라고도 함.
염불 왕생(往生)
아미타불을 믿고 일심으로 그 명호를 부르고, 염불만으로 극락 세계에 왕생하는 것. 염불은 인, 왕생은 과이다. 타력의 인과, 즉 아미타불의 대비 원력의 회향에서 비롯된 것.
염불 왕생(往生)원
아미타불 48원 중 제18원. 아미타불의 제도를 믿고 염불하는 중생은 받드시 이 서방극락 정토에 왕생하도록 서원한 아미타불의 원력.,
염불(念佛)
①부처님의 상호를 관찰하면서 그 공덕을 생각하는 것. ②입으로 아미타불의 명호를 외우는 것.
염불 삼매(三昧)
①일심으로 부처님의 상호장엄을 관하고 그 관이 성숙하여 법계에 두루한 이법신의 실상을 관하는데 이르는 삼매. ②정토문에서 아미타불만 염하고 생각이 다른 데로 흩어지지 않게 일심으로 이름을 부르는 것.
염불(念佛)위선(爲先)
정토에 왕생하기 위하여 수행하는 데는 염불이 첫째라는 말이다.
염주
불보살에게 기도하거나 절을 하면서, 또는 참회할 때 그 수를 헤아리기 위해서 사용하는 법구의 일종. 보통 108개로 되어 있으나 1,000개로 된 염주, 7개,16개,21개 등 손목에 거는 단주 등 여러 종류가 있다.
영복(靈福) 영혼의 안락.
영산회(靈山會)
석가모니가 영취산에 머물면서 설법하던 때의 모임. 주로 법화경을 설하던 당시의 모임을 지칭한다.
영취산
기사굴산을 가리킴. 중인도 마가다국의 왕사성 부근에 있는 산 이름, 석가모니가 설법하던 장소로서, 정상에 독수리 모양의 바위가 있었다고 아여 이름 지어진 산이다. 취두, 취봉, 취대 등으로도 불린다.
예토(穢土)
정토의 반대어. 더럽고 고통스런 국토, 극락 정토와 대비하여 세속의 중생들이 살아가는 곳을 일컫는 말. 진도라고도 함.
오미(五味)죽
선가(禪家)에서 12월8일 석가모니가 성도한 날에 먹는 죽. 5곡을 섞어서 만든 죽이다. 석가모니가 성도하기 전에 수자타가 우유죽을 공양한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오방(五方)
동서남북, 4방과 중앙.
오백나한(羅漢)
500명의 비구, 500상수라고도 한다 아라한(阿羅漢)과를 중득한 이로 존경과 공양을 받을 만한 500명의 성자들. 석가모니 당시의 제자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500명의 제자를 가리키며, 그들은 경전을 편찬했던 제1차 결집 때 참여했던 비구들이다. 동북 아시아 지역에서 500나한에 대한 신앙이 특히 성행했다.
오온(五蘊)
존재를 구성하는 색, 수 , 상 , 행 ,식 등 다섯 가지의 요소, 5음,5중, 5취온 이라고도 함.
오욕(五慾)락
재물욕,색욕,음식욕,명예욕,수면욕등 인간의 다섯 가지 기본 욕망.
오탁(五濁)
말세에 발생하는 사회적, 정신적, 생리적인 다섯 가지의 더러움. 겁탁, 견탁, 번뇌탁, 중생탁, 명탁 등.
옥호(玉毫)
32상의 하나. 부처님의 두 눈썹 사이에 있는 희고 빛나는 가는 털.
옥황(玉皇) 상제(上帝)
도가(道家)에서 말하는 하느님. 옥제라고도 한다.
온(蘊)
모임, 쌓임,집적.
옴 마니 반메 훔
진언의 일종. 라마교 신자가 염송하는 주문의 하나. 연화수 보살에게 귀의하여 극락에 왕생하기를 바라면서 염송하면, 죽은 뒤에 윤회 전생하는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게 되는 공덕을 얻는다고 한다. ‘관세음 보살 육자 대명왕 진언’ 이라고 함.
옹호(擁護)
중생과 불법을 보호하여 지키는 것.
왕사
임금의 스승. 나라에서 특별히 인정한 큰 스님에 대한 호칭.
왕사성
고대 인도의 마가다국의 수도.
왕생(往生)
이 세계에서 저 세계로 다시 태어나는 것.
우담발화
인도, 스리랑카 등지에서 자생하는 뽕나무과의 식물에서 피는 꽃 이름. 나무 크기는 한길 남짓하며, 잎은 4~5촌 정도이며, 잎 모양은 뾰족하며 끝이 가늘다. 암수 다른 꽃이 피지만 쉽게 볼 수 없는 은화 식물이다. 불경에서는 우담발화가 3천년 만에 한 번 꽃이 핀다고 하여 상서로운 일 또는 매우 희유한 일에 비유하는 예로써 쓰인다. 담화라고 줄여서 말하거나, 영서화, 공기화, 기공화 등으로 번역한다.
운수(雲水) 생활
선승들이 물이나 구름처럼 한 곳에 집착하지 않고 정처 없이 행각하는 것, 아무뜻없이 이리저리 방랑하는 생활이 아니라 선지식을 찾거나, 만행을 통한 구도의 행각을 뜻한다.
원각(圓覺)
부처님의 원만한 깨달음.
원력(願力)
서원의 힘.
원적(圓寂)
열반과 같은 말로서 번뇌와 잡념의 세계를 여의고 생사를 뛰어넘는 절대의 청정한 경계를 뜻함. 원은 모든 공덕이 원만하다는 뜻이고, 적은 적정하여 고요하다는 뜻이다. 원적은 입적 증 승려의 죽음을 지칭하는 말로도 쓰인다.
위의(威儀)
예법에 맞는 엄숙한 몸가짐.
유루(有漏)
번뇌를 뜻함. 즉 번뇌가 있는 것.
유정(有情)
중생, 즉 정식이 있는 생물.
육신(六神)통
불보살의 여섯 가지 초인적인 능력. 미래 일을 훤히 볼 수 있는 천안통, 무든 것을 다 들을 수 있는 타심통, 과거세의 일을 다 아는 숙명통, 어디든지 갈 수 잇는 신족통, 번뇌를 끊음이 자유 자재한 누진통 등이다.
응신(應身)
중생 교화를 위해서 사람과 같은 모습으로 나타난 부처님의 몸.
인과 응보
착한 인에는 착한 과, 악한 인에는 악한 과가 상응하게 나타나 착오가 없음을 말한다.
인본주의(人本主義)
인간이 모든 것의 중심이 된다는 사상.
입법계품
화엄경의 마지막 품이다. 선재동자가 남방으로 53선지식을 찾아다니면서 도를 구하여 법계의 이치를 터득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60권 화엄겨에서는 제44권 이하이며, 80권 화엄경에서는 제 61권 이하이다.
자비(慈悲)
중생에게 낙을 주는 것을 자, 고를 없애주는 것을 비라고 한다. 또는 고를 없애 주는 것을 자, 낙을 주는 것을 비라 하기도 한다.
장로(長老)
지혜와 덕이 높고 법랍이 많은 비구를 통칭하는 말. 젊은 스님이 나이든 스님을 높여 부르는 이름이다. 존자, 구수라고도 함.
장삼(長衫)
법의의 한 종류, 웃옷인 편삼과 아랫매기인 군자를 위아래로 합쳐서 만든 법복.
재(齋)
신,구, 의 삼업을 정제하여 악업을 짓지 않는 것, 법회때 스님이나 세속인들에게 음식을 대접하는 것을 말하며, 우리 나라에서는 불보살에게 공양하는 것을 재라 하고, 후세에는 성대하게 불공하는 것을 재라고 한다. 또한 죽은 이를 위하여 천도하는 법회를 재라고 한다.
적멸(寂滅) 미혹의 세계를 영원히 이탈한 경계이며 열반과 같은 뜻.
적멸궁(寂滅宮)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고 법을 설한 보리 도량을 가리킴.
적멸(寂滅)락 미혹의 세계를 영원히 벗어난 경계로서 열반에 드는 즐거움.
절 불상을 봉안하고, 승려들이 거주하면서 불도를 닦고 교법을 설하는 공간을 가리킴. 가람, 정사, 사찰 등 다른 여러 이름이 있다.
점심(點心)
낮에 먹는 식사를 점심이라고 하지만 본래의 의미는 선종에서 야식을 먹기 전에 먹는 소식(小食)을 가리키는 말이다. 글자 그대로 "음식으로써 뱃속에 점을 찍을" 만큼 적은 양의 식사를 말한다. 그저 빈 속에 요기가 될 정도로 먹어 시장기를 위로한다는 것이니 "간식"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그것이 이제는 낮에 먹는 식사로 의미가 변해 중식(中食), 오반(午飯)등의 뜻으로 쓰이고 있다.
정진(精進)
성불하려고 노력하는 보살이 수행하는 6바라밀의 하나, 수행을 게을리하지 않으며, 항상 ㅇ요맹하게 나아가는 것이다.
정취 보살
관세음 보살의 화현으로서 정취 관음이라고도 부른다. 화엄경 입법계품에 나오며, 해탈문을 널리 설해 주는 보살이다.
정토(淨土)
부처님이 있는 청정한 국토. 성불을 말하는 대승 불교에서 인정하는 국토로서 예토의 반대어이다.
제바달다
석가모니의 사촌동생의 이름. 석가모니를 해치고자 했으나 끝내 실패하였다. 번역하여 조달이라고도 함.
조사(祖師)
1종 1파의 선덕으로서 후세 사람들이 귀의하고 존경을 받치는 스님. 일반적으로는 1종 1파를 세운 스님을 지칭하는 말.
종송
사찰에서 아침과 저녁, 염불하기 직전에 종이나 금고를 치면서 외우는 경문, 또는 그러한 의식을 가리킴
종지
한경전에서 말하여 나타내는 뜻, 가장 기본이 되고 중요한 교의를 가리킴, 또는 어떤 한 종파의 중심고의를 말함.
종풍(宗風)
어느 한종파의 풍의나 가풍
주련(柱聯)
사찰의 일주문, 전각, 요사채 등의 기둥에 걸려있는 판목을 가리킴. 해당 건물과 조화를 이루는 내용의 경문이나, 스님들의 계송 등을 담고 있다.
죽비(竹?)
법구의 하나. 한 자 반정도의 길이의 대나무, 또는 직경 1촌 5품정도의 나무를 소재로 하여 그길이의 3분의 2쯤은 가운데를 타서 두쪽으로 갈라 지게하고, 3분의 1은 그대로 두어 자루를 만든 것이다. 죽비의 자루는 오른손에 뒤고 가라진부분을 왼쪽손바닥에 쳐서 소리를 낸다. 죽비자라고도 한다.
지옥(地獄)
6도중의 하나. 중생들이 자가가 지은 죄업으로 말미암아 태어나게 되는 지하의 세계이다.
찰나(刹那)
한 생각을 일으키는 짧은 순간
참선(參禪)
선법을 참구하는 것. 스스로 좌선 수행을 하거나 자기가 모범을 양모하는 선지식을 찿아가서 선을 묻고 배우는 것.
참회(懺悔) 스스로 범한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비는 것. 불교 도덕을 실천하는데 중요한 의례의 하나. 참회는 그방법과 성질에 따라, 포살이나 자자등이 있다.
천개(天蓋)
장엄물의 하나. 닫집이라고도 함, 불보살상이 안치된 불단위에 일산 양식의 덮개를 조성하여 장엄을 도모한 조형물, 본래 비나 먼지 등을 방지 하기 위해서 조성하기 시작했으나, 후대에는 장엄의 기능이 더강조 되었다.
천도
죽은 이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불보살에게 재를 올려서 영혼들로 하여금 정토나 천계에 태어나도록 기원하는 법식, 천혼, 천영이라고도 한다.
천수(千手) 보살
천개의 손과 천개의 눈으로 중생을 구제해 주는 관음 보살, 6관음중 하나.
천안(天眼)
5안의 하나. 천도에 나거나 선을 닦아서 놓은 경지에 이르면 얻게되는 눈,
총림(叢林)
여러 승려들이 화합하여 함께 배우며 안거하는 것을 가리킴. 수많은 승려들과 신자들이 모여 있는 것이 마치 나무가 우거진 수풀롸 같다는 비유에서 비롯된말.
축생(畜生)
짐승, 곤충 등의 동물을 총칭하는 말.
출가(出家)
번뇌에 얽매인 속세의 생활을 버리고 수행자의 생활로 입문하는 것.
취사(取捨)
취하는 것과 버리는 것
칠변(?)
불보살이 갖춘 일곱가지의 능통한 변재
칠보(七寶)
일곱가지의 보배. 금, 은, 유리, 파려(수정), 자거(휜산호), 붉은 진주, 마노 등
칠성(七星)
북두칠성을 가리킴, 도교에서는 칠성이 인간의 길횽화복을 주재한다고함 이에따라 칠성여래 또는 칠원성군이라한다.
탁발(托鉢)
손에 발우를 들고 이집 저 집다니면서 먹을 것을 얻는 것. 출가 수행자의 생활방식을 대표하는 말이다. 단순한 생활양식뿐 아니라 아집과 아만을 없애 주고 보시하는 이의 복덕을 길러주는 공덕이 있으므로, 석가모니 이래로 불교교단의 기본 원칙이었다.
탱화
불보살, 성현들의 초상을 그린 그림을 지칭한다. 후불 탱화, 불탱화라고도 한다.
통찰(洞察)
환히 살펴서 온통 밝힘
파계(破戒)
계를 받은 사람이 신, 구, 의 3업을 조심하지 못하고 계법에 위반되는 일을 하는 것
패엽경(貝葉經)
패다리수라는 활엽수 잎에 바늘로 새긴 불경.
포교(布敎)
부처님의 법을 널리 세상에 펴는 것
피안(彼岸)
저 언덕, 즉 깨달음의 세계를 가리킴.
해동(海東)
발해의 동쪽, 즉 우리나라를 가리킴
해탈(解脫)
번뇌의 속박을 벗어나 자유로운 경계에 이르는 것
호법(護法)
불법을 지키고 유지함
화두(話頭)
선종에서 고칙, 공안 등의 1절이나 1칙을 가리키는 말, 참선 수행자가 궁구하는 근본문제
화상(和尙)
아사리와 함께 수계사인 스님을 지친하는 말. 일반적으로 덕이 높은 스님을 가리켜 부르는 호칭
화탕지옥(地獄)
끓는 가마솥에 들어가 삶아져서 죽은 다음 다시 살아났다가 다시 또 반복하여 끓는 물에 들어가 삶아지는 고통을 받는 지옥
하현(下弦)
보살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어려 모습으로 변하여 세상에 나타나는 것
회향(回向)
자기가 닦은 선근 공적을 다른 중생이나 또는 자기의 불과로 되돌리는 것.
후광(後光)
뒤에서 발산하는 빛. 불보살상의 머리 뒷부분에 있는 광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