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흔히 피아노 앞에 앉아서 무언가를 연주하고,연주한 것을 바로 악보에 적는 모습을 상상하곤 합니다.하지만 이는 미화된 작곡가의 표상일 뿐, 실제로 이러는 작곡가는 없습니다. 작곡은 외부의 음향 세계와는 별도로 내면의 귀를 통해 이루어지는 작업입니다.종이 위에 적기 전에는 극작가 자신도 대사를 읊조릴 수 없는 것과 비슷하죠.
예를 들면,작곡가는 내면의 귀를 통해 교향곡의 기본 바탕이 되는 복잡한 구조를 만들어내고 발전시켜나갑니다. 음악심리학자들은 이 창조의 과정을 ‘블랙 박스(black box)’라고 부르기도 하지요. 어떤 식으로든 이 과정을 완벽하게 설명해내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악보에 기록된 음악 작품은 작곡가의 뇌에서 이루어지는 복잡한 작업의 종착역입니다. 막스 레거(Max Reger)는 오랜 기간을 두고 생각을 거듭하며 작품을 구상하고 완성한 뒤에 그것을 며칠 만에 악보로 옮겨 적었지요. 감각적이고 생생한 내면의 귀는 작곡가가 음악을 인지하는 최상의 도구입니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바그너의<트리스탄과 이졸데>악보를 자세히 보며 내면의 귀로 들어본 후에야 비로소 이 오페라를 듣고 싶다는 간절한 열망을 품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작곡은 추상적인 음악을 구체적인 실제 음향으로 전환하는 악기의 배합이나 편성과는 다른 작업입니다. 여러 다양한 악기들을 배합하여 오케스트라를 구성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지요. 여기서는 외부 음향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베토벤은 비록 청력을 잃기는 했지만 예전에 건강한 귀를 가졌을 때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또 그에게는 생생한 내면의 귀가 있기에 작곡을 계속해나가는 것이 가능했지요. 그렇다고는 해도 말년에 쓴 작품들을 더 이상 들을 수 없었던 것은 베토벤에겐 비극적인 일이었겠죠. <출처:쾰른음대,‘클래식 음악에 관한101가지 질문’_03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