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행선사 삼계교 실천운동
중국 서안에서 가까운 종남산 지상사는 신라 의상대사가 공부하고 수행하던 도량이다
나는 어린시절 영주 부석사에서 행자로 살았던 인연으로 의상대사를 존경하게 되었고,
그 후 종남산 지상사를 세번에나 참배한 적이 있었다.
첫번째는 1997년 1월에 나 혼자 걸망매고 부산에서 국제선 비행기를 타고 북경에 내려서 다시
국내선을 타고 서안에 도착하여 물어 물어 지상사를 참배하였다. 그후 2009년 존경하는 나의 도반
보윤큰스님과 함께 지상사를 참배하였고, 세번째는 동국대학교 명예교수 해주큰스님을 모시고 의상대사
발자취를 따라서라는 주제로 경주 황복사에서 시작하여 완주 경복사지 그리고 해골바가지 물마시고
일체유심조를 깨달은 평택 수도사를 거쳐서 배를 타고 중국 위해시로 가서 다시 최치원이 관직으로
살았던 양주로 그리고 서안 종남산 지상사로 갔다. 그때가 2017년 2월 이었다.
이제 수나라 신행선사 이야기를 풀어본다. 백탑사 절은 지상사에서 승용차로 약 10분정도 산 아래로
내려오면 백탑사라는 크지 않은 작은 사찰이 있는데 수나라 신행선사가의 유해가 안장 된 곳이다.
사찰 뒷편에는 수령이 수백년으로 보이는 아주 큰 은행나무가 서 있다.
나의 존경하는 도반 보윤큰스님과 2009년에 백탑사를 참배하고 은행나무를 돌아 보았다.
아래 글은 부산 라디오 불교방송에서 방송대본으로 신행선사에 대하여 쓴 글이다.
불교를 공부하다보면 옛 스님들 가운데 특별히 관심이 가거나 호감을 갖게 되는 스님이 있지요.
신행선사(信行禪師 540 - 594)가 그런 분입니다.
스님은 중국 수나라때 사람으로 부처님의 큰 사랑으로 대중들을 구제하고 서민들의 아픔을 함께
공감하고 공유하면서 인간사랑을
온 몸으로 보여 주셨던 위대한 분입니다.
스님의 어머니께서 슬하에 자식이 없자 부처님께 나아가 기도하여 스님이 출생하게 됩니다.
스님께서 4살 되던 해, 집 앞에서 소달구지가 진흙 땅에 빠져 꼼짝 못하면서 소가 울부짖자 어린아이도
소의 고통을 같이 느끼고 함께 울었습니다. 이미 어린 나이에 아픔을 함께 나누는 동체 대비심이
잠재되어 있었습니다.
10살에 출가하여 경율론 삼장을 모두 배우고, 20세 중반에 장안(서울)으로 나아갑니다. 그때 스님은
다음과 같이 생각 했습니다. "부처님의 훌륭한 가르침으로 현재의 민중들을 어떻게 구제하고 구원할
수 있을까" 스님은 시대를 반성하고 자신을 성찰하면서 새로운 불교 이념을 창출하게 됩니다. 시.처.인
이라는 삼계교(三階敎)를 표방 했던 것 입니다.
시(時): 시대적으로 우리는 말세에 살고 있다.
처(處): 우리들이 살고 있는 처소는 사바세계이다.
인(人): 인간 존재는 어리석음에서 출발한다.
스님은 우리의 실존적 현실을 깊이 관찰하면서 우리의 존재는 서로의지하고 서로 도와 가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공존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었고 삼계교의 실천운동으로 무진장행(無盡藏行)을 설치하게 됩니다.
이 기구는 불자님들이 가지고 온 재물이나 재화를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는 빈민 구제소와 같은
기능입니다. 스님은 재가 불자와 더불어 빈민구제 운동을 활발하게 진행하는데 많은 불자들이 환희심으로
동참을 했습니다. 그때의 기록에 보면 장안에 살고 있던 사람들은 기쁜 마음으로 재물을 기증하고, 민중들은
환희의 눈물을 흘렸다라고 했습니다.
삼계교의 실천불교 운동이 전개되면서 백록산에 계시는 덕망 높은 승옹선사를 모시고자 했습니다. 함께
민중을 구제하고 구원하자는 의미겠지요 신행스님이 세 번을 찾아가서 예를 갖추어 동참을 호소했지만
승옹스님은 대답이 없었습니다. 신행스님은 승옹스님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스님, 산 깊은 곳에서 홀로 부처님이 되어서 어쩌자는 것입니까저 슬프디 슬픈 민중들의 삶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까 먼저 중생을 제도하고 널리 인간을 이익되게 하는 것 마땅히 출가승이 해야 할 일
아닙니까?" 신행스님의 간절한 말씀에 승옹스님은 자리에서 일어나 빈민구제사업에 몸을 던지게 됩니다.
그러나 무진장행을 실천한지 20년, 55세의 많지 않은 나이에 신행
스님은 입적 했습니다. 장안에서 다비장이 있는 종남산까지 60리 길에는 스님의 죽음을 애도하는 인파가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온 장안이 통곡 소리로 진동하였습니다. 스님은 인간을 깊이 사랑하고 자비심을 실천한 분입니다. 어느 불교 학자는 스님을 일컬어 "중국에 불교가 전래된 이래 최고의 자각이자 양심의 부르짓음"이라 했고 또 어떤 분은 "중국 불교 역사상 최초의 종교운동이었다"라고 했습니다.
스님은 대승불교의 보살 정신에서 중생이 아프면 나도 아프다라는 말씀을 깊이 체감하시고 큰 사랑을 실천한 위대한 스님입니다. 성불하십시오.
종남산 지상사를 찾아가다보면 마을 중앙에 간판도 없이 초라한 절이 하나있다.
민가 가운데 있어서 절인지 민가인지 구분이 안되는 절이 백탑사이다.
절도 없이 수천년의 은행 나무만 지키고 있다가 근년에 은행나무 옆에 절을
지어 백탑사라고 불렀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종남산 지상사도 2009년 까지만 해도
정말 초라한 절 이었다. 후에 가보니 엄청난 절로 변화되어 있었다.
왜 절이름을 백탑사라 했을까. 신행선사 열반후 종남산에서 다비를 하게되고
그 유골을 모아 탑을 만들고 사람들이 선사의 은덕을 찬양하게 된다.
얼마나 선사의 덕화가 컸으면 탑 주위에 항상 백여명의 불자가 모여 탑을 보고 경배하고
절을 올렸을까 그리고 신행선사때에 심은 은행나무만 아직도 그 푸르름의 소식만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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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적 법시(法施) 이외에 물질적 구제도 함께 베풀어져야 한다는 그의 무진장법(無盡藏法) 사상은,
당시 곤궁에 허덕이던 일반 서민 대중들의 참상을 목도한 데에서 발로된 현실적 사회사업관이라고 할
수 있었다. 나아가 산중불교에서부터 촌락불교로, 개인 수도 중심에서 민간 대중불교로 전향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한 신행의 삼계 보법 사상 역시 단적으로 말해서 이런 시대적 분위기를 배경으로 하여 배태된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첫댓글 상구보리.
하화중생.
스님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