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하8:26절 - 아하시야는 통치하기 시작할 때에 이십이 세였으며 그는 예루살렘에서 일 년 동안 통치 하였더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아달랴이며 그녀는 이스라엘 왕 오므리의 손녀더라,
대하2:22 - 아하시아는 통치하기 시작할 때에 사십이 세였으며 그는 예루살렘에서 일 년 동안 통치하였더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 역시 아달랴이며 그녀는 오므리의 손녀더라,
* 왕하8장과 대하22장에서는 아하시왕의 등극 나이가 다르게 기록되어 있다, 이 문제로 많은 현대 역본들은 필사자의 오류로 단정짓고 대하22:2절 42세를 22세로 고쳐서 읽기를 한다 아들이 아버지보다 2살이나 많을 수 없다는 이유이다,
* 아하시아 왕의 아버지 여호람 --> 32세에 등극하여 8년을 통치하고 40세에 죽었다 대하22:5,20
* 아하시아(아들):아버지가 죽은 직후 왕이 되었는데, 역대하 22:2절에 그의 나이를 42세라고 기록한다
* 결론 적으로 간단하게 답을 하게 되면 ------->
* 아하시아 나이가 대하22:2절 42세로 기록하는 것은 필사자의 오류가 아니다, 유대,서기관, 랍비들이 철저하게 구약 말씀을 지켜 왔기 때문에 오류가 있을 수 없다,
* 아하시아 왕의 42세는 -----> 타락한 오르리 왕조의 영적 계보를 기록한 것이다,
* 오므리 왕조는 단순히 북이스라엘의 한 시대를 풍미한 가문이 아니라, 이스라엘 전체를 바알 숭배의 어둠으로 몰아넣은 '영적 배도의 진원지'다.
* 오므리는 사마리아를 건설하고 주변국(페니키아, 모압 등)과 강력한 외교 관계를 맺어 나라를 안정시키려 했던 왕이다. 시돈(페니키아) 왕 엣바알과의 동맹은 오므리의 핵심 외교 전략이었으며, 그 상징이 바로 아들 아합과 이세벨의 결혼이었
* 오므리 왕조의 부패가 남 유다에 흘러 들어온 기간이다 ----> 성경은 '그러나 오므리가 주의 눈앞에서 악을 행하되 자기 이전에 있던 모든 자들보다 더 악하게 행하였으니' 라고 기록한다(왕상 16:25) 북이스라엘의 우상숭배를 체계와하고 견고히 다진 인물이다,
* 남유다로 바알숭배의 악한 영을 흘러 들어가게한 결정적 계기 ---->
* 아버지 세대:남 유다의 여호사밧왕 ↔ 북 이스라엘의 아합왕 (서로 사돈 관계를 맺음) 대하18:1
* 자녀 세대 (결혼):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Jehoram)↔ 아합과 이세벨의 딸 아달랴(Athaliah)와 혼인함, 대하21:6
* 비극의 시작은 ----->
* 시아버지 여호사밧:비록 본인은 하나님을 잘 섬겼으나, 악한 가문과 손을 잡음으로써 유다 왕실에 '이세벨의 영'이 들어오는 문을 열어주었다.
* 남편 여호람:아내 아달랴의 영향을 받아 자기 형제들을 모두 죽이고 유다에 우상 숭배를 퍼뜨리는 악행을 저질렀다.
* 아들 아하시아:이 결혼에서 태어난 아들이 바로 아하시아 이다
* 아하시아는 어머니 아달랴의 조언을 받아 아합 집안의 길을 그대로 따랐고, 결국 그가 왕이 된 시점에 오므리 가문의 42년이라는 심판의 계수가 적용된 것이다,
*결국 바알 숭배를 국교로 삼다 ----> 바알과 아스다롯을 숭배하는 시돈의 딸 이세벨을 왕비로 맞이하여 우상숭배를 이스라엘 공식 종교로 수입하고 하나님의 진노의 타임이 계수되는 시작점이다,
* 42년 ---> 타락한 바알 숭배의 영적 계수를 수학적으로 풀어 보자 ----> 성경은 산수를 가르치는 책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연대기를 기록한 책이라는 것을 인지 하면서 보자
* 왜 아하시아를 '42년'으로 부르는가?
* 아하시아는 신분상 다윗의 자손이지만, 혈통적으로는 아합과 아달랴의 피가 섞인 오므리의 자손'이기도 했습니다.
대하22:3 - 아하시야도 아합 집의 길들로 걸었으니 이는 그의 어머니가 그의 조언자가 되어 사악하게 행하도록 하였기 때문이라,
| 구분 | 연수 계산 (누적) | 영적 의미 |
| 오므리 통치 | 12년 | 오므리 왕조의 시작 (부패의 뿌리) |
| 아합 통치 | 22년 (누적 34년) | 남유다 여호사밧과 혼인 동맹 (독소 침투) |
| 아하시아(북) 통치 | 2년 (누적 36년) | 바알 숭배의 극치 |
| 요람(북) 통치 중 | 6년 (누적 42년) | 남유다 아하시아 즉위 시점 |
* 이 42년은 단순히 북이스라엘의 역사를 기록한 숫자가 아니라, 거룩해야 할 남유다 다윗 왕조에 북이스라엘 오므리 가문의 독소(죄악)가 침투하여 완전히 퍼지기까지 걸린 시간을 계산한 것이다.
** 이 42년의 아하시야왕의 타락한 바알 숭배 영적 심판의 숫자는 정통한 유대 랍비들은 어떤 결론을 내리는가? 정통한 문헌을 찾아보자
* 다음 책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유대교 문헌 연대기 이다,
유대인들이 현재 사용하는 유대력(Hebrew Calendar)의 기초가 된 문헌이며, 탈무드에서도 이 책을 권위 있게 인용다.
* 세데르 올람 라바 --> 2세기경 (AD160) , 탈무드(AD4-6세기)
* 저자 랍비 요세 벤 할라프타 --->유대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랍비 중 한 명인 랍비 아키바(Rabbi Akiva)의 수제자 5명 중 한 명다.
* 로마의 박해로 유대교가 존폐 위기에 처했을 때, 유대교의 전통과 율법을 보존하여 후대에 전수한 '보존의 세대'를 대표하는 인물다
하인리히 구겐하이머 (Heinrich W. Guggenheimer, 1924~2021)
신분: 독일 출신 유대인, 수학자이자 언어 학자, 탈무드 학자, 스위스 연방 공과대학교(ETH Zurich)에서 수학을 전공하여 박사 학위
특징:그는 원래 미국 존스 홉킨스 대학교 등에서 근무한 수학 교수다. 수학자 특유의 정밀함으로 성경 연대기의 복잡한 계산과 문헌의 구조를 분석했다.
텍스트 직역 (Direct Translation)
"(열왕기하 8:17을 보라) 여호람이 왕이 되었을 때 32세였으며 예루살렘에서 8년을 통치했다. 그의 아들 아하시아에 대하여는 (열왕기하 8:26) '아하시아가 왕이 되었을 때 22세였다'라고 말하며, 또 다른 곳(역대하 22:2)에서는 '아하시아가 왕이 되었을 때 42세였고 그는 1년을 통치했다'라고 말한다.
랍비 요세(Rebbi Yose)가 말했다:어떻게 아들이 아버지보다 두 살 더 많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아사(Asa) 왕이 자기 아들(여호사밧)을 오므리의 딸(이세벨 혹은 그 가문)과 혼인시켰을 때, 다윗 왕조가 아합의 집안과 함께 끝날 것이라는 하늘의 법령(decree)이 내려졌다.>그래서 (역대하 22:7) '아하시아가 요람에게로 가서 패망하게 된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니...'라고 기록된 것이며, 그들(남유다의 아하시아와 북이스라엘의 요람) 둘 다 같은 날에 함께 쓰러진 것이다.“
<남유다 배교 계산>
아사왕 31년(시작점) 오므리 사마리아 건설 시작점
아사왕 총41년 41-31=10
여호사밧(아사의 아들) 총25년
여호람(여호사밧의 아들) 총8년
최종결과 10+25+7 = 42년 ----> 위의 1년을 빼는 이유 유대의 즉위년 계산법이다,
여호람의 마지막 해:여호람이 8년째에 죽고 아하시아가 즉위한 그 겹치는 1년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숫자가 달라진다,
pdf
배도의 무서움:거룩한 다윗 왕조라 할지라도 세상(오므리 가문)과 타협하는 순간, 하나님의 시계는 심판의 카운트다운을 시작한다는 경고를 확인한 결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