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성 면담 요청조차 몰랐다, 朴도 궁금한 ‘옥새 파동’ 진실 [박근혜 회고록 20 - 당청관계(하)]
에디터김정하유성운손국희
박근혜 회고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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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민 원내대표가 물러난 이후엔 헝클어진 당·청 관계를 정상화하는 게 급선무였다. 2015년 7월 16일 나는 청와대에서 김무성 대표, 원유철 원내대표, 김정훈 정책위의장 등 여당 지도부를 초청해 당·청 회동을 열었다.
나는 김 대표를 “당을 잘 이끄느라 1년 동안 노고가 많았다”고 격려했고, 김 대표는 “박근혜 정부의 성공이 곧 우리의 성공이란 생각을 항상 하고 있다”고 화답했다. 원유철 신임 원내대표는 당·청이 찰떡같이 화합하자는 취지에서 청와대 직원들에게 찰떡을 돌리기도 했다. 나는 단체 회동을 마친 뒤 김 대표와 별도로 20분 정도 독대했다. 당시 대화 내용을 정확하게 기억하진 못하지만 대략 추경을 비롯한 국회 현안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에 대해 의견을 나눴던 것 같다. 그날은 분위기가 상당히 좋았다. 그렇게 당·청 갈등이 잘 봉합됐더라면 박근혜 정부의 역사는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오픈프라이머리 놓고 불붙은 김무성, 친박 마찰
2015년 9월 17일 국회에서 열린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서청원 최고위원(가운데)은 김무성 대표(오른쪽)에게 오픈 프라이머리 실시에 대한 입장을 밝혀줄 것을 공식 요청했다. 중앙포토
그러나 현실은 나의 바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2016년 20대 총선을 앞두고 공천제도 변경 논란이 불씨가 됐다. 김무성 대표는 그가 전당대회에 출마했을 때 공언했던 것처럼 ‘오픈 프라이머리’(완전개방형 국민경선제)를 도입하겠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러나 이미 언급한 것처럼 나는 오픈 프라이머리에 부정적이었다. 아마 그렇게 될 경우에 현역 의원들이 대부분 재공천을 받게 될 텐데, 야당이 대대적인 ‘새 피 수혈’로 나올 경우 선거가 어려워질 것이란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 야당 지지자들이 조직적으로 여당 경선에 개입할 가능성도 컸다. 나뿐 아니라 청와대 참모나 새누리당에서도 비슷한 우려를 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래서 그 문제를 놓고 2015년 가을부터 김 대표와 당내 친박계 인사들 사이에 마찰이 커졌다. 그러다 그해 9월 28일 김 대표와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부산에서 만나 안심번호를 활용한 국민공천제를 도입하기로 합의하면서 갈등이 폭발했다. 나는 당시에 유엔총회 참석차 미국에 있어서 자세한 사정을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