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투어(1)
동방을 지배하라
3박 4일짜리 여행도 촉박하고 인색한 일정인데 다시 2박4일로 쥐틀어 짜진 일정을 보고 나는 단박 번개투어라는 말이 튀어나온다. 세상이 갈수록 다사축시(多事縮時)로 내 몰리고 있으니 다 인간의 욕구충족을 위한 그칠줄 모르는 행진의 진행형이로다.
세계일주를 했다는 내가 정의 하기로는 해외는 평균 일주일 정도로 다녀오는것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해왔다. 북유럽 중남미나 아프리카 인도 등은 2주 이상을 잡고 다녔는데 귀가 하고나서 몸이 정상 회복되려면 한달이상의 휴식기가 소요된다. 그래서 1주내외가 좋다고 생각했는데 그 기간이 갈수록 단축되고 있다는 느낌이다.
왜 이런 현상으로 가고 있는가? 경비절감과 교통통신의 발달이 받쳐주는 충분조건이 수반된다고 그래서 가능해진 일이지만 여행사와 우리의 입장은 상반된 그늘이 존재하고 있다. 여행사는 경비절감이라고 할것이고 관광객 대부분은 그렇게 믿고 따를 것이나 나는 약간 다른 생각이다. 여행이란 중노동이다. 몸을 너무 혹사시키면 60넘은 고령자에게는 무리다. 십여년전 미 동부 여행때 느낀 결론이다.
교통통신의 발달에 편승한 여행사들의 경쟁이 겹쳐 이런 무리가 발생한다. 겉으로는 싸게싸게를 내세우지만 손해보고 장사하는 사장이 있겠는가? 그 이익을 위한 담보로 잡힌 우리 몸둥아리가 수면을 취해야할 시간을 탈취당한다. 밤비행기 띄워 밤에 갔다 밤에 온다는 것은 피로를 누적시켜준다는 위험이 수반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여행을 생활로 사는 사람이야 하늘에서도 버스에서도 토끼잠 자는 습관이 베어있겠지만 보통 사람으로서는 무리가 아닐 수 없다.
무안공항에서 밤9시20분 출발 제주항공은 약 3시간이 조금 넘기전 12경에 블라디보스톡 공항에 착륙했다. 공항에 내려서 현지 가이드 이용현의 안내를 받게된다. 새벽시간이라 자이무트호텔로 이동 새벽잠으로 5시간정도 자고 아침 호텔식 마치고 시내 투어에 들어갔다. 블라디보스토크는 동방을 지배하라 라는 뜻으로 러시아의 가장 아끼는 중요 항구도시다. 연해주에 있는 이곳은 조선시대에 녹둔도가 우리의 지배하에 있기도했으나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러시아로 귀속된것같다.
날씨가 반팔 티가 추울 정도로 선선한 가을 날씨였다. 블라디보스토크는 1860년까지는 중국의 영토였고, 해삼위(海參崴)로 불렸다. 지금도 중국에서는 그 중국어 발음인 '하이선와이'(Hǎishēnwǎi)라고 부르지만 러시아어 표기를 음차한 푸라디워스퉈커(중국어: 符拉迪沃斯托克, Fúlādíwòsītuōkè)라는 이름도 사용된다. 일본에서는 '우라지오스토쿠'(일본어: ウラジオストク)라고 부르며, 과거에는 이를 줄여 우라지오(浦塩)라고 쓰기도 했다. 연해주 남부에 위치한 표트르대제 만을 아무르스키 만과 우수리스키 만으로 나누는 좁고 긴 산악 반도인 무라비요프 아무르스키 반도(길이 30km, 너비 12km)의 남단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러시아 해군의 태평양 함대의 기지가 위치한 군항 도시이다. 반도 선단의 금각만 연안에 시가지가 있다.
1858년 러시아 제국이 청나라와 강제로 아이훈 조약을 체결한 후 항구와 도시의 건설이 시작되었고, 1872년에 군항도 니콜라예프스크에서 이곳으로 옮겨왔다. 1890년대부터는 무역항으로서 크게 발전하였으며, 1903년 시베리아 철도가 완전히 개통됨으로써 모스크바와도 이어지게 되었다. 1918년 봄부터 1922년까지 이 지방은 외국의 간섭군대에 의해 점령된 적이 있으며, 제2차 세계대전 때에는 연합군의 원조물자를 이곳에 양륙하였다. 블라디보스토크는 군항일 뿐만 아니라 무역항의 기능도 가지고 있었으나, 현재는 무역항의 기능이 시의 동쪽 약 90km 지점에 신설된 나홋카 항으로 옮겨졌다.
2012년 9월 8일부터 이틀간 제 24차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블라디보스토크의 루스키 섬에서 개최되었다. 러시아 정부는 이 회의를 위해 길이 3.1km의 4차선 도로인 블라디보스토크 대교(大橋)를 건설했다. 시내와 루스키 섬을 잇는 세계 최장 사장교(斜張橋)이다.
러시아 정부는 2020년까지 2조 루블을 투입해 첨단산업 기지와 경제특구를 조성, 100만 인구를 가진 "러시아의 샌프란시스코"로 발전시킨다는 계획이다.
블라디보스토크는 중화인민공화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러시아 세 나라의 국경이 만나는 지점에 위치하며 개인 사업과 국제 무역, 관광이 급속히 발전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국제 심포지움과 학술 회의가 자주 열리고 태평양 함대의 모항이기 때문에 세계 각국의 해군 함대들이 친선 사절로 온다. 주된 산업은 조선업과 고래·게 등 어업, 어류·해산물 가공업, 군항 관련 산업이다. 선박수리, 목재 가공, 식료품 공업도 있다. 남동쪽의 나홋카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 개방된 상업항, 어항으로 러시아의 극동을 향하는 제2의 문호이다.[1] 러시아 태평양 함대의 본부가 있는 군항(軍港) 도시이기 때문에 소비에트 연방 시대에는 폐쇄도시였다.
번투어(2)
항일 독립운동의 요지
블라라디보스톡은 우수리스크와 약70km 떨어진 아르툠의 블라디보스톡 국제공항까지는 철도 편 뿐만 아니라 버스, 택시, 에어로익스프레스 등의 일상적인 교통편으로 접근가능하다.
블라디보스토크는 중화인민공화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러시아 세 나라의 국경이 만나는 지점에 위치하며 개인 사업과 국제 무역, 관광이 급속히 발전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국제 심포지움과 학술회의가 자주 열리고 태평양 함대의 모항이기 때문에 세계 각국의 해군 함대들이 친선 사절로 온다. 주된 산업은 조선업과 고래·게 등 어업, 어류·해산물 가공업, 군항 관련 산업이다. 선박수리, 목재 가공, 식료품 공업도 있다. 남동쪽의 나홋카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 개방된 상업항, 어항으로 러시아의 극동을 향하는 제2의 문호이다.[1] 러시아 태평양 함대의 본부가 있는 군항(軍港) 도시이기 때문에 소비에트 연방 시대에는 폐쇄도시였다.
우수리스크 : 블라디보스톡에서 우수리스크는 북북동으로 광주에서 전주 가기 정도의 거리에 있다. 우수리스크(러시아어: Уссурийск, 문화어: 우쑤리스크)는 러시아 프리모르스키 지방의 남부에 위치한 도시이다. 우수리스키 군의 중심지이다.
옛 이름은 니콜리스크우수리스키(Nikol’sk-Ussuriiski, 1895~1935년), 보로실로프
(Voroshilov, 1935~1957년)이다. 우수리스크는 러시아 극동의 교역 도시 가운데 하나로서, 중국이나 북한과의 국경 밀무역이나 일본제 자동차 밀수, 심지어 매춘 알선까지도 주도하는 마피아 활동이 왕성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2004년에는 우수리스크를 근거지로 하던 마피아 간부가 자신의 무용담이나 범죄, 투옥 경력을 본인이 직접 재현한 실화 드라마를 지방 텔레비전 방송국에서 방영하였는데, 생생한 실황이나 실탄 발사를 사용한 액션 등의 연출로 주목을 끌기도 하였다.
한편 우수리스크는 우수리 강 연안 지방에서 경제적 영향력을 갖고 있다. 다만 도시의 이름과는 달리 우수리 강이나 그 지류도 이곳을 지나지는 않는다.
연해주(沿海州)는 과거 말갈의 땅이었고, 고구려 유민이 중심이 되어 발해가 세워지자 발해의 영토에 편입되었다. 발해의 15부 가운데 하나인 솔빈부가 우수리스크 지역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발해가 멸망한 뒤에는 여진족이 이곳에 살았다. 12세기 여진족의 금(金) 왕조는 이곳에 휼품로를 설치해 상경로의 속로로 두었고 다시 17세기 만주족의 청(淸) 왕조가 수립되자 청 왕조의 영토로써 주르호톤(만주어:Juru hoton, 한어:双城子) 또는 풀단 호톤(Furdan hoton, 한어:富爾丹城)로 불리게 되었다.
1866년에 청 왕조는 이곳을 제정 러시아에 할양했고, 6년 후 차르 니콜라이 1세의 이름을 딴 니콜리스크예 마을을 두었다. 동청철도(東清鉄道)와의 연락을 위한 우수리스크 철도가 개통되고, 이 마을의 중요성은 더욱 커져서 1898년, 니콜리스크 우수리스크 시가 되었다.
항일독립운동 :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최재형이 머물렀는데, 함경도의 노비 출신으로 연해주로 이주, 군수업을 통해 모은 막대한 재산을 쏟아 부어 당시 연해주로 망명한 한국 의병들에게 성능 좋은 소총을 지급하고 러시아 내의 항일 의병 세력을 모아 무장단체 '동의회'를 결성, 러시아 국경의 일본군 초소와 소규모 부대들을 모두 격파하고 많은 탄약과 소총을 탈취하는 등 적극적인 무장 독립투쟁을 펼쳤으나, 러시아 내의 일본인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연해주로 온 일본군에게 1920년 4월 5일 체포되었고, 63세로 총살되었다. 우수리스크에는 최재형이 일본군에게 체포되기 전 거주했던 집이 현재까지도 남아 있다.
1935년, 스탈린의 측근이었던 클리멘트 보로실로프의 이름을 딴 보로실로프 시로 이름이 바뀌었다. 스탈린이 죽은 뒤 보로실로프가 실각하면서 1957년에 지금의 이름인 우수리스크 시로 개칭되었다. 1988년, 러시아 연방 정부의 결정으로 우수리스크는 역사도시로 편입되었다.
주요 산업 : 우수리스크의 주요 산업은 농산물을 이용한 식품산업으로 이 밖에 금속공업이나 군수산업도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중국에서 들여온 상품 등을 취급하는 곳 등 교역 기능도 갖추고 있다. 한편 중국과의 전쟁에 대비한 러시아 지상 부대가 다수 집결되어 있고, 도시의 경제를 군에 의존하는 측면도 있다.
명소 : 소련이 붕괴되고 많은 수의 러시아 정교 교회가 재건되었는데, 도시 한복판의 생신녀비호성당(生神女庇護聖堂,Pokrovskaya tserkov, The Church of the Intercession)은 1914년에 세워졌고, 1917년 이래 한 번도 손을 대지 않은, 교회 본래의 역할로 쓰인 연해주 유일의 교회이다.
소련다운 거대한 퍼레이드용 광장이 있는 등 러시아 혁명 뒤 일본의 시베리아 침공 때 러시아 적군(赤軍)과의 전투를 기념하는 비석이 세워져 있다.
도시 북쪽에는 북동아시아 최대 규모의 호수로 람사 조약에도 등록된 철새 도래지 한카 호수(중국명 흥개호興凱湖)가 있다.
시내의 우수리스크 드라마 극장은 1937년에 세워졌고, 러시아 육군이 보유한 두 개의 극장 가운데 하나다(다른 하나는 모스크바에 있다).
라즈돌나야 강 근교에는 발해의 옛 성터와 함께,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이상설의 유허비가 세워져 있는데, 이상설이 "독립된 조국이 아니면 그곳에 내 시신도 들여놓지 않겠다"며 사후 유해를 화장해 이 강에 뿌려줄 것을 유언한 데서 기인한다.
우수리스크의 한인이주 140주년 기념관 앞에는 2015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옮겨온 안중근 의사의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생전에 안중근에게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 사살하도록 제의한 것도 최재형 이었으며, 그를 러시아 법정에서 재판받게 하려는 시도가 불발되고 안중근이 끝내 뤼순에서 사형된 뒤, 최재형은 안중근의 유가족을 돌봐주었다고 한다. 블라디보스토크 주립 의과대 앞에 세워져 있었던 해당 비석은 2012년 말 의과대에서 일방적으로 철거, 시청 창고로 옮겨졌던 것을 2014년 8월에야 우수리스크로 옮겨, 지반 공사를 거쳐 현재의 위치에 세워지게 된 것이다.
고려인 문화센터(한인이주 140주년 기념관) 및 최재형 선생의 우수리스크 생가가 소재하고있다.
하바롭스크
하바롭스크(러시아어: Хабаровск, 중국어: 伯力)는 러시아의 도시로, 하바롭스크 지방의 중심지이다. 아무르 강 유역에 자리 잡고 있는 하바롭스크는, 강을 끼고 있는 도시가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시베리아의 차가운 이미지를 씻어버릴 만큼 고풍스런 건물들이 줄지어 아무르 강을 바라보고 있으며, 많은 언덕과 강을 따라 산책하기 좋은 오솔길, 극동의 역사를 간직한 시내는 관광객의 시선을 끌고 있다.[1] 고조선의 건국신화에 관하여 시기(市旗)에 나타내었다.
독립운동가의 대부 최재형선생이 살았던 곳에 기념관을 만들어 놓았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