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레사가 성심의 마리아 수녀에게 보낸 편지
1896년 9월17일
사랑하는 언니, 언니에게 답장 쓰는 것은 제게 큰 기쁨이랍니다..... 제가 하느님을 사랑하는 만큼 언니가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는지 어떻게 물으실 수 있죠.....?
언니가 저의 작은 새 이야기를 이해하셨다면, 그런 질문을 하지 않으셨을 거예요. 순교에 대한 저의 열망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제 마음속에 느껴지는 무한한 신뢰를 제게 주는 것은 순교의 열망이 아니랍니다..... 그 열망은 예수님께서 때때로 저처럼 연약한 영혼들에게 (그런 영혼들은 많지요) 주시는 위로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런 위로를 주시지 않는다 해도 그것 역시도 특별한 은총이지요. “순교자들은 기쁘게 고난을 겪고, 순교자들의 임금님은 비통함 속에서 고난을 겪는다.”라는 하느님의 말씀을 언니도 아실 거예요. 그래요. 예수님께서도 “아버지.....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라고 말씀하셨어요. 이런 것을 본다면 언니, 순교의 열망이 하느님에 대한 제 사랑의 표시라고 어떻게 말하실 수 있죠.....?
아!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건 그런 게 아니에요. 그보다는 보잘것없고 가련한 제 모습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스스로 자랑스러워한다는 것을 보실 때, 하느님께서는 틀림없이 기뻐하실 거예요. 저는 하느님의 자비로우심을 절대적으로 믿고 기대하는 가련한 영혼입니다..... 그게 저의 유일한 보물이지요. 사랑하는 대모님, 언니도 똑같은 보물을 갖고 있을 거예요.....
좋으신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모든 것을 감내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신가요? 준비되어 있으리라고 전 믿어요. 기쁨을 맛보고 싶다면, 고난을 기꺼이 감내할 수 있다면, 언니는 위로를 찾은 것과 마찬가지예요. 무언가를 사랑하면, 고통은 이내 사라져 버리니까요.
오, 사랑하는 언니, 제발 부탁이에요. 언니의 보잘것없는 동생을 이해해 주세요. 예수님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사랑으로 죽은 희생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저의 생각이에요. 더욱더 연약해질수록, 열망이나 덕성들을 버리면 버릴수록, 소모시키고 변형시키는 그 큰 사랑의 작용에 부합하는 사람이 될 수 있어요.....
희생자가 되고자 하는 열망만으로 충분하지요. 또한 늘 불쌍하고 힘없는 존재로 남아 있어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답니다. “진정으로 마음이 가난한 자, 그런 사람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요? 아주 멀리서 찾아야 합니다.”라고 시편 저자가 말했어요..... 큰 영혼들 중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에요. ‘아주 멀리서’,이 말은 ‘낮은 데서’, ‘비천함 속에서’, ‘무(無) 속에서’를 뜻하지요.
그렇기에 우리는 번쩍거리는 모든 것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서 머무르고, 우리의 보잘것없음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상태를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마음이 가난한 자들이 되고,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머물러 있는 ‘먼 곳으로’ 친히 찾아 오셔서 우리를 사랑의 불꽃으로 변화시켜 주실 거예요..... 오! 제가 깨달은 것을 언니가 다 이해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오직 신뢰만이 우리를 그 큰 사랑을 인도해 준답니다..... 두려움은 우리를 법정으로나 인도하지 않을까요.....? 우리는 그 ‘길’을 알고 있어요. 우리 함께 그 길로 가요. 네, 저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똑같은 은혜를 베푸시려 한다는 것을 알아요. 우리에게 ‘아무 대가 없이’ 하늘나라를 선물해 주시려 한다는 것을 말이에요.
오, 사랑하는 언니, 언니가 제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건 언니가 너무 큰 영혼이어서 그럴 거예요..... 아니면 제가 제대로 설명을 하지 못해서 이해할 수 없으셨겠죠. 좋으신 하느님께서는 하느님에게, 또 그분의 자비로우신 사랑에 마음을 사로잡히고 싶어하는 열망을 주시지 않았으리라고 전 믿어요..... 아니면 이미 그런 열망을 주셨는지도 모르겠군요. 하느님께 온전히 의탁하고 계신 언니의 모습을 볼 때, 또 그분에 의해 소모되고자 열망하는 언니의 모습을 볼 때 그런 생각이 들어요. 좋으신 하느님께서는 실현될 수 없는 열망을 심어주시진 않으니까요.....
벌 써 아홉 시가 되었네요. 이젠 가 봐야 해요. 아! 언니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은데..... 하지만 제가 글로 다 못 쓴 이야기들은 언니 스스로 깨닫게 해 주실 거예요.....
언니에게는 늘 감사하는 마음뿐이에요. 그리고 마음속 깊이 언니를 사랑해요.
가르멜에서 아기 예수의 데레사 수녀
첫댓글 하느님의 자비로우심을 절대적으로 믿고 기대하는 가련한 영혼.... 저도 그런 가련한 영혼입니다...
저도 하느님의 자비로우심을 절대적으로 믿고 기대하는 가련한 영혼입니다. 이 보잘것없고 가련한 제 모습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스스로 자랑스러워 할 수 있기를,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모든 것을 감내해 나갈 수 있기를, 그리하여 조금이나마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