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테의 돈으로 세상 읽기 82
고시엔과 광복
일본 고교야구 대회를 통칭 고시엔이라 한다. 한신 타이거스의 홈구장인 한신 고시엔 구장에서 본선이 열리기 때문에 붙은 별칭이다. 일본 야구 꿈나무들의 소원은 고시엔 구장을 밟아보는 것이다. 하지만 고시엔 흙냄새를 맡는 건 하늘의 별 따기다. 4,000 가까운 고교 야구팀 중 본선은 40여 팀만이 진출한다. 예선 경기에서 한 번이라도 지면 끝이다.
고시엔 열기는 폭염만큼이나 뜨겁다. 일본의 국민적 여름 대축제가 고시엔이다. 지역 학교 야구팀이 100분의 1 확률을 뚫고 본선에 진출이라도 하면 시민들의 대화는 야구로 시작해서 야구로 끝난다. 고시엔을 밟은 선수들은 경기장 흙을 한 줌 담아가 평생 간직한다. 반면 예선 결승전에서의 패배는 통곡이다. 선수와 감독은 물론 응원단까지 눈이 붓도록 운다. 꿈에 그리는 고시엔의 흙을 담을 수 없기 때문이다.
재일한국인들이 1947년에 세운 교토국제고가 고시엔에서 우승했다. 남녀학생을 다해봐야 160명 남짓한 학교다. 물론 야구선수의 대부분은 일본인 학생이다. 기적이란 소릴 듣기까지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했을지 알만하다.
이 학교 학생들에게는 한국어, 한국사, 한국 문화를 가르친다. 입학하게 되면 한국어로 된 교가부터 배운다. ‘동해 바다 건너서’로 시작하는 교토국제고 교가가 선수들의 합창으로 NHK를 통해 일본 전역에 생중계됐다. 이를 두고 언론들이 흥분한다. 호들갑 떨 일이 아니다. 우승한 일본 학생들이 장차 태극마크를 달 것도 아니고 일본해 대신 동해라고 불러서 독도의 파도가 잠잠해질 것도 아니다. 고시엔은 일본 고교야구축제일 뿐이다.
몽골은 한국과 수교하기 전까지 몽고로 불렸다. 몽고(蒙古)는 예부터 어리석다는 뜻으로 중국인들이 몽골족을 비하하기 위해 만든 말이므로 용감하다는 뜻의 ‘몽골’로 불러 달라는 요구가 있었다. 지금 몽골인들은 선진 한국에 열광한다. 한국에 와있는 몽골인이 4만 명을 웃돈다. 300만 명의 인구구조인 나라 치곤 많은 숫자다. 우리 또한 형제국이라며 몽골인을 살갑게 대한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몽골은 우리에겐 달갑지 않은 침략국이었다. 원나라에 예속된 고려 왕들은 충성을 맹세한 이름을 가져야 했다. 충렬·충선·충숙왕은 폐위됐다가 복위했고, 충혜·충목·충정왕은 5년을 버티지 못했다. 그 굴욕의 역사 중심에는 원나라 출신의 왕비들이 있었다. 칭기즈칸의 손자 쿠빌라이의 딸과 결혼하여 원나라 부마가 된 충렬왕이 시초다. 왕들은 백성을 다스리기 전 몽골 여자의 시기와 질투부터 잠재워야 했다.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는 우리 역사에 더 깊은 상처를 남겼다. 병자호란 때 바다에 빠져 죽은 여인들의 머릿수건이 바람에 떠다니는 연못의 낙엽처럼 염해 가득했다는 기록이 있다. 20만 명으로 추정되는 부녀자가 끌려갔고 대다수는 고향 땅을 밟지 못했다. 우여곡절 끝에 돌아온 여자들도 비참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오랑캐에게 몸을 더럽혔다는 환향녀(還鄕女)란 주홍글씨는 서생들의 붓끝에서 마르지 않았고 대들보에 목을 맨 여자들에겐 열녀비를 세워줬다. 6.25 전쟁에 이르기까지 중국에 짓밟힌 주권 훼손은 모두 입에 담기 힘들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그 아픈 과거를 묻지 않고 있다.
광복절이 지났다.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를 두고 친일프레임도 모자라 국가안보실은 야당으로부터 밀정이란 소릴 들었다. 도를 넘었다. 대통령 광복절 경축사에 동감하는 것은 광복의 정의다. 우리의 광복은 여전히 미완이며 남북통일이 이뤄질 때 완전한 광복이라는 인식은 평가할 만하다. 또한, 통일 한국의 정치체제가 자유민주주의여야 한다는 데 이의가 있을 수 없다. 북한 동포의 인권을 거론했다고 비난할 일도 아니다. 통일을 위해서는 세계와의 연대가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과거를 기억하는 것은 바른 미래로 나아가기 위함이다. 우리 젊은이들은 소모적 역사논쟁에 관심이 없다. 일본인들은 한류에 취해 공항 문턱이 닳고 일본 록밴드 히게단의 한국공연 티켓은 3분 만에 매진됐다. 4차산업혁명이라는 거대한 문명의 전환점에서 미래에 대한 비전이나 고민 없는 낡은 정치투쟁은 그만둘 때가 되었다.
그런 점에서 대한민국 젊은이들은 희망적이다. 아무도 칭기즈칸의 조랑말을 타지 않고 청나라 변발을 흉내 내지 않는다. 청춘들은 일본인들에게 열등감이 일도 없다. 최신 스마트폰으로 맘에 드는 해외상품을 직구하고 틈이 나면 국제선 비행기에 여행 가방을 싣는다. K-팝을 흥얼거리는 우리 청년들은 이제 글로벌 시민이 되었다.
그렇다고 일본을 만만히 봐선 안 된다. 인구수는 1억 2,300만 명으로 세계 12위다. 내수시장만으로도 먹고살 수 있는 나라다. 그들은 전국시대에 조총으로 무장하여 조선을 침략했고 태평양 전쟁에서는 전투기와 항공모함을 만들어 미국과 대적했다. 아직은 허접하게 죽창가를 불러 제압할 수 있는 나라가 아니다.
요즘 중국이 고전하고 있다. 경제 붕괴론은 다양한 관점에서 현실화할 가능성이 있다. 외국계 투자 기업들이 보따리 싸고 부자들은 해외 이민에 눈독 들인다. 2049년 완성을 목표로 한 '일대일로' 전략은 주변국들이 계산기를 두드리면서 진척이 더디다. 이같이 ‘대국굴기’의 야망이 꺾이고 있는 데는 너무 일찍 머리를 쳐든 이유가 크다. 미국과 맞짱 뜰 체급이 아닌데 성급하게 링에 오른 게 패착이다.
이웃과는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 강대국과는 더욱 그렇다. 친미, 친중이 되고 일본과도 잘 지내야 한다. 수해로 고통이 더한 북한 동포도 도와줄 방법을 찾아야 한다. 보복은 또 다른 보복을 낳는다. 항구적 평화와 번영을 위해서는 밉더라도 용서의 손을 내밀어야 한다. 물론 용서는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베푸는 아량이다. 약자의 아량은 굴종일 뿐이며 용서는 강자가 가진 너그러움이다. 그것이 가장 근사한 대갚음이다.
극일의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한국이 일본보다 강한 나라가 되는 것이다. 의료지원단을 꾸려 칭기즈칸 후예들을 치료하듯, 수수 잎에 긁힌 중국 여성들에게 화장품을 발라주듯, 경제, 군사, 문화에 있어 일본보다 우위에 달할 때 그들을 용서할 수 있고 너그러워질 수 있다. 그때까지는 링에 올라 어설픈 주먹을 휘두를 필요가 없다. 체급을 올리기 위해서도 통일은 해야 한다. 그날이 진정한 광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