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이령* 고갯길
윤명수
산도 산을 넘으려고 허리를 꾸부리고 있었다
인생사 굽이굽이 열두 구비
산 너머 어디쯤 가면 삼천갑자 동방삭이 있을까
부는 바람도 흐르는 구름도 등을 구부려 아득한
열두 고개를 넘고 있었다
패랭이 모자에 괴나리봇짐을 짊어진 과객이 과거
보려 한양땅으로 갈 때도 넘었고
아비는 솥단지 떼어 짊어지고 아이를 업은 어미는
단봇짐을 이고 한숨으로 넘던 보릿고개 길
뱃가죽에 허기가 달라붙은 각설이는 허리춤에다
바가지를 주렁주렁 매달고 넘어갔고
염장 고등어가 고등어를 업고 소금가마가 찌든
땀방울을 업고 넘어갔다
봉화 장에서 쌀, 참깨, 콩가마, 삼베는 허덕지덕
고개를 넘어 울진 바지게 장터로 가고
울진 흥부 장터에서 춘향가를 부르던 남사당패는
춘향이를 만나러 봉화 춘양장으로 넘어갔다
고갯마루 아래 주막집 부엌에는 한 보부상이
외상 술값에 잡혀 불목하니 노릇을 하고
봉놋방에는 오래전 집을 하직한 아버지가
막걸리잔을 잡고 졸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울진에서 봉화로 이어지는 고개
첫댓글 산중의산골
마음속의 길들이 아름다운 가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