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대 중반 세상에 한국보다 더 배고픈 나라는 없었다. 한국의 기아문제는 해결의 기미조차도 보이지 않고 이제는 개인의 자금이나 구호는 물론 국가정책으로도 서민의 배고픔을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
1961 남대문 시장에서 삼양식품 전중융 사장은 사람들이 한 그릇에 5원하는 '꿀꿀이 죽'을 사먹기 위해 줄을 서있는 것을 보고 한국인의 배고픔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고민합니다.
전 사장은 고민을 했답니다.
‘저 사람들에게 싸고 배부른 음식을 먹게할 방법은 없을까?“
고민 끝에 전 사장은 일본에서 라면을 제조하는 기술을 들여옵니다.
하지만 외화가 없고 국교가 단절됐던 때라 라면을 제조하는 시설을 들여오기는 하늘에 별따기였습니다.
정부가 가진 달러를 민간이 원화로 사던 시절, 한 라인에 6만 달러인 라면 제조시설을 수입하기엔 전 사장도 돈이 부족했고 가난한 정부도 옹색하긴 마찬가지였습니다.
궁하면 통한다고 전 사장은 당시 중앙정보부장이던 김종필(JP)씨를 찾아갑니다.
“국민들 배 곯리지 말자”는 전 사장의 호소에 당시 나는 새도 떨어트릴 정도의 세도를 가진 JP는 마침 농림부가 가지고 있던 10만 달러 중 5만 달러를 전사장이 사도록 도와줍니다.
이를 계기로 두 사람의 우정은 이후 오랜 세월 이어집니다. 신용장을 열고 전 사장이 일본으로 갔지만 일본의 반응은 냉담했답니다. 일본도 어렵던 시절, 라면 제조시설을 국교도 없는 한국에 선뜻 팔려고 나서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여러 곳을 수소문하다 전 사장은 묘조(明星)식품의 오쿠이(奧井) 사장을 만나 한국의 식량 사정을 이야기하며 도와달라고 청합니다.
다음 날 대답을 들으러 다시 찾은 전 사장에게 오쿠이 사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 이야기를 듣고 많아 생각했다. 나는 한국에 가본 일이 없고 아직 국교정상화도 안됐지만 한국 전쟁이 일본 경제를 재건해준 셈이다. 당신들은 불행했지만 우리는 한국전쟁 덕분에 살아가고 있다. 내가 민간 베이스로 기술을 무상으로 제공하고 시설도 싼 가격으로 제공하겠다.“
오쿠이 사장은 한 라인에 6만 달러라던 라면 제조시설을 두 라인에 2만 5000달러로 즉석에서 발주를 해주었다고 합니다.
면과 수프의 배합에 관한 일화도 있습니다. 전 사장은 일본 현지에서 라면제작의 전 공정을 배우지만
일본인 기술자들은 끝내 면과 수프의 배합 비율은 가르쳐주지 않더랍니다.
전 사장이 끝내 비율을 못 배우고 서울로 돌아오는 날, 오쿠이 사장은 비서실장을 시켜 공항에서 봉투 하나를 전 사장에게 전해줍니다. 비행기에서 뜯어보라는 그 봉투 안에는 기술자들이 펄펄 뛰며 비밀로 했던 면과 수프의 배합비율이 적혀 있었습니다. 가난하고 굶주렸던 국민들의 배를 채워줬던 라면은 이렇게 눈물겨운 사연을 안고 1963년 9월 15일 삼양 ‘치킨라면’이란 이름으로 태어났습니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게 그 유명한 삼양라면이다. 대한민국 최초의 라면이다. 이 라면은 허기진 서민들과 배고픈 어린이들 끼니조차 챙기기 힘든 노동자들의 주린배를 든든히 채워주었고 심지어 해외에 수출되러 외국인들의 배고픔 문제와 국가경제에 매우 큰 기여를 했다.
박정희 대통령조차 삼양식품의 인간존중 경영책을 보고 배웠다는 일화는 참 유명하다. 박정희가 유일하게 믿고 세무조사를 하지 않은 기업은 유한양행과 삼양라면 뿐이었다. 삼양라면은 국민의 배고픔을 먼저 생각했기 때문에 늘 저가 정책을 고수했다. 시장이 다양해지고 배고픔마저 잊은 국민들은 이제 서서히 순하고 담백한 맛의 삼양라면에 싫증내기 시작했고 뇌기능 저하의 치명적 화학조미료인 MSG를 퍼부어 혀가 마비되기 시작했다. 라면시장은 그야말로 전쟁터이며 결국 삼양라면은 시장점유율 40%까지 내려앉았다.
하지만 삼양라면에서 20년간 써온 2등급 소고기 우지가 노태우정권시절 공업용 우지로 보건사회부에 의해 검찰 고발 되었다. 문제의 공업용 우지는 미국 고급식당이나 가정 패스트푸드점에서 사용하는 2등급 고가 우지였지만 모든 언론사들은 이것을 마치 폐기물로 쓰는 쓰레기 오일로 보도하였고, 결국 이 사건직후 5프로까지 매출이 떨어졌으면 80년대 당시 4천억원의 손실을 입게 돼었다.
게다가 직원의 80프로가 실직 160만 박스의 라면이 폐기처분됐다. 결국 라면시장은 롯데와 농심에게 전부 넘겨주고 마가린과 쇼트닝회사마져 롯데에게 내주게 된다. 5년 후 식용우지가 고급기름이고 미국가정에서도 쓰이기 때문에 무해하다는 법원 판결이 났으나 삼양라면은 이미 만신창이가 된 상태이고 그 기사조차 부패한 언론에서는 언급조차 하질 않았다.
첫댓글 송대의 유명한 정치가인 범중엄(范仲淹)가문처럼 전중윤 가문도 대대손손 번창 하길 발원합니다.
자신의 부귀보다 다른 사람의 안락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이 세상을 아름답고 따듯하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