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는 동시통역사 출신 지상파 방송사 PD가 지은 책으로, 30년 동안 큰돈 들이지 않고 영어를 공부한 자신만의 비법이 담겨 있다. 지은이가 영어 공부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이명박 정부였다고 한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 뒤 이경숙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이 “미국에 가서 오렌지를 달라고 했더니 못 알아들어서 아린지라고 하니 알아듣더라”며 영어 표기법을 획기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해 논란을 일으켰다. 바로 그 유명한 ‘아린지 사건’이다. 갑자기 이명박 정부 인사들이 ‘영어 발음이 중요하다’ ‘영어 몰입 교육을 하겠다’는 식으로 말하더니, 이후로 영어 사교육 광풍이 불었던 시절 이야기다. 이명박 정부는 인수위 때부터 사고를 치더니 자사고를 도입해 공교육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외무 공무원을 뽑을 때 외교관 자녀에게 가산점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특채 범위를 넓히기도 했다.
지은이는 왜 이 사회가 영어를 부의 세습수단으로 삼는지 분노했다고 한다. 돈 많은 집은 어려서부터 아이를 영어유치원에 보내고 조기유학을 보낸다. 방학마다 영어캠프나 어학연수로 영어교육을 시킨 뒤 외국유학을 보낸다. 유창한 영어는 어느새 돈 있는 사람의 상징이 됐다.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 유학 알선 업체, 영어 캠프 업체, 영어 사교육 업체 등이 돈 벌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어느새 영어 교육에 돈을 쏟아 부어야만 영어를 잘할 수 있다는 비합리적 신념이 부모들 사이에 종교처럼 퍼져나갔다.
하지만 지은이가 보기에 이 모든 것은 불공정했다. 그는 고비용 영어교육의 효과에 의문을 제기한다. “영어 조기교육은 득보다 실이 많아요. 경제적 비용이 너무 크고, 모국어 사용 능력이 약해지며, 아이의 자존감마저 꺾기 때문입니다. 몇 억 원씩 영어교육에 투자하면 취업이라도 잘 되는 걸까요?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을 나와서 영어학원 선생님을 합니다. 영어는 잘하는데 한국어를 잘 못하고 한국 문화에 익숙하지 않아 대기업에 입사해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아요.”
지은이 자신은 어학연수를 가본 적도 없고 유학도 다녀오지 않았다. 하지만 영어문장을 암송해 토익 최고 성적을 받았다. 6개월 정도 준비해서 한국외대 통역대학원에도 들어갔다. 영어를 잘해서 세계 곳곳으로 두려움 없이 여행 다녔고 영어 때문에 업무적으로 기회를 얻기도 했다. 그는 “돈이 없어 영어 못한다는 것은 비겁한 변명”이라며 “더는 사람들이 업계의 공포마케팅에 속아 패배주의에 젖을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그의 말은 이어진다. “영어교육은 부모가 시켜주는 게 아닙니다. 언어는 능동성을 발휘해야 하는 거죠. 본격적인 영어 공부는 중학생 시절부터 시작해도 늦지 않아요. 오히려 어릴 때는 영어보다 모국어 공부와 독서 습관에 더 집중해야 해요. 앞으로는 기계가 사람의 일을 대신하는 세상이 오는데 이 때 가장 큰 무기는 독서라고 생각합니다.”
그가 생각하는 저비용 고효율 영어교육법은 영어 암송이다. 무조건 억지로 외우는 게 아니다. 아이들이 싫어할 게 뻔하므로 방학 같은 시간 많은 때를 활용해 스트레스 주지 않는 범위 안에서 조금씩 즐겁게 외워야 동기 부여가 된다. 교재는 교과서만한 것이 없다. 그는 아이가 현재 공부하는 교재를 부모가 함께 암송하는 것을 권한다. 부모가 즐겁게 외우고 독학하는 모습을 보면 아이도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돼 있단다.
(위즈덤하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