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 김종필 전 국무총리(1926~2018)가 '영면(永眠)'에 들자
그가 생전(生前)에 지었다는 "세상에 남길 한마디"를 적은
묘비명(墓碑銘)이 회자(膾炙)되었다고 한다
영광스러운 국립묘지를 마다하고, 아내 곁에 묻히고 싶다는
문구(文句)에서 정치 거목(巨木)이기 전에 한 남편으로서의 면모를
느낄 수 있다.
그는 생전(生前)에 인터뷰에서
"세상에 죽음만큼 확실한 것은 없는데도 사람들은 '겨우살이'는
준비하면서 죽음은 준비하지 않는다."는 말을 남겼다.
그가 눈을 감자 묘비명(墓碑銘) 전문(全文)이 공개되었는데 내용은
물론 해박한 한문(漢文) 실력이 놀라웠다.
김종필 전 국무총리는 생전 자신의 '묘비명(墓碑銘)'을 미리
써둔 것 으로 알려졌다. 부인 박영옥 여사 별세 직후 직접 작성
했다고 한다. 박 여사가 2015년 유명(幽冥)을 달리한 후 그가 써둔
'묘비명(墓碑銘)'은 총 121자(字).....
그는 “한 점 허물없는 생각(思無邪)을 평생 삶의 지표로 삼았으며
나라 다스림 그 마음의 뿌리를 ‘무항산이면 무항심(無恒産而無恒心 ·
생활이 안정되지 않으면 바른 마음을 견지하기 어렵다)’에 박고
몸 바쳤다”고 적었다.
또 “나이 90에 이르러 되돌아 보니 제대로 이룬 것 없음에 절로
한숨 짓는다” 라며 “숱한 질문에 그저 웃음으로 대답하던 사람,
한 평생 반려자인 고마운 아내와 이곳에 누웠노라”고 마무리했다.
김 전 총리가 작성했던 묘비명
「思無邪」를 人生의 道理로 삼고 한평생 어기지 않았으며
無恒産而無恒心을 治國의 根本 으로 삼아 國利民福과 國泰民安을
具現하기 위하여 獻身 盡力 하였거늘 晩年에 이르러
年九十而知 八十九非라고 嘆하며 數多한 물음에笑而不答 하던 者.
內助의 德을 베풀어준 永世 伴侶와 함께 이곳에 누웠노라.
이를 한글로 풀면
“한 점 허물없는 생각을 평생 삶의 지표로 삼았으며,
나라 다스림 그 마음의 뿌리를 ‘무항산이며 무항심’에 박고
몸 바쳤거늘, 나이 90에 이르러 되돌아 보니 제대로 이룬 것 없음에
절로 한숨 짓는데, 숱한 질문에 그저 웃음으로 대답하던 사람,
한 평생 반려자인 고마운 아내와 이곳에 누웠노라”
'사무사(思無邪)'는 생각이 바르므로 사악(邪惡)함이 없다는 뜻이다.
'무항산이무항심(無恒産而無恒心)'은 경제가 궁핍하면 한결 같은
마음을 가질 수가 없다는 맹자(孟子)의 이야기이고, 결국 그가 마음
편히 누울 곳은 아내 곁이었다.
92세 장수(長壽)는 물론 명예와 권력을 모두 누렸으니 그의 생은
누구 부럽지 않은 삶이었을 것이다.
자만할 만도 했겠지만, 90에 이르고 보니 89세까지도 잘못 살았다는
고백이다. 죽음 앞에서 삶을 바라보니 명예나 부(富)도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는 뜻일 터이다.
우리 시대 그는 정치가(政治家)이자 시인(詩人), 그리고 화가(畵家)
이자 '로맨티스트' 였다고 기억된다.
운(運)이 따르지 않았는지 바라던 정상(頂上)에도 오르지 못하고,
만년(晩年) 2인자로 살았지만, 대권(大權)의 꿈을 꾸는 자들은 때가
되면, 그의 집을 찾고, 조언 듣기를 좋아했다.
그런 그도 이제는 고인(故人)이 되었고, 뇌리에서 자꾸 잊혀져 가는
무심한 세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