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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스토아 사상가로서는 우주 통치원리를 지상 국가에 반영해 보려는 꿈을 꾸면서 세계국가
이론을 상상하여 에픽테투스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와 함께 디온(Dio
Chrysostomus: AD40-112)을 꼽게 된다. 노예출신 에픽테투스(Epictetus: ca.A.D.55-ca.135)가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 A.D.121-180)의 스토아 사상에 끼친 영향은 지대하다. 그의 사상은 세계와 인간을 바라보는 황제의 기본시각을 깊이 좌우하였다. 둘이서 개진한 세계시민 사상과 개념
또는 용어(kosmos, polis, polites tou kosmou)가 곧바로 서구 근대 이후에 등장한 `인본주의'의
색채를 띤 것은 아니었고, `세계시민'이라는 용어가 필히 개념적 통일성을 담고 있지도 않았지
만 인류의 사상 발전에 깊숙한 흔적을 남긴 것은 사실이다.
에픽테투스는 `세계의 시민'(polites tou kosmou)이라는 용어로, 우주를 통치하는 신의 경륜을
이해하는 능력을 가진 인간, 거기서 연역되는 바를 숙고하여 행동하는 인간을 지칭하고 있었다
(Epictetus, Dissertationes 2.10.3). 그는 이어서 그 시민이라고 불리울 만한 본분들을 간추려 보이고 있다. 즉 세계시민 이념을 정의하고 학적으로 개진하는 일보다도 그것을 적용하는 일에 부심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대신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그런 용어는 사용하지 않았지만 스스로를 세계시민으로 의식하고 있었다: "안티니누스로서는 로마가 나에게 국가요 조국이지만, 인간으로서는 우주가 나에게
국가요 조국이다"(hos de anthropo ho kosmos polis kai patris: Meditationes 6.44). 그는 "최고국가의 시민으로서"(ibid. 3.11.2), 전체 우주의 일원으로서, 인생과 세계에서 일어나는 제반 사건을 관조하고 그 의미를 사색하는 일이 황제의 주된 관심사라고 언명한다. 다만 행동하고 살아가는 문제가 아니라 사색하고 관조하는 것이 그의 입장이었던가 보다.
(1) 디온의 우주 국가(宇宙國家)
우주가 신과 인간의 거처라는 뜻에서 신과 인간의 공동체 또는 도시국가가 되는 것하고 전세계를 인간과 신들의 사회적 조직체라는 의미의 국가로 만드는 것하고는 반드시 동일하지는 않다. 우주는 그 거창한 계획성 때문에 하나의 국가라고 불릴 만하다. 인간의 유기적인 정치조직과 유사하다는 사실에서, 디온(Dio
Cocceianus Chrysostomus: AD 40-112)은 우주가 제우스라는 단일 군주에게 통치를 받고 있으므로 우주는 조직적인 무엇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논제와관련되는 디온의 저작은, 에픽테투스에게서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에게서도 보게 되는 우주와국가의 이 유비 문제를 해설한 연설문(Oratio 36: 일명 Logos Borysthenitikos)이다.
"간단히 말해서 우주가 신들과 인간의 세계국가라고 하는이 이치는 인류를 신들과 조화시키는데 목적이 있다. 이성을 구사하는 모든 존재를 단일한 이치로 포괄하려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공동체와 정의의 강력하고 해소되지 않는 원리를 이루기 때문이다."(Oratio 36.31)
스토아 철학자들이 우주를 하나의 국가로 보거나 설명하려는 의도가 그 도식에서 세계시민사상을유도하려는 데에 있음을 디온은 솔직하게 피력한다. 이것은 "인류를 신들과 조화시키려는 목적"(Cicero, De legibus
1.22-24)이라거나 "바로 이런 관점에서 우주를 두고 도시국가라는 말을사용해야 한다"(Arius Didymus, apud Eusebius, Praeparatio evangelica 15.15)는 중기 스토아학자들의 견해를 담고 있다.
"이것이 선한 공동체를 설립하려는 철학자들의 이론이다. 인간애가 넘치는 공동체, 신들과
인간들의 공동체, 법을 공유하고 헌법을 공유하는 공동체, 그것도 아무 사물에게나 개방된 것이 아니라 이성과 지혜를 공유하는 존재들에게만 개방되는 공동체이다."(Dio, Oratio 36.38)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사상을 신과 인간으로 이루어지는 정치 공동체라는 스토아이념과 통합시켜보려는 디온의 시도는 여전하다.
"혹자는 이런 식의 우주의 통치와 조직이 있다는 전제하에서... 그들은 온 우주를 제우스의
집이라고 기탄없이 부르리라. 제우스가 우주 안에 깃든 모든 존재자들의 어버이기 때문이다.따라서 우리 철학자들이 제우스의 보다 중요한 역할을
내세워 이를 빗대어 말하듯이 우주를 제우스의 도시국가라고 하여도 된다.
왜 그런가 하면 `왕권왕국'이라는 것은 집안보다는 도시국가에 더 어울리기 때문이다. 만인 위에 군림하는 자를 왕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라면 만유가 왕국처럼 통치된다는 데에도 동의하기를 거부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우주가하나의
왕국처럼 통치된다고 한다면 우주가 정치적으로 통치된다고 하는 말도 부인하지 않을 것이며, 따라서 우주의 정치적 통치가 존재한다는 말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정치적 통치'라는 말을 일단 허용한다면 우주를 도시국가라고 해도 굳이 마다하지 않을 것이고 국가와 아주 유사한 정부의 정치 형태를 갖춘 무엇으로 보아도 괜찮을 것이다."(Oratio 36.35-37)
이러한 우주관에 바탕을 두고서 디온은 정치공동체로서의 세계시민사상을 다음과 같이 개진한다. 도시국가(polis)란 무엇인가? "그들 말로는 도시란 같은 장소에 살면서 법의 통솔을 받는 사람들의 집단이다"(36.20). 이 정의에서 따라나오는 스토아 고유의 귀결을, 디온은 매우 현실적인안목으로 제시하고 있다. 지상 도시가 비록 신법에 의해서
통솔되 완전한 공동체가 되지 못할지언정, 지상에서나마 적절한 균형을 갖추는데 필요한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안목을 갖게 하려는
의도가 있다.
"신들이 서로 이룩하는 공동체들 말고 나머지 다른 공동체들은 오류에 빠져 정격(正格)을
갖추고 있지 못하며, 신적이고 지복한 법의 지고한 의로움과 올바른 통솔에 비추어 본다면
도덕적으로 사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목적을 위해서는, 총체적으로 부패한 공동체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공정한 공동체를 본보기로 삼아 보충을 받기로 하자. 신들이 서로
이루는 신들의 공동체야말로 순전하게 행복하다고 불러야 한다. 인간들에게서 신과 동일하게 칠만한 것을 헤아리고서 그대가 이성을 구사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포함시킨다고 하더라도
어디까지나 인간 공동체이다(Oratio 36.23)
과연 인간의 세계적 공동체의 형태가 어떤 것이어야 하느냐는 문제에도 현실주의자로서의 감각을잃지 않는다.
"혹자는 만일 그 통치자들과 지도자들이 현명하고 판단력있는 사람들이고 나머지 백성은 그들의 결정에 따라서 또 건전하고 법치적인 방식으로
통솔된다면, 그러한 공동체는 건전하고 법치적이라고 말할 수 있느냐, 적어도 그것을 통치하는 사람들을 보아서도 정말 도시국가냐고 물을지
모른다. 지휘자가 음악가라면, 또 다른 사람들이 가락에 어긋나는 소리를 전혀 내지 않거나 아주 가늘고 희미한 소리만 내면서 그를
따른다면, 아마도 우리는 그 단체를합창단이라고 불러야 하리라. 오로지 선량한 요소들로만 이루어진 훌륭한 국가에 대해서 아무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리고 과거에 온 사멸할 인간치고 그리고 장차 미래에 올 어느인간치고
훌륭한 국가가 무엇인지 개념할 수 없기 때문에 앞서 말한 국가도 훌륭한 국가라고 불러야 하리라. 그렇지 않으면 천상에 있는 지복한 신들의 국가가 되고 말 것이다."
(Oratio 36.21)
(2) 에픽테투스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세계인(世界人)
디온에게서 보았던 우주 통치, 우주에서 하나의 통치 조직이 발견된다는 시각은 에픽테투스의
글에서는 더욱 선명해진다. 우주 국가가 이성적 존재재들의 거처로 삼은, 전세계라는 도시국가요, 거처(oikumene)인 이상 엄연히 하나의 공동체요 국가인 것이다.
"이 우주는 하나의 단일한 도시국가이다. 그리고 그것으로 엮어지는 실체는 하나이다. 만유가 친구들로 충만하는데 일단은 신들로, 그 다음에는 인간들로 가득하며, 이들은 천성적으로서로 친하게 되어 있다."(Epictetus, Dissertationes 3.24.10-12)
우주 국가 또는 세계 국가에 관한 에픽테투스의 언명을 살펴본다면, 그는 우주를 `이 거대한 국가'라고 일컫고 더 이상의 부연설명은 하지 않는다. 다만 우주에는 주인이 있어 만사를 적재적소에 안배하고(Diss. 3.22.1-4) 신은 행복하라고 만인을 창조하였고 평온하게 살아가게 배려해 준다는 섭리관을 내세우면서(3,24,2) 견유학파의 냉소적인 세계관은 받아들이지 말라고 청중을가르친다. 에픽테투스는 소크라테스의 입을 빌려, 그가 "나는 아테네인이다."
"나는 코린토스인이다."라는 진술을 거부하고 "나는 세계인(kosmios)이다"라고 선언하게 만든다(1.9.1). 그리고 그러한발언의 논거가 되는 것은 신과 인간들의 동일한 혈통(syngeneia)을 가졌다는 사실이다(1.0.1.).인간들이 우주의 운행을 주의깊게 관조한다면 우주를 주관하는 최고의 통치는 신과 인간의 합작임을 누구나 직관할 것이다. 인간은 사실 이성을 구사함으로써 신과 결속되어 있고 신과 일치해 있다. 만일 우리가 신들의 혈족이라면 우리는 스스로 우주의 시민이요 신의 아들들이라고 불러 손색이 없다(1..9.1-6).
"그대는 세계시민(polites tou kosmou)이요 그 한 부분이다. 그것도 예속된 부분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지도적인 부분이다"(2.10)
에픽테투스는 우주를 잘 정리된 국가로 상정하고 있으며, 삶과 죽음의 이치를 사람들이 도시를 들고 나는 정경으로 묘사한다. 따라서 세계시민은 전체(to holon)에 비추어서 사려하고 행동해야 마땅하다(2.10.4). "전체가 부분보다, 국가가 시민보다 인간에게는 더 큰 권위를 갖기 때문이다"(2.10.5). 전체 우주에 무엇이 어떻게 일어날지 모르는 터이므로 우리로서는 우리 의지를 대자연과 조화시키도록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그리하면 우리 의지에 상반되어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거나 우리가 일어나기를 바라는 바가 안 이루어지는 일도 없을 것이다(2.10.6; 2.14.7).에픽테투스는 일찌기 (키티온의) 디오게네스가 세계시민의 행동 귀감을 보여주었다고 말한다.온 세계를 자기 조국으로 여기던 디오게네스의 공적이 있다면, 동료 인간들을 대하는 태도와 신에게 복종하는 자세였다. 디오게네스의 위대함은 자기 가족에도 친구에게도 국가에도 매이지 않는 초연함이었으니, 자기가 어디로부터 이 모든 것을 받았는지 잘 알고 있었으므로 이 모든 것을기꺼이 포기할 수 있는 사람이었지만 진정한 고향이요 국가인 우주를 저버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도덕적 명상보다는 세계국가 이론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명상록(Meditationes)』에서 그는 "우주는 그 자체가 하나의 국가이다"(ho kosmos polis)라
는 명제를 여러 증거로 입증해내고 있다. 우주를 단일한 세계국가로 보는 개념을 그는 두 노선에서 개진한다. 먼저 인간은 지성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있다거나 공통된 국가를 소유하고 있다고 전제해야 하는데, 스토아 학자들에게는 이 두 명제가 다 받아들일 만하다. 그 논지는 다음과같다:
"지성이 우리 모두에게 공통된다면 이성도 그러하다. 이성에 힘입어 우리는 이성적 존재가
된다. 우리가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즉각 깨우치는 이성이 우리에게 공통되게
있다면, 법이 우리에게 공통된 셈이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시민들이다. 만일 그렇다면 우리는 유기적인 공동체(politeuma)를 함께하는 셈이다. 그런데 우주야말로 유일한 공동 국가(politeuma)이며 온 인류가 이를 함께한다. 그러므로 우주는 하나의 국가이다"(Medi. 4.3.2)
논의의 전제는 다음과 같이 논증된다: "이 공동 국가가 우리 지성과 이성 그리고 법에 대한
양식의 원천이다. 그런데 황제가 인류의 사해동포애와 더불어 세계국가 사상에 도달한 논변은 친교(koinonia)라는 개념에 기초하고 있다. 인간은 그 본성이 사회적 목적(to koinonikon)으로 정향된 존재이다(7.55; 3.4.1; 7.5). 따라서 그가 이루는 친교는 인간이 태어난 고유한 목적이기도 하다. 친교야말로 이성적 존재들의 목표이다(4.16; 5.30; 11.19). 이성적 존재들은 보편적 자연에 의해서 타자를 위하도록 조성되었으므로 바로 이 점에서 인간과 인간의 친근과 유사성, 즉 그의 사회적 차원이 발생한다(8.26, 56; 9.1.1; 11.18.1).
이처럼 인간은 사회 제도의 일부이므로 인간이 하는 행위치고 사회적 목적을 직간접으로
지향하지 않거나 연관되지 않는 한, 당사자의 인생이 분산되고 통일성을 유지하지 못한다(9.23).그러므로 인간의 사회적 행위에서는 공동선의 원리가 드러나야 마땅하다(6.30.1; 8.12; 9.16.31).따라서 인간간에 이루어지는 협력은 대자연과의 조화를 도모하는 행위로 간주되어야 한다(2.1;
6.14, 42; 7.13).
그러니까 마르쿠스 아울렐리우스의 사상에서는 인간들 간의 친교(koinonia)에 관한 원리가 잘 확립된 셈인데, 다만 그 친교가 어디까지나 합리적 이성을 갖춘 인간들 사이의 친교라 것이 중요하고 "합리적이고 사회적인 자연본성을 합리적이고 사회적으로 발휘하는 일"(6.14)이 중요하다. 여기서 우리는 `합리성'과 `정치성'이 이어지고는 즉각 `정치적 인간'과 `사회적 인간'으로 이어지는 점을 유의하게 된다. 즉 인간들의 이성 자체가 필히 `정치적'이고 `사회적'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인간들이 이루는 공동체는 세계국가이고 인류의 형제애는 지성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있다는 데에 토대를 두고 있다.
"그대가 무엇에 만족하지 못할 때에 그대는 다음 사실을 망각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이 전인류와 맺은 혈연(he syngeneia anthropou pros pan to anthropeion genos)이 얼마나 강한것인지를 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피와 종자에 근거하지 않고 지성에 근거하는 친교이다."(12.26)
세계국가라는 관점에 있어서도 이성적 존재자들의 공동체는 일종의 몸에 비유하는데 각 지체들은 온전하고 단일한 유기체의 기능에 제각기 협력하고 있음이 관찰된다(7.13; 7.19). 따라서 사람이 타인들의 언행에 심히 불만족하거나 반사회적으로 처신하거나 인류로부터 배치되는 행동을
한다면 그는 마치 전장에서 잘려나간 손발처럼, 몸체에서 떨어져나간 지체와 흡사하다. 그는 "대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합일성"으로부터 스스로 단절되어 나가는 셈이다(8.34). 아울러 인간의공통된 본성인 이성에 반하여 행동하는 사람은 "우주 속의 암"과 흡사한 존재이며 우주의 이방인(xenos
kosmou)이나 마찬가지이다. 아울러 국가 이성으로부터 이탈하는 사람은 추방자 내지도망자
(phygas)이다(4.29).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명상록> 말미에 인생의 끝을 논한다:
"인간이여, 그대는 이 거대한 국가의 시민이었느니라(anthrope, epoliteuso en te megalepolei). 그러니 그 기간이 5년인들 50년인들 무슨 상관인가? 대자연은 우리를 이 거대한 국가로 이끌어들였거늘 대자연이 우리를 그곳으로부터 쫓아낸들 서러울 것이 무엇인가?"(12.36)."내 영혼이여, 그대가 신들이나 인간들과 동료시민으로 살아가기 바라는가? 그들에게 결코책잡힐 일 없이, 그들을 결코 원망함이 없이 살아가기 바라는가?"(10.1).
에픽테투스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도 세계시민 사상을 옹호하고자 하였는데 둘다 디온의
논리를 전제하는 입장에서 세계시민사상을 기초하고 있는 듯하다. 분명히 마르쿠스의 이론은 에픽테투스가 개진한 이론에 바탕을 두고 있다. 하지만 양자가 강조점과 역점이 다르다는 것도인정해야 한다. 에픽테투스는 인간이 신과 혈족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하고, 마르쿠스는 인간이 지
성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과 인간은 친교(koinonia)를 위하여 태어났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그러니까 둘 다 인간이 이성을 소유하고 있다는 신념'에서 출발하지만 에픽테투스는 이성이라는 공동 소유가 인간을 신들과 결속시키고 우주를 통치하는데 협조하게 만든다는 결론을 이끌어내는데 비해서, 마르쿠스는 그 공동 소유에서 법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있다는 결론과 만인이 공동의 법을 소유한다고 할 정치체제가 우주 뿐이므로, 이성을 사용하는 존재자들의 공동체는 세계국가뿐이라는 결론을 이끌어낸다(4.4; 4.29). 그리고 우주라는 이념을 인간 유기체나 단일한 국가라는 비유로 표상하려는 노력도 마르쿠스의 고유한 사색이다.
결 론
지금까지 인류의 단일성에 관한 개념이 착안되고 발전하고 확산하는 과정을 그리스의 견유학파에서 시작하여 스토아 후기사상까지 더듬어 보았다. 그러나 전통적인 분리와 선입견들은 모조리 깨드려지지 않고 여전히 잔존하고 있음도 보았다. 그 개념이 고대인들에게 사회구조에 대하여혁명적 변혁을 부르짖게 만들지는 않았다.
예를 들어 중기 스토아까지를 종합한 키케로의 경우,고대 사회의 전통적이고 인습적인 분리에 대한 그의 태도는 그러한 차별을 받아들이는 입장이지 항거하거나 철페주장이 아니다. 인류의 단일성에 관한 그의 서술은 사실이 그렇다는 묘사이지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사회개혁의 프로그램은 아니었으므로 여성에 대한 편견, 노에제도에 대한
인정에 있어서도 키케로는 당대의 일반 지성인들과 마찬가지였다. 그렇지만 적어도 세계시민사상의 수용 자체가 인간이라고 불리울 가치가 있는 사람의, 본질적인 특성이요 성품으로 간주될
지경까지는 도달하였음을 키케로의 마지막 선언에서 알 수 있다.
문화사적으로 말해서, 유럽 역사에서 세계시민사상을 향한 발걸음, 결국 스토아 사상으로 회귀하는 헬라화 과정은 수세기를 두고 줄곧 이어지면서 결코 중단되는 법이 없다. 뒤이어서 등장한
로마 제국은 그리스 문화를 존중하고 기반으로 삼으면서 그 위에 로마의 국제정치 프로그램을
실현시켜 나갔다. 로마 제국의 새로운 질서 속에서 세계시민적인 통합이 이루어지고 그러한 정치사회공간이 드디어 실현되는 징조가 보였다. 적어도 문화적으로 깨어난 인간들은, 문화적으로 개화된 민족들에게서는 모두가 서로 상통하고 접근하고 교류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스토아철학자들이 관념적이고 세계국가라는 추상적인 상상에서 설정하고 글로 표현하던 세계시민사상이 문학가들의 대중적인 글과 구체 정치에서 드디어 현실 사회로 구현되는 것으로 의식하고, 철학상으로 `전인류의 공동 사회'라는 원리가 설정된다. 인류사상 최초로 유럽에통합된 보편 문화(communis humani generis societas : Cicero, De officiis 3.6.28.8)가 출현한 것이다.
물론 세계국가는 아직 출현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당대까지 헬라화하고 로마화된 지역들만
소위 세계(mundus, oikoumene)로 인정되었기 때문만 아니고, 교양있는 사회 상류층만 철학적 소양을 통해서 세계시민사상을 이론상으로라도 수긍하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돌이킬 수 없는 역사적 추이로서 세계시민사상은 로마 제국이라는 정치제도와 그리스도교의 사해동포사상(christianopolis)을 통해서 서구인 전체에 미치는 대중운동으로 보급될 것이고, 나아가서는 서기 6세기부터 9세기에 이르는 민족대이동으로 서구 기존 사회가 다시 한번 재정리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즉 서기 2000년에 걸친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이 이론은 인류의 공통된 이념으로 확립되어 갈 것이다.
사실 로마 제국의 확장과 그 속민들이 이 제국에 순순히 굴종하게 된 역사적 현상(pax Romana)은 세계시민사상의 급속한 확산에 결정적인 사회조건을 만든다. 그리고 대민족이동으로 로마 제국이 붕괴된 다음에 새로운 형태의 보편주의(普遍主義), 일체의 차별이 원칙적으로 무너지는 보편주의가 등장하는 바 그것은 그리스도교 세계시민사상이라는새로운 물결이었다. 인류는 신성로마제국이나 그리스도교세계(Christentum), 추국국과 연합국, 국제연맹이나 국제연합, 그리고 유럽연합이니 하는 새로운 공동체들을 다양하게 만들어보고 모든인간 조건을 초월하는 세계를 들여다보게 되었으며 새로운 비젼을 띠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