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사람과 죽은 사람의 차이
(홍성남 신부)
평생 자신을 채찍질하며 살아온 수도자가 죽어서 천당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 수도자는 자기 몸이 채찍질로 멍투성이가 된 것을 아주 자랑스럽게 여겼습니다.
그래서 천당의 가장 좋은 자리는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며
의기양양하게 천당 문 앞으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그 수도자는 천당 문 앞에 도착하자마자 기가 팍 질려버렸습니다.
온몸이 채찍질로 피투성이가 된 사람들이 득실득실한 데다
서로 몸에 채찍 자국이 몇 개나 되는지 비교하면서
`너는 상천당. 너는 하천당` 자기들끼리 자리 배정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수도자가 낙심하고 있을 때 베드로 사도가 나오더니
올해 천당 아파트 분양 자격공지를 하겠다며 방을 하나 불였습니다.
그런데 분양 조건이 눈에 확 띄었습니다.
천 번째가 고운 피부. 두 번째가 상큼한 외모에
세번째 조건은 귀여운 미소라는 겁니다.
그래서 왁자지껄 자리 배정하고 있던 사람들이 의아해서
베드로 사도에게 조건 변경 이유를 따졌습니다.
아니. 옛날에는 몸에 채찍 자국이 많은 사람이 유리했는데 올해는 왜 이 모양입니까?
베드로 사도가 대답했습니다.
천당에 피투성이가 된 사람들이 살다 보니 천당이 천당처럼 보이지 않고
지옥 같아 보여서 아이 키우는 천당 주부들 민원이 심각하여
올해부터는 꽃미남들에게 우선권을 주기로 했다.
싫은 일이건 좋은 일이건 감정 표현을 하지 않는 사람을 보고 흔히 `돌부처`라고 합니다.
사람이 살다 보면 싫다 좋다 말이 있어야 하는데
돌부처들은 `시간이 약이야. 다 지나가면 잊는거야. 긍정적으로 살자` 하면서
싫은 표정조차 짓지 않으니 주위에서 칭찬 일색입니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에게는 감정 처리에 많은 문제가 있습니다.
살아 있는 사람과 죽은 사람의 차이는 느낄 수 있느냐의 여부입니다.
느낌이 있다면 살아 있는 사람이고.
느낌이 없다면 죽은 사람이갰지요.
살아 있는 우리는 수시로 느끼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가지는 이 느낌은 두 가지로 나타납니다.
즉. 외부환경이나 자신의 심리 상태에 따라서
`편안하다`혹은 `붉편하다`로 느끼게 됩니다.
외부 대상이나 일들이 나에게 호의적이면 느낌이 좋고.
적대적이면 불편한 느낌이 들게 되는 것이지요.
한편 외부 환경이 호의적이라도 자신의 마음이 상한 상태면 불편한 느낌이 들게 됩니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모든 사람은 편안한 느낌을 좋아하지
불편한 느낌은 가능한 한 피하고 싶어 합니다.
이런 인간 본성을 잘 이용하는 것이 광고물들이지요.
`느낌 좋은 사람`이라느니 `느낌이 좋은 차 `라느니 하면서
사람들의 구매욕을 충동질하지요.
그런데 우리네 인생살이는 광고물이나 영화처럼 늘 즐겁고 행복할 수만은 없습니다.
때로는 싫은 사람을 만나야 하고. 때로는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견디기 어렵고 힘겨운 일에 직면하여 불편한 느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겪어야 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이런 때 심리적으로 허약한 사람들일수록 불편한 상황으로부터
도피할 여러가지 수단을 강구합니다.
기도하면서 하느님께 자신의 그런 느낌들을 다 가져가시라고 하거나.
그런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 은총을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그런 수단 중의 하나입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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