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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장 열광의 도가니
Experiencing the Power
어느 목사의 아찔한 경험
기적적인 신유에 관심이 많은 남서부 지역의 재림교 목사 에이온 길러 Eion Giller 박사는 유명한 방송 전도자 베니 힌 Benny Hinn 의 차유전도 집회에 참석하기로 결심했다. 너무나 기쁘게도 그곳에서 그의 딸이 거듭났고, 그의 어린 손녀는 간질과 다른 신경 손상 질병에서 치유 받았다. 1994년 10월 22일 또 다른 베니 힌의 집회에서 질러 목사는 '불의 침례를 받았다.
"불이 두 시간 반 동안 내 몸을 감쌌다. 나는 예배에도 설교에도 치유에도 집중할 수 없었다. 나는 불 속에 잠기었고, 주변의 모든 것을 잊어버렸다. 베니 힌 목사까지 회중 가운데 어떤 사람에게 불이 임했다는 '지혜의 말씀'을 할 정도였다....한 목사가 치유를 받았거나 온몸에 불이 임한 사람은 앞으로 나오라고 말했을 때 나는 조용히 흐느끼며 통로로 걸어 나가려 했던 것이 기억난다. 나는 거의 걸을 수 없는 상태였다. 아내가 나를 붙잡아야만 했다."
1996년 봄, 토론토 근처의 에어포트 빈야드 크리스천 펠로우십 The Airport Vineyard Christian Fellowship 에 참석했을 때, 길러 목사는 2,500명의 청중으로부터 "주의 선지자" 중 한 사람으로 뽑히게 되었다. 그해 말, 은사주의 지도자들로 꽉 들어찬 '기도의 집 대회’ The House of Prayer Conference 에 참석하고 있었는데, 그 강사들 중 한 명이 길러 목사가 "이 시대의 새로운 진리를 받을 것이라 예언했다. 이틀 후 아침예배 시간에 길러 목사는 발코니에 앉아 있는 동안 그에게 다가오시는 주님으로부터 말씀을 받았다.
“이것은 은사주의자와 복음주의자의] 결혼이다. 모든 결혼은 제3자에 의해 이루어진다. 너는 제3자이다. 이번 세기 초엽부터 대적들은 성령과 진리를 분리하는 일에 초점을 맞추어 왔다. 이제 그런 날들은 끝났다. 나는 나의 교회에 성령과 진리를 함께 두고자 한다. 복음 전도자들은 성령 안에 있는 은사주의자들과 연합해야 한다. 나는 성령과 진리로 나에게 예배할 자들을 찾는다. 내려가서 이 결혼을 이교회에, 이 도시에, 이 나라에 선포하라.”
에이온 길러 목사는 들은 그대로 전했고, 교회는 찬양과 할렐루야로 화답했다. 그날 밤 집회를 떠난 후에 주께서 40분 동안이나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와 그 지도자들이 이제 다가올 이 결혼에 있어서 감당할 역할에 관한 자세한 내용을 나에게 제시하셨다.”라고 그는말했다. 그는 절대로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재림교회는 이 계획에 조금도 동의하지 않을 것이므로 반대가 있을 것이라고 투덜거리자, 주님은 그에게 이 결혼은 꼭 이루어질 것이라고 보증하셨다. <대총회 성경연구소> 2007년 8월 에이온 길러의 개인 간증
독자는 그런 경험을 어떻게 보는가? 의문들이 마음에 생기지 않는가? 재림교회가 성령과 진리'에 기초한 교회를 형성하기 위해 은사주의자들과 복음주의자들과 연합해야 하는가?
무엇에 취하는가?
길러 목사는 표적과 기사에 기만당한 최초의 재림교인도 아니며 분명히 최후의 재림교인도 아닐 것이다. 그가 그랬던 것처럼 더 많은 사람이 더 놀라운 능력의 경험을 찾고자 교회를 떠날지도 모른다.
한 세기가 넘게 현대 부흥의 불꽃이 전 세계적으로 타오르고 있다. '아주사 거리의 부흥' The Azusa Street revival 에서부터 소위 '토론토 축복 Toronto Blessing 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을 찾는 신실하고 정직한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의 삶 속에서 성령의 초자연적 임재를 더 많이 갈급하고 있다. 오순절주의자들로부터 신은사주의자들 그리고 현재 제3의 물결 운동에 이르기까지 수백만 명이 성경을 성령, 아니면 다른 영으로 대체해 왔다.
“기독교는 주요 분야에서 패러다임 전환을 진행 중인데, 그것은 믿음에서 느낌으로, 사실에서 환상으로, 이상에서 신비한 계시로의 전환이다. ...냉소적 웃음, 돌발적 경련, 이적과 기사, 큰 사도와 선지자, '영에 사로잡힌 사람들 등을 성령의 능력과 임재의 실증적 증거로 여기고 있다. 교회의 형태와 기능이 너무 급진적으로 재구성되고 있기에 세속적 세상도 그 변화를 주목하고 있다" 행크 해너그라프, 〈모조 부흥〉, 9
이 운동은 종교사에서 최후의 그리고 최대의 운동이다. 부자와 가난한 자, 배운 자와 못 배운 자, 동서남북에서 사람들을 끌어내어 자연스럽게 에큐메니 세계교회주의 으로 모이게 한다. 하나를 이루기 위해서는 어떠한 교리적 동의도 필요치 않고 초자연적 경험만 있으면 그만이다. 심지어 오늘날 사회학자, 인류학자, 그밖의 다른 학자들도 세계적인 은사주의적 문화가 세상을 연합시킬 것이라 주장하고 있다. 카알라 푀웨, <지구촌 문화로서의 은사주의 기독교> 참고 그러나 이 운동이 아무리 전 세계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성령과는 이질적인 것이다.
이름을 부르고, 외치고, 지껄이고, 손을 붙잡고, 고백하고, 사로잡고 하는 행동들은 모두 사람을 열광의 도가니에 빠져들게 한다. 군중들이 은사주의 집회인 '성령 축제' Holy Spirit party 에 몰려든다. 그곳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이 값을 치렀다!"라고 말하면서 분위기에 “완전히 빠져든다." 존 아르노트, <아버지의 축복>, 209~210 사람들은 종교적 배경, 인종, 나이, 교육 수준과 상관없이 "성령의 접착제" Holy Spirit glue에 들러붙어 개처럼 짖고 새처럼 재잘대고 돼지처럼 킁킁거리며 여러 시간 동안 바닥에 늘어져 있다. 그리고 '거룩한 웃음은 몇 시간 동안 계속된다. 사람들은 성령에 너무 취해 스스로 집까지 운전할 수도 없으며 이틀이 지나도록 똑바로 걸을 수도 없다. 1994년 1월 20일에 시작되어 이제는 유명세를 타고 있는 '토론토 축복'의 책임자인 존 아르노트 John Arnott 목사는 과거에 오랫동안 그런 현상을 반대했었다. "나는 그리스도인들이 쓰러지고, 뒹굴고 웃는 것에 관심이 없었다."라고 시인했다. 그는 성령의 임하심이 함께한다면 주님은 “잃어버린 자를 구하시고, 병든 자를 고치시며, 천국을 확장시키실 것이라고 기대했었다. 존 아르노트, <아버지의 축복>, 206 그러나 그가 구원의 기별을 설교했을 때, 주님은 그를 질책하시면서 그분의 계획은 "잠시라도 나의 교회를 그저 끌어안는 것"이라고 하셨다. 존 아르노트와 가이 셰브루, 〈목사들의 모임〉, 53
남아프리카 출신 로드니 하워드-브라운 Rodney Howard-Brwon 은 그리스계알미니안 계통의 베니 힌과 캐나다인 존 아르노트, 독일인 레인하르트 본케 Reinhard Bonkke 와 더불어 은사주의 운동의 선두주자 중 하나다. 그는 '성령 바텐더' The Holy Ghost bartender 로 알려져 있다. 이런 책망이 그가 인도하는 예배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이날이라. 이때니라 주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이 땅에 들어오는 날이니라. 내가 너를 초자연적 영역에 발을 딛도록 할 날이 바로 이날이니라....빗방울이 하나님의 영광 중에 떨어지기 시작한다. 나는 인간의 틀을 부숴 버릴 것이니라' 주께서 말씀하십니다. 이날에 매우 담대한 마음으로 일어나십시오. 이날에 일어나 성령의 새 포도주로 가득 채우십시오. …마셔라, 마셔라, 마셔라, 마셔라, 마셔라, 마셔라, 마셔라 마셔라 마셔라 [방언] 우리는 마십니다. ・・・[방언, 웃음] 오예, 예, 예, 예, 예, 우리는 다른 사람이 말하는 것을 걱정하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상관없습니다. 하, 하, 하,호, 우후 [방언]" 헤네그라프, 27~28
확실히 하나님의 백성이 성령으로 가득 채워지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심지어 바울은 그 경험을 성령에 "취하는" 것에 비유했다.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같이 하지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술 취하지 말라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엡 5:15~18
그의 요점은 술꾼이 계속 마지지 않으면 술에 취할 수 없는 것처럼 우리는 성령 안에서 지혜롭게 행하기 위하여 시간을 잘 활용하고, 성령으로 충만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엘렌 화잇은 만일 백성이 간절히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다면 우리는 "지금도 오순절의 경험을 할 수 있다." 영문 시조, 1890년 2월10일 라고 기록한다. 어떻게 성령님이 신자들의 삶 속에 임하시는가? 성경은 무엇이라 가르치는가?
어떻게 성령님이 오시는가
지난 장에서 살펴보았던 동일한 성경 구절들을 다시 한번 살펴볼 것인데, 이번에는 '구조를 보기 위한 것으로 시간에 따른 순서로 되어있는 것은 아니다. 아래의 도표는 성령님이 신자들의 삶 속에 임하신 사례들을 비교한 것이다.
우리는 몇 가지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첫째, 성령을 받는 것과 안수하는 것은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살펴본 일곱 사례 중 오직 세 경우만 성령을 받는 일이 안수와 함께 발생했다. 솔직히 말하면 그 세 경우에도 공통분모를 찾기가 쉽지 않다. 베드로, 요한, 아나니아는 모두 과거에 적대 관계에 있던 사람들과 대면했다는 점을 고려해 볼 수 있겠으나 그들의 만남에서 안수는 없었다.
분명 베드로와 고넬료는 그런 사이였음이 틀림없다. 이것은 손을 머리에 얹는 안수가 중요치 않다는 뜻이 아니다. 안수는 야곱이 그의 아들들을 축복하거나 창 48:14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위임하는 것 민 27:23 처럼 구약의 관습이며 축복의 상징이지만, 안수하는 것이 어떤 종류의 '성례전적' 능력을 수반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다음으로, 방언을 말하는 것이 성령을 받은 보편적인 현상은 아니다. 다시 말해서 일곱 사례 중에 세 경우만 해당되었다. 예수님, 예루살렘의 지도자들, 사마리아인들, 바울의 경험에서는 방언 현상이 나타나지 않는다. 성령 침례에는 방언이 따른다는 전통적인 오순절주의자들의 주장은 확실히 철저한 성경적 연구에 기초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경우에서 나타나는 한 가지 사실이 있다. 그것은 성령이 부어질 때 어떤 초자연적 현상이 확실히 일어났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의 은총을 얻은 표가 바로 이적과 기사라고 주장하는 은사주의자들의 주장 중 하나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성령님이 임하셨음을 깨닫기 전에 우리의 삶에서 어떤 초자연적 현상을 기대해야만 하는 것인가?
지상 명령의 교두보
이 모든 경험을 기록한 이는 누가이다. 의사였던 이 제자는 궁금한 것이 많았던 이방인들을 위해 기록을 했다. 특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라는 뜻의 데오빌로라고 불린 어떤 사람에게 썼다. 사도행전의 기록 목적은 성령의 놀라운 사역들을 강조하는 것이다. 행 1:1~8 마타이아스 웬크, 〈공동체를 형성하는 능력> 참고 구약 성경의 선지자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기별을 전했던 것처럼, 지금 이 사도는 성령님에 의해 감동을 받고 말했던 것이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공동체를 위해 위대한 기적들을 행하셨던 것처럼, 하나님의 교회는 이적과 기사를 통해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 줄 것이었다. 사도행전에서 누가에게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성령님에 관하여 약속하신 것이 그분의 제자들에게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보여 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성령의 부어 주심에 관한 모든 기록이 어떤 초자연적 현상과 연관이 있다고 해서 초자연적 현상이 항상 현재도 일어나고 감지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사도행전 6장에도 "성령이 충만한 일곱 사람이 나타나지만, 언제 어떻게 성령 충만이 일어났는지는 전혀 언급이 없다. 행 6:3, 5~7 바나바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행 11:22 24 게다가 성령의 나타나심이 자동적으로 기적을 수반하는 것도 아니다. 성령의 열매들은 그리스도와 같은 성품의 특성들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펴본 일곱 이야기에서 기적적인 현상들이 발생했다는 사실은 소위 '오순절 유도 공식'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의 특별한 계획과 더 관련이 있어 보인다.
사도행전 1장에서, 예수님은 우선적으로 예루살렘 그리고 유대, 그다음으로 사마리아, 마지막으로 이방 세계의 순서로 인종적이며 지리적인 배경 속에서 지상 명령을 제시하셨다. 행 1:8 우리는 첫 제자들이 교육받지 못한 갈릴리 사람들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들의 말투나 행동 양식은 유대의 다른 도시들에서와 마찬가지로 예루살렘에서도 확연히 드러났을 것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평소에 꺼려했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하는 일이 큰 도전이 될 것을 아셨다. 그들이 사마리아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데 수년이 걸렸으며, 정작 복음을 전한 것도 열두 사도가 아니라 일곱 "집사들' 중에 한 명이라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심지어 성령으로 충만한 바울도 처음에는 예수님을 복종하는 일에 실패했다. 바울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부르심을 받은 후행 26:16~18 실제로 그렇게 하기까지 십 년 넘게 지체하였다. 사울이 회심하자마자 다메섹의 회당에서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자 했음을 주목하라. 행 9:20~22 하지만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그래서 그는아라비아로 가서 3년 동안 연구하고 심사숙고한 후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왔다. 갈 1:17; 행적, 125 참고 돌아와서도 그는 이방인이 아닌 유대인들에게 다시 손을 뻗었다. 하지만 그러한 시도는 매우 좋지 않은 결과를 낳았고 그는 광주리에 담겨져 성벽에 달아 내려져 도망가야 했다.행 9:23~25 그다음에 사울은 무엇을 했는가? 성경은 그가 제자들을 만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갔다고 말한다. 행 9:26~27 그는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헬라파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그러자 그 유대인들은 사울을 죽이고자 했다. 그들은 헬라에서 태어났으나 완전한 이방인이 될 수 없었다. 그들은 여전히 유대인이었다. 그런 결과로 형제들은 곤경에 처한 사울을 그의 고향 다소 지방으로 보내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행 9:28~30 그곳에 있는 동안에도 장래의 사도 지망생은 수리아와 길리기아와 같은 다소 주변 지역들에서 분명히 복음을 전했을 것이다. 갈 1:21, 23; 행적, 153 참고
사울이 이방인들 가운데서 일하면서 성령의 역사를 보였다면 아마도 누가는 그의 기록에 이 부분을 포함시켰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 언급이 없다는 사실을 통해 그곳에서의 사역이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는 결론을 얻게 된다. 그가 회심하고 십여 년이 지난 후, 주님은 마침내 안디옥 교회 교인들로 하여금 "헬라인 [이방인]에게도 복음을 전하게 하셨고 "수많은 사람이 믿게 되었다. 행 11:20~21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이 이 일을 듣고 바나바를 보내 살펴보게 할 만큼 큰 발전이었다. 바나바는 하나님이 이방인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것을 확신한 후, 사울의 회심 이야기와 하나님이 사울을 이방인 사역을 위해 이미 구별하셨다는 사실을 기억해 낸 것이 틀림없다. 바나바는 다소에서 아무 소득 없이 있었던 그를 데리고 이방인들을 위한 사역에 동참케 했다. 행 11:22~26 마침내 사울은 자연스럽게 밀려오는 불안을 극복하고 주님 앞에 굴복하였다. 누가가 그다음으로 사울을 언급한 시기는 이방인들을 위한 사역에서 하나님이 참으로 그의 심령을 변화시키셨다는 확증의 표로써 사울이 바울이 되었을 때이다. 그 이후로 그는 더 이상사울이 아니었다. 행 13:1, 2,9
이방인들이나 사마리아인들에게 복음 전하는 것을 주저했던 베드로에게도 이는 동일한 사안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여기서 요점은 지상 명령에서 각각 목표 지역인 예루살렘, 유대, 사마리아, 땅끝이 권능을 받았으나 여전히 문화적으로 편견을 가진 사도들이 정복해야할 교두보라는 것이다. 그들이 가진 두려움과 편견의 정복은 성령을부어 주시는 기적적인 방법들과 연관이 있다.
예루살렘에는 그 당시 제자들에 대한 '종교적 적대자들이 있었고 사울도 그러한 적대자들 중 하나였다.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겠다는 제자들의 결심은 오순절의 기적적인 성령 강림과 행 2장 사울을 형제로 받아들이기로 하였을 때 행 9장 확실해졌다. 유대에는 제자들에 대한 '문화적 적대자들이 있었다. 그중에는 로마 군인들도 포함되었다. 이러한 여건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이 담대히 복음을 전하기 위해 하나님께 간구했을 때, 또한 극심한 불안감에도 불구하고 베드로가 로마 백부장과 그의 유대 가족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가이사랴로 갔을 때, 성령님은 기적을 통하여 그들의 믿음을 확증해 주셨다. 행 4.10장 사마리아에는 사도들에 대한 '윤리적 적대자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들이 사마리아를 위해 기도하기로 동의했을 때, 성령님은 자신을 나타내셨다. 행 8장 마침내 유대인들에게 구원의 범위에 들을 수 없는 잃어버린 무리로 여겨졌던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바울이 다신교의 본거지 에베소에 갔을 때, 또다시 성령님은 기적적인 능력으로 자신을 나타내셨다. 행 19장
이러한 요점은 예수님의 사례에서 가장 극명하게 드러낸다. 하나님의 아들은 모든 것을 버리시고 하늘 궁정을 떠나 낮고 천한 사람이 되어 우리 가운데 살다가 죽으셨다. 빌 2:7~8 그분의 침례는 남녀노소를 위한 공개적이고 공식적인 사역에 기름 부음을 표상했다. 행 10:38 그러므로 그때에 하나님의 성령의 초월적인 기름 부음으로 인류를 향한 그분의 굴복과 헌신을 표현하신 분은 하나님이셨다. 눅 3장
무엇이 기준인가?
그렇다면 우리의 삶 속에서 성령을 받았다는 기준은 무엇인가? 어쩌면 이것은 잘못된 질문이다. 성경도, 예언의 신도 우리에게 그러한 공식을 말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눈에 보이는 어떤 것을 갈구하는 오순절주의자들이나 은사주의자들과는 달리 우리는 성경에서 제시된 것을 찾을 필요가 있다. 그리고 성령님이 제공하시는 것은 그리스도와 같은 삶, 곧 성령의 열매 그리고 그리스도와 같은 사역, 곧 성령의 은사이다. 사도행전에 나타난 이러한 놀라운 경험은 하나님의 계획속에 있는 다른 항목들과 더 많은 관련이 있다. 하나님이 그분의 성령을 우리 가운데 어떻게 부어 주실지는 그분의 선택이다. 우리가 해야할 일은 성령의 내재하심으로 인한 결과들을 기대하는 것이다. 성령의 부어 주심에 따르는 극적인 사건이나 혹은 그 결핍이 주된 관심사가 아니다.
기적적인 현상들은 아마도 개인들의 인격이나 처한 상황과도 관련이 있다. 바울은 예수의 복음에 대한 그의 헌신 때문에 종종 교회 안팎으로부터 재판을 받고 핍박을 받았다. 예수님은 그가 회심했을 때그분의 임재에 관한 확실한 증거를 주셨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가장 혹독한 순간에도 자신이 본 것과 들은 것이 얼마나 실재적이었는지를 결코 잊지 않았을 것이다.
1842년 말과 1843년 초, 예언의 은사를 받기 전에, 엘렌 하몬은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마음을 가진 십 대 소녀였다. 비록 내성적이었을지라도 위대한 성령의 경험 이후에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할 수 있는 대로 그리스도에 대한 그녀의 믿음을 나누기 시작했다. 급기야 어떤 이들은 계속 전도하는 엘렌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주위 사람들에게 민감했던 그녀는 다른 이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려고 간증을 잠시 보류했다. 하지만 엘렌은 "주님 안에서 온전히 자유롭지 않다고 느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기도 모임에서 그녀는 "더 많은 축복을 받았다.그러나 다시 [그녀의 힘을 잃었다." 당시 참석했던 한 회의론자는 “그것이 하나님의 성령이라는 확신이 없다."라고 말함으로 엘렌이 어쩔줄 모르게 만들었다. 그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헌신적이며 겸손한 그리스도인으로 여겨지는 한 사람을 지적하면서 '만일 이것이 진짜라면, R 형제에게도 임하여 그도 힘이 빠져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그 즉시 R 형제는 엎드러졌고, 자신의 기분을 말할 수 있게 되자그것은 하나님의 성령이었다고 분명히 말하였다." 2 선물, 26~27
분명히 사람은 성령님의 활동을 조종할 수 없고 심지어 예상조차할 수 없다. 은사주의자들은 기적을 갈구하는 반면, 비은사주의자들은 기적을 무시한다. 두 가지 오류 모두 성령님이 이러한 문제들을 주관하지 못하게 함으로 발생하는 것이다.
엘렌 화잇의 경험
엘렌 화잇이 결혼하기 전에 개인적으로 했던 경험은 우리를 위한 지침이 되어야 한다. 그녀는 침례를 받은 후 수개월 동안 행복감과 좌절감이 교차하며 계속 고통을 받고 있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자신의 행보에 발전이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마침내 리바이 스토크먼Levi Stockman 목사님을 찾아뵈었는데, 그녀에게 "주님은 간절히 찾는사람으로부터 절대로 그분의 사랑을 거두지 않으시므로 단순하게예수님을 신뢰하라고 말씀해 주었다. 자서, 37 그날 밤, 15세의 수줍은소녀는 적은 수가 모인 영적 소그룹 기도 모임 전형적인 감리교 성경 공부 모임 에서 전심으로 예수님을 신뢰하기로 결심했고, 그때 처음으로 공중기도를 시작했다. 기도를 시작하자마자, 그녀는 강력한 성령의 침례를받았다. 이것은 그녀가 결코 잊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 순간, 하나님의 약속은 마치 구하는 자만이 받게 되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귀한 진주처럼 내게 느껴졌다. 내가 기도할 때에 그토록 오랫동안 나를 괴롭히던 무거운 짐과 영혼의 번민은 사라지고 주님의 축복이 부드러운 이슬처럼 내게 내렸다. 나는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찬송을 하나님께 드렸다. 예수님과 그분의 영광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으며, 내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였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너무도 강력하게 내게 임하셨으므로 나는 그날 밤에 집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이 경험은 그녀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이제 믿음이 온통 내 마음을 지배하였다. 나는 형언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느꼈고 나의 죄가 용서받았다는 성령의 증거를 갖게 되었다. 천부께 대한 나의 견해는 변하였다. 나는 그분을 더 이상 인간에게 맹종을 강요하는 가혹한 폭군으로 보지 않고 친절하고 자애로운 아버지로 보게 되었다. 나의 마음은 열렬하고 깊은 애정으로 그분께 이끌렸다. 그분의 뜻에 순종하는 것은 기쁨이었으며, 그분을 섬기는 일은 즐거움이었다." 자서 38
이 일이 있은 후 6개월 동안 그녀의 마음에는 구름 한 점도 없었다.” 그녀의 온 마음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었으며 계속해서 예수님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그리스도의 속죄와 사역을 매우 분명하게 이해하게 되었음에 놀랐고" "도취되었다." 그녀는 “명상하고 기도하기를 좋아하였다." 어린 엘렌은 "너무도 행복했기 때문에 예수님의 사랑을 간증할 수 있는 기회가 오면 항상 매우 기뻐했다. 그녀의 "마음은 그녀에게 베푸신 축복으로 하나님께 너무나 감사하였고 그로인해 그녀는 "다른 사람들도 이 거룩한 기쁨에 참여하기를 갈망했으며 "그녀는 "젊은 친구들을 빛 가운데로" 인도하고자 모든 기회를 사용했다. 그녀는 그들이 예수님께 굴복할 때까지 그들을 위해 일하기로 결심했다. 그녀의 부담감은 너무나 강렬해서 그녀는 그들을 위해"며칠 동안 밤을 지냈으며, 마침내 그들 모두는 하나님께 회심하였다." 자서, 39~42
실재적인 경험의 가치
이 경험의 모든 대의를 간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 엘렌 화잇은 그날 밤 집으로 걸어갈 수 없었다. "부드러운 이슬처럼 내리는 하나님의 축복을 느꼈다. 그러나 여기까지만 현대의 은사주의자들이 하는 경험과 비슷하다. 사실 그녀가 경험한 성령 침례로 예수님을 더많이 사랑하게 되었고 주님의 은혜와 속죄 사업을 더 잘 이해하게 되었으며 잃어버린 바 된 자들에 대한 분명한 부담감, 즉 그리스도와 같은 삶과 그리스도와 같은 사역이 결과물로 나타났다. 그녀는 불과 15살이었다.
성령님을 더 많이 경험한 60대 후반에 그녀는 이렇게 기록했다.
"오로지 하나님의 성령께서만 건전한 열성을 불어넣어 줄 수 있다.하나님께서 일하시도록 하고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부드럽게 행하며깨어 기다리고 기도하며 매 순간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빛과 생명이 되시는 고귀하신 성령의 인도하심과 지도하심을 받도록 하라." 2가려 16~17
오늘날 많은 재림교인은 진지하게 그들의 삶 속에서 하나님을 더욱 갈망한다. 어떤 재림교인의 블로그를 발견하고 나는 4년 전의 댓글까지 읽어 내려갔다. 그 글을 작성한 대부분은 청년기에 속하는 사람이었다. 그들은 얼마나 종교가 그들에게 실재가 되기를 갈급하고 있었는지! 이런 갈망은 전혀 잘못된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그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풍성한 삶을 주시기 위해 오셨다. 하지만 우리의 삶에서, 우리의 가정에서, 우리의 교회에서 하나님의 성령을 간절하게 구하는 것이 중요하고 매우 필수적인 것만큼, 그러한 필요가 우리 자신의 관점에서가 아닌 하나님의 관점에서여야 하지 않겠는가.'능력'을 원하거나 그들의 속에서 '불'을 갈망하는 이들 혹은 속보이는 하나님의 임재에 '와우'라는 감탄사를 연발할 사람들에게 성령의 충만함은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의 충만함은 실제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분과 같이 변화시키시고 그분의 손에 들린 그분의 도구가 되어 세상에서 그분의 사명을 성취하도록 능력을 주실 것이라는 소망으로 그분을 찾는 자들에게 임할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바람이요 결심이라면, 그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그분의 약속을 신실하게 이행하신다.
♣ 적용과 소그룹 연구를 위한 질문들
1. 오늘날 성령의 임재와 관련된 거짓 현상은 어떤 것들이 있는가?
2. 오늘날 가장 영향력 있는 은사주의 계통의 지도자는 누구인가? 왜 그들은 그토록 영향력이 있는가?
3. 재림교인들이 성경의 진리와 상관없이 이런 경험에 휘말리게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4. 성령의 부어 주심을 보여 주는 신약 성경의 7가지 사례 가운데 일부에만 방언이 포함되어 있고, 또 일부에만 안수가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5. 개인의 삶 속에 성령님을 영접할 때 그 기준은 무엇인가? 우리는 무엇을 갈급해야 하는가?
6. 은사주의자들이나 비은사주의자들이 징조와 기적에 대해 어떤 오류를 범하고 있는가?
7. 리바이 스토크먼 목사님이 좌절한 엘렌 하몬에게 주었던 핵심 권면은 무엇이었는가? 오늘날 우리 시대에 이것을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
8. 하나님의 성령을 받던 어린 엘렌의 경험을 이야기해 보라. 이것이 오늘날 모든 재림교인에게 반복해서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9. 엘렌은 자기 친구들의 구원에 대한 부담감을 어떻게 하기로 결정했는가? 이와 같은 부담감이 우리에게 있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10. 그저 '능력'을 원하거나 그들의 속에서 '불'을 갈망하거나 하나님의 임재로 '놀라운 경험'을 바라는 자들에게 성령의 충만함이 임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