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시민교육현장에서 참여자들에게 제시하는 두 번째 질문은 ‘국민과 시민의 차이점은 무엇인가?’이다. 참여자들은 흥미롭게 논의하다가 금새 어려워한다. 그리고 네이버 지식검색을 누르곤 한다. 참여자들의 생각을 들어보면 대개 지역적 개념을 이야기 한다. 국가에 구성원으로서 국민, 시(市)의 구성원으로서 시민을 이야기한다. 그러면 군(郡)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시민이 아니게 된다. 물론 주체적, 권한, 참여, 능동, 주권의식 등등의 이야기도 한다. 그런데 나는 좀 다른 차원에서 접근하고자 한다. ‘나라를 선택한 사람은 누구인가?’ 물론 대한민국은 이 질문이 점점 이상한 질문이 아닌 시대로 가고 있다. 대한민국을 선택한 참여자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나를 포함한 대다수의 참여자들은 그냥 태어났지 선택한 사람은 없다. 하지만 우리는 성장하면서 점점 ‘선택’의 기로앞에 던져진다. 이과를 갈지, 문과를 갈지, 대학을 갈지말지, 어느 과를 갈지, 어느 동아리를 갈지, 어느 친구를 사귈지, 결혼을 할지말지, 어떤 사람과 결혼할지, 어느 직업을 선택할지, 어디에서 살지 등등 우리는 죽을 때까지 선택해야 한다. 즉 우리의 현재는 ‘선택’의 산물이다. 즉 시민이란 ‘내가 내린 선택(選擇)으로 구성된 존재’인 것이다. 선택이 어렵고, 엄중한 것은 그에 따른 책임(責任) 때문이다. 인간은 스스로 내린 선택에 책임을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즉 시민을 다시 정의하면 ‘스스로 내린 선택으로 내가 자신을 만들며, 그에 대해 책임지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또 다른 질문은 그렇다면 우리가 선택하지 않은 것은 무엇일까? 이 질문은 가볍다. 나라, 성별, 피부색, 태어난 지역, 부모, 가문, 성씨, 선천장애 등이다. 그런데 사회적인 대부분의 차별과 편견은 어디에서 일어나고 있는가? 바로 ‘우리가 선택하지 않은 것에서 이뤄지고 있다’ 즉 사회적 편견과 차별은 우리가 선택하지 않은 것을 책임지라는 것이다. 어떻게 책임져야 하는가? 이것을 간파한 사람이 바로 현대 미국의 시민권 도약의 불꽃이었던 마틴 루터 킹이다. 그의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연설중에서 ‘내 아이들이 피부색을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고, 인격을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나라에서 살게 되는 꿈입니다’가 있다. ‘선택’이라는 관점에서 ‘내 아이들이 자신들이 선택하지 않은 것으로 평가받지 않고, 자신들이 선택하여 형성해 온 인격을 기준으로 평가받는 나라에서 살게 되는 꿈’으로 재해석 할 수도 있다.
시민을 지역이 아니라 의미적 관점에서 재개념화하면 ‘선택하지 않은 것을 평가하는 사회’일수록 시민사회가 아니며 ‘선택한 것으로 평가하는 사회’를 확산하는 것이 평생학습에서 시민참여교육의 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다시 정리하면 자신이 선택한 것으로 평가받는 형성된 존재가 시민이고, 선택한 것으로 평가받는 사회일수록 성숙한 시민사회이며, 성숙한 시민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해 갈등, 협력, 연대하는 방법을 확산하는 활동이 평생학습의 시민참여 교육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