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어미고양이가 왜 집을 나갔을까
기억과 추억 사이/수필·산문·에세이
2006-06-25 16:08:30
날이 훤히 밝아 간신이 눈을 떴는데도 그 놈의 울음소리는 좀체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도대체 어디서 들려오는 소리일까요. 분명 이웃집에서 들려오는 소리같은데 어느 쪽인지 감을 잡을 수 없었습니다.
귀를 쫑긋 세워 들어보면 골목 쪽 같기도 하고 대로변의 농방집 같기도 했습니다. 그것도 아니면 우리집과 마주보고 있는 빌라 같기도 했습니다. 양양양양, 어제 자정부터 들려오기 시작한 울음소리는 밤새도록 쉬지도 않고 시끄럽게 울어대더니 아침까지 그칠 줄 몰랐습니다. 간밤에 그 소리를 들었을 때는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좀체 종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울음소리 때문에 몇 번이나 잠을 깬 생각을 하면 저절로 짜증이 났습니다, 잠을 푹 자지 못하고 옅은 잠을 헤메다 보면 직장에서도 졸려 마음대로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괜히 아내가 부럽기도 했습니다. 울음소리에는 아예 귀청을 막은 듯 곤히 떨어져 단잠을 자는 아내, 새벽녁에 화장실에 갈 때에도 아내는 세상모르게 곤한 잠에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렇게 비몽사몽간을 헤매다가 설핏 잠이 들었는가 싶었는데 나를 깨우는 소리에 눈을 떠보니 아침이었습니다. 화장을 하면서 출근 준비를 서두르는 아내의 목소리가 꿈인 듯 생시인 듯 들려왔습니다.
“어젯밤 이웃집 고양이가 새끼 한 놈을 떼 놓고 도망을 간 모양이야. 새끼가 일곱 마리인데 한 놈만 떼 놓고 간 바람에 밤새도록 저렇게 시끄러웠나봐”
어제 저녁 놀러 나갔던 아내가 이웃사람들한테 흘러 들었던 소문을 슬쩍 풀어놓았습니다. 그럼 밤새도록 주위가 시끄럽게 울었던 그 놈이 바로 새끼고양이란 말인가. 어미고양이 같으면 갓난아기 울음소리 비슷해서 단번에 알았지만 아직 목청이 덜 야문 새끼고양이가 내는 소리다 보니 그 목소리의 정체를 잘 몰랐던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아내도 새끼 고양이의 울음소리를 들었던 모양입니다. 난 아내가 세상모르게 곯아떨어진 줄만 알았는데 그런 말을 하는 걸 보면 아내 역시 보나마나 깊은 잠을 자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아내와 대화를 나누는 중에도 새끼고양이 울음소리는 목이 쉰 듯 칼칼하게 들려왔습니다. 길고 지루한 밤 한 번도 쉬지 않고 저렇게 울었으면 지칠 만도 한데 아침까지도 울음을 그치지 않는 걸 보면 새끼고양이의 어미에 대한 사랑은 대단했었나봅니다. 그 울음소리를 들으며 출근준비를 서두른다고 화장실로 부엌으로 바쁘게 뛰어다니다 보니 아내는 “회사 갔다올게” 한 마디만 남기고 바람처럼 휑하니 사라져 버렸습니다. 집안은 일순간 적막에 휩싸였습니다. 아이들 모두 곤히 잠들어있고 나만 홀로 바쁘게 움직이는 집안엔 새끼고양이 울음소리만 흘러들어와 여간 심란한 게 아니었습니다. 한갓 미물인 저 새끼고양이도 저렇게 어미를 찾는 걸 보면 핏줄이 뭔지, 정이 뭔지 대충 짐작이 갔습니다. 출근준비를 마치고 현관문을 열자 아침밥을 짓는 셋방 할머니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 어미를 찾다 지친 새끼 고양이는 절망한 채 세상을 원망하고 있을 것 같습니다
ⓒ 박도
“지금 우는 저 놈이 새끼고양이라면서요, 어느 집 고양이가 저래요”
“글씨, 어느 집인지는 나도 모르겠네유. 어미가 새끼를 띠 놓고 도망을 갔는디 밤시도록 저렇게 시끄럽게 우나봐유, 그래서 그릇도 갖다놨자나유”
셋방 할머니가 손짓을 하는 대문 안쪽을 바라보니 음식 찌꺼기가 담겨있는 그릇이 보였습니다. 셋방 할머니가 새끼고양이에게 베풀어준 배려였습니다. 남 집을 돌아다니면서 어미를 찾다 지치고 배고프면 요기라도 하고 울어라는 배려 같았습니다. 아마 셋방 할머니도 새끼가 무척이나 안쓰러웠던 모양입니다. 하기야 저런 뼈저린 경험을 한 사람만이 가슴속에서 사무치도록 감정이 울어 나오는 법입니다. 셋방 할머니 역시 혼자 몸입니다. 근 3년을 같은 집에서 살았어도 난 여태까지 일가친척이나 피붙이 한 사람 찾아오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외로움이 사무쳤겠습니까.
난 대문을 나서면서도 새끼고양이의 울음소리에 시달렸습니다. 골목을 벗어날수록 울음소리는 멀어져 잘 들리지 않았지만 울음의 환청만은 내 마음에 달라붙어 직장에 도착할 때까지 따라다녔습니다. 만약 어미고양이가 새끼의 처절한 울음소리를 들었다면 아마 마음을 달리 먹었을지 몰랐습니다. 아무리 철없는 새끼라지만 울음소리는 흉내 낼 수 없을 만큼 가련했고 온몸이 짜르르 전류가 흐르는 것처럼 애틋했습니다. 난 여태까지 가슴이 녹아나도록 저토록 애절하게 우는 소리를 듣지 못했습니다. 양양양양, 숨 쉴 틈도 없이 흘러나오는 저 울음소리가 너무 슬퍼 아마 야행성 동물들도 하룻밤 동안만은 활동하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약 저 울음소리를 제 몸 밖에 모르는 비정한 인간들이 들었다면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요. 젖도 떼기 전에 자식을 버리는 부모들, 키우기 벅차다고 헌신짝처럼 자식을 내팽개치는 부모들, 한갓 미물인 고양이 새끼조차 저렇게 애절하게 어미를 찾는데 인간의 탈을 쓰고 어린 자식을 버린다는 것은 보통 독한 게 아닙니다. 저 어미고양이도 철없는 부모와 같은 마음이었을까요. 새끼를 키우기 힘들었을까요, 아니면 다른 여섯 새끼들보다 더 유독 어미 속을 섞이며 말썽을 피운 것일까요.
이런 비정한 일들이 인간 세계에서만 밥 먹듯이 일어나는 줄 알았는데 고양이에게도 일어난다는 것에 비애를 느꼈습니다. 아마 고양이도 인간들한테 그런 몹쓸 짓을 배운 것이 아닐까하는 역설적인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어미와 헤어져 정을 받지 못하고 험한 세상을 해쳐나갔던 새끼고양이들이 도둑고양이로 변한 것이 아닌가 문득 생각이 들었습니다. 며칠 전부터 집 주변에서 툭하면 마주쳤던 고양이들, 어슬렁어슬렁 담장을 타고 다니며 남의 집을 엿보던 노란 눈동자, 분노로 빳빳하게 뻗어 내렸던 억센 수염, 가축을 보면 바람처럼 쫒는 그 공격성은 아마 세상을 향한 증오의 몸짓인지도 모릅니다. 밤새도록 목이 쉬도록 울었던 새끼고양이도 어미가 돌아오지 않는다면 먼 훗날 필시 저런 꼴로 변하게 될 지도 모릅니다. 오늘 밤에도 새끼고양이가 또 애절하게 어미를 찾지 않을까 문득 궁금해집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새끼고양이가 도둑고양이가 되어 부글부글 들끓는 분노로 세상을 살아가지 않도록 제발 어미고양이가 돌아왔으면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