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요4:23~24).
이 말씀은 우리 교회 예배 서두에 장로님들이 꼭 낭독하는 성경 말씀입니다. 왜 이 말씀을 매번 낭독할까요? 이는 ‘예배드리는 대상은 누구인가’, ‘예배를 어떻게 드려야 하는가’를 밝히기 위함입니다.
옛말에 ‘밤새 울고 누가 죽었냐’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어떤 일을 하면서도 그 일의 내용이나 영문을 모르고 맹목적으로 하는 행동을 비꼬는 말입니다. 성도 중에 이런 분들이 꽤 있습니다.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리는데, 예배의 주체가 누구인지, 예배를 어떻게 드려야 하는지도 모르고, 목사님한테 눈도장이나 찍으려 하고, 자기 충만으로 신나게 봉사하고, 자기 감성에 취해 찬양하는 사람들 말입니다. 이는 헛된 예배입니다. 헛된 예배가 있냐고요? 있다마다요. 하나님은 가인과 아벨이 둘 다 예배를 드렸지만, 아벨의 예배는 받으시고 가인의 예배는 받지 않으셨습니다.
여러분, 예배의 주체는 하나님이십니다.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요4:23). 우리가 예배드릴 분은 이 세상을 만드시고 주관하시며,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창세 전부터 우리를 당신의 자녀 삼기로 작정하사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예배드릴 때 주객이 전도(主客顚倒)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가복음 7장을 보겠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율법을 중시하던 자들입니다. 그런 그들이 볼 때 예수님은 율법을 파괴하고 전통적인 가치관을 뒤엎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넘어뜨리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부터 사람들을 파견하여 눈을 부릅뜨고 빌미를 찾고 있었습니다. 때마침 예수님의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아니하고 식사하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옳다구나’ 생각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예수님께 대대로 내려오는 장로들의 유전을 들이대며 음식을 먹기 전에 반드시 손을 씻어야 하는데 당신의 제자들은 그렇지 않아 부정하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유전을 지키느니라” (막7:6~8).
예수님은 사람의 전통을 지키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말씀하신 게 아닙니다. 사람이 만든 전통을 지키느라 정작 하나님의 계명을 버렸다는 것이고, 그들은 사람의 전통을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중요시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들은 각종 유전들과 전통들을 철저히 고수하며 그것에 매여 형식 위주의 예배로 하나님의 뜻에서 점점 멀어져 갔다는 것입니다. 고르반이 대표적이죠.
예수님은 그들에게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에게 배운 백성들도 결국 다 유전과 전통에 얽매인 헛된 경배만 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래서 누구에게 배우느냐가 중요합니다. 저는 주의 종들에게 꼭 당부하고픈 말이 있습니다. 성경의 탕자가 되지 마십시오. 하나님 말씀을 떠나 세상의 지식, 세상의 책, 세상의 관례로 하나님을 가르치지도, 설명하지도 마십시오. 하나님의 말씀, 곧 성경으로 성도들을 가르쳐야 헛된 경배가 안 됩니다.
예배는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야 합니다. ‘신령과 진정’이란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드리는 예배이기도 하지만, 진정한 의미를 들여다보면 ‘영과 진리’라는 뜻입니다. 곧 성령과 진리이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예배해야 참 예배가 됩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창조주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데 세상의 것을 인용하면 되겠습니까? 잘나봐야, 성공해봐야 피조물이요, 피조물의 것인데 그것을 창조주이신 하나님 앞에 들이밀면 가당키나 할까요? 그러니 성도들이 쥐엄열매나 먹다가 영양실조에 걸리는 것입니다.
성경 안에는 다 있습니다. 세상 책 모조리 섭렵한다고 해도 성경 한 구절만 못합니다. 성경은 변하지 않는 진리요, 인생의 내비게이션이며, 구원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시고’(히4:12),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며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여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며’(딤후3:15~17), 하나님의 말씀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합니다’(시19:7~8).
제가 신학생에게 ‘성경 한 권의 사람이 돼라.’고 하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성경 한 권만 통달하면 세상사 모든 것을 알 수 있고, 가르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이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15:31) 한 것은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빌3:4~6)였던 그가 틈만 나면 스멀스멀 올라오는 자신의 지식과 이론을 버리고 율법에 얽매이지 않기 위해서 늘 자신과 싸운 것입니다. 그것들이 하나님과의 견고한 진임을 알았기에 파하기 위해서였습니다(고후10:4).
세상 것들로 영혼이 살아날 수 없습니다. 그것들로 상한 심령이 위로받고, 죄사함 받고 더욱이 천국에 이르게 할 수 없습니다. 가난한 자가 부유케 되는 방법, 약한 자가 강해지는 방법, 세상을 이기는 방법, 사랑하고 용서하는 방법…. 성경에는 이 모든 것이 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 말씀 외에 다른 것을 탐구하지 마십시오. 그래야 주의 종을 통해 배운 성도들이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예배, 하나님이 열납하는 예배를 드려 범사에 잘되고 강건한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성도 여러분, 누가복음 10장에 나오는 마리아와 마르다를 보며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집에 오시니 마르다가 바쁩니다. 예수님께 맛있는 걸 해드리려니 분주합니다. 마음은 기특하지요. 반면 마리아는 예수님 옆에 딱 붙어 앉아서 말씀만 듣고 있습니다. 이를 본 마르다가 예수님께 마리아가 자기를 좀 도와주도록 내보내 달라고 말씀드렸더니 예수님이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다’(눅10:42)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정말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봉사하느라 예배를 등한시하는 경우입니다.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지만, 열심히 봉사하다 보니 전심으로 예배에 임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마르다가 된다는 것입니다. 마르다의 마음이 이쁜 것이나 하나님이 원하는 것은 그것이 아니라 마리아처럼 말씀을 듣는 예배자가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예배가 시작되면 밖에서 안내서는 자들도 다 들어오라고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무엇보다 예배가 중요합니다. 예배(禮拜)란 하나님께 경의를 표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본질은 예배에 있습니다. 예배는 우리를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한 것입니다. 제가 여러분들이 통성으로 기도할 때 “하나님, 얼마나 좋으십니까? 주님이 원하시는 것이 이거죠?”라고 말하는 것도, 워십을 하고 나면 ‘하나님, 기쁘시지요?’ 하는 것도 다 하나님을 위한, 하나님이 보시는 예배이기 때문입니다. 사람 들으라고 성가대가 찬양하는 게 아니지요. 사람 보라고 워십하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 기뻐하시라고 하는 겁니다.
예배를 받으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분께 영과 진리로 합당한 예배를 드려 하나님이 기뻐하사 그분의 기쁨이 우리에게 축복으로, 은혜로 나타나도록 합시다. 예배의 성공이 인생의 성공입니다.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며 거룩한 옷을 입고 여호와께 예배할지어다”(시29:2). 할렐루야!
예배의 성공이
인생의 성공이다
세상의 것들은
하나님 앞에 견고한 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