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인의 실종을 둘러싼 의문과 루머들은 남아있는 가족들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상처만 남긴 채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점차 잊혀져갔다.
한동안 미제로 남아 있던 이 괴이한 사건은 경찰이 아주 우연히 낯선 사내들의 대화를 엿듣게 되면서 서서히 그 실체가 드러나게 된다.
이번에 서울 중랑경찰서 차창면 강력 1팀장이 전하는 사건이 바로 그것.
생사조차 알 수 없던 한 주부의 실종이 2년여 만에 끔찍한 살인사건으로 밝혀지기까지의 수사과정에 얽힌 얘기다.
차 팀장은 “자칫하면 그대로 세월 속에 묻힐 뻔했던 사건이었다.
이런 사건을 해결했다는 것은 치밀한 정보 수집과 집요한 수사가 계속된다면 언젠가는 미제사건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아울러 우리 형사들에게는 그냥 흘리기 쉬운 사소한 정보 하나도 놓치면 안 된다는 교훈을 되새겨준 사건이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낮에 외출했던 아내가 아직까지 들어오지 않고 있습니다.
그럴 리가 없는데…
뭔가 이상해요.
제 아내 좀 찾아주세요.
2004년 8월 4일 밤 서울 성동경찰서 형사과에 한 남자로부터 다급한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를 건 남자는 주부 김 아무개 씨(당시 45세)의 전 남편이었다.
업무상 외국에 있었던 전 남편이 ‘엄마가 아직까지 들어오지 않고 있다’며 불안해하는 딸의 말을 전해듣고 직접 가출신고를 한 것이었다.
딸에 따르면 김 여인은 이날 정오경 누군가의 전화를 받고 급히 집을 나섰다고 한다.
경찰은 처음에는 단순가출 정도로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범죄에 연루된 정황이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 여인이 사라진 후 집에는 단 한 통의 협박전화도 없었다.
당시 경찰이 김 여인의 은행잔고와 카드 사용 등 금융거래내역도 확인해봤으나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없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 김 여인이 돌아오지 않자 경찰은 단순가출이 아닌 ‘범죄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수사를 진행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김 여인의 실종과 관련된 사소한 실마리도 얻을 수 없어 수사는 곧 난관에 봉착했다.
경찰은 김 여인 주변의 정황을 하나씩 짚어보는 것에서부터 수사를 시작했다.
김 여인은 수년 전 남편과 이혼한 뒤 서울 행당동에서 두 아이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
평소 생활력이 강했던 김 여인은 봉제공장에 다니며 생계를 꾸려나갔으며 실종 당시 아들은 군복무 중이었다.
김 여인의 전 남편에 따르면 두 사람은 경제적인 문제로 불가피하게 이혼을 했지만 서로 자주 집에 드나들며 사실상 부부관계를 유지해왔다고 한다.
법적으로는 갈라선 사이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원만했으며 원한이나 앙금이 있을 리 없다는 것이었다.
더구나 평소 김 여인의 사생활에 별다른 문제가 없었던 점, 애지중지 키워온 아들이 군복무를 하고 있는 등 여러 가지 정황으로 봐도 김 여인이 가출할 만한 이유가 없었다.
1년 이상 실마리가 풀리지 않던 이 사건은 결국 2005년 9월 29일부로 수사가 종결되고 만다.
미제로 남아있던 김 여인 사건이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 것은 실종된 지 1년 5개월이 지난 작년 1월경.
차 팀장이 이끌고 있던 중랑경찰서 형사과 팀원 중 한 명이 서울의 한 술집에서 낯선 사내들로부터 이상한 얘기를 듣게 된 것이다.
다음은 차 팀장이 전하는 당시 상황.
술자리에서 한 중년 남자가 같이 술을 마시던 일행에게 ‘이 손으로 사람을 죽인 적이 있다’고 으스대더라는거다.
우리 팀원으로선 직업이 직업인 만큼 귀가 번쩍 뜨였겠지.
처음에는 술김에 객기 부리는 것이라 생각하고 흘려들었는데 계속 듣다보니 이상하더라는 거야.
사람도 죽인 내가 뭘 못하겠나.
어려운 일 있으면 말해라.
다 해결해 주겠다’며 큰소리를 쳤다는 거지.
차 팀장이 주목한 것은 자신의 ‘살인행각’을 떠벌리던 중년 남자, 김 아무개 씨(당시 40세)의 신원이었다.
이어지는 차 팀장의 얘기.
처음에는 술김에 그냥 한 말일 거라고 생각했다.
보통 건달이나 동네 양아치 같은 경우 술자리에서 객기 부리느라 온갖 얘기를 하지 않나.
문제는 김 씨가 어딜 봐도 건달은 아니더라는 거다.
신원을 알아보니 김 씨는 직원을 여럿 두고 일명 ‘짝퉁’ 티셔츠나 점퍼, 체육복 등을 만드는 공장을 운영하던 인물이었다.
멀쩡한 사람이 술김에 그런 엄청난 실언을 했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김 씨에 대해 은밀하게 수사를 시작했다.
또 동시에 김 씨와 술을 마셨던 사람들과도 물밑접촉을 시도했다.
그러나 혐의점은 쉽게 드러나지 않았다.
김 씨에게 몇 차례 폭력전과가 있긴 했으나 그것만으로 살인 같은 강력범죄와 연결짓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또한 김 씨가 어떤 의도로 그런 말을 했는지, 그게 진짜인지 거짓인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라 수사팀으로선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우선 차 팀장은 김 씨의 과거 행적을 하나씩 되짚어보며 수사를 진행해나갔다.
이런 가운데 수사팀은 당시 김 씨와 술자리에 동석했던 한 남자로부터 또 다른 얘기를 전해듣게 된다.
그 남자에 따르면 김 씨가 ‘사람을 죽이고 나서 한동안 무서워서 화장실도 가지 못했다’ ‘하루라도 술을 안 마시면 잠을 잘 수가 없었다’는 말을 했다고 하더라.
진짜로 살인을 해본 사람이 아니라면 느낄 수 없는 공포를 김 씨는 측근에게 너무도 리얼하게 표현했던 거다.
그 얘기를 듣고 ‘아!
정말 뭔가 있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 줄기 빛이 보이는 것 같았다.”
차 팀장은 김 씨의 주변 사람들 중 최근 2년 사이 신상에 변동이 생긴 인물이 있는지에 대해 탐문수사를 벌였다.
이 과정에서 ‘김 씨네 공장에서 일하던 여직원 한 명이 사라졌는데 가출인지 뭔지 2년이 다 되도록 아무 소식이 없다’는 얘기를 듣게 된다.
뭔가 이상했다.
팀원들이 당시 가출신고자 기록을 면밀히 살폈다.
그랬더니 실종됐다는 그 여직원이 바로 2년 전 성동경찰서에 가출신고가 된 행당동 김 여인인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김 여인이 근무했던 공장이 바로 김 씨가 운영하던 그 공장이었다.
차 팀장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김 여인의 가족에게 어떠한 협박전화도 없었고 금융거래내역에도 아무런 변동이 없었던 점으로 미루어 김 여인이 실종 당일 살해되어 어딘가에 유기됐을 것으로 추측했다.
이제 수사팀에게 남겨진 숙제는 사라진 김 여인과 김 씨의 술자리 발언 사이의 비밀을 푸는 일이었다.
차 팀장은 팀원들과 함께 김 씨의 사건 당시 행적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수사팀은 김 씨의 당시 동선을 파악하기 위해 휴대폰 통화기록을 분석하는 한편 계좌를 추적했다.
또한 김 씨가 김 여인을 해치고 사체를 제3의 장소에 유기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당시의 고속도로 CCTV 녹화자료를 확보해 톨게이트를 통과한 차량을 일일이 감식하기도 했다.
특히 수사팀이 주목한 것은 실종 당일 김 여인이 누군가의 전화를 받고 집을 나섰다는 딸의 진술.
통화내역을 추적한 결과 김 여인은 최종적으로 두 명의 남성과 통화를 한 것으로 확인됐는데 그중 한 명이 바로 공장을 운영하던 김 씨였다.
2년 전 가출 신고 때 수사를 진행했던 경찰 역시 김 여인과 최종적으로 통화를 한 이들 두 남성을 상대로 조사를 벌였었다.
그러나 당시 두 사람은 “김 여인이 ‘다른 일자리를 알아봐야겠다’는 얘기를 했을 뿐 다른 말은 없었다”고 흡사한 답변을 해 별다른 의심을 사지는 않았다.
수사팀이 김 여인의 실종 당시 김 씨의 행적을 샅샅이 추적한 결과 특정 시간 동안 김 씨의 행적이 확인되지 않는 ‘공백’이 있고 실종 직후에 그가 지방에 내려갔던 사실 등 석연찮은 점을 발견하게 된다.
또한 김 씨가 당시 타고다니던 차량을 찾아내 면밀히 감식한 결과 차 안에서 혈흔이 발견되는 등 그를 유력한 용의자로 볼 수 있는 몇 가지 정황을 포착하게 된다.
2006년 7월 30일 수사팀은 김 씨를 우선 상표법 위반 혐의로 체포했다.
그리고 그동안 수집한 정보와 증거를 토대로 살인 및 사체유기에 대한 수사를 함께 진행했다.
김 씨는 처음에는 “모르는 일”이라며 완강히 부인했다.
하지만 차 팀장이 “애들이 엄마 사체라도 찾아야 하지 않겠나”라고 3일 동안 설득하자 김 씨도 심경의 변화를 보였다.
당시 김 씨가 털어놓은 범행의 전모는 이렇다.
생활력이 강했던 김 여인은 돈 문제로 남편과 적잖은 갈등을 빚었다고 한다.
이혼 후 김 여인은 더욱 악착같이 돈을 모았고 그것을 밑천으로 사채놀이를 하기도 했다는 것.
김 씨는 같은 공장에 근무하던 김 여인과 자연스레 가까워졌고 어느 날 김 여인에게 2500만 원을 빌렸다고 한다.
하지만 돈이 개입된 뒤부터 두 사람의 관계는 삐그덕거리기 시작했다.
이들의 갈등은 김 여인이 김 씨의 공장을 그만두면서 절정에 이르렀다고 한다.
김 여인이 빌려간 돈을 갚으라고 독촉했던 것.
김 여인은 어렵게 모은 돈을 빌려줬음에도 돌려받지 못할까봐 전전긍긍했던 것 같다.
김 여인은 김 씨의 거래처에까지 일일이 전화를 해서 ‘저 사람에게 받을 돈이 있으니 저 사람에게 줄 돈은 내게 직접 달라’고 말했다고 한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었던지 김 씨는 ‘공장 앞에서 만나서 얘기하자’며 사건 당일 김 여인을 불러내기에 이른다.
그게 사건의 시작이었다.
자신의 차량에 김 여인을 태운 김 씨는 일산 방면으로 무작정 차를 몰았다고 한다.
차 안에서도 두 사람 간에는 냉랭한 분위기가 이어졌고 잠시 후 둘은 심한 말다툼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어지는 차 팀장의 설명.
김 여인은 당시 김 씨의 부인으로부터 이미 750만 원을 받아 갔다고 한다.
그럼에도 김 여인이 자꾸 2500만 원을 빨리 내놓으라고 했다는 거다.
김 씨는 ‘내 마누라에게 750만 원을 받아간 것을 아는데 왜 계속 2500만 원을 달라고 하는 거냐’며 따지고 들었다.
이 과정에서 언성이 높아지고 분위기가 겉잡을 수 없이 험악해졌다.
자유로 갓길에 차를 세워두고 싸움을 하던 중 결국 김 씨는 김 여인에게 손찌검을 했다고 한다.
당시 심한 말다툼을 벌이고 몇 차례 주먹을 휘두르는 등 실랑이를 하다 보니 김 여인이 숨을 거둔 상태였다는 게 김 씨의 주장이었다.
이후 김 씨는 차에 김 여인을 싣고 다니다 사건 당일 오후 6시경 집으로 돌아왔고 고민을 거듭하던 끝에 자신의 고향인 전남의 한 지역으로 향했다.
그리고 다음날 오전 7시경 인적이 드문 야산 기슭에 시신을 유기했던 것이다.
현장을 찾았을 때 사체는 완전히 부패되어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상태였다.
김 씨는 자신의 폭행에 화가 난 김 여인이 차에서 내리다가 순간적으로 차 뒷부분에 머리를 부딪혀 죽었다고 했는데 김 여인의 앞니 두 개가 나가 있었던 점, 2년이 지난 당시에도 차량에서 혈흔이 발견된 점 등으로 짐작컨대 당시 김 여인은 심하게 폭행을 당했고 많은 피를 흘렸을 것으로 추측된다.
차 팀장은 또 “김 씨는 살해의도가 없었다고 주장하지만 격분한 상태에서 김 여인을 불러낸 점, 인적이 드문 곳으로 가서 폭행을 가한 점, 다량의 피를 흘렸을 김 여인을 즉시 병원으로 옮기지 않은 점, 싣고 다니다가 고향 야산에 유기한 점 등으로 미뤄볼 때 단순 우발범행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미제로 남아 있던 이 사건을 해결할 수 있었던 것은 작은 단서와 일말의 가능성조차 그냥 흘려 넘기지 않은 형사들의 근성과 집요한 추적수사 때문이었다.
차 팀장은 “묻혀 있던 사건의 진실을 세상에 드러내게 됐다는 점, 살인을 하고서도 멀쩡히 살아가던 피의자를 지은 죄대로 처벌받게 했다는 점, 또 죽은 자의 원혼을 뒤늦게나마 위로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뿌듯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살해 등의 혐의로 기소된 김 씨는 1심 재판에서 무기형을 선고받았고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