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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조고(祖考)로 사간(司諫) 벼슬을 하셨던 휘(諱) 충간(忠寬) 어른은
별시(別試) 초시(初試)에 합격하여 장차 전시(殿試)에 응시하려 했다.
그날 밤,
신판서 집에서 묵었는데,
훗날 참판 벼슬을 한 정언각 또한 신 판서의 생질이었다.
그는 나이가 많은데도 급제하지 못하고,
또 초시에도 합격하지 못했는데,
할아버지와 한 방에서 자게 되었다.
할아버지께서 한 밤 중에 꿈을 꾸었다.
소나무를 잡고 올라가 다섯째 가지에 앉았는데,
위 아래로 모두 여자들이 있는 것이었다.
새벽에 깨어나 그 꿈을 말했더니 정언각이 누운 채로 꿈을 풀이하여 말했다.
소나무는 관이요,
다섯 째 가지는 5년이오.
상하의 여인이란 필시 두 딸을 낳을 것인데 모두 죽을 것이오.
할아버지께서는 크게 노하셨고,
힘이 워낙 센 분이라 일어나 그를 때렸다.
정언각은 아픔을 감당하지 못하면서도 오히려 굴복하지 않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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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시(初試)--모든 과거의 맨 처음 시험.
보통 서울. 지방에서 식년의 전 해 가을에 치르며 이 시험에서 합격해야 복시에 응시할 수 있다.
만약 마당에 있는 닭으로 안주를 삼고 약주를 가져오면 마땅히 좋은 말로 풀이 하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끝내 고칠 수 없소.
정언각은 정희량(鄭希良)의 조카로서 또한 일찌기 점치는 일을 배운 적이 있었다.
할아버지께서는 응낙하고 닭고기와 술을 장만하여 그를 대접했다.
정언각이 그 음식을 다 먹고 나서도 말하는 것이 오히려 더 악독한지라 전과 같이 그를 때렸다.
그러자 굴복하고 그 꿈을 고쳐 풀이하여 말했다.
소나무 송(松)자는 십팔공(十八公)이니,
오늘 급제자로 18명을 뽑을 것이네.
그대가 다섯 째 가지에 앉아 있었으니 마땅히 5등을 할 것이며,
상하 여인은 모두 안(安)씨 성을 가진 사람일 것이네.
할아버지께서 전시(殿試)에 들어가니 책(策)을 지으라 하였는데,
평소에 생각하던 글을 써내어 급제를 했는데 5등이었다.
동방(同榜)은 18명이고 안현(安玹)이 일등을 했고,
안장(安璋)이 꼴찌로 붙었으니 모두 정언각의 말과 같았다.
그 후 할아버지께서는 두 딸을 낳았는데 모두 요절했으며,
할아버지 또한 일찌기 돌아가셨으니 매우 괴이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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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殿試)--복시(覆試)에서 선발된 문과 33명과 무과 28명을 왕이 몸소 시험하는 과거.
복시 합격으로 과거의 급제는 결정되고,
전시에서는 다만 급제의 순위만 정할 뿐이다.
이 시험 성적에 따라 문과는 갑과 3 인. 을과7인. 병과23인으로 나뉘고,
무과는 갑과3인. 을과5인. 병과20인의 등급으로 나누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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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策)--책문(策問)의 준말로서 과거 시험 과목의 한 가지다.
정치에 대한 여러 문제를 제시하고,
거기에 대한 대책을 답안으로 써 올리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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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同榜)--같은 때에 과거에 급제한 사람을 일컫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