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살에 대하여 / 송주성
화살이 날아가. 날아가며 지나온 것들을 지우며, 궤적에서 탈출하려고 온뭄을 자기 밖으로 던져, 결국엔 자기의 텅 빈 곳으로 돌아가고 마는 힘의 극한에 걸려 있던 한 점 미련 같은 것을, 활은 놓쳤던 걸까? 아니면, 놓은 걸까? 앞이 날카롭다거나 화살이 날아간다고 보이는 건 밖에서 정지해서 보기 때문일 거야. 불엔 덴 속도로 화살과 나란히 달리면서 옆으로 고갤 돌려 보면 보여. 꼬리가 이미 불에 타들어오기 시작한 듯 눈을 슬프게 뜨고 입을 크게 벌린 채 목구멍으로 하마 소릴 지르고 있는 화살의 얼굴. 그러니, 넌 가고 있구나, 날아가 가고 있구나, 라는 말은 얼마나 슬픈 말
화살은 궤적에서 탈출하기 위해 온몸을 던지지만 그럴수록 지난 것들의 전부도 궤적을 따라 쫓아와. 화살은, 가지 끝에서 발을 떼는 새, 원인에서 도망치는 결과, 리얼리즘 읽기를 괴로워하는 환상문학 작가. 밤이면, 지워지는 것과 닿지 앟는 것 사이의 어쩔 줄 모를 공간을 자신이 하염없이 걸어가고 있음을 화살은 혼자서 알아
아, 뭐라 말해야 좋을까. 탈출하는 화살을 잡기 위해서라면, 궤적도 자기 바깥으로 자기를 던져야 한다는 것 말야. 세상에, 우린 그런 걸 사랑이라고 했던 걸까? 궤적은, 화살도 없이, 근거도 없이 이곳에 남겨질 순 없겠지. 궤적이란 탈출하는 화살을 향해 매혹되는 것. 말하자면 탈출이란 궤적을 초과하라고 궤적을 현혹하는 것. 결국 날아간다는 건 자기가 자기를 유혹하는 것. 깊은 곳 검은 밤 골목의 입술로
그건 빛도 그래. 빛은 전진할 때만 빛나는 빛, 자신의 기쁨이며 슬픔인 속을 날아가지. 저기 정지한 빛들의 아기와 같은 숨소리 가득한 밤하늘 좀 봐, 불러도 듣지 못하는 빛이 저길 스쳐 지나가네. 깊은 곳 검은 밤 골목의 뜨거운 입술에 맴도는 말을 남기고
높은 북쪽 툰드라 전설의 부족민 마을엔, 아득한 곳으로부터 날아와 꺼지지 않는 불씨로 박힌 수천만 화살들의 숲이 있어. 화살은 거기서 비로소 고갤 뒤로 돌려서 사라진 자기 궤적들의 어둠을 바라보게 되겠지. 무어라 웅얼거리면서 하염없이 영롱이면서. 그때 전설의 부족민들은 그 숲을 향해 서서 이렇게 말할 거야 - 저것은 밤하늘 멀리 날아오며 다 타고 끄트머리 불씨로만 남은 화살의, 그러니까 활도 몸통도 궤적도 없이 낯선 곳에 와서 자신의 캄캄한 뒤를 돌아보는, 한 영혼의 일렁이는 눈동자라네
[출처] 제4회 구지가문학상 / 송주성|작성자 ksujin19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