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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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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 작품 1 | 백자 한 점 |
대표 작품 2 | |
수상연도 | 1997년 |
수상횟수 | 제16회 |
출생지 | |
직위직책 | 한국수필가협회 이사 |
[대표 작품]
백자(白瓷) 한 점(点)
동진(同塵) 김재형
나는 평소 백자에 대해선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거실의 외진 선반 위에 놓여 있는 한 점 백자만은 가끔 만져 보기도하고 감상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백자에 쏠린 마음은 날이 갈수록 더해 어느 새 그 은은한 자태와 날렵한 맵시에 매료되고 말았다.
그는 옛 우리네 여인들 마냥 다소곳하고 수줍어하고 부끄러운 듯 청초한 모습으로 언제나 말이 없다.
덕을 쌓은 요조숙녀의 자태인양, 보면 볼수록 내 마음을 송두리째 앗아간다.
언제나 같은 거실에 함께 생활하면서 눈으로 담고, 마음으로 익히고 본받아 나와는 떨어질 수 없는 소중한 존재로 자리 잡았다.
백자(白瓷).
언제 보아도 다정다감한 느낌, 우아한 모습, 어머님 품 같은 포근한 정이 내 마음을 사로잡는다.
거기엔 우리역사의 숨결이 살아 숨쉬고, 우리민족의 혼이 배어있어 정신적으로 유익할 뿐 아니라 문화 유산에 대한 안목을 넓히는 데도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또 흰옷을 숭상하여 즐겨 입던 우리 조상들의 손때가 묻어있고, 넓고 깊은 조상들의 기(氣)와 얼이 살아 숨 쉬고 있다.
고아롭고 우아한 백자여!
기린 목처럼 길게 뻗은 줄기 밑으로 이어진 타원형 몸체는 어찌 그리도 조화로운 맵시로 보는 이의 눈길을 멈추게 하고, 정중한 듯 하면서도 단정한 모습은 보는 이의 마음을 어찌하여 송두리째 빼앗아버릴까.
뽀얗게 윤기 흐르는 유색(乳色)이 전신을 감싸고 있음은 누구를 위함이며, 보면 볼수록 선미(禪味)를 느끼게 함은 누구를 위함일까.
날렵한 미색에 유연한 곡선미는 흐르는 듯 멎어있고, 매끈한 몸체는 둥글어 원인 듯 보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세심 정혼(洗心 凈魂)이라 더니 백자를 보고 있으면 스스로 마음을 씻고 정신을 가다듬게 된다.
거실의 구석자리에 앉아있는 백자, 그는 세속의 온갖 풍진을 훨훨 날려 버리고 무사무념(無思無念)으로 정좌한 모습은 불타(佛陀)와 무엇이 다르랴.
우리의 백자는 고려 말기 중국 송나라의 영향을 받아 시작되어 조선시대에 와서 전성기를 이루었다 한다.
고려 때는 청자에 가려 빛을 보지 못하고, 다만 소문(무늬 없는 것), 음각, 양각, 상감 4종류로 구분되어 만들어졌다.
조선시대에 와서 백자는 명나라의 영향과 흰 것을 좋아하던 우리민족의 성향에 따라 초기부터 후기 전반까지 꾸준히 발전되어 오늘의 백자로 명성을 떨치게 되는 기틀을 마련했다.
세종실록 ‘지리지’에는 전국에 백자를 굽는 도요지가 136곳이 있다는 기록이 있으나 백자가 기술적으로 완성된 때는 이 때로 추정하고 있다.
세조 때는 청료(재료의 일종)의 수입이 어려워 백자는 주기(酒器) 이외는 사용을 금지하였다는 기록도 있으나, 예종 때는 우리나라에서도 청료를 채취할 수 있어 전국적으로 백자제조가 성행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임진왜란으로 위축되어 백자의 주종은 화문 자기 풍으로 변하여 근대에 이르렀다고 한다.
조선 백자는 완벽을 자랑하는 중국 백자와는 달리 대청색, 대회백색, 유백색으로 그 색채에 있어서도 특색을 지님은 물론, 기교면에서도 초탈한 소박미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사람의 마음을 정적으로 이끄는 매력이 있다.
고려백자에 비해 정련(精練)되고, 기묘(奇妙)하고, 정교(精巧)한 멋은 없다고 하나 조대호방(粗大豪放)한 특색을 지니고 있다.
임진왜란 이후 백자는 일본에 건너가 일본 백자의 모태(母胎)가 되었다.
기물(器物)의 종류로는 병, 호, 주발, 주전자, 향로, 화분대, 필통, 연적 기타 문방구 등으로 우리의 생활과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귀족적인 풍모를 간직한 청자와는 달리 소탈하고 서민적인 모습을 풍기는 백자, 순백(純白)으로 은은하게 비춰주는 빛깔, 현란하지 않는 무광이 더욱 정겨움을 느끼게 한다. 이것이 백자의 본래 빛깔이요, 본성이요, 소박한 우리네 심성을 그대로 나타냄이 아닐까.
백자의 투명한 빛깔, 소박한 질감, 다소곳한 자태를 본다면 그 누가 감탄하지 않으랴.
고려 때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 앞선 청자를 만들어 왔으며, 조선시대 초기는 분청사기를 제작함으로써 그 맥을 이어 왔다.
분청사기(粉靑沙器)는 청자와 같은 태토(胎土)의 표면을 백토로 분장해 회청색을 띠는 도자기로서 우리 민족의 혼을 담은 소박한 색상, 완벽한 조형성을 보여주고 있다. 반면 백자는 백색의 점토로 고려시대부터 만들어졌으나 숙련된 솜씨로 완숙한 백자의 탄생은 조선시대에 이르러 국가적인 지원과 도공들의 예술혼이 잘 어우러져 생산되었다.
한 점 백자엔 유교적인 영향과 사대부의 취향, 서민들의 애환, 도공들의 장인정신 등이 어우러져 천하 일품으로 탄생된 백자는 만인이 부러워하는 대상이 되고 있다.
한가한 시간이면 언제나 우아(優雅)한 자태로 앉아있는 백자를 바라본다.
미끈하게 느린 목 줄기며, 둥글어 원인 듯 아닌 듯 몸통은 보기에도 순진하고 아름답고 소박하여 그 모습과 자태는 누가 뭐라 해도 가히 명품이 분명하다.
보면 볼수록 은은하게 묻어나는 향기, 얕은 듯 깊은 듯, 보일 듯 말 듯, 아련한 질감은 백색백광(白色白光)으로 보는 이를 압도한다.
거기엔 우리 민족의 미(美)와 혼(魂)과 기(氣)와 정(精)이 함께 담겨져 있다.
그것은 한 순간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오랜 우리 역사의 숨결과 함께 면면히 이어 온 값진 것이다. 이처럼 소중한 백자를 천시해온 자신이 부끄럽다. 요즈음 안방 문갑 가장자리에 놓아두고 우리 선인들의 예술혼을 음미하고 감상하며 하루도 빠짐없이 백자와 무언의 대화를 나눈다.
아마도 나는 백자에 숨겨진 조상들의 숭고한 혼과 정신을 생각하면서 영원히 백자 예찬론자로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