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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가아발다라보경
(楞伽阿跋多羅寶經)
능가아발다라보경 제2권
2. 모든 부처님께서 마음에 대해 말씀하신 품[一切佛語心品]
15. 상성의환(常聲依幻)
[0493b11] 爾時,大慧菩薩摩訶薩復白佛言:「世尊!常聲者,何事說?」
이때 대혜보살마하살이 다시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영원하다는 소리[常聲]는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0493b12] 佛告大慧:「爲惑亂。以彼惑亂,諸聖亦現,而非顚倒。大慧!如春時炎、火輪、垂髮、乾闥婆城、幻、夢、鏡像。世間顚倒,非明智也,然非不現。
부처님께서 대혜에게 말씀하셨다.
“혹란을 말한다. 저 혹란을 모든 성인도 나타내지만 전도되지는 않는다. 대혜야, 봄날 아지랑이나 불을 돌려 생기는 바퀴 모양이나 눈병에 아른거리는 머리카락이나 건달바성이나 환(幻)이나 꿈이나 거울에 비친 모습 같은 것은 세상의 전도된 생각이니, 밝은 지혜가 아니다. 그러나 나타나지 않는 것도 아니다.
大慧!彼惑亂者,有種種現,非惑亂作無常。所以者何?謂離性非性故。大慧!云何離性非性惑亂?謂一切愚夫種種境界故。
대혜야, 저 혹란이 갖가지로 나타나는 것이 있으나 혹란이 무상(無常)을 일으키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성품과 성품 아닌 것을 벗어났기 때문이다.
대혜야, 성품과 성품 아닌 것을 벗어났다는 것은 무엇인가? 혹란은 모든 어리석은 범부의 온갖 경계이기 때문이다.
如彼恒河,餓鬼見不見故,無惑亂性;於餘現故,非無性。如是惑亂,諸聖離顚倒不顚倒。是故惑亂常,謂相相不壞故。大慧!非惑亂種種相妄想相壞,是故惑亂常。
마치 저 항하(恒河)를 아귀(餓鬼)는 보아도 보지 못하는 것과 같다. 따라서 혹란은 성품이 없으나 다른 중생에게는 나타나므로 성품이 없는 것도 아니다. 이렇듯이 혹란은 모든 성인이 전도된 것과 전도되지 않은 것을 벗어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혹란은 영원하다. 이른바 모습 모습이 무너지지 않기 때문이니, 대혜야, 혹란의 온갖 모습과 망상의 모습은 무너지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혹란은 영원하다.
大慧!云何惑亂眞實?若復因緣,諸聖於此惑亂,不起顚倒覺、非不顚倒覺。大慧!除諸聖,於此惑亂有少分想,非聖智事想。
대혜야, 왜 혹란을 진실(眞實)이라고 하는가? 만약 다시 그 인연을 말한다면 모든 성인은 이 혹란에 대해서 전도된 깨달음을 일으키지도 않고, 전도되지 않은 깨달음을 일으키지도 않기 때문이다. 대혜야, 모든 성인을 제외하고는 이 혹란에 대해서 약간이라도 생각을 일으키니, 성지(聖智)의 사상(事想)이 아니다.
[0493b25] 「大慧!凡有者,愚夫妄說,非聖言說。彼惑亂者,倒不倒妄想,起二種種性,謂:聖種性,及愚夫種性。
대혜야, 그‘있다[有]’는 것은 어리석은 사람이 헛되이 말하는 것이니, 성인의 말이 아니다. 저 혹란은 전도되고 전도되지 않은 망상으로 두 가지의 종성(種性)을 일으키니, 성인의 종성과 어리석은 사람의 종성이다.
聖種性者,三種分別。謂:聲聞乘、緣覺乘、佛乘。云何愚夫妄想,起聲聞乘種性?謂:自共相計著,起聲聞乘種性,是名妄想起聲聞乘種性。
성인의 종성에 세 가지의 구별이 있으니, 성문승(聲聞乘)과 연각승(緣覺乘)과 불승(佛乘)을 말한다. 어떻게 어리석은 사람이 망상으로 성문승종성(聲聞乘種性)을 일으키는가? 자상(自相)과 공상(共相)에 계착하여 성문승종성을 일으키는 것이니, 이를 망상(妄想)이 성문승종성을 일으키는 것이라고 한다.
大慧!卽彼惑亂妄想,起緣覺乘種性。謂:卽彼惑亂自共相,不觀計著,起緣覺乘種性。
대혜야, 저 혹란(惑亂)에 즉한 망상(妄想)이 연각승종성(緣覺乘種性)을 일으킨다는 것은, 저 혹란에 즉하여 자상과 공상을 관찰하지 못하고 계착하여 연각승종성을 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云何智者?卽彼惑亂想,起佛乘種性。謂:覺自心現量,外性非性,不妄想相,起佛乘種性,是名卽彼惑亂起佛乘種性。
어떻게 지혜로운 사람이 저 혹란상(惑亂想)에 즉하여 불승종성(佛乘種性)을 일으키는가? 자심(自心)의 현량(現量), 바깥 경계의 성품과 성품이 아닌 것, 망상이 아닌 상(相)을 깨달아 불승종성을 일으키는 것이다. 이를 저 혹란에 즉하여 불승종성을 일으키는 것이라고 한다.
又種種事性,凡夫惑想,起愚夫種性。彼非有事,非無事,是名種性義。
또 온갖 사성(事性)에 대해서 범부는 미혹된 생각으로 어리석은 사람의 종성[愚夫種姓]을 일으킨다. 그것은 현실적으로 있는 것도 아니고 현실적으로 없는 것도 아니니, 이를‘종성의 뜻’이라고 한다.
大慧!卽彼惑亂不妄想,諸聖心、意、意識過習氣自性法轉變性,是名爲如。是故說如離心。我說此句顯示離想,卽說離一切想。」
대혜야, 저 혹란은 망상이 아니다. 모든 성인의 심(心)ㆍ의(意)ㆍ의식(意識)과 허물[過]과 습기와 자성법(自性法)과 전변하는 성품[轉變性]을‘진여(眞如)’라고 한다. 그러므로 진여는 마음을 벗어난다고 말한다. 내가 이 구절[句]을 말한 것은 생각을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드러내 보인 것이니, 곧 모든 생각을 벗어나라는 것이다.”
[0493c10] 大慧白佛言:「世尊!惑亂爲有爲無?」
대혜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혹란은 있는 것입니까, 없는 것입니까?”
[0493c10] 佛告大慧:「如幻,無計著相。若惑亂有計著相者,計著性不可滅,緣起應如外道,說因緣生法。」
부처님께서 대혜에게 말씀하셨다.
“환(幻)과 같아서 계착할 만한 모습이 없다. 만약 혹란에 계착할 만한 모습이 있다고 한다면 계착하는 성품은 멸할 수 없어야 할 것이며, 연기(緣起)는 외도들이 말하는 인연으로 법이 생긴다는 주장과 같아야 할 것이다.”
[0493c13] 大慧白佛言:「世尊!若惑亂如幻者,復當與餘惑作因。」
대혜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만약 혹란이 환과 같다면 다시 다른 미혹에게 인(因)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0493c14] 佛告大慧:「非幻惑因,不起過故。大慧!幻不起過,無有妄想。大慧!幻者從他明處生,非自妄想過習氣處生,是故不起過。大慧!此是愚夫心惑計著,非聖賢也。」
부처님께서 대혜에게 말씀하셨다.
“환(幻)은 미혹의 인(因)이 아니니, 허물을 일으키지 않기 때문이다. 대혜야, 환은 허물을 일으키지 않으니, 망상이 없기 때문이다. 대혜야, 환이란 다른 밝은 곳[明處]을 따라 생기는 것이지, 자기의 망상과 허물과 습기로 생기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허물을 일으키지 않는다. 대혜야, 이것은 어리석은 범부가 마음이 미혹하여 계착하는 것이니, 성현은 그렇지 않다.”
[0493c18] 爾時,世尊欲重宣此義而說偈言:
「聖不見惑亂, 中間亦無實,
中間若眞實, 惑亂卽眞實。
捨離一切惑, 若有相生者,
是亦爲惑亂, 不淨猶如翳。
이때 세존께서 이 뜻을 거듭 밝히고자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성인은 혹란을 보지 않는다 하면
보지 않는 중간 역시 진실이 없을 것이다.
중간이 진실이라면
혹란이 곧 진실이리라.
모든 미혹을 떠나
만약 모습이 생긴다면
이것 역시 혹란이 되리니
깨끗하지 못함이 눈병 난 것 같으리라.
[0493c23] 「復次,大慧!非幻無有相似,見一切法如幻。」
“또 대혜야, 환에 비슷한 면이 없는 것도 아니니, 모든 법을 환과 같이 보라.”
[0493c24] 大慧白佛言:「世尊!爲種種幻相計著,言一切法如幻?爲異相計著?若種種幻相計著,言一切性如幻者,世尊!有性不如幻者。
대혜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온갖 환의 모습에 계착하는 것을 가리켜 모든 법이 환과 같다고 말씀하신 것입니까? 이상(異相)에 계착하는 것을 가리켜 환과 같다고 말씀하신 것입니까? 만약 온갖 환의 모습에 계착하는 것을 가리켜 모든 법의 성품이 환과 같다고 하셨다면, 세존이시여, 환과 같지 않은 성품이 있습니다.
所以者何?謂色種種相非因。世尊!無有因色種種相現如幻。世尊!是故無種種幻相計著相似性如幻。」
왜냐하면 물질의 온갖 모습은 인(因)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물질로 인해서 온갖 모습이 환과 같이 나타나는 일은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므로 온갖 환의 모습에 계착하는 것을 비유하여 성품이 환과 같다고 할 수 없습니다.”
[0493c29] 佛告大慧:「非種種幻相計著相似,一切法如幻。大慧!然不實一切法,速滅如電,是則如幻。
부처님께서 대혜에게 말씀하셨다.
“갖가지 환의 모습에 계착하는 것을 비유하여 모든 법이 환과 같다고 한 것이 아니다. 대혜야, 그러나 진실하지 못한 온갖 법은 빨리 없어지니, 마치 번개와 같고 이런 면에서 환과 같다고 한 것이다.
大慧!譬如電光,刹那頃現,現已卽滅,非愚夫現。如是一切性,自妄想自共相,觀察無性,非現色相計著。」
대혜야, 마치 번갯불이 찰나에 나타나고 나타났다가는 곧 사라지는 것과 같다. 어리석은 범부에게 나타나는 것은 그렇지 않다. 이와 같이 모든 성품이 자기망상(自己妄想)이며 자상(自相)과 공상(共相)이어서 관찰하면 본성(本性)이 없는 것이니, 현전(現前)의 색상(色相)으로 계착할 바가 아니다.”
[0494a04] 爾時,世尊欲重宣此義而說偈言:
「非幻無有譬, 說法性如幻;
不實速如電, 是故說如幻。」
이때 세존께서 이 뜻을 거듭 펴시고자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환(幻)에 비유할 수 없는 것도 아니기에
법성(法性)을 환과 같다 하였으니
부실(不實)하여 번개같이 빠르다
그러므로 환과 같다 말하였다.
[0494a08] 大慧復白佛言:「如世尊所說,一切性無生,及如幻,將無世尊前後所說自相違耶?說無生性如幻。」
대혜가 다시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모든 성품이 생김이 없고 또 환과 같다면, 세존께서 전후에 말씀하신 것이 스스로 서로 어긋나지 않겠습니까? 생김이 없다 하시고 또 모든 성품이 환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0494a10] 佛告大慧:「非我說無生性如幻前後相違過。所以者何?謂生無生,覺自心現量。有非有,外性非性,無生現。
부처님께서 대혜에게 말씀하셨다.
“내가‘생김이 없다’고 하고‘성품이 환과 같다’고 한 말에 전후가 서로 어긋나는 허물이 있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생긴다는 것[生]과 생김이 없다[無生]는 것은 자심의 현량으로 있는 것[有]과 있는 것이 아닌 것[非有]과 바깥 경계의 성품과 성품이 아닌 것을 나타내는 것이니, 이것을 깨달으면 생김이 없다는 것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大慧!非我前後說相違過,然壞外道因生,故我說一切性無生。大慧!外道癡聚,欲令有無有生,非自妄想種種計著緣。大慧!我非有無有生,是故我以無生說而說。
대혜야, 나에게 전후의 말이 서로 어긋나는 과오가 있는 것이 아니다. 외도의 인(因)으로 생긴다는 주장을 무너뜨리기 위해서 내가‘모든 성품은 생김이 없다’고 말한 것이다. 대혜야, 외도의 어리석은 무리들은 있음과 없음이 생긴다고 하며, 자기의 망상이 갖가지로 계착한 반연[緣]이라고 하지 않는다.
대혜야, 아는 있음과 없음이 생기는 것이 아님을 알므로 나는‘생김이 없다’고 말한 것이다.
大慧!說性者,爲攝受生死故,壞無見斷見故,爲我弟子攝受種種業受生處故,以性聲說,攝受生死。
대혜야, 성품을 말한 것은 생사를 받아들이기 때문이며, 무견(無見)과 단견(斷見)을 무너뜨리기 위해서이다. 나의 제자들이 온갖 업(業)에 의해서 태어남을 받기 때문에, 성품이라는 말로써 생사를 받아들이는 것을 말한 것이다.
大慧!說幻性自性相,爲離性自性相故,墮愚夫惡見相悕望,不知自心現量。壞因所作生,緣自性相計著。說幻夢自性相一切法,
대혜야, 성자성(性自性)의 모습이 환이라고 말한 것은 성자성의 모습을 벗어나게 하기 위해서이다. 어리석은 범부가 악견(惡見)에 치우쳐 서로 희망하면서, 자심의 현량인 줄을 알지 못하고 인(因)으로 지어진 생연(生緣)을 무너뜨리며 자성상이라 계착하므로, 모든 법의 자성상이 환과 같고 꿈과 같다고 말한 것이다.
不令愚夫惡見悕望,計著自及他一切法,如實處見,作不正論。大慧!如實處見一切法者,謂起自心現量。」
이는 어리석은 범부가 악견(惡見)으로 자타(自他)의 모든 법을 여실(如實)한 곳에서 본다고 희망하고 계착하여 올바르지 못한 논[不正論]을 짓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대혜야, 여실한 곳에서 모든 법을 본다는 것은 자심의 현량이다.”
[0494a24] 爾時,世尊欲重宣此義而說偈言:
「無生作非性, 有性攝生死,
觀察如幻等, 於相不妄想。
이때 세존께서 이 뜻을 거듭 펴시고자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생김이 없다 하면 성품이 아니라 하고
성품이 있다 하면 생사를 받아들이니
환과 같다 관찰하면
모습에 망상을 내지 않으리라.
[0494a28] 「復次,大慧!當說名句形身相。善觀名句形身菩薩摩訶薩,隨入義句形身,疾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如是覺已,覺一切衆生。
“또 대혜야, 이름[名身]과 구[句身]와 형상[形身]의 모습을 말하겠다. 이름과 구와 형상의 모습을 잘 관찰하면, 보살마하살이 뜻과 구와 형상을 따라 들어가 속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게 되며, 이와 같이 깨닫고 나서 모든 중생을 깨닫게 하리라.
大慧!名身者,謂若依事立名,是名名身。句身者,謂句有義身,自性決定究竟,是名句身。
대혜야, 이름이란 사물에 의지해서 이름을 세우는 것을 말하니, 이를 이름[名身]이라고 한다. 구[句身]란 구에는 자체의 뜻이 있어 구경(究竟)에 확실한 것을 말하니, 이를 구라고 한다.
形身者,謂顯示名句,是名形身(形身卽字也)。又形身者,謂長短高下。又句身者,謂徑跡。如象馬人獸等所行徑跡,得句身名。
형상[形身]이란 이름과 구를 드러내 보이는 것을 말하니, 이를 형상이라고 한다.[형상은 글자다.] 또 형상이란 길고 짧고 높고 낮은 것을 말하며, 또 구란 길에 난 발자국을 말한다. 마치 코끼리ㆍ말ㆍ사람ㆍ짐승 등이 지나간 길에 남은 발자국과 같은 것을 구[句身] 라고 한다.
大慧!名及形者,謂以名說無色四陰,故說名。自相現,故說形。是名名句形身。說名句形身相分齊,應當修學。」
대혜야, 이름[名]과 형상[形]에서 이름은 색(色)이 없는 4음(陰)을 설명하기 때문에 이름이라 하고, 자기 모습을 나타내므로 형상이라고 말한다. 이를 이름[名身]ㆍ구[句身]ㆍ형상[形身]이라 한다. 이름ㆍ구ㆍ형상의 차별된 모습을 설명하였으니, 반드시 배우고 닦아야 한다.”
[0494b09] 爾時,世尊欲重宣此義而說偈言:
「名身與句身, 及形身差別,
凡夫愚計著, 如象溺深泥。
이때 세존께서 이 뜻을 거듭 펴시고자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이름과 구와
형상에 차별 있어
어리석은 범부가 계착하니
코끼리가 깊은 진흙탕에 빠진 것 같다.
[0494b13] 「復次,大慧!未來世智者,當以離一異、俱不俱見相,我所通義,問無智者。彼卽答言:『此非正問。』
“또 대혜야, 미래에 어떤 지혜로운 사람이 같음과 다름[一異], 함께함과 함께하지 않음[俱不俱]과 같은 견해를 벗어나고서 자기가 통달한 뜻으로써 지혜가 없는 사람에게 물으면, 그 사람은 곧‘이것은 바른 질문이 아니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謂色等常無常,爲異不異?如是涅槃、諸行相所相、求那所求那造所造、見所見、塵及微塵、修與修者,
물질 등은 영원한가 무상한가, 다른 것인가 다르지 않은 것인가 하고 묻고, 이와 같이 열반이나 모든 행의 상(相)과 소상(所相), 구나(求那)와 소구나(所求那), 짓는 자와 지어진 것, 보는 자과 보이는 것, 티끌과 작은 티끌, 수행과 수행하는 사람이 같은 것인가 다른 것인가 하고 묻는다.
如是比展轉相。如是等問,而言佛說無記止論。非彼癡人之所能知,謂聞慧不具故。
이와 같이 비교하며 전전하는 모습으로 이와 같이 묻고는‘부처님은 무기(無記)를 말씀하셔서 논쟁을 그치게 하셨다’라고 말해 준다. 이는 저 어리석은 범부들이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니, 이른바 들어서 얻는 지혜[聞慧]를 갖추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如來、應供、等正覺,令彼離恐怖句故,說言無記,不爲記說。又止外道見論故,而不爲說。
여래ㆍ응공ㆍ등정각은 그들을 두렵게 하는 말에서 그들을 벗어나게 하려고 무기를 말하고, 드러내 말하지 않은 것이다. 또 외도의 견해와 이론을 그치게 하려고 말해 주지 않은 것이다.
大慧!外道作如是說,謂:『命卽是身。』如是等無記論。大慧!彼諸外道愚癡,於因作無記論,非我所說。
대혜야, 외도들은 이렇게 말한다.‘명(命)이 곧 이 몸이다.’이와 같은 것들에 대해서 무기를 논한 것이다. 대혜야, 저 모든 외도들이 인(因)에 대해 어리석기에 무기를 논한 것이니,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大慧!我所說者,離攝所攝,妄想不生。云何止彼?大慧!若攝所攝計著者,不知自心現量,故止彼。
대혜야, 내가 말하는 것은 받아들이는 것과 받아들여지는 것을 벗어나면 망상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 그치게 하는가? 대혜야, 만약 받아들이는 것과 받아들여지는 것에 계착하면 자심의 현량임을 모르게 되기 때문에 그것을 그치게 한 것이다.
大慧!如來、應供、等正覺,以四種記論爲衆生說法。大慧!止記論者,我時時說,爲根未熟,不爲熟者。
대혜야, 여래ㆍ응공ㆍ등정각은 네 가지 기론(記論)으로 중생을 위해 설법한다. 대혜야, 그치게 하는 기론은 내가 때때로 근기가 미숙한 사람을 위해 말한 것으로, 성숙한 사람을 위해 말한 것은 아니다.
[0494b29] 「復次,大慧!一切法,離所作因緣不生,無作者故,一切法不生。
또 대혜야, 모든 법은 짓는 인연을 벗어났으므로 생기지 않고, 만드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모든 법은 생기지 않는다.
大慧!何故一切性離自性?以自覺觀時,自共性相不可得故,說一切法不生。
대혜야, 왜 모든 성품은 자성(自性)을 벗어나 있는가? 스스로 깨달아 관찰할 때 자성(自性)과 공성(共性)의 모습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모든 법은 생기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다.
何故一切法不可持來,不可持去?以自共相,欲持來,無所來;欲持去,無所去;是故一切法,離持來去。
왜 모든 법을 가지고 올 수도 없고, 가지고 갈 수도 없는가? 자상과 공상은 가지고 오려 해도 가져올 것이 없고 가지고 가려 해도 가져갈 것이 없다. 따라서 모든 법은 가지고 오가는 것을 벗어나 있다.
大慧!何故一切諸法不滅?謂性自性相無故,一切法不可得,故一切法不滅。
대혜야, 왜 모든 법은 없어지지 않는가? 성자성(性自性)의 모습이 없기 때문에 모든 법을 얻을 수 없고, 이로 인해 모든 법은 없어지지 않는다.
大慧!何故一切法無常?謂相起無常性,是故說一切法無常。
대혜야, 왜 모든 법은 무상한가? 모습[相]은 무상한 성[無常性]에서 일어났으므로 모든 법이 무상하다고 말한다.
大慧!何故一切法常?謂相起無生性,無常常,故說一切法常。」
대혜야, 왜 모든 법은 영원한가? 모습이 생김이 없는 성[無生性]에서 일어나 무상함이 영원한 까닭에, 모든 법은 영원하다고 한다.”
[0494c10] 爾時,世尊欲重宣此義而說偈言:
「記論有四種, 一向及詰問,
分別及止論, 以制諸外道。
有及非有生, 僧佉毘舍師,
一切悉無記, 彼如是顯示。
正覺所分別, 自性不可得,
以離於言說, 故說離自性。」
이때 부처님께서 이 뜻을 거듭 펴시고자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기론에 네 가지 있어
일향(一向)과 힐문(詰問)과
분별(分別)과 지론(止論)이니
이로써 모든 외도를 제압한다.
있는 것에서 생기고, 있지 않은 것에서 생긴다는
승거(僧佉)와 비사사(毘舍師)의 주장에
모두 다 무기로 대응하니
그들에게 이와 같이 드러내 보인다.
정각(正覺)이 분별하는 것
자성(自性)은 얻을 수 없어
말을 벗어났다는 것이니
그래서 자성을 벗어나라고 말한다.
[출처] 능가경-대승성종돈교 41법문-15. 상성의환(常聲依幻)|작성자 byunsd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