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경’ 공부는 행복 열기
우리는 왜 《금강경》을 공부해야 하는가? 《금강경 金剛經》의 원래 이름은 ‘금강반야바라밀경’이다. 그 뜻을 풀이하면 금강석처럼 견고한 깨달음의 지혜로서 완전한 행복에 이르는 가르침이다.
우리는 왜 《금강경》을 공부해야 하는가? 우리가 《금강경》을 공부한다는 것은
첫째로, 인생과 삼라만상의 실상(實相)을 밝히는 일이요,
둘째로는 견실한 지혜를 알아 행복한 삶을 살고자 함에 있다 할 것이다.
그래서 경전 곳곳에는 '마음 다스리는 방법'을 강조하며 설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금강경》은 금강석과 같이 견실한 지혜의 배를 타고 생사 미혹의 세계에서 깨달음의 세계로 도달할 것을 가르치는 경전이다. 요컨대, 부처님은 《금강경》의 가르침을 통해서, 그 밝혀진 실상에 의해서 사람이 가장 행복하게 잘 사는 길을 열어 보이신 것이다.
《금강경》의 본래 이름인 《금강반야바라밀경》에서 금강(金剛)은 금강불괴(金剛不壞)라는 의미로 대단히 단단하여 결코 깨어지지 않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고, 벼락이나 번개를 뜻하여 집착과 분별하는 상(相)을 단번에 잘라 버린다는 의미도 있다.
반야(般若)는 깨달음의 지혜를 뜻한다. 《금강경》을 통해서 우리는 자신 속에 본래 지니고 있는 반야 또는 ‘참나‘를 찾아내는 일이다. 그러므로 수행하여 부처가 되는 것이 아니라, 반야의 지혜를 알아 부처임을 확인하는 일이다.
《금강경》의 대의(大義)는 근본적으로 모든 상(相)에서 벗어나라는 것이다. 반야는 존재하지 않는 허상(虛像)과 ‘나’가 있다고 생각하는 아상(我相)에서 벗어나라는 것이다. 이것을 바로 알아 완성된 그대로가 반야바라밀이고, 지혜의 완성인 것이다.
견실한 지혜를 얻기 위해서는 먼저 보리심(菩提心)을 발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실상(實相)을 보아야 하고, 집착하는 마음을 없애고 대가를 바라지 않는 실천의 하나로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를 행해야 한다고 한다.
《금강경》은 ‘마땅히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내라’는 뜻으로 ‘응무소주 이생기심’이라는 유명한 구절로 잘 표현하고 있다. 경의 전체를 이해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경 속의 사구게(四句偈)만이라도 남을 위해 설해주는 복덕은 삼천대천세계에 있는 수미산만큼 칠보 무더기로 보시한다 하더라도 훨씬 더 수승하다고 설하고 있다.
[출처] ‘금강경’ 공부는 행복 열기|작성자 일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