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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나라 #황제 의 #별궁 원명원이 폐허가 된 모습(위)입니다.
최근 중국 정부가 기증받은 말머리 동상이 있던 원명원 #서양루 #해안당 의 분수 그림(아래)을 보면 . ' #정원중의정원 ' 이라 불렸던 원명원의 화려함을 상상할 수 있어요.
게티이미지코리아·위키피디아
특히 원명원의 장춘원 안에는 서양 양식의 건물과 정원을 꾸며놓은 '서양루'가 있었습니다. 서양루 해안당에는 자시(子時)에는 쥐머리 동상이 물을 뿜고, 오시(午時)에는 말머리 동상이 물을 뿜는 분수가 있었죠. 이번에 돌아온 말머리 동상은 바로 이 분수에 있던 겁니다. 서양루의 유럽식 건축과 조경은 유럽에서 온 선교사와 화가 등이 담당해 설계했죠.
이 호화스러운 궁전과 정원이 결합된 별궁에서 황제들은 나라를 다스리고, 쉬고, 외국 사절단을 맞이했어요. 원명원의 별명은 #만원지원 (萬園之園), 즉 '정원 중의 정원'이라는 뜻이었죠. 18세기 말 원명원에 방문한 영국 사절 조지 매카트니는 "지상 최고의 경관에 완전히 매료돼 그 감동을 뭐라 표현할 수조차 없었다"고 했다고 합니다.
◇제2차 아편전쟁 중에 약탈
그렇지만 청나라가 서구 열강 앞에 무릎 꿇으면서 원명원은 졸지에 폐허로 변합니다. #1차아편전쟁 (1840~1842) 에서 패한 청나라는 종이호랑이 신세가 됐어요. 영국과 프랑스 등은 청나라에 더 많은 이권을 요구하며 #2차아편전쟁 (1856~1860)을 일으키죠.
1860년 영국과 프랑스는 베이징까지 병력을 진출시키고 조약 체결을 요구합니다. 조약 체결을 위해 영국 대표가 협상에 나섰고 영국인 기자도 취재하러 따라갔어요. 그런데 청나라 보수파가 이들을 억류하고 고문하는 사태가 벌어집니다.
영국과 프랑스군은 이 소식을 듣고 보복에 나섭니다. 바로 당시 #청나라황제 #함풍제 가 아끼던 원명원을 파괴하고 약탈하는 것이었죠. 영국과 프랑스군이 사흘에 걸쳐 원명원을 불태웠다고 합니다. 서양루 해안당에 있던 분수의 #십이지상 도 이때 모두 사라졌고요. 원명원은 1900년 중국에서 의화단 운동이 일어나 #열강8개국연합군 이 #의화단 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다시 한 번 약탈당하고 훼손됩니다. 중국은 150만점에 달하는 유물이 약탈당했다고 보고 있어요.
원명원을 찾으면 지금도 산산조각 난 건축물을 볼 수 있어요. 부서진 채로 보존되는 한때 '정원 중의 정원'은 중국인들에게 서구 열강에 침탈당하며 겪었던 수모를 상기시켜주는 #역사박물관 역할을 하고 있지요.
[英·佛 강도라 비판한 빅토르 위고… 중국이 원명원에 흉상 세워 칭송]
서구 열강에 의해 약탈당한 원명원에 2010년 ~
#프랑스 #대문호 #빅토르-위고 의 흉상이 세워졌습니다. 어떤 사연일까요?
위고는 원명원 파괴 소식을 듣고 친구에게 편지를 보내 '두 강도가 박물관을 부수고 물건을 약탈하고 그곳에 불을 지른 뒤 가방에 한가득 보물을 담아 손을 잡고 낄낄대며 나왔다. 한 강도의 이름은 영국이고, 다른 강도는 프랑스'라고 비판했습니다. 다른 편지에서는 '언젠가 프랑스가 약탈한 것을 돌려주길 바란다'고 적기도 했어요. 중국 정부는 빅토르 위고를 ' #서양의양심 ' 이라고 생각해 흉상을 세웠답니다.
출처: 프리미엄조선|[서민영]경기 함현고 역사 교사.
기획·구성=양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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