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경칩치성 태을도인 도훈
"섬세함이 사랑입니다"
2017년 3월 5일 (음력 2월 8일)
대동강물이 풀린다는 우수를 지나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경칩이 되니, 확실히 날이 풀렸다는 것을 몸으로 느낍니다. 울산으로 버스를 타고 내려오면서 보니, 도로 옆의 마른 풀밭에 파릇한 싹들이 제법 보이더라고요. 쌀쌀한 바람 속에 봄이 어느새 우리 옆에 성큼 다가왔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에도 천지의 봄기운이 스며들어 선천의 독기와 살기가 모두 풀어 없어지기를 바라며, 오늘은 '사랑의 섬세함'에 대해 얘기해 보려고 합니다.
우리는 가족들을 비롯한 주변사람들과 사랑으로 관계 맺기를 당연히 원합니다. 다만 그 사랑이 자기 위주로 베풀어진다고 하는 게 종종 문제가 됩니다. 외며느리인 저는 아버님을 모시고 있는데요, 아버님을 저희들이 본격적으로 모시기 시작할 무렵에 막내시누가 '사랑은 섬세함'이라고 얘기하더라고요. 그때는 그 얘기를 들으면서 '일 리가 있다' 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나름 이해했다고 생각했는데, 후에 아버님을 모시면서 시간이 흐르고 보니 그게 제대로 이해한 게 아니고 머리로만 이해한 거였습니다.
아버님을 신경써서 봉양을 해야겠다 생각한 게 2010년도부터였습니다. 처음에는 둘째 시누와 각기 한 달에 한 번씩 번갈아 홀로 계시며 농사짓는 아버님이 계신 시골집에 들르기 시작했는데, 번갈아 들르니 2주 간격으로 자식들이 국거리와 밑반찬과 간식을 장만해놓고 올라오는 거였지요. 처음에는 당일치기로 하다가 우리가 올라올 때마다 “지금 가는 거냐.” 하시는 아버님의 아쉬움이 마음에 걸려 1박2일이 되고, 시누와 일정 조정을 하면서 시간여유가 있을 때에는 2박3일도 하면서 그 과정에서 아버님께 초기치매증세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판정을 받아서 약을 한 달치씩 타왔는데, 자식들이 아버님 왕년의 총기만 생각해서 치매약 복용을 아버님께 맡겼더랬습니다. 상대적으로 젊고 멀쩡한 우리들도 감기약 같은 걸 먹으려면 '내가 아침약을 먹었나 안 먹었나' 하면서 약 챙기기가 쉽지 않은데, 치매판정을 받은 아버님께 “약 챙겨드세요. ①번 ②번 번호 매겨놓았으니 번호순서대로 드시면 돼요.” 말씀드렸다고 해서 그대로 아버님이 꼬박꼬박 챙겨 드시리라 생각했던 우리가 지금 생각해보면 참 어리석었습니다. 이 얘기를 듣는 분들 중에는 '쯔쯔...' 하면서 한심해하는 분들도 있으실 것 같습니다. 얘기하는 우리도, 아버님께 점점 많은 시간을 할애하면서 항상 그 이전 단계가 참으로 부족했다는 걸 매번 느꼈으니까요.
재작년 6월부터 자식들이 서로 형편껏 돌아가며 당번을 정해, 아버님을 24시간 봉양하기 시작했습니다. 작년 겨울엔 7개월 정도 서울 저희집에 모셨고요, 올해 6개월 예정으로 역시 서울에 계시는데, 원래 소식(小食)하는 아버님께서 올해엔 점점 입맛도 없어하시고 단 것만 찾으시더라고요. 그런데 아버님이 자리에서 일어나시거나 밖에 산책 나가자 권하면 자꾸 어지럽다고 하셔서 한의원에서 모시고 가 약을 지었는데, 한의사 얘기가 단 음식을 너무 많이 드시게 되면 당뇨가 올 수 있으니 자제하라는 거예요. 그 이후로 단 음식을 신경써서 통제하고 있었는데, 며칠 전에 제사지내고 저녁식사 후 제사상의 딸기를 두 개 담아(단 것은 모조리 갯수까지 세면서 드리고 있었지요) 아버님 드시게 하고 상을 치우는데, 큰 딸이 아버님이 식탁의자에 계속 앉아계신 걸 보고 “식탁 위에 딸기접시 둘 테니 할아버지 드시고 싶을 때 드세요.” 하는 걸 제가 단호하게 “안돼.” 했는데, 그러는 나도 딸내미한테 미안하고 속상했고, 그게 영 마음에 걸려 두고두고 떠나지를 않는 거예요.
며칠을 그러다가 문득 드는 생각이, 그래 지금 아버님 연세가 여든여섯이고 점점 더 기력이 떨어져서 이제 일어나기도 쉽지가 않으신데, 앞으로 몇 년을 더 사신다고 지금 그나마도 잘 드시는 단 음식을 당뇨가 생길까봐 자제를 시키나. 또 단 음식을 얼마나 많이 먹어야 당뇨가 생길 거며, 설혹 당뇨가 생긴다 한들 그 당뇨를 관리할 시간이 뭐 얼마나 될까. 그냥 드시고 싶어하는 것 드리면서, 아버님도 즐겁게 드시고 나도 즐겁게 봉양하면 되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 너무 많이 드시지만 않게 하자.'
울산행 버스를 타고 오면서 버스 안의 TV에서 TV동물농장이라는 프로그램을 방영하는 걸 보았는데, 방치되어 굶어죽는 식용개의 이야기였어요. 그런데 동물보호단체가 구해내서 임시로 돌보면서 적응과정을 밟는데, 가둬서 키우며 굶어죽은 개들 속에서 살아난 애들이라, 사회화과정이 전혀 없다 보니, 낯선 곳에 대한 두려움으로 구석에 숨고, 사람들에게 다가오지도 않는 시간이 계속 되었어요. 그런데 전문가가 개들에게 적응과정을 거치게 하는데, 사람이 원하는 대로 끌어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다가오게끔 유도를 하더라고요. 그래서 ‘아, 동물들을 대할 때에도 동물들 스스로 마음을 내서 움직이게 하는 게 프로구나.’ 결국 사랑이라는 것도 상대의 입장에서 세심하게 할 때 그것이 진정성있는 사랑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 라는 유명한 동화가 있습니다. 다들 많이 아실 겁니다. 거기 보면 어린 소년이 자라면서 그 사과나무에서 그네도 타고, 자라면서 연인과 함께 와 나무에 이름도 새기고 사과도 따먹고 그러다가 나중에는 나무를 베어 배를 만들어서 세계를 돌아다니다가 나중에 다 늙은 노인이 되어 돌아와서는 밑둥만 남은 사과나무의 그루터기에 걸터앉아 쉽니다. 이 나무는 소년에게 평생을 자신이 가진 걸 다 내어줍니다. 자기가 뭘 주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소년이 원할 때 원하는 것을 주려고 애를 쓰지요.
아버님을 모시면서 제게 사랑이 정말 아직 많이 부족하다는 걸 느낍니다. 가끔 속상하기도 하고요, 힘들기도 하고요, 제 마음의 결심이 한결같지 않은 그 마음의 움직임도 살펴보게 됩니다. 처음에는 그토록 총기 있으신 아버님이 왜 이렇게 되셨나. 잘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받아들이기가 어려워서 힘든 면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생각이 생각을 낳아, 이런 생각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사랑이 부족한 며느리에게 사랑을 가르치기 위해서 아버님이 몸소 험한 길을 걸으시는 게 아닐까(이건 오로지 저를 위한 저만의 생각이고요). 평생을 자식들을 위해서 아낌없이 다 바치셨으니까, 늘그막에 봉양을 받으실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되어서 자식들의 효도를 받고 생을 마무리하심으로써 아버님이 돌아가신 뒤, 자식들이 제대로 봉양을 못했다고 하는 한스러움 미안함이 남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어쩌면 아버님이 몸소 이런 희생의 길을 자청하신 것이 아닐까.
지금 3월 한 달 기간으로 학교에 나가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 아이들인데요, 소위 문제아가 눈에 띄더라고요. 이미 그 학년에서 유명한 아이인데요. 그런데 전에도 제가 도훈에서 한 번 얘기한 적이 있지만, 누구나 다 사랑받기를 원합니다. 우리 어른들도 사랑을 원하지요. 누구나 다, 정말 진정성있는, 자기가 원하는 사랑을 받기를 원합니다. 특히 아이들은 사랑을 먹고 자라는 존재입니다. 소위 문제아 라는 말은, 그 아이가 특별히 섬세하고 예민해서, 그 아이가 받고 싶은 사랑의 형태가 아주 특별하다는 의미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에게 주어진 화두는, 그래서 지금 아버님께 아버님을 배려한 섬세한 사랑을 드리는 것. 그리고 학교에서 아이 하나하나가 원하는, 특히 그 특별한 친구가 원하는 특별한 형태의 사랑을 제가 주도록 노력하는 것. 이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에게 주어진 시험일 수도 있지만, 사실은 제게 주어진, 정말 제가 진정성있는 사랑을 하도록, 상대방에게 맞춤형 사랑을 하도록, 제게 주신 기회라고 생각을 합니다. 처음에는 이해하기 어려웠으나 이제는 제가 참 좋아하는, 사랑에 관한 상제님 말씀이 있습니다. 그 말씀처럼 앞으로 계속해서 애를 써서 노력하고 싶습니다. 상제님의 그 말씀을 되새기면서 도훈을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 사랑이란 고된 것이니, 가족을 사랑함에도 그 많은 괴로움을 참아야 되고, 천하를 사랑함에 있어서도 그 많은 괴로움을 참은 연후에 선명히 신기로운 진리가 드러나느니라. (정영규의 천지개벽경 p2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