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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初代): 어떤 직위나 계통, 조직의 '첫 번째 사람' 혹은 그 인물이 통치하고 이끌던 '첫 번째 대(代)의 시대'를 가리키는 순번적 명사입니다. 그러므로 순번에 따라 초대 대통령, 초대 회장, 초대 이사장 등의 직무적 결량으로 쓰이는 단어가 바로 초대입니다.
초기 (初期): 맨 처음으로 비롯되어 일어나는 '시간적 시기' 혹은 일정한 역사의 '첫 번째 기간(동안)'을 뜻하는 시기적 명사입니다. 그러므로 시간의 흐름에 따라 대통령 임기 초기, 선지자의 초기 사역, 어느 화백의 초기 작품 등으로 사용되는 단어가 초기입니다.
이 두 단어는 뒤이어 결합하여 나오는 대조적 단어들의 연결 구조를 보면 그 성격이 훨씬 더 확실하게 갈라집니다.
'초대(1대)'라는 단어의 다음 구조에는 반드시 2대, 3대, 4대, 5대라는 순번적 대수(代數)의 세대 구분이 뒤이어 따라옵니다. 반면에 '초기'라는 시간적 단어의 다음 구조에는 반드시 중기(中期)와 말기(末期)라는 시간 축의 기간 구분이 연결되어 나옵니다. 이것은 언어의 철칙이자 지극히 상식적이고 명확한 규칙입니다.
| 구분 단어 | 결합 구조 및 대조 형태 | 실제 일상 용례 |
그러므로 이 두 단어는 절대로 혼용하거나 마음대로 뒤바꿔 사용할 수 없습니다. 만약 '초대'라고 써야 할 자리에 '초기'를 넣어서 "대한민국의 초기 대통령은 이승만 박사이다"라고 표현하면 문장 구조가 대단히 이상하고 부자연스러워집니다. 초기 대통령이라고 하면 중기 대통령과 말기 대통령이 뒤이어 나와야 하는데, 우리 역사에 중기 대통령이나 말기 대통령이라는 직위 직칭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때는 반드시 2대, 3대 순번으로 이어지는 '초대 대통령'이라고 써야 옳습니다.
그렇다면 반대로, 기독교 역사 축에서 신약 오순절 성령 강림 직후 예루살렘에서 최초로 발흥하여 중세 시대 이전까지 흘러가던 '예수 사후 최초기 단계의 교회 시대'를 가리킬 때는 어떠한 단어를 배치해야 맞겠습니까? 시간 축의 구분이므로 당연히 '초기 교회'라고 불러야 언어학적으로 완벽하게 들어맞는 잘 박힌 못이 됩니다. 그래야 역사 분류의 흐름에 따라 초기 교회, 중세(중기) 교회, 종교개혁기 교회, 현대(말기) 교회로 자연스럽게 문맥이 통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를 '초대 교회'라고 지칭해 버리면, 역사적 순번에 따라 '2대 교회', '3대 교회', '4대 교회'가 뒤이어 출현해야 한다는 논리적 모순이 발생합니다. 역사에 2대 교회나 3대 교회라는 조직적 실체는 없습니다. 따라서 기독교 역사의 첫 출발기 시대를 초대 교회라고 일컫는 습관은 단어의 본질적 의미와 결합 구조를 오독한 명백하게 잘못되고 부정확한 어색한 용어 사용입니다.
3. '초대 교회' 오류의 유래와 기독교 서적의 정정 물결
이처럼 구조적 모순을 지닌 '초대 교회'라는 오역 단어가 도대체 어떻게 우리 교계와 언어 사회 속에 이토록 깊이 뿌리박히게 되었을까요?
제가 국어 서재에서 자주 참고하는 한림분 동화출판사의 <동화 새국어사전> 표제어를 찾아보면 참 흥미로운 현상이 발견됩니다. 사전 안에 '초기 교회'라는 단어는 공식 표제어로 등재되어 있지 않은 반면, '초대 교회'라는 단어는 아예 하나의 명사 단어로 버젓이 등록되어 다음과 같이 학술적인 사전 해설을 달아놓았습니다.
「초대교회(初代敎會)」: "예수의 사후 약 100년간에 걸쳐 주로 소아시아와 지중해 연안 지방에 세워진 최초기 시대의 교회들을 통틀어 일컫는 말."
사전 편찬자들이 교계 밖의 일반 사회학적 사전 표제로 수록해 놓을 만큼, 우리 사회와 교계가 '초대 교회'라는 잘못된 조어를 아무런 신학적 여과 없이 무비판적으로 오랫동안 광범위하게 사용해 왔음을 입증하는 대목입니다.
그 유래를 추적해 보면, 서양의 신학자들과 교회 역사가들이 기독교의 첫 시대를 기술할 때 영어로 'Early Church(얼리 처치)' 혹은 'The Primitive Church', 그리고 독일어로 'Frühkirche(프뤼키르헤)'라고 명확하게 기록했습니다. 'Early'나 'Früh'는 100% 시간 축의 처음을 뜻하는 '초기(Early/Early stage)'라는 단어입니다. 그러므로 이 서양의 교회사 서적을 처음 우리말로 번역하여 도입하던 초창기 번역가들이 언어적 검토를 신중하게 수행하여 번역을 '초기 교회'라고 정확하게 옮겼어야 마당했습니다.
그러나 웬일인지 초창기 번역 기틀을 잡던 이들이 이를 '초대 교회'라는 부정확하고 엉뚱한 순번적 단어로 오역하여 출간해 버렸고, 그것이 강단과 세미나를 통해 한 세기 이상 수십 년 동안 굳어져 사용되다 보니 나중에는 국어사전의 정식 표제로 등록될 만큼 거대하게 일반화되어 버린 것입니다.
어떤 학술 용어나 종교적 어휘를 처음 외국에서 도입하여 번역하는 선구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대단히 높은 책임감을 지니고 신중하게 단어를 선택해야 합니다. 한 번 첫 단추를 잘못 끼워 사회적으로 완전히 굳어져 버린 어휘는, 나중에 그 오류를 지적하고 올바르게 고치기가 여간 어렵고 힘든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더라도 학문적으로나 신학적으로 명백히 틀린 단어라면, 세월이 아무리 흘렀을지라도 끝까지 추적하여 올바르게 정정해 내는 것이 책임을 지닌 신학자와 그리스도인들의 마땅한 자세라고 믿습니다. '초대 교회'라는 용어는 언어 구조상 확실히 오류이므로, 지금이라도 '초기 교회'라는 적합하고 정화한 명칭으로 반드시 정정되어야 합니다. 한 세기 이상 사용된 굳은 버릇이라 고치려면 또 수많은 세월과 끈질긴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바르지 못한 용어는 끊임없이 지적되고 수정되어야 마땅합니다.
참으로 다행스럽고 환영할 만한 일은, 최근 국내 신학계와 교계에서 출판되는 권위 있는 최신 교회사 서적들과 번역서들 속에서는 종전의 무비판적인 오역 표현이었던 '초대 교회'라는 말 대신, 역사적 진실에 부합하는 '초기 기독교' 혹은 '초기 교회사'라는 정확한 올바른 용어를 쓰기 시작했다는 사실입니다. 역사를 서술하는 최신 교회 역사가들 역시 초대 교회라는 표현의 언어적 부조화를 뼈저리게 인식하고 초기 교회로 용어를 올바르게 바로잡아 가고 있는 유익한 물결이 일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 교단 역사 속에서도 단어 정정을 이루어낸 아주 대표적이고 위대한 성공 사례가 하나 있습니다. 미국 플로리다 출신의 세계적인 기독교 저술가이자 하나님의 신실한 여선지자인 엘렌 G. 화잇(Ellen G. White) 여사가 기록한 초기 계시집 서적이 있습니다. 영문 원서 제목은 <Early Writings(얼리 라이팅스)>입니다. 원서 제목의 'Early'는 명백히 그녀의 사역 초기, 즉 '초창기에 기록한 신령한 글 모음'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 책이 국내에 처음 번역되어 들어와 수십 년 동안 성도들에게 읽힐 때, 교회의 관습적인 오역 버릇에 휩쓸려 제목이 <초대문집(初代文集)>이라는 엉뚱한 이름으로 출판되어 유통되어 왔습니다. 'Early Church'를 초대 교회로 잘못 옮겼던 그릇된 번역 패턴을 책 제목에까지 기계적으로 대입해 버린 심각한 오류였습니다. 초대문집이라고 부르면 역사 구조상 '2대 문집', '3대 문집', '4대 문집'이 정기적으로 뒤이어 출판되어 나와야 하는데, 화잇 여사의 저작 중에 2대 문집이나 3대 문집이라는 책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저자가 사역 초창기에 기록한 핵심 계시 글들을 한 권으로 집대성해 묶어놓은 책이므로, 어학적으로나 신학적으로나 '초기 문집'이라고 부르는 것이 100% 정확한 표현입니다.
이에 대해 뜻있는 교단 신학자들과 성도들이 끈질기게 언어적 모순을 지적하고 번역의 교정을 강력히 요청해 왔습니다. 그 결과 마침내 오류를 바로잡아 책 제목을 원어의 본래 의미 그대로 완벽하게 복원한 <초기문집>이라는 정화한 명칭으로 전면 개정 출판하게 되었습니다. 오늘날에는 거의 모든 성도와 신학생이 이를 초기문집이라고 바르게 부르며 읽고 있습니다. 참으로 가슴 뿌듯하고 잘 박힌 못과 같은 훌륭한 정정 역사입니다. 여러 성도가 학문적 양심을 가지고 함께 지혜를 모으고 노력하면, 이처럼 오랫동안 굳어있던 거대한 언어의 오류도 아름답게 바로잡아 갈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증거입니다.
4. 언어 감각의 중요성과 잘 박힌 못의 영적 영성
만약 어떤 이가 다가와 "에이, 초대 교회라고 부르든 초기 교회라고 부르든 그 두 단어의 글자 차이가 뭐가 그리 대수냐? 대충 뜻만 통하면 됐지, 피곤하게 그런 사소한 단어 차이까지 다 꼼꼼하게 따지고 교정하려 드느냐?"며 가볍게 치부해 버릴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초대'라고 명시해야 할 정확한 자리에는 반드시 초대를 써야 하고, '초기'라고 적합하게 구사해야 할 자리에는 반드시 초기를 고집해 써야 문장의 품격과 진리의 가치가 단단하게 살아납니다. 우리의 언어 청각은 대단히 예민하여, 부적합한 단어가 배치되면 단번에 어색함과 간지러움을 느끼기 마련입니다.
인생의 초창기나 예술가의 초창기 예술 활동을 가리켜서 "그분의 인생 초대 단계", 혹은 "그 화백의 초대 작품"이라고 표현한다면, 그 말을 듣는 지성인들의 반응이 어떻겠습니까? 말하는 사람의 기초적인 국어 언어 감각을 심각하게 의심하거나 대단히 해괴하고 이상하다는 눈초리를 보내는 것이 지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문화적 반응입니다. 이처럼 부적합한 단어는 사람의 마음에 안착하지 못하고 허공에 겉돌며 비웃음을 살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앞서 묵상했던 전도서 12장 11절의 "스승들의 말씀들은 잘 박힌 못 같으니"라는 지혜의 영성을 언어 선택에 철저하게 투영해야 합니다. 잘 박힌 못이란, 하얀 벽면에 티 없이 정조준되어 삐뚤어지지 않고 반듯하고 단단하게 제자리에 꽂혀 들어간 못을 뜻합니다. 만약 못을 엉뚱한 자리에 비스듬하게 대충 박아놓거나 좌우로 흔들흔들하게 걸쳐놓으면, 외형적으로도 보기 흉할 뿐만 아니라 그 못 위에는 무거운 구원의 옷이나 고귀한 가치를 절대로 걸어둘 수가 없습니다. 조금만 무게가 실려도 못이 기둥째 쑥 뽑혀 흘러내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단단한 기둥 벽 제자리에 반듯하게 일직선으로 딱 박혀 들어간 못은 그 자체로 신뢰감을 주며 대단히 견고합니다. 그 잘 박힌 못 위에는 수백 kg짜리 우람하고 화려한 마스터피스 그림이나, 심지어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초상화 액자까지도 영원토록 안전하고 튼튼하게 걸어둘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연구하고 강단에서 구원의 진리인 설교 말씀을 선포할 때 사용하는 신학적 언어와 어휘들 역시 이와 같은 '잘 박힌 못'과 같아야 마땅합니다. 교회의 강사나 목회자가 전달하는 단어들이 어학적으로 적확하고 신학적으로 투명하며 논리적으로 오차 없이 정교할 때, 그 설교 말씀은 피상적인 공허한 메아리가 되지 않고 청중 성도들의 가슴속 심금에 잘 박힌 못처럼 깊숙이 꽂혀 들어가 반듯하게 살아 숨 쉬게 됩니다. 그리고 그 견고한 말씀 위에 성도들의 영원한 구원의 확신과 흔들리지 않는 신앙의 집을 튼튼하게 지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정확한 언어를 선택해 구사하는 일은 이토록 영적으로 엄위하고 중요한 사명입니다.
5. 밀드레드 힐의 시 <하나님의 못> 묵상
여기서 제가 평소 참 사랑하고 애송하는 영광스러운 시 한 편을 성도 여러분께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시의 제목은 <하나님의 못 (God's Nail)>입니다.
이 시를 지은 시인은 놀랍게도 전 세계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인류가 생일 때마다 가장 즐겨 부르는 전 지구적인 축하 명곡인 '생일 축하합니다 (Happy Birthday to You)'의 멜로디 곡조를 친히 작곡했던 미국의 위대한 천재 여성 음악가이자 시인인 밀드레드 힐 (Mildred J. Hill / 1859~1916) 여사입니다. 그녀가 음악적 영성과 깊은 신앙을 담아 쓴 아름다운 찬가가 바로 이 시입니다.
시 속에서 시인은 화려하고 거창한 주인공이 되기를 구하지 않습니다. 자신은 그저 하나님의 하얀 성전 벽면 제자리에 묵묵히 단단하게 박혀 있는 보잘것없는 '사소하고 작은 못 하나'가 되기를 간절히 열망합니다. 그리고 그 사소한 자신이라는 못 위에, 창조주 하나님의 빛나는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스러운 초상화 그림을 단단히 걸어둠으로써, 이 거친 광야 세상을 피곤하게 걸어 지나가는 수많은 인생 나그네들이 가던 걸음을 멈추고 내 존재를 보는 게 아니라 내 위에 걸린 예수님의 그 눈부시고 자비로운 얼굴을 정면으로 쳐다보고 치유와 구원을 얻게 해달라고 눈물로 기도합니다.
우리가 설교를 하거나 성경 강의를 수행할 때 우리의 어휘와 지식이 제자리에 단단히 박힌 못처럼 정확하고 올바를 때, 우리의 사역은 내 자아의 잘남을 드러내는 교만이 되지 않고, 오직 우리 위에 걸리신 주님의 십자가 사랑과 그분의 영광스러운 모습만을 청중의 마음에 한 점 오차 없이 완벽하게 비추어 드러내는 거룩한 못의 직무를 수행하게 될 것입니다.
그녀가 받아 적은 영문 원시의 필치와 호흡을 그대로 한 구절씩 음미해 보십시오.
God's Nail
by Mildred J. Hill
Lord, make me a nail upon the wall,
주님, 나로 하여금 벽 위에 박힌 하나의 못이 되게 하소서,
Fastened 주님, 제자리에 단단히 고정되어 박힌 못이 되게 하소서.
And then, from this thing so common and so small,
그리하여 이토록 평범하고 이토록 보잘것없이 작은 존재 위에,
Hang Your brilliant and beautiful face.
당신의 눈부시게 빛나고 아름다운 얼굴 그림을 걸어주소서.
So that travelers passing by may check their pace,
그리하여 이 길을 지나가는 수많은 인생 나그네들이 가던 걸음을 멈추고,
To look upon the loveliness depicted there,
그 위에 묘사된 주님의 사랑스러운 모습을 쳐다보게 하소서,
And go on their weary journey,
그리고 그 빛나는 주님의 얼굴을 가슴에 품은 채 피곤한 여정을 다시 걸어가는 동안,
Bearing 그들의 광채 어린 얼굴마다 주님의 형상을 온전히 지니고 가게 하소서.
So that an indelible impression may be made,
그리하여 영혼 속에 뚜렷이 새겨져 결코 지워지지 않는 거룩한 감동이 낙인찍히게 하소서,
And no one will ever think of the nail,
그리고 주님의 아름다움에 매료된 그들 중 그 누구도, 정작 그 그림을 붙들고 있는 하찮은 '못'인 나 자신에 대해서는 단 한 순간도 생각지 않게 하소서.
Only let me be a nail upon the wall,
오직 나로 하여금 그 자리 묵묵히 지키며 당신의 영광을 붙들고 서 있는 벽 위의 한 못이 되게 하소서,
Holding up Your image for all to see.
지나가는 모든 이가 볼 수 있도록 당신의 아름다운 형상만을 온전히 떠받치고 있는 못이 되게 하소서.
This is my only and final prayer.
이것이 주님을 향한 나의 유일하고도 최종적인 소원입니다.
참으로 영혼을 관통하는 장엄하고도 겸손한 영성의 찬가입니다. 밀드레드 힐 여사가 이 시를 통해 간구했던 단단히 박힌 못의 비유를, 오늘 우리는 우리가 구사해야 할 '성경적 언어와 신학적 어휘'의 정교함에 그대로 대입하여 적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수십 년 동안 성경을 연구하고 글을 쓰면서, 우리의 말과 글이 이처럼 제자리에 반듯하게 박힌 못과 같이 소름 끼치도록 정확하고 투명해야 진리의 교훈이 흐려지지 않는다는 생각을 평생 철칙으로 삼아왔습니다. 그러한 치열한 어학적, 신학적 사색의 편편들을 한데 묶어 출간해 낸 책이 바로 저의 저서인 <우리말의 묘미와 기독교적 표현> 서적입니다. 많은 국어학자와 신학생, 그리고 목회자분들이 이 책을 읽고 단어 선택의 엄위함에 깊은 공감과 관심을 표해 주셨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5. 신학 강의 최종 종합 요약
오늘 여든다섯 번째 시간으로 고찰한 '초대 교회와 초기 교회'에 대한 신학 강의 전체 내용을 최종 요약정리하겠습니다.
첫째, 요컨대 우리가 강단과 일상 신앙생활 속에서 사용하는 모든 언어와 신학적 단어들은, 잠언 25장 11절의 교훈처럼 상황과 맥락에 100% 부합하여 '경우에 합당한 말'이어야 하며, 어학적으로 적합하고 정확해야 진리의 가치가 훼손되지 않습니다.
둘째, 전도서 12장 11절에 명시된 대로 상황에 완벽히 들어맞는 정교하고 적합한 말씀은 '잘 박힌 못'과 같아서, 우리가 양보할 수 없는 구원의 핵심 의미와 대속의 복음 내용을 청중 성도들의 영혼 깊은 곳에 흔들림 없이 단단하고 감격스럽게 새겨주는 영적인 힘을 발휘합니다.
셋째, 과거 초창기 기독교 서적 번역가들의 부주의나 어학적 여과의 부재로 인해 우리 교계와 언어 사회 속에 '잘못 번역되거나 부정확하게 재정되어 정착된 유해한 용어들'이 있다면, 비록 한 세기 이상 사용되어 사전에 등재되었을지라도 지성적인 신학적 양심을 가지고 지금이라도 과감하게 수정하고 고쳐나가는 치열한 노력이 매우 필요하고 시급합니다.
넷째, 구체적으로 영어의 'Early Church(얼리 처치)'나 독일어의 'Frühkirche(프뤼키르헤)'는 100% 시간 축의 처음 단계를 뜻하는 기간 명사이므로, 순번을 가리키는 부정확한 표현인 '초대 교회'라는 오역 명칭은 단호히 배격되어야 하며, 교회사적 진실과 어원의 성격에 완벽히 부합하는 정화한 명칭인 '초기 교회'로 전면 정정되어 사용되어야 마땅합니다. (이미 뜻있는 교회사학자들과 최신 기독교 신학 서적들은 초대 교회라는 모순된 표현을 버리고 '초기 기독교' 혹은 '초기 교회'로 용어를 바르게 고쳐 쓰기 시작했습니다)
이 '초대 교회'와 '초기 교회'의 단어 논쟁은 사소한 말장난이 아니라, 진리의 언어를 잘 박힌 못처럼 정교하게 다듬어 구사하려는 그리스도인들의 거룩한 영성 훈련의 한 단면입니다. "에이, 대충 쓰면 되지 뭘 그리 꼼꼼하게 따지느냐"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넓은 마음으로 양해해 주시고, 진리의 언어만큼은 일점일획도 타협 없이 바르고 정확하게 정돈해야 영적인 직성이 풀리는 수많은 신실한 성도들의 학문적 열망을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모두가 이 잘 박힌 못 같은 정확한 초기 교회의 명칭을 기억해 주시기를 소망하며 오늘 강의를 여기서 마감하겠습니다. 다음 시간에 또 다른 보화 같은 성경의 어휘를 가지고 여러분을 찾아뵙겠습니다. 그때까지 주님의 은혜 안에서 안녕히 계십시오.
📌 핵심 요약 정리
경우에 합당한 언어 선택의 성경적 지혜:
잠언 25장 11절의 "아로새긴 은쟁반의 금사과" 비유처럼, 문맥과 상황에 완벽히 부합하는 적합한 어휘의 선택은 표현의 조화로움과 가치를 극대화함.
전도서 12장 11절의 "잘 박힌 못" 비유처럼, 단단한 기둥 제자리에 반듯하게 일직선으로 딱 박혀 들어간 정교한 언어적 선포만이 청중 성도들의 마음에 깊은 구원의 확신과 흔들리지 않는 신앙의 기틀을 견고하게 세워줄 수 있음. (밀드레드 힐의 시 <하나님의 못>처럼 성도는 자아를 감추고 오직 그리스도의 형상만을 떠받치는 단단한 말씀의 못이 되어야 함)
'초대'와 '초기'의 언어 구조적 모순과 차이점:
초대 (初代 - 순번적 명사): 직무나 계통의 '첫 번째 사람' 혹은 '첫 번째 대(代)의 세대'를 가리키며, 그 다음 결합 구조로 반드시 2대, 3대, 4대라는 순번 대수가 뒤따라옴. (예: 초대 대통령, 초대 회장)
초기 (初期 - 시기적 명사): 맨 처음으로 비롯되는 '시간적 시기'나 '첫 번째 기간(동안)'을 뜻하며, 그 다음 역사적 결합 구조로 반드시 중기(중세)와 말기(현대)라는 시간 축의 기간 구분이 뒤따라옴. (예: 임기 초기, 초기 작품)
'초대 교회' 칭호의 오역 유래와 모순성:
서양 학계의 원어 표현인 영어 'Early Church'나 독일어 'Frühkirche'는 명백히 시간 축의 처음 단계를 뜻하는 기간 용어(Early stage)임. 그러나 초창기 국내 번역가들의 어학적 부주의로 인해 이를 순번 명사인 '초대 교회'로 오역해 버렸고, 이것이 수십 년간 굳어져 국어사전 표제어에까지 등재되는 심각한 오류적 관습을 낳음.
초대 교회라고 부르면 역사 구조상 '2대 교회', '3대 교회'가 출현해야 하는 논리적 모순이 발생하므로, 기간 구문상 중세 교회와 현대 교회로 연결되는 '초기 교회'라고 부르는 것이 100% 정확하고 타당한 표현임.
용어 교정의 신학적 의의와 성과:
오랫동안 잘못 정착된 용어일지라도 진리의 적확성을 위해 끊임없이 수정해야 함. 우리 교단 역사 속에서도 원어 'Early Writings'를 관습적으로 <초대문집>이라 오역했던 것을 끈질긴 지적으로 바로잡아 현재 <초기문집>이라는 올바른 정식 명칭으로 환원해 낸 위대한 성공 사례가 존재함.
최근 학계와 최신 기독교 교회사적 경향 역시 '초대 교회'라는 모순된 오역 명칭을 과감히 버리고, 역사적 진실에 부합하는 '초기 교회' 혹은 '초기 기독교'라는 잘 박힌 못 같은 정확한 용어로 정정하여 사용하고 있으며, 성도들 역시 이러한 언어적 정교함 속에서 신앙의 품격을 드높여 가야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