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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두 손에 꼭 쥐고 있는 책을 보자. 가로 150밀리미터 세로 220밀리미터 약 500그램의 한 물체는 과연 어떤 가치가 있을까?”
<내 책은 하루에 한 뼘 씩 자란다>(양정훈 저)를 통해 책을 추상적인 물체에서 객관적인 물체로 생각해 보게 하는 문장이었다. 책을 추상적인 개념으로만 파악하고 손에 잡히는 사물이란 생각을 잘 하지 못했던 부분에 약간의 자극을 준 순간이었다. 책에 대해서 한 발 떨어져서 생각하고 바라보게 되는 순간은 역시 숫자의 힘이었다. 숫자가 등장하면 왠지 더 객관적이고 신뢰가 가는 것을 느끼게 된다. 숫자는 그런 면에서 어떤 마력을 지녔다.
지난 19일에는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서울국제 도서전’에 참석한 박근혜 대통령이 책을 직접 구입하는 장면이 나왔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978년 당시 퍼스트레이디 시절에도 도서전을 찾았다고 한다. 현직 대통령이 도서전에 직접 찾아온 것이 14년 만이라고도 했다. ‘책사는 대통령’이 생경하게 느껴지는 우리문화. 중앙일보 논설위원 정진홍은 이 현상을 두고 ‘문화 융성을 주창하는 나라에서 책 사는 모습의 대통령 자신이 무슨 대단한 일인 것처럼 클로즈업되는 것’이 왠지 어색하다는 말을 빠뜨리지 않았다.
정진홍은 칼럼에서 “문화는 습관이다. 책 읽는 습관, 책 사는 습관이 곧 문화다. 곳곳에서 다소 거창하고 딱딱하게 ‘문화융성’을 이야기하지만 융성보다 더 중요한 게 이런 사소한 습관‘이라고 일침을 놓는 것 또한 잊지 않고 있다. 그의 말에 따르면 ’ 책 사는 습관의 지속이 없으면 문화는 융성은커녕 존립도 어렵다.’는 것이다. 문화란 것이 ’단번에 솟아나는 것도 단박에 점핑‘하는 것도 아니어서 ‘한 켜 한 켜 쌓이는 온축이며 날마다 지속하는 습관의 산물’임을 강조하고 있음이다.
나는 6월23일(일) ‘서울국제도서전’마지막 날에 도서전에 다녀왔다. 아침 6시 차를 예매하고 잤지만 아침 콜을 듣지 못해 결국 6시40분차를 타고 상경을 했다. 11시가 넘어 도착하여 간단하게 죽을 한 그릇 먹고 도서전이 열리는 삼성동 엑스포를 찾았다. 도서전에 마감시간은 4시30분. 도서전 입구에서 예매를 하느라 잠시 줄을 서 있었다. 주변을 살짝 둘러보니 외국인들도 종종 눈에 띄었고 아이들 손을 잡고 온 부모들의 모습이 많아 보였다. 연인들이 함께 오는 경우도 있어서 축제의 분위기가 느껴진다.
예매를 하고 입구에서 입장표를 보여주고 막 들어선 전시장은 서점에 들어갈 때면 늘 맡게 되는 책 냄새가 ‘훅’ 콧속으로 들어왔다. ‘잘 찾아왔네.’하는 안도감과 입장하는 사람들에게서 느끼는 ‘동질감’같은 것이 동시에 느껴진다. 입구에 들어서자 맨 처음으로 문학 동네출판사가 눈에 띈다. 앞자리에 위치를 한터라 많은 사람들이 북적대고 있었다. 책을 구입하고 책값을 치르기 위해 계산대 주변에는 줄을 길게 늘어섰다. 예상했던 것 보다는 도서전이 성대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참가한 출판사들도 대형 출판사 몇 군데였을 뿐이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베스트셀러’ 작가 군을 많이 확보한 곳이 아닌가 싶었다. 내가 좋아하는 출판사들은 눈에 띄지 않았다. 이를테면 ‘마음산책’ 같은 곳 말이다.
책은 예상만큼 기대했던만큼 저렴하진 않았다. 인터넷 구입을 하게 되면 포인트까지 합쳐져서 도서전에서 보다 약간의 가격만 더 지불하면 충분하게 구입할 수 있는 시스템이기에 현장에서 30% 정도의 책값형성은 별로 저렴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와 동시에 진열된 책들은 이미 나와 있어 구입한 책들이 많았다. 그런 면에서는 약간의 실망감이 들었다. 내가 사는 곳에서의 행사정도밖에 느껴지지 않았기에 무언가 기대를 잔뜩 하고 상경한 내게는 약간의 섭섭함까지 느껴졌다. 진열된 책과 출판사 명칭을 따라 한 바퀴를 따라가다 보니 내가 쓰고 싶어 하는 주제에 맞는 책 몇 권이 눈에 띄었다. ‘빈손으로 갈 순 없잖아.’ 의 마음으로 책을 몇 권 골랐다. 다행히 현장에서 바로 택배발송이 가능하다 하니 그런 면에서 보자면 가격이 그런대로 괜찮았다.
작가와의 만남이 1시 전후로 이뤄지고 있었다. <아주 사적인 독서>를 쓴 저자 이 현우가 저자로 참여하고 있었다. 그 책은 이 현우의 책 중에서도 근래 아주 재밌게 읽었던 터라 잠시 자리에 앉아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역시 빠지지 않는 문답 중 “종이책은 살아남을 수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이 현우는 종이책에 대한 경험을 갖고 있는 이 세대에서는 종이책이 충분히 살아남을 것이지만 터치에 강한 젊은 세대에게는 종이책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했다. 모든 정보를 인터넷이나 휴대전화 태블릿 등에서 얻는 젊은 세대에게 종이책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을지가 관건이라는 얘기로 들렸다.
사실 나는 전자책에 대한 거부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책을 감히 기계로 보다니 라는 생각에서였다. 신성한 책에 대한 모독이라고까지 여겼다. 그런데 이번 미션을 하면서 책이 절판이 되어서 전자책을 구입해서 읽었다. PC 화면에 크게 띄어놓고 읽었는데 생각보다 거부감이 들지 않고 잘 읽혀서 다소 놀라기도 했다. 딱 경험한 만큼만 이해가 가능하다는 말을 실감했다. 전자책은 생각보다 괜찮았다. 종이 책이 혹여 사라질까 책에 대한 집착에 가까운 근심은 일단 접어두기로 했다. 자연스런 흐름을 따르자는 생각을 하게 된 기회가 되었다.
눈에 띄었던 몇 장면은 다음과 같다. 하나, 책 겉표지를 꽂아서 설치미술처럼 표현한 문학 동네의 벽면. 시디가 꽂혀 있는 줄 알았다. 책 표지의 다양한 색감이 그렇게 우아하고 새로운 미술작품처럼 보여서 좋은 시도로 보였다. 당당함이 느껴졌다고 할까.
둘, 일러스트레이션들의 그림이 전시된 벽면. 자신의 명함까지 꽂아 놓은 그 공간에는 화려한 그림들로 인해 지나는 사람들의 발길을 머물게 하기에 충분했다. ‘미술 전시회’를 다녀온 느낌. ‘안구의 정화’를 갖는 시간.
셋, ‘북 아트’ 전시 공간. 글을 한지에 써서 모빌처럼 매달아 놓은 곳에서는 시원함과 함께 정취가 느껴졌다. 여유를 느끼고 막 숲에 들어서는 명상 공간 같은 기분을 느꼈다. 넷, 외국도서전. 인도 등의 책들이 적지만 소개되고 있어 좋았고 중동 코너에서는 아랍어로 자신의 이름을 써주는 코너에 줄이 길게 몇 줄 서 있었다. 참석하고 싶었지만 시간 관계상 패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점자 그림책 코너다. 점자를 손으로 만지면 그 감촉이 너무 좋았고 그림 또한 일반인들이 같이 볼 수 있도록 섬세하게 신경을 썼다. 사물들은 그 감촉만으로 느낄 수 있도록 실물을 넣어서 만들어 놓은 그림책도 있어 기억에 오래 남는다. 구입하고 싶은 책이었고 관심이 가서 명함을 받아 오기도 했다.
도서전을 돌아 나오니 네 시간에서 다섯 시간을 걸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입구 벤치에 앉아서 퉁퉁 부은 다리를 쉬게 했다. 생각보다는 양에 차지 않았지만 출판사들의 현황과 다양한 출판문화를 접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진 점은 좋았다. 미션에 들어 있던 명함은 한 장도 돌리지 못했을 뿐 아니라 그 자리에서 명함을 꺼내기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 그러나 이번 미션을 위해서 명함을 따로 기획하고 만들어 보았으니 일단 준비는 된 셈이다.
도서전을 마치고 죽전 요양원에 계신 어머니를 찾아뵙고 저녁 아홉시 버스를 타고 내려오니 새벽이었다. 비몽사몽 잠을 청하는데 몸은 온통 퉁퉁 부어 있다. 차를 열 시간 넘게 탔던 것도 무리수였지만 요즘 건강관리에 소홀한 점이 크게 느껴지는 부분이다. 그 후 헬스장에 다니겠노라 결재를 했지만 한 번밖에 가지 못했다. 이 일을 어쩌랴. “독서가 운동만큼 좋다” 는 말을 칸트가 했다고 하지만 독서가 운동은 아니지 않겠는가. 칸트야 아침마다 산보를 했으니 그렇게 말할 수 있지만 산책도 하지 않은 나는 지금 책을 읽는 것만큼이나 건강을 챙겨야 하는 성실함이 요구되는 한 주였다.
어떤 리서치 결과에 따르면 대한민국 직장인들 중 80%가 자기계발의 핵심도구로 ‘독서’를 꼽는다고 했다. ‘책을 통한 자기계발’을 행한 셈이다. 자기계발은 곧 더 나은 나를 위한 어떤 행위를 말하고 있다. 그 한 방법으로 독서가 최우선으로 꼽히고 있는 것이다.
개인의 욕구와 동기부여의 이론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메슬 로의 욕구단계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동기를 부여할 수 있는 욕구가 단계별로 형성되어 있다. 생리적 욕구, 안전욕구, 소속감과 애정욕구, 존경의 욕구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아실현의 욕구가 있다. “나의 능력을 발휘하고 싶다.” “자기 계발을 계속하고 싶다.”는 자아실현욕구가 강력하게 나타나는 시기이다. 이는 자신이 이룰 수 있는 혹은 될 수 있는 것을 성취하려는 욕구이고, 자신의 잠재력을 극대화하여 자아를 완성시키려는 욕구에 해당한다. 책은 그만큼 인간의 사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왜 책을 읽는가?>를 쓴 저자 샤를단치는 독서란 고독한 사람들의 여원한 시간이라고 했다. 또한 자신의 어둠을 인식하기 위해 책을 읽는다. 그리고 즐거운 독서는 운동만큼 건강에 유익하다고 했다. 독서의 쾌락이 끝난 뒤 자부심에 부풀고 읽었다는 자체가 자랑스럽다고 했다. 작가의 진정한 상속인은 독자라고 했다.
그리고 ‘책은 독자를 양분으로 삼아 생존한다.’ 라고도 했다. 그리고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는 이기심에서 비롯되지만 결국 독자가 얻게 되는 것은 이타심이라 했다. 애당초 책을 읽을 때 이타심 같은 것은 염두에도 두지 않았지만 책을 읽는 도안 잠자고 있던 생각이 되살아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샤를단치는 “책은 잠자는 숲 속의 공주요 독자는 백마 탄 왕자님”이라고 표현한다.
왜 책을 읽는가? 지식의 경계를 확장하고 편견을 없애며 이해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다. 왜 책을 읽는가? 울타리 안에 갇혀 편견 속에 살면서 무지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다. ‘ 독서는 뇌리에 새기는 문신이다’ 는 말이 있다. 그리고 그는 ‘비록 그 나라말을 모르더라도 나는 방문하는 모든 나라의 서점에 가 본다. 서점은 그 나라의 지성과 감성을 알 수 있는 지표, 즉 미학이 응집되어 있는 곳이다. 비록 서점이 소수의 전유물이긴 하지만 많은 경우 그런 지표를 이끌어내는 쪽은 소수에 있다.’ 라고 썼다.
책을 만드는 방식을 보면 그 나라의 취향뿐 아니라 물질을 대하는 태도 역시 감지할 수 있다고 했는데 독일 책은 우아하고 엄격한 것이 조금은 성경책 느낌이 난다고 했다. 프랑스에는 수백 개의 소규모 서점들이 존재하고 있는데 이는 도서 정가제 덕분이라고 했다. 유럽에서 “프랑스 법”이라 불리는 이 제도는 이미 세계의 국경을 넘어 다른 나라에서도 시행되고 있다고 한다. 참으로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동네서점이 아이들의 참고서 판매를 하는 곳으로 변해버리고 그나마도 사라져 가는 우리의 현실에 비추어 눈여겨 봐야할 일이다.
‘작가의 진정한 상속인은 독자’라는 말이 있다. 그리고 ‘책은 독자를 양분으로 삼아 생존한다’ 라고도 했다. <내 책은 하루 한 뼘씩 자란다>에 보면 하루에 약 100여권의 정기간행물과 책이 새로 나오고 일 년이면 3만권의 책이 쏟아져 나온다고 한다. 문화융성으로 인해 삶의 질적 만족도를 높이려면 역시 책이 제 일순이라는 생각이다. 세계에서 책을 읽지 않기로 선두를 달리고 있는 지금 이 시점에 일 년에 출간된 3만권의 책들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먼지가 쌓이고 그냥 사각형의 틀로만 잠자고 있는 것은 아닐까. 책은 책장을 열었을 때 비로소 책으로 인정됨을 깊게 기억하는 독자가 많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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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국제도서전에 지금 막 다녀 온 듯한 느낌을 갖게 하네요~~수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