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부는 함양군 함양읍·백전면·병곡면·지곡면·수동면·유림면·휴천면·마천면에 해당된다. 읍치는 함양읍 상리 일대에 있었으며, 고을의 진산은 향교 위쪽의 白巖山이다. 읍치에는 둘레 7,035척(약 2,111m)의 대형 읍성이 있었는데, 지도에도 이와 같은 사실이 반영되어 있다. 고려시대의 읍치는 원래 古邑基라 표시된 곳에 있었다. 倭寇의 침입으로 인해 함락 당하자 고려 우왕 6년(1380)에 지도 위의 위치로 옮겼다. 읍성 안에는 學士樓가 특별하게 표시되어 있다. 함양에는 통일신라시대의 학자인 崔致遠(857-?)이 太守로 부임하여 남긴 치적에 대한 일화가 전해진다. 지도에는 나오지 않지만 㵢溪亭·白沙亭 근처에는 최치원이 제방을 쌓고 숲을 조성하여, 당시의 읍치를 보호하게 했다는 上林과 下林이 있었다. 현재는 상림만이 남아 있고, 천연기념물 154호로 지정·보호되고 있다. 학사루도 최치원을 기념하여 붙인 이름이다. 이 고을은 전라도의 운봉·장수와 연결되는 八良嶺(팔량치)·中峙(중고개) 등이 있는 지역이다. 삼국시대에는 백제와 신라의 경계선에 위치하여 전락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역이었다. 이러한 사실을 반영하듯 古城이 세 개나 표시되어 있다. 서원은 총 5개가 표시되어 있다. 蘫溪書院은 戊午士禍(1498) 때 사망한 鄭汝昌(1450-1504) 등을 배향하여 명종 7년(1552)에 세워지고, 명종 21년(1566)에 사액 받았다. 溏洲書院은 이조판서를 지냈던 盧禛(1518-1578)을 배향하여 선조 14년(1581)에 세워지고, 현종 1년(1660)에 사액 받았다. 나머지는 賜額書院이 아니다. 지도 오른쪽에 보이는 沙斤驛에는 종6품의 察訪이 파견되어 있었으며, 14개의 屬驛을 거느리고 있었다. 사찰은 당시에 폐사된 것까지도 자세하게 표시하였는데, 이를 통해 민간에서는 불교 역시 만만치 않은 영향력을 갖고 있었음을 짐작할 있다.(이기봉)
『{0}』 {1}권, {2}, 규장각원문검색서비스 (http://kyudb.snu.ac.kr/book/text.do?book_cd=GM99998_00&vol_no=87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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