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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창작워크숍
소설창작계획서
32142602 안선영
1. 소설 제목 : 한여름의 이중선
2. 전체 줄거리 :
기억을 잃어가는 엄마가 있다. 집안의 사소한 악재가 겹치는 와중 할머니가 암에 걸렸다는 통보를 받는다. 나는 운영하던 미술학원을 휴업하고, 엄마 대신 할머니를 간병하기 시작한다. 병실에서 할머니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포기했던 그림을 다시 그리기 시작한다. 그렇게 평화로움과 불안한 일상이 공존한다. 그런 일상이 한 달쯤 지속되던 날, 느닷없이 엄마가 병원에 오는 길에 사라진다. 병원에서는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전화가 걸려온다. 혼란 속에 나는 엄마를 찾으러 하루종일 돌아다닌다. 엄마는 아빠와 마지막으로 만난 장소에 있다. 무사히 장례식을 치루고 나는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미술 학원을 청산할 결심을 한다.
3. 주제와 의도 :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더 이상 당연해지지 않는 순간이 있다. 숨도 쉴 수 없을 만큼 답답하고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순간들이 있다. ‘한여름의 이중선’은 소중한 이의 죽음을 통해, 해체된 가족이 재화합하는 과정을 그렸다. 이와 동시에, 주인공은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하고 싶은 것에 대해 깨닫게 된다. 창조의 힘을 발휘할 수 있게 된다.
4. 인물 설정과 관계 소개 :
한서연 : 나. 회화과를 나와서 미술학원을 운영하고 있다. 30대 초반의 여성으로, 무기력증에 시달리고 있다. 현재 일상에 만족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속으로 뭔가 잃어버린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쉽게 상처받고 활발하면서도 의외로 소심하다. 감정보다 이성이 앞서는 타입이다.
정하성 : 30대 중반의 프로그래머. 일 중독자. 서연의 남자친구로 현재 연애는 하고 있지만 서로 거의 남남처럼 지내고 있다. 하나에 꽂히면 거기에만 파고드는 스타일, 직설적으로 말하는 타입이며, 냉철하며 이성적인 성격이다.
엄마 : 한때 잘나가는 커리어우먼이었으나 갑작스러운 이혼의 충격 이후, 기억을 점점 잃어가고 있다. 병원에 오는 길에 느닷없이 연락이 되지 않은 채로 사라진다.
할머니 : 서연이 감정적으로 의지했던 인물.
발단 : 나는 아무렇지 않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기억을 잃어가는 엄마와 무심한 남자친구 사이에서 현 상태를 유지하고 싶어한다. 그러던 와중 이모에게 연락을 받고, 운영하던 미술학원을 휴업처리 후 할머니를 만나러 병원에 가기로 한다.
전개 : 할머니의 병명은 췌장암. 살 수 있는 확률이 10%도 되지 않는다고 했다. 서연은 병원에 머물며 할머니를 직접 간호하기 시작한다. 병실에서 서연은 그동안 그릴 수 없었던 그림들을 그리기 시작한다. 할머니와 대화하며 그 기록을 남기기도 한다. 살아왔던 기억들이 병실 안을 맴돈다. 단조로우면서 불안한 하루하루가 계속된다. 언제 돌아가실지 모르는 할머니와 기억을 잃어가는 엄마와 통화하는 나날이 지속된다.
절정 : 우려했던 일이 일어났다. 병원 오는 길에 엄마가 사라진다. 설마설마했는데 시간이 다되록 연락을 받지 않는다. 나는 병원을 뛰쳐나와 엄마를 찾으러 돌아다닌다. 엄마가 갈만한 곳을 전부 뒤져보았으나 보이지 않는다. 엄마가 사라졌다는 소식에 이혼했던 아버지가 서연을 찾는다. 아버지와 합심하여 엄마를 찾아내고 우여곡절 끝에 할머니의 장례식을 치루게 된다.
결말 : 나는 남자친구와 헤어질 것, 미술학원을 청산할 것을 결심한다. 그림을 그리고 또 그린다. 병실에서 그렸던 그림, 장례식 이후에 그렸던 그림이 SNS에서 큰 호응을 얻게 되어 전시회를 열게 된다. 관계자에게 여름날 있었던 일을 작가노트로 적어달라는 요청을 받게 된다.
5. 수필 활용 방법 : 소설의 결말 부분에 활용한다. ‘나’가 병실에서 그려왔던 그림들, 장례식 이후 그린 그림들이 인정받게 되어 전시회를 열게 된다. 이때 전시회 담당자가 ‘나’에게 여기에 관한 일화를 적어줬으면 좋겠다며 부탁을 한다. ‘나’에게 있어서 작가노트를 적는 것은 곧 치유의 과정이 된다. 최종적으로는 소설의 주제를 다시 한 번 더 암시하는 효과를 줄 수 있다.
6. 소설의 시작 부분(원고지 10~20장) :
멀쩡하게 돌아가던 냉장고가 고장났다. 부엌 한 구석에서 묵묵히 10년을 버텨주었던 냉장고다. 야채 칸은 작동이 되는데, 위쪽 선반 부분에 냉기가 돌지 않았다. 서연은 이마를 짚고 한숨을 내쉬었다. 아저씨를 불러야겠다고 생각했다.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던 서연의 엄마가 다가왔다. 냉장고를 바꿔야겠다는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면서, 오늘은 회사에서 중요한 실수를 해버렸다고 말했다. 갱년기 증상이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며 엄마는 자신의 어깨를 두드렸다. 대화는 여느 때처럼 2주 전 일이 잘 기억이 안 난다는 말로 마무리되었다.
서연은 고장난 냉장고와 엄마의 병원 예약을 생각했다. 집안을 둘러보는데, 물건들이 어지럽게 흩어져있었다. 지난주 주말이었다. 미술학원 특강 준비로 정신이 없어 근 한 달 동안 집 청소를 하지 못했다. 엄마는 회사 일을 처리하느라 바빴고, 서연도 집에 거의 들어오지 못했다. 미술학원에서 밤을 새다시피 했다. 피곤한 것을 제외하면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돌아가고 있었다. 거실 소파 앞에 책이 한 무더기 쌓여 있었다. 짝짝이로 남겨진 양말 여럿, 미니 탁자 위에는 서류들이 어지럽게 흩어져있었다.
개중에 쓸모없는 것들을 버리려 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서연의 엄마가 말렸다. 아직 쓸 수 있는데 왜 버리냐며 쓸쓸한 눈빛으로 그것들을 쳐다보았다. 그러면 서연은 말문이 막혀 아무것도 버릴 수 없게 됐다. 그런 생각들을 하며 서연은 나갈 채비를 하기 시작했다. 오늘은 예준과 만나는 날이었다. 프로그래머인 예준은 늘 밤샘작업을 하기 바빴다. 3주만에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서연은 화장대에 앉아 푸석해진 얼굴에 미스트를 뿌리고 스킨로션을 발랐다. 팩트로 얼굴을 두드리고 립스틱을 발랐다. 화장 안한 얼굴이 더 예쁘다던 예준의 웃는 모습이 떠올랐다. 요즘 예준은 통 웃지를 않았다.
무슨 일이 있냐고 물어도 대답을 하지 않았다. 서연은 한숨을 쉬며 가방을 챙기고 약속 장소로 나갈 채비를 했다. 차를 타면 금방 도착하는 레스토랑이었다. 예준과 자주 데이트를 했던 장소다. 서연은 자리에 앉아 먼저 음식을 시켰다. 예준은 항상 약속에 조금씩 늦어서, 먼저 음식을 시켜놓곤 했다. 그래도 지금까지 약속을 파토내거나 한 적은 없었다. 그 점이 다행스러웠다.
7. 수필 전문 :
상에 차례로 음식들이 오르기 시작한다. 편육이며 육개장, 전, 홍어 무침 같은 반찬들이 일회용 용기에 담겨 나온다. 고소하고 기름진 냄새가 코끝을 스친다. 이 곳은 죽음이 머물렀다 가는 공간. 슬픔과 애도의 분위기가 적막하게 흐르는 것이 당연하다. 이 가운데 밥이 맛있다는 것은 참으로 모순된 일이다.
9월의 막바지였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할머니는 7월 한여름에 췌장암 판정을 받으셨다. 눈에 황달기가 생겨 병원에 모시고 갔는데 그게 발단이었다. 첫 번째 병원에서는 생존률이 12%도 안 된다고 했고, 두 번째 병원에서는 수술이 가능하다고 했다. 우리 가족은 아무것도 몰랐다.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나서 요양원을 예약한 상태였다. 분명히 모든 것이 괜찮았는다. 수술 후 회복 기간 내내 알 수 없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결국 상처를 회복하지 못하고 할머니는 돌아가셨다. 상처가 덧나게 되어 수술을 하는 와중에도 피를 아주 많이 흘리셨다.
부고 연락을 받고, 사촌 동생들과 급히 택시를 타고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난생 처음으로 상복을 입었다. 윗도리에 똑딱이 단추가 있고 치마는 고무줄 밴드가 있는 편한 복장이었다. 검은색 한복은 3일장을 치루는 내내 우리 가족의 잠옷이자 평상복이자, 손님 맞이용 옷이 되어주었다. 조문객 중 누군가에게 상복이 잘 어울린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3일 내내 웃고 울고 떠들면서 흘려낸 눈물이 옷에 가득 배었다.
조금 더 좋은 병원에 모셨다면 할머니가 돌아가시지 않았을까. 소화가 안 된다고 하실 때 건강검진을 받게 하셨더라면 어땠을까. 이런저런 후회와 생각, 잡담들이 오간다. 아니 수술이 잘 돼셨다면서요, 하는 안타까움의 목소리가 장례식장을 맴돈다. 그러니까, 할머니는 갑작스럽게 돌아가신 거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장례식을 치루는 내내 현실감이 없었다. 흘러가는 상황들이 하나의 거대한 연극같이 느껴졌다.
맞벌이하는 부모님 밑에서 자란 내게 할머니는 부모님이었고, 친구였고, 든든한 도피처였다. 어렸을 적, 아버지에게 크게 혼나고 집에서 도망 나온 날에도 말없이 날 안아주시던 분이었다. 아무런 말도 묻지 않고 용돈을 찔러 넣어주시기도 했다. 매번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할머니의 목소리에는 특유의 ’밥 먹었어?‘라고 물어봐주시는 상냥함이 있었다. 할머니가 아프시기 전에 같이 밥을 먹고, 요리를 해드리고 티타임을 가졌던 것이 생각났다. 지금 와서는 그렇게 했던 일들이 다행이다, 싶다.
잠시 빈소를 나와 병원 내부에 있는 벤치에 걸터앉는다. 장례식장에서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오랜 세월 나는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어도, 도움을 받고 싶어도 방법을 몰랐다. 견딜 수 있는 선에서 혼자 고통을 처리하는 것이 익숙했다. 묵묵히 견디는 것이 미덕인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불행은 대개 연이어서 오기 마련이고, 그렇게 되면 사람은 홀로 견딜 수 없어진다. 어른의 슬픔은 어른이 되었어도, 감당하기 힘들다. 단지 고통을 견디는 한계치가 높아진 것뿐이다. 처음으로 ’남겨진다는 것은 무섭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3일 내내 있는 동안 많은 사람들을 보았다. 처음 보는 이들이 장례식장을 방문했다. 부모님이 아는 사람들, 이모들이 아는 사람들, 혈육들, 내게 있어서는 낯선 이들이 방명록에 이름을 남기고 갔다. 한마디씩 남겨주는 위로가 우리 가족의 슬픔을 지탱해주었다. 서로의 근황을 묻고, 할머니를 추억하는 말과 앞으로 살아갈 이야기가 오고 갔다. 다들 각자의 사연을 품고 있었다. 하나씩 닳고, 부서져 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할머니 마지막 길을 수놓았다. 소중한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자리에서는 다 똑같은 사람이 된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이든, 한번 고꾸라져본 사람이든, 평상시에는 불평불만을 하게 만드는 사장도, 원수나 다름없는 여자도 겸허해지고, 가장 아래의 자리로 내려온다.
오후 4시쯤, 우리 가족은 뒤늦은 식사를 하기 시작한다. 이 시간에는 장례식장에 사람이 오지 않는다. 잠깐 밥을 내어 밥을 먹고, 또 다른 조문객이 오기까지 무료한 시간을 견딘다. 생각보다 바쁘고 정신이 없어서 장례식장은 평소에 생각했던 것처럼 분위기가 그리 어둡지 않다. 상복을 입은 내내 슬퍼하고 후회하면서도 감정이 가라앉는 시간은 온다. 나는 가만히 앉아서 영정 사진을 응시한다. 문득 삶이 아무리 닳고 만신창이가 되어도, 어떻게든 이어질 것이란 생각이 든다.
떠나간 사람들은 망자의 자리로 간다. 떠나간 이들은 그들의 자리에서, 우리는 우리의 자리에서 생애 춤을 추다 그들 곁에 가게 될 것이다. 그래서 남겨진 자들의 연대란 참으로 슬프고, 아름답다. 다행스럽게도 할머니는 아무도 오지 않을 쓸쓸한 장례식을 치루지 않았다. 내게도 언젠가 후회가 잦아드는 날들이 오고, 현재로서 살아가는 날들이 다시 오길. 생애 부끄럼 없이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